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부고가 전해지면 ‘한 시대가 갔다’는 말이 자주 보인다. 그가 대표하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소설 『표범』과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레오파드>는 그 문장을 완벽한 세공품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다만, ‘지나간’ 무언가를 포착하기 위해 그 마지막 순간을 포착해 낸다. 그 모든 것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더 쓸쓸해 보이는 순간을.
제목부터 이야기하자면 ‘표범’이라고 하든 ‘레오파드’라고 하든 틀린 표현이다. 이탈리아어 제목 ‘일 가토파르도(Il gattopardo)’는 북아프리카 북단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맹수인 서벌을 부르는 말이다. 가토파르도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인데, 람페두사 섬의 이름과 같은, 람페두사 가문의 문장이기도 했다. 소설 『표범』을 쓴 람페두사는 람페두사의 11대 공작이자 팔마의 12대 공작이자 그란데자(스페인 대귀족) 작위를 보유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북아프리카와 근접한 이 섬이 오늘날 한국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난민 문제 때문이지만.
영화 <레오파드> ⓒ서울아트시네마
영화 <레오파드>를 보면 실감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람페두사는 가난한 시칠리아 공작이었고 영화 속 살리나 가문의 수장 역시 그렇다. 그가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면 보이는 농민들만큼이나 말이다. 카메라가 눈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볼 때마다 노란 흙이 먼지처럼 날리는 이곳에서, 이제 가문의 영지는 축소되었고 돈도 부족했지만 전통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격식을 갖춰 차려입은 집안 사람들이 모여 영주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듣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창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평소와 다른 소란에 사람들이 번갈아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다시 자리에 앉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작은 예식이 끝나자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좌중을 둘러본다. 살리나 공작 돈 파브리치오의 얼굴을 이제야 본다. 버트 랭카스터의 크고 절제되고 우아한 몸이 보인다. 반듯하고 꼿꼿한 자세와 망설이지 않는 몸짓들. 때는 1860년, 이탈리아 통일(리소르지멘토)이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레오파드>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1시간에 육박하는 무도회 장면이다. 3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에서 전반부는 살리나 공작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혹은 누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적 격변기에 그가 택한 태도는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동시에 변화의 물결에 약간의 관심 혹은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전자는 그 자신의 일상이고 후자는 조카 탄크레디를 지지하면서 이루어진다. 탄크레디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먼저 나서 많은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고 믿는 기회주의자다. 살리나 공작가가 지닌 문화적 유산과 명성은 누리면서도, 살리나의 눈에 마피아에 사기꾼들인 자들과 함께 총을 들고 삼색기 아래 서서 싸운다.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대사 역시 그의 말에서 흘러나온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모두 다 바꾸어야 해요.” 그런데 이 말은 참 재미있다. 양쪽 모두 이 문장을 사용해 상대에게 반박할 수 있다. 변화를 수용하는 궁극적 목적을 ‘모든 것을 유지하기’에 둘 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말로 ‘모두 다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 살리나는 전자 쪽의 인물이고 탄크레디는 후자 쪽의 인물이다. 실제로 양쪽은 기묘하게 공존한다. 변화를, 뒤엎기를 위해 총을 든 사람들은 살리나 가문의 궁전에 초대받아야만 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를 보러 온다. 그 저택에 사는 사람들은 불쾌함을 참고 새로운 세력의 부흥을 받아들인다.
소설인 『표범』이 살리나 공작의 내면을 샅샅이 읽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영화인 <레오파드>는 대사를 포함한 연기로 드러내 보여준다. (당연한 일이다.) 영화의 살리나 공작은 자신의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데, 소설의 그는 한층 더 그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이 대사로 바뀐 부분 중에는 이 문장이 있다.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 무도회는 이런 순간에 막을 올린다.
