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을 배제해온 역사를 넘어, 환대를 향해
저는 장애가 필연적으로 고통과 낮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는 생각, 지적장애인이 근본적으로 “타자”라는 생각, 그리고 “전문가”들만이 장애의 삶의 경험을 정의할 권위를 가진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글: 출판사 제공
20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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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의 얼굴들』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지적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로 환원해왔는지를 고찰하는 책이다. 저자 리시아 칼슨은 지적장애를 둘러싼 도덕적 지위, 돌봄 윤리, 상호 의존 등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장애를 인간 존재의 한 양식으로 재사유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왔다. 책은 지적장애 시설의 역사, 지적장애 범주의 변화, 지적장애가 ‘젠더화’된 방식, 지적장애에 관한 철학적 사유 등을 촘촘하게 고찰한다. 어떻게 하면 지적장애인을 낯선 타자가 아닌 동료 시민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 리시아 칼슨과 서면으로 나눈 7개의 문답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지적장애의 얼굴들』이 어떤 책인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이 책은 과거의 시설 수용 체계와 현대 철학의 세계를 병치하면서, 지적장애가 어떻게 정의되고 다루어져왔는지를 살펴봅니다. 학부 시절 지적장애 아동들이 있는 교실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철학자들이 이 아이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연구는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20세기 전환기 미국에서 등장한 분류 체계들의 역사와 지적장애에 대해 생산된 지식이 지적장애인의 배제를 어떻게 정당화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역사적 사례들 속에서 지적장애인을 비인간화하는 수사와 문제적 논변들이 현대 도덕철학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파헤쳤습니다.

 

궁극적으로, 지적장애인에 대한 여러 가정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장애가 필연적으로 고통과 낮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는 생각, 지적장애인이 근본적으로 “타자”라는 생각, 그리고 제도화된 전문 영역의 “전문가”들만이 장애의 삶의 경험을 정의할 권위를 가진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책이 처음 출간된 지 거의 17년이 지났는데요. 그 사이 지적장애를 둘러싼 담론에 어떤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상당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 “장애철학”은 철학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풍부한 연구 성과를 갖춘 하나의 공인된 탐구 영역이 되었습니다. 타 분야의 연구 중에서는 영국 작가 스티븐 언윈(Stephen Unwin)의 『Beautiful Lives: How We got Learning Disabilities So Wrong』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조이(Joey)를 둔 저자가 쓴 놀라운 역사서예요.

 

장애학은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더욱 다양하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의료인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옹호 운동과 장애인권운동 전반에서도 성장과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기존의 낙인과 차별에 계속 도전하며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활기차고 다양한 장애예술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표현·창조성·협업을 위한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삶을 가로막는 장벽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와 지원체계를 삭감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여러 면에서 장애인들의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비판철학이나 장애학 같은 분야에서도 지적장애가 거의 연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최근의 철학에서는 지적장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에바 키테이와 같은 철학자들의 중요한 작업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심리철학, 정의론, 윤리학·생명윤리 논쟁, 심지어 미학에서도 지적장애를 논하는 일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적장애는 여전히 주변화되어 있죠. 많은 철학자가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핵심 능력과 역량이 이 집단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장애인이 일정 정도의 제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철학자들은 지적장애의 빈곤하고 비현실적인 초상을 계속 그려내고 있으며, 고정관념, 비장애중심주의적 가정들은 배제를 더 강화합니다.

 

장애학에서는 지적장애인이 종종 스스로 말하거나 자기옹호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가 학술 연구나 전문 행사들에서 부재하게 되는 점이 하나의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학계 전반에 일종의 “인지적 비장애중심주의”가 지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장애학과 철학 모두에서요. 지적장애인을 이론 작업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적 공간들 속에 어떻게 포함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2장 「객체와 주체를 오가는 ‘젠더화’ 문제」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지적장애의 '젠더화'에 주목하게 된 계기나 까닭이 있으신가요?

