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닮고 싶은 마음 ㅡ 마지막화 | 예스24
어린이 청소년책 전문 서점 책방사춘기 유지현 대표의 연재 마지막화.
글: 유지현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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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아끼지 않는 아이들. 마음을 나누고 건네는 아이들. 아무래도 나는 아이들을 닮고 싶다. 따라가고 싶다.” (남지은, 『어린이의 곁이면 되었다』 , 난다)

 

어린이책, 청소년책을 읽는 동안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어린 시간을 만난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 사랑을 아끼지 않고, 마음을 나누고 건네는 어린이였다. 그 시절에 바랐고, 필요했던 마음들을 떠올리며 함께 읽고 싶은 이야기들을 찾았다. 여덟 번의 큐레이션은 그런 마음으로 썼다. 좋은 이야기는 때때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주는, 닮고 싶은 마음을 지닌, 소중한 비밀과 다정의 이야기를 건넨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모퉁이』

오카다 준 글/다나카 로쿠다이 그림/김미영 역|시공주니어

 

책을 읽는 이유, 문학이 삶에 가까워야 하는 이유, 무엇보다 어린이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이 책을 펼친다. 주인공 ‘나’의 할아버지는 옛날에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가령,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빗속을 뚫고 하늘 위로 헤엄쳐서 올라가 본 적이 있다. 믿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이야기들은 어떤 부분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점점 모호해진다. 독자들은 이게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자꾸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일곱 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는 조금 믿고 싶어진다. 엄연히 존재하는 이 세계의 신비를. 구름 위에 올라갔다 번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고, 산책길에 도깨비와 드라큘라를 만날 수 있고, 전봇대만 한 낚싯대로 잡아야 하는 커다란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쌓인 눈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지켜주었더니 눈이 은혜를 갚는다며 나를 지켜준 적이 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나에게 초콜릿을 준다. 장난스럽지만 이토록 사랑스러운 세상의 비밀이라니!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길모퉁이가 있지. 그중에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모퉁이도 있단다.”

 

우리는 누구나 세계의 비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능력,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모퉁이를 발견해낼 수 있도록, 미지의 내일을 더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야기는 언제나 항상 필요하다.

 

 


『비밀의 무게』

심순 글/심보영 그림|창비

 

어떤 이야기는 세계의 비밀을 소중하게 품게 만든다. 그 비밀을 간직하고 감당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책 속에 실린 세 편의 동화는 어린이 곁에 서 있는 비밀들을 다룬다. 이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밀은 남산 타워를 몰래 숨겨주는 이야기다. 울적할 때마다 바라봤던 남산 타워가 어느 날 찬이네 집으로 놀러 온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남산 타워니까 마냥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매일 서 있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또 모두가 자기 사진을 찍으니까 늘 멋지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러한 남산 타워의 마음을, 비밀을 찬이는 지켜주기로 약속한다. 세계의 비밀을 홀로 알아채 버린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작고도 커다란 비밀을 지키는 동안 찬이는 스스로 조금씩 성장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 못지않게 힘든 남산 타워를 이해하며 둘 사이 우정도 더욱 깊어진다.

 

조용한 가운데 비밀스러운 대화가 오갑니다. 이제 갈게. 또 와도 되지? 그럼. 오고 싶을 땐 언제든 와. 안녕. 안녕.”

 

우리의 소중한 바람과 비밀이, 빨주노초파남보 색색의 불빛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우리가 모두 잘 믿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 세상의 모든 비밀을 너그럽게 품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다정한 산책』

정지연 글그림|사계절

 

세계를 가두지 않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림책 『다정한 산책』은 우리를 더 큰 세계로 불러내고, 곁에서 함께 걸어준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다독임과 응원의 마음을 품고 있는 이야기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날이 있다. 누군가 문 앞에 사과 한 알을 두고 갔다. 그 사과 한 알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멘 나는 드디어 집 밖을 나선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으로 걷다가 넘어졌을 때 “괜찮아?”하며 내밀어 주는 손길 덕분에 다시 일어선다.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잠시 쉬게 해준다. 마음을 나눈 이와는 적당한 곳에서 헤어진다. 혼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다다른 존재들이 내 곁을 채워준다. 출렁이는 바람, 노래하듯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넘어진 김에 하늘을 보는 무당벌레처럼 자연이 나를 품어주는 동안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이제는 넘어져도 가뿐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나 티타임’처럼 산책은 여유롭고 너그러운 행위다. 나는 이제 다른 누군가가 가벼워질 수 있도록 기꺼이 도울 수도 있게 된다. 집 밖에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동안 나는 여러 존재들의 다정한 손길을 경험한다. 이야기로서는 길지 않은 구성이지만, 책 속에 비워둔 여백의 공간을 통해 독자는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로를 구하는 건 꼭 인간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작고 사소한 디테일이 사랑스럽다. 더 넓게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이 무척 다정하다. 우리의 마음을 자라게 만드는 건 언제나 이런 이야기들이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놓쳤던 비밀을 발견하는 이야기. 믿고 싶고 닮고 싶은 이야기.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도 조금 더 자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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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모퉁이

<오카다 준> 글/<다나카 로쿠다이> 그림/<김미영> 역

출판사 | 시공주니어

비밀의 무게

<심순> 글/<심보영> 그림

출판사 | 창비

다정한 산책

<정지연> 글그림

출판사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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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어린이청소년문학서점 ‘책방 사춘기’를 운영하며, 그림책과 동화, 청소년 소설을 소개한다. 본명보다 '춘기' 혹은 '춘기 이모'라 불리는 게 더 익숙한 사람. 앤솔러지 에세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