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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으로 엮어 낸 성인전 | 예스24
유상훈 편집자가 들려주는 피에르 미숑의 『사소한 삶』.
글: 유상훈 (편집자)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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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삶』

피에르 미숑 저/윤진 역 | 민음사

 

지난겨울, 아파트 단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던 드높은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잘려 나갔다. 그 자체로 잔인한 장면이었지만, 이미 병든 나무들인 터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 온 나무들이 한꺼번에 참수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래도 서글픈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가끔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할 때면 작년에 베어진 그 나무들의 그루터기를 들여다본다. 그토록 지독하게 생나무의 마지막 숨결을 토해 내던 그 밑동마저 이젠 모래같이 말라붙었다. 초여름 기운에 집요하게 자라난 풀숲의 어스름 사이로, 그 죽은 나무의 단면이 가만히 드러난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치는 수십 겹의 나이테, 그걸 하나하나 헤아리고 있자니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삶을 읽고 있는 듯하다.  

 

피에르 미숑, 아마 처음 들어 보는 작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를 몰랐고, 그 때문에 만약 이 작가를 모른 채 죽었더라면 얼마나 원통했을지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일 년에 많게는 열두 권의 책을 펴내기도 하는(심지어 원고를 검토해야 하거나 그 밖의 다른 일로 책을 읽어야 할 경우가 적잖으므로 늘 책에 둘러싸여 사는) 편집자로서, 한 권의 책에 오래도록 사로잡혀 있기가 쉽지 않다. 독자로서의 낭만은, 마감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흐르는 책의 물결 속에 기포가 되어 사라진 지 제법 오래되었다. 그런 무감각한 와중에도,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피에르 미숑의 『사소한 삶』이다. 이런 만남을 경험하면, 편집자로서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에 다다른다. 그래, 이 일을 안 했더라면 나는 너무나 많은 걸 놓쳤을 거야.

 

다시 피에르 미숑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1945년, 프랑스 중부의 벽지에서 태어난 미숑은 (술과 약물에 의지해 온 청춘을 경유해) 마흔 살이 다 되어서야 첫 작품을 발표한 ‘늦은 작가’이자 파스칼 키냐르에 비견할 만큼 극도로 외부 노출을 꺼리는 ‘신비로운 작가’다. 게다가 평균적으로 칠 년에 겨우 한 작품을 발표할 정도로 엄청난 과작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떠나 미숑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이토록 미지의 작가이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자신의 삶을 토로하고 있다. 이것은 미숑만의 독특한 기법, 혹은 글쓰기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기나긴 세월 동안 그의 창작 활동을 가로막고 있던 ‘불능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미숑은 자기 선조와 고향의 흙먼지 속에서 스러져 간 보잘것없는 인물들의 삶을 되살려내는가 하면(『사소한 삶』), 랭보가 위대한 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뒤쫓고(『아들 랭보』), 반 고흐의 친구이자 그의 화폭 속 인물로 불멸의 생명을 얻은 어느 우체부의 삶(『조제프 룰랭의 삶』)과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안 위원회에 속한 열한 사람의 초상화를 그린 가상의 작품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화가의 삶(『11인』)을 상상하기도 한다.    

 

『사소한 삶』은 미숑의 첫 작품이지만, 이미 그의 모든 것을 예고한 마그눔 오푸스(Magnum opus)이기도 하다. 『사소한 삶』의 차례를 이루는, 각기 다른 여덟 사람의 인생은 플뤼셰, 팔라드, 무리코, 게오동, 미숑, 쥐모…… 프랑스 사람들에게조차 생경하게 들리는 낯선 성(姓)을 지닌 조상들의 터전에서 돌연 시작된다. 그렇게 우리는 미숑이 호명하는 사람들, 당최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고, 아무리 애써도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인물들의 삶 속으로 다급히 붙잡혀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난폭한 초대가 전혀 거북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누구나 자기 삶 속에서 자신은 주인공이고 영웅이며, 가련한 희생양일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나 스스로가 그저 죽음으로 질주하는 고속 열차에 올라탄 수억의 승객 중 이름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같은 잔인한 진실을 폭로하듯이, 『사소한 삶』을 읽고 있으면, 어느덧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일생이 더욱 사납게 나의 멱살을 붙들고 거세게 겁박해 온다. 이게 바로 당신의 삶이야.

