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시대, 우리는 왜 다시 단테를 읽는가 | 예스24
불완전함을 견디는 것, 그것이 인간의 의무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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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인류가 쌓아온 모든 가치 규범이 무너지는 시대에 무엇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테 신곡 인문학』은 그 해답을 『신곡』에서 찾는다. 평생 단테를 연구한 박상진 작가는 진리를 찾아가는 『신곡』 속 여정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보며, 진실된 인간됨을 상실한 이 시대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태도가 무엇일지 찾아나간다. 저자의 단테에 대한 고밀도의 이해와 시대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맞물려, 가장 문학적이고 사색적인 『신곡』 탐구서가 탄생했다.

 

꾸준히 연구와 번역 활동을 이어오시다, 6년 만에 저서를 출간하셨는데요. 어떤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셨나요?
 저서로는 『단테』(아르테) 출간 이후 처음이지만, 다른 저서들도 함께 준비해왔기 때문에 올해 책이 두세 권 더 나올 예정입니다. 단테를 읽다 보면 늘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생각이 나름 예리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 생각을 되돌려 단테를 읽으면 단테가 새롭게 보이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좋은 문학을 만나면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그런 순환 과정을 좀 더 추적하고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고전이란 시대와 사회마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텍스트입니다. 단테의 『신곡』은 700년 전에 저 먼 이탈리아에서 낯선 언어로 쓰였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21세기를 사는 우리 한국 사회에 공명하고 사유와 정동의 기회를 줍니다. 특히 단테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시인이었다는 점에서, 근대 문명의 끝자락에 서서 전면적인 위기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책이 단테와 『신곡』을 설명하는 해설서라기보다, 독자들이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과 사회 전체를 찬찬히 돌아보는 데 동행할 만한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잃어버렸던 길을 지옥, 연옥, 천국까지 이어갔듯이 말입니다. 

 

책에서 “단테는 인간의 본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히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죠. 실제로 신곡에는 수많은 죄인이 등장하고, 이들을 보며 단테는 진실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는데요. 단테가 생각한 ‘진실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진실된 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간이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동어 반복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만큼 인간에게 바람직한 삶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그 당연한 말대로 살지 못하는 삶, 인간인데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삶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왜 인간은 인간인데도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갈까요? 그것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인 것 같아요. 인간이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순간, 더 할 일이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그것이 곧 인간으로서 진실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단테는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밀려오겠지만, 피하지 말고 하나하나 직면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단테는 지옥으로 향할 때 혼란에 두려워했지만, 마침내 천국의 진리에 다다르죠. 단테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기나긴 여정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요. 그중 사랑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테가 천국 꼭대기에 다다라서 비로소 깨닫듯, 사랑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사랑이 자기를 이끌도록 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랑이 내게 들어와 숨을 불어넣어 말을 하면 그것이 곧 시가 된다는 것이 단테가 『신곡』을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가 『신곡』의 독자들과 만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독자들도 사랑으로 글을 쓰고 사랑과 함께 길을 걷는 단테와 동행하면서,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나와 더불어 움직이는지 느끼고 생각하면, 단테처럼 지옥의 슬픔을 천국의 기쁨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슬픔을 대체한다기보다 슬픔에 적셔진 기쁨이겠지요. 또 하나 더 예를 들자면, 관계 맺기인 것 같아요. 단테는 홀로 길에 나서고 늘 홀로 있지만, 동시에 늘 누군가와 동행합니다. 길잡이들이 이끌게 하고, 그들을 추월하면서 성숙해져갑니다. 베르길리우스, 스타티우스, 베아트리체와 같은 길잡이들은 단테의 내면에 깃든 분신들과 같지요. 결국 단테는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셈인데, 그의 내면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짜여 있지요.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시인이지만, 스스로를 추방시키면서 자발적 고립을 택합니다. 자신과 주변의 상실을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로 만든 것이지요. 그렇게 이전보다 더 성숙한 자세와 시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 결과물이 곧 『신곡』으로 나왔던 것이죠.