영화 <레오파드> 스틸컷
탄크레디만이 살리나를 뒤흔드는 것은 아니다. 탄크레디와 결혼할 안젤리카 역시 살리나에게는 매혹의 대상이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일곱 아이를 두었지만 아내의 배꼽을 본 적도 없다는 그는 언제나 눈물바람에 기도문을 외우는 아내와는 거의 소통이랄 것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딸이 탄크레디를 좋아해 결혼을 원하지만, 그는 탄크레디가 안젤리카를 원할 때, 안젤리카의 (자신의 딸이 지닌 정숙함과 정반대인) 유혹적인 아름다움을 포함해 집안의 부유함이라는 자원을 갖고자 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안젤리카의 아버지 돈 칼로제로는 돈으로 따지면 지역에서 누구와도 견줄 바 없는 벼락부자다. 그는 이제 교양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딸인 안젤리카는 그의 신분상승 욕구를 뒷받침하는 완벽한 도구로 보인다. 그는 아주 긴 시간 동안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대화는 개싸움같이 했으며, 여자를 배려하는 행동이 나약함의 표시하고 생각해 왔던 사람이고 그 습속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겉으로만 보면 그럭저럭 귀족 신사의 아류 같아 보이기는 한다. 그의 딸 안젤리카는 생생한 생명력의 화신처럼 영화에 등장한다. 모두가 차분하게 식사하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람. 그 웃음으로 다른 이들이 자리를 서둘러 떠나는 와중에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살리나가 갖지 못한 그것.
그리고 무도회가 시작된다. 마치 상하기 전의 과일이 가장 농익은 향을 풍기듯이, 시들기 전의 꽃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하듯이. 귀족 사회의 일원이었던 작가 람페두사와 감독 비스콘티는 디테일을 절묘하게 채워내 구석구석을 완성한다. ‘진짜’를 보는 감각은 ‘내부’에서 귀족 사회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합작으로 완성된다. 초반의 전투 신과 후반의 무도회 신은 동일한 방식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동시에 세부를 놓치지 않는다. 어느 부분을 확대해도 굴욕은 없다. 가장 반짝이는 부분과 가장 더러운 부분 모두가 사실에 부합한다.
무도회의 절정은 안젤리카가 살리나 공작에게 마주르카를 추자고 청하는 부분부터다. 소설의 살리나 공작은 이 순간 무척 행복해지지만 자신의 무릎이 마주르카의 격렬한 동작을 버텨내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대신 왈츠를 청한다. 다른 사람들은 춤을 멈추고 두 사람의 춤을 바라본다. 두 사람은 몸을 맞대며 춤을 추고 몇 마디를 나눈다. 안젤리카는 자신이 얼마나 행운이며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하며, 한 바퀴 돌 때마다 살리나는 자신의 어깨에서 세월이 1년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 춤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압도된 나머지 감히 사자에게 박수를 칠 엄두조차 못 내고 경이로워한다. 이제 죽음이 찾아올 차례다. 손님들이 떠나가는 무도회장의 바닥은 드레스에서 떨어진 온갖 물건들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파우더룸의 옆방에는 찰랑거릴 정도로 채워진 요강이 한가득이다. 화려함을 지탱하는 것들, 혹은 그 이면의 현실.
『표범』을 쓴 람페두사는 1896년에 태어나 1957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영화 속 시대는 엄밀히 말해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람페두사 중 하나로 말해지지만, 『표범』을 보면 그는 ‘이후’를 살고 있었다는 감각을 지녔던 것 같다. 람페두사는 천문학자였던 증조부 줄리오 파브리초 디 람페두사를 모델로 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20년 정도 해왔다고 하는데, 『표범』의 살리나 공작의 설정과 겹친다. 아버지 쪽 재산 대부분은 사실상 소실되었기 때문에 물려받을 것은 정신세계와 람페두사 궁전들, 친척들이었다. 당연하게도 문맹인 농부들의 땅에서 그는 모국어보다 프랑스어를 먼저 익혔다. 1911년 3월에는 엘레나 여왕의 시녀였던 어머니의 여동생 줄리아 트리고나 공주가 그녀의 연인 빈첸초 파테르노 델 쿠뇨 남작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이 소식은 뉴욕 타임스에도 보도될 정도의 큰 사건으로 가족이 시칠리아를 떠나 토스카나와 로마에서 지내는 이유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징집된 그는 헝가리 군에 포로로 잡혀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시칠리아로도 잠시 귀향했지만 그보다는 볼로냐 혹은 뮌헨을 비롯한 도시들에서 더 긴 시간을 보냈다. 정식 학위는 아니었지만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을 포함해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구사하는 비범하고 자발적인 독서가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다시 군에 소집되었고, 세습되는 농지의 소유주라는 이유로 귀가 조치되었다. 팔레르모의 람페두사 궁전은 이 시기, 연합군의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폭격 이후 남은 건물의 잔존부에서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아내 리시가 이탈리아 정신분석학회 부회장이 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람페두사는 『표범』 집필을 시작했다. 소설은 1956년에 완성되고도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돌았고, 다소 구식이고 에세이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57년에 람페두사는 폐암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고 1년이 지나 소설이 출간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6개월도 지나지 않아 52쇄를 찍었다고 한다), 1958년에는 스트레가 상을 사후 수상했다.
