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출판계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유튜브 <민음사TV>에서 여러 세계문학을 소개하며 ‘옥장판도 팔 것’ 같은 영업왕이라는 말을 들은 민음사 해외문학팀의 김민경 편집자는 이제 한 마디 한 마디가 밈이 되어 회자되는 ‘미친 스타성’의 인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결혼은 혼자서도 한다” 같은 순발력과 재치 있는 입담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재미없다”는 말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 애쓴다는 그 자신의 말처럼 거기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재미를 위해 수련(!)해온 농담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지금도 온갖 데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겠죠.
유튜브, 라디오, TV를 종횡하며 활동 중인 김민경 편집자는 그러나 문학 편집자라는 일이야말로 자신과 잘 맞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까부는 거 좋아하니까(웃음) 편집일을 재미없어 할 것이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제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편집일이 잘 맞다고 느껴요.”라고요. 미래를 계획하려 하지 않는 마음,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 좋은 것을 많이 만들고자 하는 마음과 책의 “등산적 재미”에 관한 생각까지. 김민경의 현재를 여기 담았습니다.
인기를 실감할 때는
요즘 편집자님 ‘덕질’ 한다는 지인들이 정말 많아요.(웃음) 인기를 실감하실 때는 언제인가요?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니까요. 평상시에는 실감을 전혀 못 해요. 그러다 여기서 나를 왜 부르지?(웃음) 싶은 곳에서 섭외 올 때 실감하고요. 얼마 전, <B주류초대석>에서 진행하는 오프라인 행사의 티켓팅이 있었거든요. 그게 몇 초 만에 매진이 됐대요. 그건 진짜 거짓말 못 하는 숫자잖아요. 유료 행사가 그렇게 빨리 매진됐다고 하니까 확실히 실감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대부분은 하루 여덟 시간을 회사에서 일하고, 생각하시는 것보다 엄청 실감하고 있진 않아요.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도 출연하셨잖아요! 그나저나 편집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핸들링 하고 계신지 궁금했거든요.
핸들링 못 하고 있고요. 너무 힘듭니다. 진짜 그냥 망했어요.(웃음) 수영도 세 달이나 못 갔고, 주말에는 그냥 잠자기 바빠요. 외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기 시작한 게 2025년 8월쯤이거든요. 처음에는 할 만했는데 점점 가속이 붙어서 요즘은 굉장히 일정이 많아졌어요. 사실 너무 힘듭니다. 잘 핸들링 하고 있지 않아요. 실패했어요, 실패. 집도 엉망이고요. 일상이 무너졌어요.(웃음)
주말은 절대 일하지 않는 게 제 철칙이에요. 그때 못 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도저히 일정이 안 맞을 때는 반차나 연차를 쓰고요. 회사에서 그 부분을 자유롭게 해주어서, 저만 잘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영리하게 하고 있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그래도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 해온 것 같아요. ‘너무 바쁘네’ 싶은 정도였는데요. 여기서 더 늘리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일도 많이 하게 되셨어요. 화보 촬영도 하셨고요. 전혀 해보지 않았던 다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요즘 친구들한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정말 많이 배운다”는 거예요. 다양한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요. 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협업하는지 보잖아요. 그러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배우는 게 많아요. 특히 많이 배운 것은 저에 대한 건데요. 스스로 저에 대한 정의를 어느 정도 내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새롭게 알게 된 모습이 많았어요. 이런 것은 기분 나빠하는구나, 이런 것은 힘들어도 하는구나, 하고요. 그러니까 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진짜 현장에서의 배움이 많았어요.
힘들어도 하고 싶어하는 일이 궁금하네요. 스스로를 “재미새”라고도 하셨으니까요. 편집자님이 흥미 느꼈던 장면은 무엇이었어요?
