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문득 고개를 드는 질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이라면, 이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 것 아닐까요. 그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 독서, 누군가의 삶을 만나는 일일 겁니다.
24년째 취재 현장을 지키는 곽아람 기자는 7년 전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과하며 그는 피해자의 권리를 외면하는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기록했고, 그 기록은 르포르타주 『탁월한 피해자』로 이어졌습니다. 이 책은 스토킹 범죄 피해를 기록한 르포르타주이자, 동시에 한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과정의 기록인데요. 그는 범죄 피해와 무너진 사법 시스템을 마주하며, 끝까지 싸우는 일이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한 연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독자로서는 이 책을 읽는 일이 연대라는 것을 끝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무가치함으로 끝나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 그것이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일임을 인정하는 마음,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을 보태려는 의지. 우리 삶이 가치로워질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을 이 책으로부터 발견합니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 이제 다시 삶의 질문이 연대를 향해 고개를 듭니다.

『탁월한 피해자』 출간 후기를 들려주세요.
책을 쓸 때 세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저 자신의 안전, 시스템이 부정한 당사자성의 확보,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 것.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 사법 시스템의 현실, 형사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고발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이 출간되고 난 직후엔 ‘일단 쓴 걸로 되었다. 마침내 썼다’라는 충족감이 가장 먼저 찾아오더군요. (웃음)
“Why me?”(28쪽)라는 질문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스스로 ‘탁월한 피해자’임을 인정하고 르포르타주를 쓰겠다고 결심했음에도,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이 자주 찾아왔으리라 짐작되었고요.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해오셨나요?
저는 독실함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냉담자’, 즉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에 직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신이 왜 하필 나를 골라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제가 마셔야 하는 잔이 너무 쓰다는 생각과 함께 “Why me?”라는 원망이 치밀 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올린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일종의 정신 승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이 일이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로서의 소명이자, 사회에 갚을 빚이 많은 구성원으로서의 소명이라고요. 제 고통이 의미 있는 일에 쓰이길 바랐습니다. 또한 글을 씀으로써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발화되지 못했던 제 목소리를 내고, 이 서사를 제 주도하에 저의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싶었습니다. 그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언젠가 쓰고 말 거라는 생각.
책에는 사건 기록과 함께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어떤 경로로 기자님의 곁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독자로서 피해자의 마음을, 기자님께서 고발하고자 하신 사법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문장들과 이야기들이 버티는 시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책에는 여러 작품이 인용돼 있습니다. 소설, 논픽션, 사회과학 서적 등등입니다. 그 작품들을 인용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책의 성격이 르포르타주라는 것입니다. 르포르타주는 기자가 현장에서 주관성을 가지고 하는 보도, 즉 저널리즘이자 문학이기도 합니다. 기자의 주관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지만, 보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기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자의 시각이 편향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러 레퍼런스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레퍼런스로 책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피해자들,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 일하는 이들, 피해자 지원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 피해자 변호사들 등을 인터뷰해 전형적인 논픽션 형식으로 써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쓰면 지금까지 피해자 권리에 대해 보도된 여타 기사들과 다를 게 없더군요. 저는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이 저의 고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그 이야기가 ‘이야기답게’ 잘 읽히길 바랐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많이 읽혀야 이야기로서의 생명력을 지니므로 제 이야기가 가독성과 재미를 확보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책이 법정 투쟁기의 성격과 현행 형사사법 시스템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완충 장치로,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소설, 에세이, 논픽션 등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출판 담당 기자이기 때문에 출간되는 거의 모든 신간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현행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 법조인들의 이에 대한 무관심 같은 것들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의 책들이 나올 때마다 읽고, 인용할 만한 부분들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이를테면 도진기 변호사의 소설 『법의 체면』 『4의 재판』, 정재민 변호사의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차병직 변호사의 산문집 『경계에 서는 법』, 엡스타인 사건 생존자 버지니아 주프레의 회고록 『노바디스 걸』 등입니다. 부산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의 투쟁기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는 김진주 씨를 인터뷰하고 그와 피해자로서의 생존연대를 쌓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이 사건을 겪게 되면서 관련 서적을 일부러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연대자 D의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박주영 판사의 『법정의 얼굴들』 『어떤 양형 이유』, 샤넬 밀러의 『디어 마이 네임』 등이 그런 책들이죠.
