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로북스의 첫 번째 기획 시리즈 「페이퍼 사운드 : 숨·쉼·음」은 음악과 글 사이,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순간들을 문장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그 첫 번째 책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는 싱어송라이터 알레프가 음악과 삶 사이에서 오래 붙잡아온 고민과 감정들을 담아낸 산문집이다. 완벽해지기보다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을 조용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이번 산문집의 제목인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는 도발적인 문장처럼 보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조심스럽고 오래 망설인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알레프에게 ‘발칙함’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지금의 알레프는 어디까지 자신다워질 수 있다고 느끼나요?
저에게 발칙함은 단순히 튀거나 반항적인 태도라기보다, 자신을 숨기지 않으려는 용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무언가를 크게 거스르거나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오래 망설이고, 조용히 자신을 의심하는 쪽에 가깝죠. 그래서 이 제목도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보다는 “나는 어디까지 나여도 괜찮을까”에 가까운 질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 기대하는 방향을 많이 의식했다면 지금은 조금씩 제 속도와 감정을 인정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덜 숨기게 된 것 같아요. 음악도 글도 결국은 ‘나’를 들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제는 그 들킴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들키기 전에, 글의 발칙한 정도는 조절해야겠지만요.
알레프의 음악은 늘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번 산문집 역시 읽고 난 뒤 뒤늦게 문장이 남는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고요. 본인은 ‘오래 남는 감정’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음악과 문장은 각각 어떤 방식으로 사람 안에 남는다고 느끼는지도 궁금합니다.
오래 남는 감정은 강한 감정보다도, 설명되지 않은 감정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지나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것들요. 특정한 냄새나 계절, 새벽 공기 같은 것들과 함께 뒤늦게 돌아오는 감정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리듬이 더해지기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몸 안에 남는 것 같고, 문장은 생각 속에 오래 머무는 것 같습니다. 음악은 이유 없이 사람을 울게 만들기도 하지만, 글은 그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느껴요. 저는 둘 다 결국 사람 안에 작은 잔향처럼 남기를 바라면서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 “나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문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계속 붙들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악은 저에게 직업이기 이전에 삶을 견디게 만드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생기는데, 저는 그 감정들을 음악 안에서 겨우 풀어내고 얼추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사실 음악을 하면서 자신감을 잃을 때도 많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붙들게 되는 이유는 결국 음악이 저를 가장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잘 보이려 하기보다, 진짜 제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어서요.
이번 책에는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외로움, 체력, 인간관계, 귀찮음 같은 일상과 밀접한 감정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뮤지션 알레프가 아니라 ‘한 사람 이정재’로서 요즘 가장 자주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오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무너지지 않고 오래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해졌어요.
체력이나 생활 습관 같은 사소한 것들도 결국 창작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 시간을 포기하고 타인들과 보내는 시간 덕분에 삶을 흘려보내는 순간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잘 버티는 법과 잘 지내는 법을 동시에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작자는 결국 자신의 내면을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음악과 글 사이를 오가며 오히려 더 선명하게 발견하게 된 ‘알레프다운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계속 발견하게 되는 감정은 ‘희미함’인 것 같습니다. 저는 늘 확신보다는 약한 흔들림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서요. 사랑도, 희망도, 미래도 분명하게 말하기보다는 어렴풋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 희미함 때문에 계속 창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더 붙잡고 싶어지고,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노래하고 쓰게 되는 거죠. 희미함이 선명한 것보다 눈에 띄는 순간들도 많고요. 결국 저는 무엇인가를 단정 짓기보다, 끝내 이해되지 않는 마음들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 중 “울고 웃자. 한평생 사랑을 배우고 좌절을 넘어서 희망을 발견하자”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의 알레프에게 ‘희망’은 어떤 상태인가요? 예전과 달라진 희망의 형태가 있다면요.
예전에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선명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요. 그런데 살아보니 삶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사람 마음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더라고요.
지금의 저는 희망을 ‘괜찮지 않은 순간에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밝거나 확신에 찬 상태가 아니라, 불안과 슬픔 속에서도 다시 좋아하는 것을 붙잡아보게 되는 힘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희망이 거창한 미래보다도,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안에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는 결국 “지금의 나는 얼마나 발칙해도 괜찮은가”를 묻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자신의 속도와 삶을 자꾸 검열하게 되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정답처럼 보이는 삶의 형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천천히 살아야만 자기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자주 멈춰야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아직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믿고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해져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모습까지 포함해 결국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는 것을요. 이 책이 독자분들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을 알도록 보조해 주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
출판사 | 브로북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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