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베이징국제도서전에 참여한 화어권 문학 번역가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왔다.1 어떤 번역가는 문학을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보았기에 인공지능이 문학 번역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어떤 번역가는 그것은 자기 위안이자 기만에 가깝다며 인공지능은 문학 번역 업계에 닥쳐온 현실이라고 했다. 만약 인공지능이 문학 번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그건 프롬프트를 잘못 넣은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공지능은 문학 번역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때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문학 번역이 단순하게 언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작품 내외적으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며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 게다가 나는 출판사로부터 번역 청탁을 받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직접 해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하거나 양국 동시 출간 앤솔러지 기획, 작가 대담 행사 주최 등 여러 업무를 함께하기에 ‘번역’ 작업만 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나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문학 번역가를 대체하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특히 화어권은 웹소설 번역 분야가 큰 타격을 받았다. 번역가에게 번역보다는 감수 업무를 맡기는 일이 늘었고, 인공지능 번역의 상용화를 이유로 출판사가 번역가에게 제시하는 페이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다.3
만약 인공지능이 문학 번역가를 대체할 수 없다면, 어째서 문학 번역가의 생계가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을 받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번역가로서의 나는 인공지능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덕분에(?!) 생각지 못한 기회가 많아진 편이다.4 하지만 내가 위협받지 않았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니까. 또한 내가 위협을 받지 않았다는 상황까지 포함해서 살펴보아야 했다. 그건 인공지능이 업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뜻일 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인공지능은 내가 종사하는 업계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었다. 내 덕질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3년 전쯤부터 중국 숏드를 덕질하고 있다. (지난 칼럼 ‘숏드로 보는 중국’ 참고) 여러 숏드 플랫폼을 정액 구독하고 있고, 이제껏 시청한 중국 숏드만 해도 천 편이 넘는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중국 숏드계에서도 AI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부터 살펴보자.
얼마 전 중국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OTT 플랫폼 아이치이가 2026 아이치이 월드 컨퍼런스에서 자사 AIGC 플랫폼인 ‘나도우(纳逗) Pro’를 소개하면서 배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백여 명의 전문 배우가 입점했다고 밝혔다.
아이치이 월드 컨퍼런스 배우 데이터베이스 소개 현장
그러니까 인공지능 생성 콘텐츠 플랫폼인 ‘나도우 Pro’를 통해 전문 배우를 캐스팅해(정확히는 그 얼굴과 목소리를 빌려)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가상 라이브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며 판매까지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이치이가 만든 최초의 AI 드라마 <도혼: 야행자>. 2025년 12월 12일 아이치이에 독점으로 업데이트되었다. AI로 제작된 영상 특유의 이질감이 호러라는 장르와 결합하면서 어느 정도 완충된 듯하다.
그러자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먼저 배우들이 AI와 관련된 어떠한 계약도 맺지 않았다면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했고, “아이치이가 미쳤는가”, “아이치이는 마지노선이라는 것도 없는가”라는 말들이 실검에 올랐다. 여기에 AI 숏드에 얼굴을 도용당했던 사례들이 하나둘씩 퍼지면서 여론이 크게 나빠졌고5, 결국 아이치이는 배우 데이터베이스에 입점한 배우들이 자기 초상권 활용에 동의했다는 게 아니라 AIGC와 관련해 협상할 의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이치이가 일으킨 이번 AI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중국 숏드계에서 AI는 (자본을 좇는 이들에게) 장밋빛 미래나 (작가나 배우 등 창작자에게) 위협적인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국 숏드 업계에서는 이미 AI 숏드가 다수가 되었다.
중국인터넷시청협회(中国网络视听协会)가 발표한 『숏폼 드라마 창작 지침(微短剧创作指引)』에 의하면 2026년 1분기에 제작된 숏드는 12만 8천 개였고, 이중, 12만 2천 개가 AI로 제작된 숏드였다. 제작된 숏드의 95% 이상이 AI 숏드인 것이다.