운명적으로 제게 온 책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살만 루슈디의 『나이프』입니다.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무슬림 극단주의자에게 피습 테러를 당하고 오른쪽 눈 시력을 잃은 루슈디가 글쓰기, 즉 서사의 힘으로 회복하는 이야기를 적은 논픽션이죠. 2024년 가을 이 책이 국내에 나오고 국내 언론이 루슈디에 대한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 책을 씀으로써 나는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얻었다고 느낀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저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러 번 저의 당사자성을 부정당했고, 그런 국가의 폭력이 가해자의 범행보다 저를 더 괴롭게 했습니다. 법적으로 저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분명히 당사자였고, 저의 당사자성으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치유가 될 것 같았거든요. 『나이프』가 제게 그 실마리를 주었고, 그래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반복해 강조하셨습니다. 범죄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꿈에도 알지 못할 사실이겠다 싶어요. 또한 ‘피해자다움’ 같은 고정관념과 싸우는 과정 역시 “사회적 예의에 따라 지양되는 것”(213쪽)이기에 끝까지 그 의지를 내는 일이 어려웠을 것 같고요. 그럼에도 스스로 재판 당사자의 자리에 서서 ‘피해자다움’과 싸워내신 힘에 대해 여쭙습니다.
언젠가는 모조리 써 버리겠다는 것, 제가 피해자이자 기자로서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것, 피해자를 겁박하고 억누르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모든 문제를 낱낱이 취재할 것이라는 것,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와 2차 가해에 대해서도 모조리 밝혀낼 것이라는 것, 그렇지만 그들은 제가 취재 중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것… 저는 잠입취재 중이니까요. 언젠가는 이 모든 부조리를 보도할 것이라는 것. 그래서 저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을 구제할 것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공소장이 변경되고, 변론재개가 신청되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 기자님께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결국은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저를 도와준 동료 언론인들, 방송 작가님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속한 매체도 다르고, 매체가 지향하는 이념도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이 사건을 묵과할 수 없다며 손을 내밀어주었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꼭 스토킹이 아니더라도, 경중을 차치하고 자신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꼭 돕고 싶었다고요.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른 세상을 살고 있고, 여성이 살고 있는 세상이 훨씬 폭력적이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힘없는 개인이 국가에 대항하려면 시민들의 연대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스토킹, 성범죄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연대를 우선 언급했습니다만, 범죄 피해는 여성만의 일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어느 날 사고처럼 닥칠 수 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시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저는 가해자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자는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니 비상식적인 행위를 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국가가 피해자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죠. 저는 시스템과 싸우고 있고, 이 싸움은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 아닌 국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미약하나마 이 시스템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들 현 시스템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아시고 힘을 모아주셔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저를 위해, 지금도 버티고 있는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언젠가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 연대해주세요.
이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연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끝내 이 사건을 지켜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기자님께서는 이 책이 어떤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시나요?
읽기를 통해 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책이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모든 독자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책에 “‘피해자’의 반대말은 ‘가해자’가 아니다. ‘아직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누구나 형사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해마다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연간 형법 범죄 발생 건수는 인구 10만 명당 1,900~2,000건가량입니다. 기대수명을 감안할 때 이는 국민 한 사람이 평생 한 번 이상 형법 범죄 피해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복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저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당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시행 이후 형사사법 시스템이 차곡차곡 망가져왔고 현재의 검찰개혁 논의로 10월이면 검찰청이 문을 닫고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하지 못하고 기소권만 갖게 됩니다. 수사에 대한 종결권은 경찰이 갖습니다. 예전에는 범죄피해를 입어 신고했을 때 경찰과 검찰 양쪽이 사건을 살폈다면 앞으로는 경찰이 가해자가 혐의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그걸로 끝나게 되는 거예요. 기업으로 치면 신입사원인 순경이 피해자의 생사가 달려 있을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원칙적으로는 순경이 내린 결정은 상급자들이 재검토해야 하겠지만 현장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수사 과부하가 이루어졌고 ‘수사 부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돌면서 베테랑 수사관들이 수사 부서를 떠났거든요. 인력이 부족하니 제대로 사건을 검토하지 못할 수밖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빼앗겠다고 합니다. 예전엔 그나마 경찰이 판단을 잘못 했을 경우 검찰이 자체적으로 보완수사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안전장치마저 없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정말 피해자들은 기댈 곳이 없어지는데 대부분의 국민은 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은 범죄피해를 입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혹여 피해자가 되더라도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건 초반에 제가 생각했듯이.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고, 저처럼 소위 ‘명문대’를 나오고, 메이저 언론사 기자이며, 법적 지식이 있고, 제법 탄탄한 인맥을 가진 ‘상위 1%의 피해자’도 시스템이 망가진 상황에선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건을 겪으며 저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저보다 가용 자원이 없는 이들이 피해자가 된다면 어떤 고통을 겪을지를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그나마 제가 운 좋은 피해자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문제의식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 르포르타주로부터 기자님의 세계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요?