 

『사소한 삶』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 「앙투안 플뤼셰의 삶」이었던가, 「바크루트 형제의 삶」이었던가, 어쩌면 그 모든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교정을 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책을 옮긴 윤진 선생님에게 (다소 부끄럽지만) 이 일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분도 자신 역시 그러했다고, 이토록 황홀한 작품은 처음이라고 열렬히 화답해 주셨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 두 사람은 이 책의 이야기만을 한없이 늘어놓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정교한 예술 작품을 볼 때, 자연스레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탄식이었다. 인간의 유한성을, 그 고통과 아름다움을 이같이 완전무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훗날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편집하면서 비슷한 기적을 체험했지만, 『사소한 삶』은 정말 다른 차원의 작품이다. 그저 제발 읽어 달라고, 읍소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시시한 문장으로는 이 책의 경이로움을 조금도 담아낼 수 없다. 가령, 여덟 편의 삶이 대단원을 이루는 마지막 문단에 적힌, “내 허구의 여름 속에서 그들의 겨울이 주저하길.” 같은 문장을 과연 누가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끝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했던 작품은 「푸코 영감의 삶」이었다. 요컨대, 푸코 영감은 자기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문맹이라는 사실이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말인가. 
 
“푸코 영감은 그대로 남아서 죽음을 맞기로 했다. 파리에 가면 혹여 병이 나을 수 있겠지만, 그러자면 수치심을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그런다면 글을 모르는 죄를 죽음으로 갚을 수 없었다. 사실 푸코 영감의 생각이 순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지식과 글자는 나를 받아 주지 않는 신화적 범주에 속했다. 나 아닌 ‘위대한 저자들’과 ‘까다로운 독자들’이 최고로 훌륭한 글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는 올림포스산 아래서 나는 글자도 모르는 채 혼자 버림받은 인간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말밖에 못 하는 나에게 신들의 언어는 금지된 언어였다.” 

 

글을 모른다는 것은 단지 무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이다. 푸코 영감은 죽음보다 자기 삶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글을 안다는 믿음’은 자기 삶이 무의미에 저항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주는 마지막 증거였던 것이다. 결국 푸코 영감은 그의 믿음대로 글을 통해 소생했다. 글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이었던 미숑이 다시 펜촉을 움직인 순간, 모든 덧없음이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 것이다. 

 

“나는 하늘과 책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배웠다. (……) 공간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것들도 현기증을 일으켰고, 과거의 것들이 기억 속에 남긴 흔적은 말이 불완전하듯이 불완전했다. 나는 기억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저 당신이 읽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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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삶

<피에르 미숑> 저/<윤진> 역

출판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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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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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미숑

1945년 프랑스 중부 크뢰즈 지방의 레카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마르삭,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어머니가 교사 생활을 이어 간 무리우, 칠 년 동안 기숙 중등학교에서 수학한 게레까지 어린 시절을 모두 크뢰즈 지방에서 보냈다. 클레르몽페랑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앙토냉 아르토의 연극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대학교 무렵부터 극단 활동을 시작했고, 한동안 특별한 직업 없이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방황했다. 피에르 미숑은 자전적 작품 『사소한 삶(Vies minuscules)』(1984)을 시작으로 느지막이 작가의 길에 들어선 뒤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우체부의 초상을 탐구한 『조제프 룰랭의 삶(Vie de Joseph Roulin)』(1988), 시인 랭보의 일생을 독특한 시각에서 조명한 『아들 랭보(Rimbaud le fils)』(1991), 문학 거장들(사뮈엘 베케트, 귀스타브 플로베르, 윌리엄 포크너, 빅토르 위고 등)의 이야기를 명상적으로 들려주는 『왕의 몸(Corps du roi)』(2002), 프랑스 혁명기 때 공안 위원회의 인물들을 다룬 소설이자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 『11인(Les Onze)』(2009)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2015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상, 2017년 노니노 국제 문학상, 2019년 프란츠 카프카상, 2022년 프랑스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