감사합니다! 이 장은 제가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일지도 모릅니다. 역사 속 이 여성들의 위치에 관해 아직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복합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어 무척 흥분했습니다. 

 

대학원 시절 여성주의 철학 강의를 여러 개 수강하고, 관심 분야인 여성사를 연구하면서 저는 지적장애와 관련하여 여성들이 수행했던 매우 다양한 역할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전환기의 지적장애 범주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는, 사회 규범을 위반했다는 이유(예를 들어 혼외자를 출산했다는 이유)로 시설에 수용된 여성들이, 여성은 본래 돌봄에 적합하고 양육 친화적이라는 관념 때문에 시설 내부의 돌봄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거릿 생어 같은 여성운동의 저명한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적장애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켰고, 지적장애인의 희생 위에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옹호하는 논리를 세웠다는 점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과거의 이러한 역할들이 오늘날 새로운 형태로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계속 탐구하고 있습니다. 산전검사, 유전자검사, 그리고 장애를 예방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생식기술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과거에 보았던 “좋은 어머니/나쁜 어머니 신화”의 새로운 버전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비인간 동물의 권리와 지적장애인의 권리를 비교하는 철학자들을 비판하셨는데요. 이 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그 까닭을 간략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부 철학자들은 비인간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옹호하기 위해 지적장애의 사례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이 동물과 동일하거나 더 낮은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왜 인간에게 비인간 동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종차별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정식화하기도 했습니다. 도덕적 지위를 논할 때 종 소속(예컨대 인간이라는 사실)보다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논변들이 문제라고 느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적장애인을 “동물화”했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동물화는 종종 끔찍한 처우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철학적 논점을 만들기 위해 “중증 인지장애인”의 이익과 비인간 동물의 이익을 서로 대립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 지적장애인의 비인간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는 계속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관점을 바꾸는 것 외에도,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적장애가 더 이상 사람됨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요?

변화는 여러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원과 지원 체계로 개인과 가족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익숙해지고, 가족 구성원이 관련되어 있지 않더라도 변화를 옹호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지적장애인의 존재를 사회 속에서 드러내는 실천 역시 변혁적일 수 있습니다. 의료적이거나 재활 중심적인 공간이 아닌, 공유된 활동을 포함하는 사회적 공간을 만드는 일이 엄청난 힘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일부 오케스트라들은 기존의 공연 관람 에티켓을 따르기 어려운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접근 가능한 콘서트를 의도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인류학자이자 신학자인 한스 라인더스는 우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지적장애인과 그 가족들과의 우정과 의미 있는 상호작용에 우리 자신을 열어두는 것은 그들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철학 수업에서 장애 논의를 가르칠 때마다, 많은 학생이 자신의 삶이 어떤 형태로든 장애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학생들은 인식이 확장되고 지적장애를 다르게 생각하도록 도전받은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적장애를 자신과 무관한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또 실제 지적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떤 태도를 권하시겠습니까?

지적장애에 대한 제 관심이 가족 안의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자주 질문받습니다. 아닙니다. 이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족 중에는 장애인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원활동가로서 아이들과 처음 만났던 경험이 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풍부한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열린 태도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어떤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와의 짧은 대화, 함께한 순간, 혹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중요하며 들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환영의 몸짓처럼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 비판한 얼굴들 가운데 하나는 “거울의 얼굴”입니다. 흔히 장애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 역시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저는 지적장애가 중요한 이유가 단지 그래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적장애인이 동등한 사람이며, 존엄과 가치가 있고, 비록 덜 가시화되어 있을지라도 우리 인간 공동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지적장애인의 경험을 목격하고 목소리를 들을 때, 단지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을 세우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방법, 정중하게 그들에게서 배우는 방법, 그리고 그들의 조건 위에서 관계 맺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겸손, 호기심, 존중이 이러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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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의 얼굴들

<리시아 칼슨> 저/<이예린>,<유기훈> 역

출판사 |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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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