24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았지만, 이렇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책의 편집자가 제게 ‘취재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밈이 있다고 알려주었을 때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취재란 일상의 업무인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밈까지 나올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엄연한 누범임에도 검찰이 공소장에 누범 가중 법조를 누락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구형하고, 제가 재판부와 법원에 진정서를 넣었는데도 묵살하고 있다가 결국 제가 언론에 제보해 ‘취재가 시작되자’ 비로소 잘못을 시인하고 공소장 변경 허가와 위치추적전자장치 명령을 재판부에 신청하는 걸 보면서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말이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절망적 상황을 타개하는 ‘마법의 주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스템에 절망하고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택하는 것이 언론 제보를 통한 공론화라는 것도요. 세상은 우리를 기레기라 폄훼하고, 레거시 미디어는 죽었다고 하지만 우리만이 할 수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제가 피해자가 됨으로써 ‘취재가 시작되자’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 일단 제게 시작된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재판들이 남아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제가 또 절망하고 무너질 수도 있고,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지를 가지고 싸워 나갈 수도 있고… 뭐든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로부터 스토킹 및 디지털 성폭력을 당하고 2021년 가을부터 6년째 여섯 번의 형사소송과 한 번의 민사소송을 치르면서, 지극한 고통과 절망, 분노 속에서 허우적댔고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난을 통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분명히 확장되었고, 저는 슬프게도, 어떤 면에서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한 반려 [ _______ ]
저는 집에서 작업하고, 음악은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듣지 않으며, 동물은 키우지 않습니다. 작업하며 물 외에는 다른 걸 마시거나 먹지도 않기 때문에 음식도 없네요. 물건이라고 할 것도 딱히 없는데 그나마 천장 형광등 외에 항상 켜는 조명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조명 라문 아물레또입니다. 2015년에 방한한 멘디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환하게 밝아서 시력 보호에 도움이 되므로 밤에 글을 쓸 때는 항상 켜 놓습니다. 작업하는 좌식 책상이 아니라 다른 높은 책상 끄트머리에 올려놓고 아래로 빛이 내리쬐도록 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기자님의 작업 공간은 어떤 모습인지요?
거실의 좌식 탁자에서 작업하고, LG 그램 노트북을 사용합니다. 집필은 항상 일요일에 합니다. 주말 이틀 중 토요일은 친구를 만나거나 집에서 쉬고 일요일에는 글을 쓰는 걸 루틴으로 삼습니다.
올빼미형 인간이기 때문에 글은 보통 오후 늦게쯤, 제가 내킬 때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씁니다.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새벽까지 쓰지는 않습니다. 이번 책 작업도 주로 일요일 밤에 했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이 사건의 경우 특히 별도의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초고가 이미 있는 셈이었고, 관련된 취재 내용을 적은 핸드폰 메모가 몇백 개 있었습니다. 그 기록들과 인용할 책들을 놓고 일요일 늦은 오후부터 노트북을 열고 작업했죠. 이 책은 원고지 1,500매가 넘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한 챕터를 끝내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허리와 목이 아파서 배겨내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많은 양을 썼습니다.
작업실을 아름답게 꾸미는 작가들이 많지만, 저는 정리정돈에 취약한 편이라 작업 탁자 위에 각종 잡동사니가 늘 널브러져 있습니다. 오른쪽에 놓인 조명은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라문의 루이즈입니다. 작동하면 빛이 일렁이면서 음악이 나오는데 작업할 때는 켜지 않습니다. 대신 책상 위에 별도로 설치한 라문 아물레또의 빛 아래서 작업합니다. 어쩌다 보니 거실에 라문 조명이 두 개나 있네요.
이번 책 출간 후 가장 하고 싶으셨던 일, 혹은 말씀이 있으셨다면 무엇인가요?
사건을 겪는 6년간 부모님께 제가 이런 일을 겪는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너무나 걱정하실 게 뻔했고, 저와 함께 고통받으실 게 눈에 보였으니까요. 늙은 부모님의 평온을 하루라도 더 지켜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더 버티지 못하고 쓸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습니다. 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것이죠. 책이 나오면 부모님이 아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고백하게 되었어요.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결 홀가분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물론 크게 충격받으셨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 주셔서요.
책 출간 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범죄 피해는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예요. 모두가 현행 시스템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바뀔 수 있도록, 연대해주셨으면 한다는 것. 그것이 제 고통이 가장 의미 있게 쓰이는 방향이자 이 책이 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선뜻 누군가를 도운 적이 내게 있었던가. 여러 번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닌 일로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야겠다고.(326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탁월한 피해자
출판사 |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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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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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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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1
출판사 | 문학동네
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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