또 한 사람의 귀족-예술가가 있다. 시칠리아의 람페두사가 가난과 전쟁의 포화 아래 살았다면 밀라노 출신의 비스콘티는 풍요 속에 살았으며 공산주의자였고 지독한 탐미주의자였다. 『표범』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있다면 그는 비스콘티였고,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넷플릭스의 <레오파드>가 아쉬운 이유는 호화로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구시대)의 가장 썩어빠지게 사치스러웠던 삶의 양식을 이해할 사람이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람페두사는 부유한 귀족으로서의 삶을 전시하고 옹호하고자 『표범』을 쓰지 않았다. 공산주의자였던 비스콘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만들어낸 문화의 유산을 할 수 있는 동안 보존하려고 했고, 소설도 영화도 박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로서 가치를 지닌다.
무도회는 그런 살리나 공작의, 람페두사의, 비스콘티의 내적 독백을 시각화한 무대가 된다. 그는 안젤리카와 왈츠를 추며 삶을 다시 살아본다. 거기에는 후회가 있고 홀가분함이 있다. 그가 속한 계급은 이제 끝났지만, 그의 삶도 이제 끝나가는 중이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 듯 춤을 추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를 표범처럼 거닐며, 그는 삶에 작별을 고하는 중이다. 표범의 우아함, 고독, 순응은 죽음으로 향한다. 그 내면의 풍경은 이토록 화려하고 복잡하며 쓸쓸하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백인 귀족의 내면을 이렇게 밀착해서 느끼게 되다니.
영화 <레오파드> 스틸컷
소설의 마지막 장면들을 영화는 담아내지 않는다. 여기서 살리나는 정말로 죽는다. 삶이라는 도박판에서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지만 언제나 죽음이라는 하우스가 이긴다. 살리나의 죽음이야말로 어울리는 엔딩인지, 살리나가 죽지 않아야 맞는 엔딩인지는 직접 보면 좋겠다. 둘 다 절묘하기 짝이 없는데, 람페두사의 『표범』과 비스콘티의 <레오파드>의 운명을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죽은 뒤에야 알려진 작품과 살아서 영광을 누린 작품 사이에서.
마지막 살리나는 돈 파브리초 자신이었고, 지금 호텔 발코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쇠약한 거인이었다. 고귀한 가문의 의미는 모두 전통과 긴요한 기억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다른 가문과 구별되는 특이한 기억을 가진 마지막 사람이기 때문이다. 파브리지에토는 중학교 친구들과 똑같은 사소한 기억, 값싼 간식에 대한 기억, 선생님에게 한 사악한 농담, 장점보다는 가격만 보고 산 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름의 의미는 공허한 자만이 될 것이며, 이름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많이 과시하게 될까 봐 늘 자기를 들볶을 것이다. 부유한 결혼 생활을 과시하는 사냥은 관습적인 일상이 되어 버릴 테고, 더 이상 누구도 탄크레디처럼 대담하고 약탈적인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살리나 가문은 언제나 살리나 가문으로 남는다고 그는 말해 왔다. 그는 틀렸다. 마지막 살리나는 그였다. 가리발디, 그 수염 난 불카누스가 결국 이겼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표범』, 이현경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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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를 포함한 영화인들이 직접 선정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2026년으로 20주년을 맞았다. 이경미 감독이 선정한 영화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였고, 나는 상영 후 토크의 진행을 맡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한 말보다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아서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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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출판사 | 민음사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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