나는 프로야구를 꽤 오랫동안 좋아해왔다. 연고지라는 개념도 없던 때 지금의 응원팀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팬이 되었다. 공부 잘하는 애를 좋아하는 느낌으로 프로야구 응원팀을 고르는 일은 제법 현명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공부 잘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이번 시즌에 우승했다고 앞으로 이 팀의 성적이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채로 뚝딱거리며 살고 있지만 열 살 언저리에는 몰랐던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야구에 대한 진실은, 프론트(구단)가 꼭 우리 편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감독이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그보다 훨씬 자주 했지만 그건 기분 탓이 크다는 정도는 안다.
돈을 써야 이긴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주로 그렇다. 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포츠가 재미있지만, ‘프로’라는 말은 돈이 곧 재능이라는 뜻이니까. 연고지라는 것이 있지만 어쨌든 선수는 팀을 옮겨 다니고, 옮겨 다니게 되는 이유는 돈이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 마음을 준 프랜차이즈 선수가 다른 팀으로 소속을 옮길 때, 새 시즌을 앞두고 선수 영입이 신통치 않을 때... 왜 돈을 쓰지 않는가에 대한 장탄식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돈을 쓰고도 성적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돈을 허투루 썼다는 생각이 드는 시즌 중반에도 돈을 쓸 줄 모른다는 욕이 나온다. 스카우터들이 제대로 알고 영입했는지(부상 이슈), 코치진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부상 이슈), 경기가 거듭될수록 다들 할 말이 참 많아진다. 우리 팀에 이미 유망주가 있는데 포지션이 중복되는 유명한 선수를 굳이 큰돈 들여 영입해 유망주가 경기에 나오지 못하거나 엉뚱한 포지션에서 실책을 거듭하는 모습을 볼 때도 분통이 터진다. 결론적으로 돈을 잘 썼는지는 성적이 판가름한다. 정신력도 돈에서 나온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이 글이 분열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 생각이 옳다.
영화 <머니볼> 스틸컷
인기 스포츠답게 야구와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영화가 많고 많은데, 대부분은 ‘9회말 역전 만루홈런’으로 대표되는 극적인 뒤집기에 이르는 약체팀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이미 강팀이 잘하는 ‘현실적인’ 내용은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기대하지 않았던 우승의 순간이 주는 쾌감을 이야기에서라도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머니볼>은 실화를 다룬 논픽션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야구 영화인 만큼이나 본격 돈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머니볼’이라고 불릴 만큼 투입하는 돈의 액수가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공고한 프로야구에서, 돈을 ‘잘’ 써서 우승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 ‘머니 스마트’한 단장의 취임과 더불어 시작된 가난한 구단의 기적 만들기.
논픽션 『머니볼』을 쓴 마이클 루이스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서 채권 관련한 일을 하고 금융 관련한 글을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실어 온 저널리스트 출신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빅숏』도 잘 알려졌지만, 그의 대표작이라면 역시 『머니볼』이다.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치열한 취재를 이어간 결과물인데,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들끓는 욕망 속에서 추락하고 솟아오른 과정을 그려냈다.
『머니볼』의 주인공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팀 중 하나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단장 빌리 빈이다. 스포츠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어서, 더 정확히 말하면 1998년에 빌리 빈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직에 오르면서 변화가 시작되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 기간이다. 심지어 2002년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20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시기, 메이저리그에서 최고 부자 구단은 뉴욕 양키스로, 선수의 연봉 총액을 따지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선수 연봉 총액은 뉴욕 양키스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돈 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구단이 투입하는 돈이 성적으로 직결되는 시대에 강팀과 약팀은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가려진다고 생각했지만, 그 예측이 어떻게 빗나갔는지를 다룬 작품이 『머니볼』이다. 여기에 K적인 믿음인 ‘정신력’은 상관이 없다. 가장 돈 얘기다운 돈 얘기, ‘가성비’와 관련이 있다. 돈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의 문제에서 빌리 빈은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 야구에서도 ‘데이터 야구’라는 말이 흔히 보이지만 스포츠는 아주 오래전부터 재능의 영역으로, 나아가 재능에 헌신하는 막대한 돈의 흐름으로 ‘강함’이 결정되어왔다. 하지만 빌리 빈은 이 ‘돈 놀이’를 조금 다른 방식의 ‘숫자 놀이’로 바꾸었다.
야구계에서 중요하게 보는 숫자가 몇 있다. 타자를 기준으로 말하면 가장 크게는 타율이고, 홈런과 도루 개수 같은 숫자들이다. 이적을 염두에 둔 선수들이 가장 신경 쓰는 숫자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구 팬들은, 실제 팀에 공헌하지 못하면서 숫자만 멀쩡한 베테랑에 대한 분노를 은은히 품게 되는데 그 얘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여기서 멈추겠다. 어쨌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좋은 선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스카우터들은 그 숫자를 보고 몸값을 거래한다. 그런데 남들하고 ‘같은’ 숫자를 보고 있으면 돈 싸움에서 밀린다. 집 구할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역에서 도보 몇 분, 대중교통 노선 몇 개, 시내 중심가까지 몇 분, 준공한 지 몇 년. 다들 같은 숫자를 보고 있고, 그 숫자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더 쉽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면 가장 쉬운 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돈이 충분히 있다는 가정하에서다.
빌리 빈은 ‘저평가된 자산’에 주목했다. 이 부분이 재미있는데, 빌리 빈이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게 주효했다. 빌리 빈은 1980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23순위)로 뉴욕 메츠에 입단했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했다. 이후 전력분석원으로 일을 시작해 단장 보좌관을 거쳐 1998년 단장직에 올랐다. 야구선수들이 은퇴 이후 선택하는 진로 중에서 코치진 합류가 가장 두드러지지만 그는 숫자를 보는 포지션으로 이동했으며, 야구에서 과소평가 당했지만 중요한 숫자가 무엇인지를 증명해내기 시작했다. ‘되는 야구’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이다. 누가 훌륭한 선수이며 왜 그러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인기와 평판 너머에 있는 가치, 선수의 잠재력.