일하는 사회인으로서, 감정을 배제하고 원칙에 따라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분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그렇게 기분이 상해버리면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반면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잘 맞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하게 되는 거죠. 모든 게 기분의 문제라는 걸 느꼈어요. 말 한마디, 톤의 문제고 예의의 문제더라고요. 물론 돈을 많이 주면 기분 좋을 때도 있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 역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되겠다, 일을 하면서 최소한 그것을 지켜야겠다, 생각했어요. 나쁘게 말하면 꼰대 같은 거예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을 질문받으면
바쁜 와중에도 한 번쯤 멈춰서 현재나 앞날을 고민하게도 될 텐데요. 편집자님은 현재를 “우연의 산물”(<작심삼일 팟캐스트>)이라고 하시면서 (거창한) 꿈은 없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요.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되게 길게 기자 준비를 했었어요. 그때 체험한 거예요. 올림픽 국가대표 같은 분들이 “결과가 나의 손에 없다”고 멋지게 말하곤 하잖아요. 근데 저는 실패로 그것을 체득한 거죠. 잘하고 싶은 마음,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나 외부에 드러나는 정량적인 무언가를 채우는 것으로 결과를 따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실패하면서 배웠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미래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생을 걸 만큼 간절하게 바란다 해도 안 될 수 있고, 지금 저처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도 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육 개월 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오프라인 행사에 나갈 것이다”라고 했다면 안 믿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불확실성이 더 확실해지고 있어요. 저는 오히려 다음 달도 다다음 달도 아예 예상 못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불확실성이 확실해졌다고요.
당장 오늘도 생각도 못 한 프로그램에서 섭외 연락을 주셨어요. 앞일을 아무도 모르는 거죠. 또 이런 관심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이렇게 외부에 알려지는 일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바란 적도 없는 일이고요. 다른 얘기지만 AI도 하루하루 다르잖아요. 정말 불확실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없다, 저는 미래 계획 없다.(웃음)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자리에서도 그렇고요. 주변의 친구들과 가족들도 다음에 무엇을 할 건지, 인스타그램을 언제 열 건지 엄청 물어봐요. 개인 유튜브를 하라면서 이정표를 제시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안 하고 싶어요. 의식적으로 그걸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편집자님께 이런 질문이 많이 가는 배경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신에 대한 궁금증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기도 한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비연예인이고, 직장인이니까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황일 때, 그 당사자는 이렇게 관심받는 와중에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할 거예요.
웃긴 생각인데요.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요즘 제가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들뜨지 말자는 생각이에요. 실은 너무 기쁘거든요. 반응도 좋고요. 생전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관심을 받고 있고, 멋진 분들이 저를 초대해 주시잖아요. 사실 마음이 너무 들떠요. 퇴근해서도 댓글이나 조회수 같은 것을 엄청 보죠. 저를 어떻게 얘기하는지 궁금하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두려움이 같이 찾아와서요. 언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관심이 다 꺼진 후를 대비하자, 들뜨지 말자, 생각하는 것 같아요. 건방져지는(웃음) 것도 두렵거든요. 너무 두려워요. 솔직하게 말하면 유명인으로 살 그릇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너무 소시민으로 살았기 때문에요.(웃음)
말씀을 들을수록 내 위치를 제대로 의식하려고, 메타인지를 정확하게 하려고 엄청 노력하시는 느낌이에요.
애쓰고 있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과 비슷해요. 취업 준비를 진짜 길게 했고, 그때는 메타 인지를 계속 해야 했거든요. 무엇 때문에 떨어졌다, 이것 때문에 붙었다, 이 판단을 열심히 해야 했던 거예요. 그랬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를 배운 것 같아요. 그때 일희일비를 너무 많이 해서요.
한편으로는 워낙 그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까요. 반항 심리가 생긴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제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요.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그런 면 때문에 저를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하는 농담들
많은 콘텐츠를 향유해온 사람으로서, 나의 현재 역시 어떤 서사 속의 인물을 보는 관점으로 보기도 한다는 말씀도 좋더라고요. 그러면 너무 감정적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유명한 말 있잖아요. 콘텐츠를 진짜 많이 보는 것도 삶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아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짜 좋아하는데요. 제가 어떤 상황에 놓였어도 레퍼런스 같은 게 떠오릅니다. 이거 완전 그때 그 에피소드 같다, 하고 떠올리면 이해가 생겨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나에게도 일어났을 뿐이다, 라고요. 솔직히 이겨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더라고요. 엄청 비관적인 거죠. 그렇지만 엄청난 비관은 굉장한 낙관과 구분이 안 되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들뜨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엄청 들뜰 일이 많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고 피곤해도 나를 찾아주는 곳이 많다는 것에 감사하는 거죠.