베이징대학국가발전연구소에서 2025년 12월 31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 중국 숏드의 월평균 제작 수는 3천 개 정도였다. 2025년부터 부분적으로 시도되었고, 연말쯤 화제작이 나오기는 하였으나 중국에서 AI 숏드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건 2026년부터다.6 2025년에 제작된 숏드 대다수를 비(非)AI 숏드라고 보고 단순히 비교해 보았을 때, 중국에서 일반 숏드의 제작 편수는 2025년 월 3천 개에서 2026년 월 2천 개로 급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단 몇 달 만에 일어난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구독하던 숏드 플랫폼에서는 올해 초부터 AI 숏드가 신작 업데이트 목록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만극(漫剧)’이라는 어휘도 함께 등장했다. (만화의 만과 한문이 같다) AI로 제작된 숏드를 나타내는 이 표현은 복수물, 회귀물, 사이다물, 후회물, 도시 로맨스, 고장극, 여주 성장물처럼 하나의 태그가 되었으며 가장 앞자리에서 숏드를 소개하는 키워드로 쓰이고 있다.7
필자가 2년 넘게 유료 구독한 숏드 플랫폼에서 화제의 드라마 순위를 스크린샷한 것이다. 1~3위까지 모두 ‘만극(漫剧)’이라고 표기된 걸 볼 수 있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숏드는 사람이 만든 숏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중국 숏드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은 아직까지 사람이 만든 숏드다. 『숏폼 드라마 창작 지침』에 의하면 올해 설 연휴에 런칭했던 숏드 중 사람이 만든 숏드는 AI 숏드 대비 그 수가 50분의 1에 불과했지만, 클릭 수는 AI 숏드보다 25배나 많았으며 TOP 5에 속하는 작품은 10억 뷰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
팬덤 규모가 수백만에 달하는 숏드 배우와 좋은 연출가, 작가를 데리고 만든 텐트폴 작품들은 이제껏 그러하였듯 앞으로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8
문제는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다.
애초에 중국에서 숏드라는 장르가 지난 몇 년간 양적 성장을 중심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룬 분야니까. 소수의 웰메이드 숏드가 나오기는 했지만, 산업 전체가 질적 성장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바꾸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관련 인재도 배양해야 하고, 노하우도 쌓아야 한다.
그런데 AI 숏드가 급증하면서 사람이 성장할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신인 배우나 팬덤이 적은 배우가 꾸준히, 그것도 제값에 작품을 맡을 수 있을까? 신인 시나리오 작가가 제대로 된 고료를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숏드 업계로 뛰어든 제작사들은 원래부터 자본을 좇던 이들이었다. TV 드라마나 웹드라마와 달리 숏드는 제작비가 현저히 적었고, 검열 시스템이 다르게 적용되어 빠르게 런칭될 수 있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숏드 업계로 뛰어든 것 아니던가. 지금은 여기서 한술 더 떠 안 그래도 적은 숏드 제작비를 AI를 활용해 더 줄이겠다고 하는 것이다.9
숏드를 200개 넘게 찍었지만, 더는 작품을 맡을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다는 배우 장샤오레이의 일화는 AI 도입 후 숏드 배우들이 맞이한 위기이면서도 숏드 업계의 양극화를 드러내는 어둠에 더 가깝다.10
그렇다면 이제 다시 생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첫 문단에 말했던 내용을 기억하는가? 인공지능이 문학 번역가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에 그건 자기 위안이자 기만에 가까우며 인공지능은 문학 번역 업계에 닥쳐온 현실이라고 반박했던 번역가를 말이다. 이 말을 했던 번역가는 내게 인공지능을 공부해 두는 게 좋을 거라면서 위챗으로 관련 자료를 한가득 보내줬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대체될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이제껏 공부하지 않았고,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나는 영향을 덜 받더라도 누군가는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업계 전체가 변화하였다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은 작가노조에 생긴 AI 분과 소모임에 들어갔고, 인공지능에 관한 여러 책을 사서 천천히 읽어보고 있다.
물론 이제 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고 해서(혹은 위챗으로 받았던 자료부터 시작해 꾸준히 공부하였다고 해서) 이러한 변화에 내가 잘 대응하거나 변화 자체를 막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역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알고자 하는 게 나을 테니까. 혹시 관심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자.

에릭 사댕 저/박지민 역 | 김영사

김가람 저 | 문학수첩

카렌 하오 저/임보영 역 | 생각의 힘

김성우 저 | 유유
1 베이징 국제 도서전을 주최하는 중국 관방 조직인 중국도서진출구총공사(약칭 중도)는 매년 번역가나 출판인을 초청해 중국 출판사, 작가와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따로 마련해준다.
