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만큼 달린다!” ‘리딩런’은 책을 읽은 시간만큼 러닝 거리가 누적되어 기부금이 적립되는 독서 캠페인입니다. (여기서 참여 가능!) 혹시 여러분은 사랑 때문에 무엇까지 해보셨나요? 박혜진 편집자가 ‘가장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스타터, 하프, 마라톤 코스별 세계문학을 소개합니다.

나는 사랑 때문에 ○○까지 해 봤다
안녕하세요,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박혜진입니다.
오월의 짧은 연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집 앞 헬스장에서 연간 이용권을 등록했습니다. 사은품으로 받은 멋진 운동 가방을 들고 헬스장에 간 첫날, 제가 가장 열심히 한 운동은 바로 달리기였어요. 제일 쉽고 만만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트레드밀 레일 위에서 미친 듯이 뜀박질하다 보니 ‘떨어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외에 모든 잡념이 사라지더라고요? 어느새 발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죠. 뛰는 것 자체가 목적인, 무목적의 움직임. 한번 발동이 걸린 이상 계속 직진할 수밖에 없는 것. 러닝과 사랑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스타터 - 하프 - 마라톤으로 가면서 코스가 길어지고 숨이 차오르는 과정을 어떻게 글에 녹여 낼까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끙끙 앓다가 끝난 첫사랑부터,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질풍노도의 연애를 지나 마침내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야 하는 실존으로서의 사랑까지. 우리 운동화 끈 예쁘게 매고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골랐다면, 이제 출발해 볼까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박찬기 옮김 | 민음사
당신은 살면서 가장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으로 언제를, 누구를 꼽으시나요? 저는 친구들과 수다가 무르익으면 장난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제 생각에 그녀와 가장 잘 맞았던 연인은 A인 것 같은데 그녀는 의외로 가장 속을 썩였던 B를 꼽죠. 성숙한 사랑은 서로 잘 주고받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진짜’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얼마나 좋아했느냐’ 하는 주관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아니 상대의 승인도 역할도 필요 없는 철저한 자기 본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느 날 우연히 ‘나’가 로테라는 여인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청초하고 단정한 흰옷에 가슴에 붉은 리본을 단 로테. 조심스레 빵을 뜯어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사로잡히지요. 그렇게 처음 만난 그날 두 사람은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데요. ‘나’는 “(그녀가) 다시는 어떤 남자와도 왈츠를 못 추게 해야겠다.”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합니다. (웃기는 소리!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습니다.)
또 그날 밤 로테가 무도회에 모인 젊은이들에게 놀이를 하나 제안합니다. 동그랗게 앉아서 차례대로 숫자를 말하다가, 조금이라도 늦게 말하면 따귀를 맞는 놀이예요. “하나” “둘” “셋” 로테에게 정신이 쏠려 착! 착! 벌써 따귀를 두 대나 얻어 맞고도 웃음만 새어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 그렇게 시작된 사랑의 열병은 과연 그를 어디까지 끌고 갈까요? ‘눈’에서 시작되어 ‘영혼’을 사로잡아 버린,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할 준비되셨나요?