저는 회사에서 야근할 때도 완전 반어법으로 이렇게 얘기해요. “난 책이 너무 좋아. 더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면서도 “아쉽다! 주말이라니. 책 더 만들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제가 웃는 거예요. 저는 제가 웃으려고 농담할 때가 많아요. 사실 제 말에 제가 웃는 거죠. 남들은 안 웃어도 돼요.(웃음)
내가 재미있으려고 하는 농담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웃잖아요. 그 농담을 좋아하고요. 심지어 편집자님이 좋다는 것에 엄청 영업을 당하기도 해요. 나에게 영업하는 재능이 있다는 건 시작할 때부터 알고 계셨어요?
말을 잘한다, 웃긴다, 이런 얘기는 종종 들었거든요. 근데 영업 잘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어요. 원래 좋은 게 있으면 주변에 알리자,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 추천에 귀가 팔랑거리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책 추천 쇼츠를 제안받았을 때도 팔아야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는 느낌으로 했던 거예요. 이건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데요. 어떻게 재미있게 팔 수 있느냐면 제 생업이 걸려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웃음) 저는 편집부니까요. 만약 이것에 사활이 걸려 있다거나 팀장님한테 보고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다시 재미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다른 목표 없이, 내가 진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저건 진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영업 당하는 순환 같아요.
제 생각도 그래요. 쇼츠와 릴스를 많이 보는데요. 너무 간절한 사람들, 파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네 명이 이야기하는 채널에 나가서 내가 가장 댓글 많이 달려야 되고, 내가 가장 웃긴 말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그 욕심이 드러난다고 저는 생각해요. 뛰어난 배우여도 서너 시간 앉아서 얘기하면 결국 보는 사람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그 마음을 가지지 않고 촬영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고요. 물론 욕심이 나지만, 촬영 이후의 과정에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지금 자리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하죠.

“어떤 결혼은 혼자서도 한다”
처음 <민음사TV>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땠나요? 그때도 너무 인기 얻으려고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아니요, 그것은 일로 접근하자는 생각이었어요. 편집자가 직접 출연하는 회사의 일이고, 근무 시간에 모든 걸 했으니까요. 물론 인기가 많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요. 저랑 박혜진 과장님이 실제로 진짜 친해요. 보는 분들이 그런 걸 좋아해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이걸 해야 되니까 친해져 봅시다,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닭이냐, 달걀이냐인데요. 하면서 저희가 점점 친해졌고, 그런 모습을 보는 분들이 더 좋아해 주시고, 그 반응에 우리도 더 힘을 내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편집자님의 말이 다 밈이 되고, 화제가 되었어요. 인기의 비결이 뭘까요?
그걸 알았더라면 수련했을 텐데(웃음) 정말 모르겠어요. 냉정하게 추측하는 건 제가 직장인이라는 점 같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사고, 인기를 끌고, 인기와 화제성으로 팔로우를 늘려서 수입 올리는 것이 주업이 아니니까 오히려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특별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즐거워서 농담을 해왔던 농담의 역사가 있는 분이니까요. 어떤 말을 하면서 이건 많이들 좋아하겠다, 느낄 때도 있었는지 궁금해져요.
