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삶이 견딜 만하다는 것은? – 『인터메초』 | 예스24
김화진 소설가가 들려주는 샐리 루니의 소설 『인터메초』 이야기
글: 김화진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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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너무 많은 조건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지만, 그래서 그것을 하나하나 헤아리는 일은 쓸모 있는 일이라기보다 차라리 바보 같은 일일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샐리 루니가 『인터메초』에서 자꾸만 묻고 있으니까 말이다. “삶은 어떤 조건일 때 견딜 만할까?”(27쪽)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먼저 그 질문에 대답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크게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조건을 무리 없이 꼽을 수 있는 사람과 반대로 삶을 어렵게 만드는 조건을 꼽아 봐야만 ‘견딜 만한’ 상태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삶은 어떤 조건일 때 견딜 만할까?”라는 물음은 내게 자연스럽게 삶은 대체로 견딜 만하지 않은 것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견딜 만하다’는 설명을 삶은 찬란하고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질문자가 조금 겸허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런 사람들이 아마 전자가 되겠지. 견딜 만하게 만드는 조건을 바로 꼽을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후자에 속하게 된다. 우리 삶은 대체로 힘겹고, 간혹 견딜 만해지는데 그 희귀한 순간을 만들어 주는 요소와 조건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쪽.

 

『인터메초』

샐리 루니 저/허진 역 | 은행나무

 

이 질문을 건네고 있는 사람, 피터 역시 삶이 찬란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곤란하다고 믿는 사람으로 보인다. 피터는 30대 중반의 남성이고 변호사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오래전 아버지와 헤어지고 재혼한 남자와 그의 아들과 살고 있다. 그리고 열 살 정도 터울의 남동생이 하나 있다. 이름은 아이번, 십 대 때부터 체스에 두각을 드러낸 체스 선수이지만 사교성과 공감 능력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멀고 서먹하게 지내 오던 그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다. 어쩌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일이, 아직 남아 살아야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자의로 타의로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피터에게 가족과의 상태만 복잡하고 곤란한 것 같지는 않다. 피터에게는 더 젊었던 시절을 함께 보낸 여자 친구 실비아가 있다. 피터에게도, 보는 이들에게도 두 사람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다. 지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함께 있을 때의 온도와 숨이 편안한 사람. 곧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실비아. 하지만 그런 실비아에게는 몇 년 전 불행한 사고가 있었고 사고 이후 얻은 통증 때문에 그녀는 성관계를 할 수가 없다. 견디기 힘든 시간 동안 실비아는 피터에게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제안하며 그들은 이별한다. 실비아의 자리를 커다란 공동으로 남겨 둔 피터가 현재 만나는 사람은 남동생 아이번과 같은 나이의 어린 여성, 나오미다.

 

피터는 실비아와 나오미, 각각의 두 여자와 자신이 만나는 순간을, 가능한 일들을, 주고받는 마음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나오미에게는 실비아에게 없는 것이 있고, 실비아와 가능한 것이 나오미와는 가능할 리 없다. 실비아와는 공유한 과거가 있고, 나오미에게는 위안을 주는 현재가 있지만, 피터는 두 사람 모두에게 함께할 미래는 없다고 느끼는 듯하다. 누군가가 그들에 대해 누구야? 라고 물으면 친구야, 라고 답할 뿐이다. 나오미도 실비아의 존재를 알고, 실비아도 나오미의 존재를 알지만, 둘은 멀찍이서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물을 뿐이다. 나오미는 괜찮대? 실비아는 괜찮대? 그런 질문에 피터는 응, 괜찮아, 라고 대답한다. 보송보송하고 예의가 바르고 상냥해 보이는 이 대화 사이에는 매번 뭔가가 터질 것 같지만 가까스로 그것을 막으려는 피터의 외면과 위악(위선일까?)이 보이는 듯하다. 가족보다 가깝게 자신의 주변이 되어 준 두 여자 사이를 그는 건드려진 추처럼 오간다. 

 

그리고 뒤집어진 거울처럼, 피터의 동생 아이번에게는 형 피터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 친구가, 나이가 많고 전남편이 있는 여자 친구 마거릿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이 형제는, 아이번이 마거릿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히려 서로에게서 멀어진다. 피터가 그런 관계는 “정상이 아니”(240쪽)라고 말한 다음부터. 피터와 아이번 형제가 각각 곤란해하는 삶, 정의 내리기 어려워하는 관계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피터에게는 동생 아이번에 대한 마음은 실비아나 나오미에 대한 마음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자신의 양쪽에 선 두 여자에 대한 마음은 하루마다 달라지고. 아이번에게는 나이 차나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서 마거릿에 대한 마음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의 형인 피터에게 자신이 품은 마음에 대해서는 오락가락이다.

 

내게 이 소설은 자신을 구성하는 데 무척이나 중요한 두 영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그리로 향하는 뭍과 물을 모두 밟아 보려는 탐험자의 소설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그 때문에 이 긴 소설이 길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리 안에 분명히 품고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서 계속 이쪽저쪽 뒤져서 찾아야 하는 마음, 혹은 어렴풋이 손에 잡히고 그래서 모양이 무엇인지도 대충 알 것 같은데 꺼낼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마음, 그 마음을 꺼내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 순간 동시에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거라면? 하는 의심이 들어 다시 넣어두기를 선택한 마음, 그러다가 끝끝내 그래 맞아 그거야, 아무리 이쪽저쪽 기웃거리고 혹시 아닐까 싶어 내팽개쳐도 봤지만 결국 그것이 맞다는 마음으로 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담아야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인터메초』를 읽으면서 발견한 ‘삶을 견딜 만하게 해 주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내 마음을 인정하기’, ‘인정한 마음을 말하기’ 같은 것인데, 겉보기에는 짧아 보이는 저 두 가지 조건으로 가기까지에는 그토록 긴 갈팡질팡을 통과해야 하고, 통과하는 동안 소중한 사람들을 오해하고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또는 마음을 인정하기 단계까지는 수월하게 갈 수 있지만 인정한 마음을 말하기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쏟아지고 엎질러질 마음들과 그것을 닦고 수습해야 하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을 수 있겠지. 그 정도면 ‘마음을 인정하기’가 삶을 견딜 만하게 해 주는 조건이 아니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다. 그 의문이, 질문에 대해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 맞는 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그렇죠, 하고 대답하고 나면 나는 이 소설을 통과하며 겪은 이 지난한 ‘인정하기’까지의 시간과 장면을 떠올리고, 불안에 떨던 피터, 레모네이드에 위스키를 섞어 마시고 약과 술을 함께 털어 넣고 동생에게 차디찬 말을 건네며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바로 다음 순간 자신이 했던 모든 것들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결국 자신을 반가워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음에 지독하게 외로워하는 피터를 떠올리며, 결국 그가 두 무릎이 꺾여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말로 건네는 순간에 이를 때 다시 한번 내가 감동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내 마음을 인정하기’, ‘인정한 마음을 말하기’가 정말 삶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조건이냐고 누군가가 물어 온다면, 이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다. 제가 ‘견딜 만하다’는 구절에 붙들려 다른 걸 좀 덜 생각했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삶’에 무엇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이에요. 이것으로 불충분하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저는 그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무엇이라고 인정하는 일, 그것이 가져올 결과와 손익에 상관없이 말하는 일이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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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메초

<샐리 루니> 저/<허진> 역

출판사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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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장편소설 『동경』,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개구리가 되고 싶어』 등이 있다. 『나주에 대하여』로 제47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