장아이링 저/문현선 역 | 민음사
첫 코스에서 소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비극적인 결말을 아는 독자라면 ‘이게 가장 강렬한 것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때로는 죽을 각오보다 살아갈 각오가 더 어려울 때가 있지요. 장아이링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색, 계〉의 원작을 쓴 작가입니다. 「흰 장미 붉은 장미」는 1950년대 전후 신중국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장아이링표 통속 소설’ 중 하나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유부녀와 미혼 남자의 격정적인 사랑 이후, 홀로 버려진 유부녀의 ‘몇 년 후’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오루이에 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불같은 여인입니다. 매력적이고 대담합니다. 여러 애인을 거느리면서도 어느 하나에 푹 빠지지 않을 만큼 영리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지인이자 미혼이었던 ‘전바오’가 그녀의 그물에 걸려듭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내 마음은 아파트니까요.” “아, 난 아파트는 별로예요. 단독 주택이 좋지.” 가벼운 말장난에서 시작한 관계는 점점 진지해져 가고 결국 먼저 패를 까고 ‘올인!’을 외친 것은 자오루이였습니다. 남편에게 스스로 불륜을 고백한 뒤 이혼하고 혼자가 된 것이죠. 하지만 전바오는 평소 연애할 여자, 즉 ‘붉은 장미’와 결혼할 여자, 즉 ‘흰 장미’를 구분하여 사귀어 왔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녀를 떠나갑니다.
여기서 강렬한 지점은 이들의 '불륜' 자체가 아닙니다. 수년 후, 아픈 아이를 업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버스에서 재회한 자오루이의 대답입니다. “당신을 만난 뒤에야 알았어요. 어떻게, 사랑하는지, 정말로...... 사랑은 좋더군요.” 모든 것을 잃고도 사랑 그 자체를 긍정하는 자오루이의 이 고백은, 현실과 타협해 삶을 꾸린 전바오를 무참히 무너뜨립니다. 화려한 외양은 사라졌으나 사랑의 본질을 움켜쥔 여자와, 껍데기만 남은 남자. 이 버스 장면에서 둘 중 한 사람이 눈물이 줄줄 흘리는데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건 자오루이일 것 같나요? 아니면 전바오일 것 같나요?

작자 미상/송성욱 편역/백범영 그림 | 민음사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책! 리딩 풀코스에 도전하는 독자라면 고전의 백미 『춘향전』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가장 뜨거운 사랑은 냉엄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대학 시절, 시험 기간이라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귀가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육교 위에서 그 아래를 지나가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차마 부를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 어깨가 산의 능선처럼 처져 있었고 손끝으로 길가의 가로수를 훑으며 지나가고 계셨는데 그 휘적휘적한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고된 하루가 짐작되었거든요. ‘진짜’ 사랑은 이렇게 현실을 초월하지 못하고, 너무나 현실에 속해 있다는 것. 사랑의 낭만이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밥을 먹여 주는 것이 최고의 낭만이라는 것. 저에게도 가족이 생기고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강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춘향전』의 두 주인공 이몽룡과 성춘향은 조선의 신분제에 사랑 하나로 도전장을 내밉니다! ‘사또의 자제’ 이몽룡과 ‘기생의 딸’ 성춘향이 사랑을 나눌 때, 이 두 남녀는 신분 격차를 뛰어넘어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요. “너는 죽어 방아 구덩이가 되고 나는 죽어 방아 공이가 되자.” 하는 이몽룡의 속삭임에 “싫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오. 나는 항시 어찌 이생이나 후생이나 밑으로만 되라니까 재미없어 못 쓰겠소.”라고 말하는 성춘향은 그와 나란히, 대등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룩한 사랑의 성, 그 성은 도련님 몽룡이가 아버지를 따라 남원을 떠난다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지켜도 그만 못 지켜도 그만인 몽룡의 약조 하나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현실임을 알기에 춘향과 춘향 모 월매의 마음은 타들어만 가지요. 우리 모두 춘향이 변 사또 수청 들기를 거부해 투옥되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 원전을 읽어 보시면, 그것이 몽룡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그것은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고결함을 입증하려는 춘향의 처절한 자기 증명이기도 하고, 딸의 고난을 지켜보며 신분 상승의 희망을 부여잡는 월매의 절규이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진짜 사랑은 이렇듯 구질구질하고 치열한 현실 속에서만 그 가치를 드러내 보이는 것 아닐까요?
이 풀코스의 끝에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셨나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 달리기의 묘미니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박혜진 편집자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책을 기획, 편집하고 소개하는 일을 합니다.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세문전 독서클럽'을 진행하고 있으며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클래식은 영원하다'와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고전 덕질'에 고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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