2 일례로 내가 번역했던 『1938 타이완 여행기』의 경우, 번역된 단어 하나하나는 여러 요소를 고민한 선택이었다. ‘臺灣’을 ‘타이완’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대만’이라고 번역할 것인가(널리 쓰이고 있는 독음을 기준으로 번역할 것인가, 현지 발음에 맞게 타이완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小千’을 ‘샤오첸’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첸짱’이라고 번역할 것인가(타이완 사람의 목소리로 타이완 사람을 지칭할 것인가, 일본인의 목소리로 타이완 사람을 지칭할 것인가. 이는 양솽쯔 작가가 번역가로 설정된 『1938 타이완 여행기』에서 한국어판 역자인 내가 번역가인지 중역가인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麻薏’를 ‘마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무아인’이라고 번역할 것인가(타이완에 가본 적이 있거나 갈 의향이 있는 한국 독자를 고려해 널리 쓰이는 화어 발음을 기준으로 번역할 것인가, 실전 위기에 처해있거나 타이완 고유 음식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넣은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 기원에 맞게 타이완어 발음을 기준으로 번역할 것인가) 등등.
3 웹소설 번역은 종이책 번역과 비교했을 때 그 페이가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나 또한 필명으로 웹소설을 7질 정도 번역하였는데 도착어 기준으로 자당 15원~17.5원을 받았다. 원고지로 따지면 매당 3천 원에서 3천5백 원인 셈이다. 그런데 이 페이는 당시 웹소설 번역 페이 중에서는 높은 편에 속했고, 지금은 몇 년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문학 번역 페이 자체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데(중국과 타이완에서 문학 번역 지원금을 한 번 이상 받았는데, 고환율이라 할지라도 한국에서의 문학 번역 페이가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열악한 문학 번역 업계 안에서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더 열악해진 곳이 있다고 하니 업계 종사자이자 독자로서 매우 걱정이 된다.
4 특히 대학에서 관련 제안을 많이 받았다. AI와 고전 콘텐츠에 관한 산학 프로젝트 참여 제안부터 AI와 창작에 대한 특강 요청까지. 출판계에서도 AI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긴 했지만, 출판 관계자와 독자가 출판계의 AI 도입에 큰 반감을 느끼고 있다면, 대학 현장에서는 AI가 현실 문제인 지 오래라 반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이에 대응하는 법을 찾거나 오히려 역으로 인문학과 AI를 적극적으로 접목해 관련 지원금을 따거나 학생들의 관심을 끌 방법들을 모색하는 듯하다.
5 사실 이와 같은 반발도 아이치이가 배우 데이터베이스에 입점시켰다는 배우들이 인지도가 높으며 큰 팬덤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6 이러한 변화는 AI 숏드 기업의 수가 증가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매체인 봉면신문(封面新闻)은 중국의 기업 정보 조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치차차(企查查)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2025년 한해 AI 숏드 관련 기업의 누적 사업자 등록 수는 5,465개로, 전년 대비 28.5% 증가하였으며 최근 10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역 분포를 기반으로 보았을 때 2025년 기준 화둥 지역의 관련 사업자 등록 수가 가장 많았으며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2026년 4월 22일을 기준으로 올해에만 AI 숏드 관련 기업이 1,637개나 새로 등록되었고, 총 2만 2천 개 정도의 AI 숏드 관련 기업이 중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7 역으로 AI로 제작한 숏드와 구분하기 위해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숏드를 지칭하는 표현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 ‘진인단극(真人短剧)’이 그러하다.
8 아이치이의 CEO인 공위도 이번 아이치이 월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AI는 사람이 찍는 작품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사람이 찍는 작품은 영상 업계의 창작 핵심으로 남을 거다. 다만 무형 문화 유산처럼 희소한 형식일 것이다.”
9 아이치이의 CEO 공위는 아이치이 월드 컨퍼런스에서 AI를 활용하면 150-300만 위안에 달하는 제작비를 20만 위안 아래까지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0 관련 보도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유령의 삶
출판사 | 김영사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
출판사 | 문학수첩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
출판사 | 생각의힘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출판사 | 유유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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