 

이 책에서는 신곡의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그림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선생님께서 그림을 하나하나 정성껏 고르셨는데, 어떤 기준에 따라 그림을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신곡』 자체가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로 가득 찬 책입니다. 독자들도 『신곡』을 읽다 보면 눈앞에 광경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들 겁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신곡』의 인물, 장면, 사건, 감정을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독자에게도 다가올 화가를 고르던 중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화가 알베르토 마르티니가 그린 『신곡』 삽화를 넣기로 했습니다. 마르티니의 그림은 일렁이는 검정과 날카로운 선으로 단테의 내면을 선명하게 들춰 내보이고 무척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마치 단테를 그리려 태어난 화가 같아요. 그밖에 저의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그림들을 부록으로 싣고 짧은 해설도 달았는데, 독자들이 글을 읽으면서 쉬어가는 참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곡은 14세기에 집필되었는데도, 7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이 '인생 책'으로 꼽는 작품입니다. 신곡의 어떤 점이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위로를 주는 걸까요? 
 ‘인생 책’으로 꼽는 이유는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넘어지다 일어서고 헤매다가 길을 찾지요. 살면서 위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받치는 건 단연 연민입니다. 단테는 지옥의 죄인들을 슬퍼했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도 그 슬픈 마음을 마음 한 켠에 간직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더러 정의를 사랑하라고 외치면서, 반드시 연민을 함께 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의는 억압과 강요가 되기 쉽습니다. 연민은 공감과 돌봄으로 이어지고, 어느 시대와 사회에서도 그런 인간다운 감정과 행동은 함께 살아가는 데 기본 바탕이 됩니다. 단테가 주는 위로는 개인과 사회, 생각과 감정, 일상과 균열에 걸쳐 있습니다. 계속해서 울리는 종소리와도 같고, 길가에 핀 작은 꽃과도 같습니다. 어린 단테가 피렌체에서 들었던 땡그랑거리던 교회 종소리, 망명길에서 보았던 작은 꽃들이 그에게 주었던 위로가 우리에게 그대로 오랫동안 전해지는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용기, 연민, 사랑, 분노, 정의 등 신곡을 관통하는 16가지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이 중 특히 독자들이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책의 구성은 슬픈 시작에서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신곡』의 구성과 닮았습니다. 그런데 단테가 행복에 머물지 않고 슬픔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듯, 이 책도 16장 구원까지 갔다가 다시 1장 만남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챕터를 콕 집기가 힘들기도 한데, 그래도 행복한 결말 쪽에 있는 정의, 고결, 운명, 사랑, 구원을 더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내용을 새기며 살면 정말 행복해지겠지요. 그러나 이런 행복은 이전의 슬픔을 겪지 않거나 품지 못하면 결코 이루지 못한다는 점도 함께 새기면 좋겠습니다. 

 

어두운 혼란을 헤쳐나갈 빛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단테는 인간은 고결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천사로도, 짐승으로도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런 가능성이 현실로 되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뚜렷이 목격하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언제까지라도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 불완전함을 계속해서 견디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고 행복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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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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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문학이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2000). 미국 하버드대학교(2006-2008)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2012-13)에서 방문학자로 비교문학을 연구했고, 2019년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만오교양대학에서 문학과 예술, 동서양 고전, 문명론 등을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는 『이탈리아 문학사』『에코 기호학 비판: 열림의 이론을 향하여』『열림의 이론과 실제: 해석의 윤리와 실천의 지평』『서양의 고전을 읽는다』(공저),『데카메론: 중세의 그늘에서 싹튼 새로운 시대정신』『고전의 향연』(공저), 『비동일화의 지평: 문학의 보편성과 한국문학』『단테 신곡 연구: 고전의 보편성과 타자의 감수성』『사랑의 지성: 단테의 세계, 언어, 얼굴』『지중해학: 세계화 시대의 지중해 문명』『Other Modernisms in an Age of Globalization』 『Illuminating Eco: On the Boundaries of Interpretation』 『A Comparative Study of Korean Literature: Literary Migration』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방가르드 예술론』 『근대성의 종말』『대중 문학론』 『신곡』(전 3권), 『데카메론』(전 3권), 『수평선 자락』『꿈의 꿈』 『레퀴엠: 어떤 환각』 『인도 야상곡』『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등이 있다. 엮은 책으로는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