일단, 1990년대 초반까지 ‘세이버매트릭스’는 야구계에서 낯선 용어였다. 이 숫자들을 구단에 이해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머니볼』에서는 데이터가 존중받지 못했던 당시 야구계의 분위기를 금융계와 비교해 설명한다. 금융계와 야구계는 모두 확신과 편견에 따라 움직이는데,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을 내린다면 확실한 이득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남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즉 ‘생각 없음’)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손실을 입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통해 얻어진 실제 데이터야말로 개인의 믿음보다 가치있으며, 빌리 빈은 그 사실을 믿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선수의 경기력을 어떻게 계산해 낼 것인가? 득점으로 계산한다. 타율과 홈런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래서다. 야구에서 득점은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건이다(최종 목표는 당연히 승리-우승이다). 영화 <머니볼>에서 조나 힐이 연기한 ‘피터 브랜드’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자 빌리 빈의 ‘숫자 담당’이었던 폴 디포디스타는 과거만 바라보는 데이터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데이터 읽는 법을 고안하고자 했다.
영화 <머니볼> 스틸컷
그렇다고 빌리 빈이 모든 것을 ‘차가운’ 숫자에만 의지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빌리 빈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가 그러하듯이 그라운드의 모든 요소에 간섭했다. 많은 메이저리그 단장들처럼 트레이드를 하고 스카우터를 감독하며 사진이 찍히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단장이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번트나 도루를 할지 여부를 정했고, 누구를 경기에 내보내고 누구를 벤치에 앉힐지를 정했고, 라인업을 구성했고 불펜 운용에까지 결정권을 가졌다. 감독의 미묘한 심리전까지 사전에 지시를 내려두었다고 한다.
또한 빌리 빈이 집중한 숫자는 타율 대신 출루율, 홈런 개수 대신 장타율이었다. 안타를 치는 게 아니어도 1루까지 많이 나가면 된다. 몸에 맞는 공이든 볼넷을 잘 고르든 말이다. 밥상이 차려져 있어야 밥을 먹는 법이니까. 안타를 쳐서 점수를 내려면 주자가 나가 있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빌리 빈은 그렇게 폼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시되거나 여러 이유로 이미지가 안 좋은 ‘이상한’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른 팀에서는 선수를 맞바꾸면서 자신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지만 빌리 빈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
하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인데다 실화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머니볼』이 영화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브래드 피트가 빌리 빈을 연기했는데, 실제 빌리 빈과의 유사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신뢰가 가는 인물을 연기해냈다. 책 『머니볼』이 다큐멘터리처럼 사람과 상황을 밀착해 따라다니기 때문에 절반은 야구책, 1/4은 경제학책, 1/4은 사회학책 같은 느낌을 풍긴다면 영화 <머니볼>은 매력적인 주인공을 가운데 둔 어떤 기적 이야기처럼 보인다. 렌카의 <The Show>가 흐르는 운전 장면은 할리우드가 가장 잘하는 가족드라마의 범주로 이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숫자 이야기? 숫자도 다 사람 살자고 들여다보는 것 아니겠는가.
영화 <머니볼> 스틸컷
<머니볼>의 성공 신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빌리 빈의 기기묘묘한 스카우트 전략을 이해한 다른 팀들에서 그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서이기도 했고, 성공 방식이 분석될수록 다른 팀들도 모방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성공했기 때문에 낱낱이 분석되었고, 유명해졌기 때문에 계속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머니볼』이 주는 돈과 관련한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숫자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요즘처럼 모두가 투자에 나서는 시대에, 『머니볼』은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몇 번을 읽어도 멈춰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 속 대목은, 야구와 관계없지만 야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통찰을 담았다.
부정적인 타성은 강팀과 약팀, 앞선 팀과 뒤처진 팀, 훌륭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작용한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모든 형태의 강점은 하나의 약점을 숨기는 동시에 또 다른 약점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며, 모든 형태의 약점은 강점이기도 하다.
- 전략적 균형은 언제나 뒤처진 팀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한다.
- 심리작용은 승리를 끌어내리고 패자를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다. (『머니볼』, 260쪽)
베넷 밀러 감독은 실화 바탕의 인물 이야기와 스포츠 이야기 모두에 강점을 가진 감독이다. 트루먼 카포티에 관한 <카포티>, 레슬링 선수 형제와 어느 재벌이 얽힌 살인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폭스캐처> 같은 영화들과 더불어 <머니볼>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중요한 이름은 바로 각본에 참여한 애런 소킨인데, <웨스트 윙>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그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에 강점이 있다. 몸이 보여주는 습관과 성격, 사람들 사이의 권력 변화를 예민하게 잡아내는 베넷 밀러 감독은 진짜 야구선수들처럼 보이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뒤, 야구 경기 자체를 많이 보여주지 않으면서 애런 소킨의 장기인 ‘관계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원래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할 예정이었던 시기에는 영화의 분위기도 꽤나 달랐던 모양으로, 소더버그는 좀 더 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하고자 했던 것 같고(인터뷰가 많은 버전), 애런 소킨이 손을 대면서 이론과 실천, 지성과 인격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머니볼>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책은 경영 파트에서 더 인기를 끌었고, 영화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느 쪽이든 즐길 수 있으니, 모두에게 잘된 일인 것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머니볼
출판사 | 비즈니스맵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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