그런 감은 안 맞을 때가 훨씬 많아요. ‘세문전 월드컵’을 할 때도 ‘이 말 되게 재미있었는데’ 하는 게 아예 편집되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올라갔어도 별 반응 없기도 했어요. 더구나 요즘은 워낙 여러 곳에서 여러 말을 하게 되는데요.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잊을 때가 많아요. 계속해서 다음에 할 것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또 촬영 시점과 업로드에 차이가 있으면 사실 다 잊거든요. 저도 유튜브를 보고 놀랄 때가 많아요. 저런 말을 했구나, 저런 표정을 지었구나, 하고요. 실시간으로 눈치채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지만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긴 해요. <이종범의 스토리캠프>에서 “어떤 결혼은 혼자서도 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내가 하고도 명언이다(웃음), 될 것 같다, 했어요. 그 말은 편집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어요.(웃음)
편집자님이 생각하는 ‘재미’란 무엇인지도 들려주세요. 재미에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것 같고요. 뜻밖에 발견하게 된 의외의 재미라는 것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재미에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아요. 정의 내리지 않아서 재미있는 게 많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러니까 순간적인 번뜩임이라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바람에 나뭇잎 흔들거리는 게 좋지만 우리가 등산이나 산책을 할 때 그것을 보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저는 사실 재미를 오만 데에서 느끼거든요. 어떨 때는 너무 지루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재미있어요. 실수로라도 재미있을 수 있을 텐데 저 사람은 진짜 재미있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구나(웃음) 생각해요. 웃참근이라고, 제가 웃음 참는 근육 수련을 많이 했어요.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웃음이 날 때가 있거든요.
어떤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재미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귀여운 걸 봐도 재미있고, 진짜 감동받은 대서사시를 읽어도 재미있어요. 그래서 재미없다는 말을 최대한 안 쓰려고 하는데요. “와, 진짜 너무 지루하지 않았어?” 이렇게라도 해서 웃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해도 기본적으로는 최대한 재미있으려고 해요.

책 앞에서 설레는 마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만들고 계시잖아요. 콘텐츠 서퍼가 콘텐츠 제작자가 된 건데요.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면과 방해가 되는 면이 뭔가요?
언제나 새 책을 보는 게 설레긴 해요. 옛날부터 좋아하지 않았다면 가지기 힘든 마음 같은데요. 너무 힘들어도 새 원고가 계약됐을 때나 새 책 교정을 시작할 때 설레는 마음이 있어요. 저는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는 잘 안 봐도 새로 나온 책은 쭉 보거든요. 보면서 재미있겠다, 궁금한데, 하는 마음 있잖아요. 그건 편집자로 일하면서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 태도 같아요. 그밖에 모든 것이 다 방해가 되죠.(웃음) 유튜브도 보고 싶고, 넷플릭스도 보고 싶은데 한 책만 보고 있어야 한다니, 비극적인 일이죠. 또 슬픈 건 제가 편집해서 책을 내면 그 책은 다시 안 읽거든요. 슬퍼요. 그냥 독자로 읽을 때 마음은 영영 모르는 거니까요.
사실 저는 한 우물만 파지 않았어요. 스페인 문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이라서 마냥 재미있게 읽지 않았고요. 작가 몇 명을 뚜렷하게 좋아하는 것도 없어서요. 편집자로 일할 때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너무 얇고 넓게 많은 걸 알고 있고, 전문가적인 지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울 때도 있어요. 다행히 저희 팀 특성상 그게 잘 맞는 것 같긴 해요. 다양한 언어권의 작가들을 해야 하니까요. 어쨌든 좋아하는 책이 많은 건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취향이 아니고 지루해도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편이고요. 일하면서 깨달은 건데요. 세 번, 네 번 정독하면 미워할 수가 없어요. 이해하게 돼요. 내 취향과 안 맞아도 여러 번 정독하면 이 책이 의미 있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고요. 때문에 그런 책이 나오는 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진짜 뿌듯해요. 가슴이 웅장해져요.(웃음) 그런 걸로 웅장해지지 못하면 하기 힘든 일 같기도 해요. 너무 현실적인 사람은 하기 힘든 일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하죠.
특별히 책이라는 콘텐츠가 주는 다른 재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되는데 배속이 없다는 것, 요약본으로는 그 감흥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책은 완주하는 감흥이 있거든요. 물론 진짜 긴 드라마를 볼 때도 비슷한 감흥이 있는데요. 책은 훨씬 집중된다고 할까요? 저는 집도 통영이라 산보다는 항상 바다를 선택하는 사람인데요. 책은 등산적인 재미가 있어요. 꼭대기까지 무조건 걸어가야 되잖아요. 드론이나 헬기 같은 것으로 갔을 때와 달리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올라갔을 때만 알 수 있는 등산적인 느낌이 있어서요. 그것이 다른 콘텐츠와 다른 재미라고 생각해요. 지루함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그 지루함을 이긴 사람만이 그 단맛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레 미제라블』을 편집해야 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요. 점점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편집하는 것도 잊고 읽었어요. 마지막 장면까지 읽은 경험, 그건 아무도 나한테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생각했어요.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책은 조금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 상상하려고 애쓰면서 읽어야 하잖아요. 절대 배속이 안 되잖아요. 책, 특히 문학은 건너뛸 수가 없다는 점이 멋있는 것 같아요. 정속이 주는 지루한 재미는 인생을 살 때 느끼는 속도감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읽은 영업하고 싶은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지난달 독서 모임에서 장자크 상페의 『진정한 우정』을 읽었어요. 그림 반, 글 반인 책인데요. 우정에 대해 인터뷰를 한 내용이에요. 장자크 상페는 엄청 유명한 그림 작가잖아요. 그림도 너무 좋고, 내용도 너무 좋아서요. 저처럼 요즘 책에 집중을 잘 못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려요.
직접 편집하신 책 중에서는 무엇을 소개하고 싶으세요?
『서머싯 몸 단편선』인데요. 뭐랄까, 비꼬는 블랙 유머가 있거든요. 사실 요즘이라면 못 쓸 책이에요. 하지만 고장 난 벽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듯이(웃음) 좋은 부분이 분명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서머싯 몸이 여행을 갔을 때 쓴 책이라 여행지마다 다르게 느끼는 이야기도 너무 좋아요. 뒤표지의 “현명한 여행자는 오로지 상상만으로 여행을 한다”는 문구를 제가 썼거든요. 좀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한 건데요. 이 책을 읽으면 책으로 방구석에서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여러 가지로 참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또 작년에 낸 『싯다르타』 특별판도 추천해요. 내용도 너무 좋지만 표지가 너무 예쁘잖아요.
지금 편집하고 있는 『체호프 희곡선』도 진짜 좋거든요. 「갈매기」 「바냐 삼촌」 「세 자매」 「벚나무 동산」 네 작품이 들어 있는 희곡선인데요. 체호프가 희곡을 쓰면서 요즘 무슨 생각하는지, 그 희곡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지인들한테 쓴 편지가 있어요. 그 편지 22통이 같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 편지가 진짜 재미있고, 22통밖에 못 실어서 아쉬울 정도로 좋아서요. 곧 연극 「반야 삼촌」도 올라가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책 편집에는 뒤표지에 들어갈 문구 쓰는 일도, 디자이너와 표지 디자인 협의하는 일도 있잖아요. 되게 다양한 과정이 있는데 편집자님은 그중 어떤 과정을 제일 좋아하세요?
새 책이 들어오면 제작부에서 20권을 먼저 편집자한테 갖다 주시거든요. 그때가 가장 좋죠. 끝났다.(웃음) 실물을 처음 볼 때 정말 좋아요. 내가 몇 달 동안 한 일이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나왔을 때 엄청 뿌듯하거든요. 그리고 표지 시안 나올 때도 좋아요. 나머지는 다 힘듭니다.(웃음) 그러니까 공통점은 내가 한 일이 아닐 때 좋고요. 제일 괴로운 일은 보도 자료를 쓰는 일이에요. 보도 자료 없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보도 자료 폐지에 동참할 편집자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웃음)
<토킹헤즈>에서 2026년의 각오를 '경청'으로 꼽으셨더라고요. 벌써 5월인데요. 잘 되고 있나요?
작년 하반기에 <토킹헤즈>를 시작으로 많은 콘텐츠에 나가게 됐는데요. 재미있는 티키타카도 중요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이나 느낀 것을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말을 하면 할수록 저의 곳간에서 쌀을 한 바가지 퍼내는 느낌인 거예요. 고갈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그때 있었어요. 곳간을 채울 수 있는 건 직간접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경청을 뽑은 건데요. 개 큰 실패입니다.(웃음) 너무 말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제가 출연하는 콘텐츠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 얘기 들을 일도 많아서요. 그때는 최대한 경청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실패 반 성공 반이라고 하겠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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