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처럼 봄이 왔다. 버스 차창 밖으로 어느새 만개한 벚꽃들을 바라보며, 도둑은 봄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대단한 걸 훔친 것도 아니면서 겨우내 웅크린 채 숨만 쉬던 내가 봄을 맞이했다고.
음, 어쩐지 『산소 도둑의 일기』라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핀헤드를 닮은 눈사람이 있는 표지와 “여성 혐오자의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고발한다!”는 띠지 카피가 기억난다. 대체 누구를 타깃으로 한 문구인 걸까, 궁금했던 것도. ‘일기’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책들을 모으던 시기에 산 책이다. 물론 읽지는 않았다.
기억은 이상한 것이라서 봄, 벚꽃, 산소 도둑, 여성 혐오로 이어진 기억의 흐름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문장들 곁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김훈의 기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에 실린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의 첫 단락이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9쪽)
그런데 이건 여성 혐오적인 문장인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가다 보니 다소 곤란한 질문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푸릇한 새싹이 돋은 봄의 풀밭을 즐겁게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쫓아가다가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한 불운한 사람처럼…
네, 맞아요, 거기 있었어요. 아니에요, 저는 그냥 강아지를 산책 시키던 중이었는데… 네? 하얀 시골 강아지요, 이름은 릴리…
뭐라고 대답하든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 같지만, 기억에 남는 문장이라는 건 분명하다. 일단 ‘사쿠라꽃’이라는 단어의 선택이 그렇고, 단호한 느낌을 주는 한자어인 ‘불가피하다’와 조금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순우리말 ‘쩔쩔맨다’의 대비가 그렇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건 벚꽃 자체가 가진 힘이 아닐까. 그렇기에 봄이 오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고,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인터넷 서점의 미스터리 소설 베스트셀러 목록에 슬쩍 이름을 올리는 것이리라.
벚꽃은 아니지만 『칼의 노래』의 첫 문장에도 꽃이 등장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처음에 김훈은 “꽃은 피었다”라고 썼지만, 며칠 뒤에 담배 한 갑을 피우며 “꽃이 피었다”로 고쳤다고 한다. 의견과 정서가 섞인 주관의 언어에서, 사실을 진술하는 객관의 언어로.
객관이라. 나는 늘 그 단어가 미심쩍지만, 모두가 아는 위인의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다시 말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단한 토대—그저 상징에 지나지 않더라도—가 필요했던 모양이라고, 혼자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 내 관심은 언어가 아니다. 꽃이다. 나이를 먹으면 꽃이 좋아진다더니, 요즘 내가 그렇다. 그러면서 십대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는 〈동사서독〉의 대사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것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해부터 나는 많은 것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했던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
요나스 메카스는 기억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기억을 예술로 만들었다. 16mm 볼렉스 카메라를 언제나 들고 다니며 일상의 파편—가족, 친구, 저녁 식사, 거리의 빛, 고양이와 함께 한 오후, 산책의 리듬—을 기록했고, 그 조각들을 수 년,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자르고 붙이고 뒤섞은 뒤 내레이션을 얹었다.
내 인생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그래서 지금 필름을 모두 합쳐서 엮기 시작한다. 우선은 연대순으로 정리하려 했지만 포기했고 모아놨던 방식대로 무작위로 필름을 이어붙였는데, 내 인생 어느 부분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중에서)
두서없이, 그러나 나름의 인접성을 갖고 떠오르는 기억을 바라보며 우리가 속으로 중얼거리듯이. 그는 이 새로운 형식을 일기 영화(diary film)라고 부른다.
하지만 동생 아돌파스와 함께 고향을 탈출하던 스물두 살의 그는 아직 영화감독이 아니었다. 시인이었다. 독일 점령하의 리투아니아에서 수동 타자기로 반독일 소식지를 발행하던 그는, 어느 날 타자기를 도둑맞는다. 독일군이 활자체를 대조해서 자신을 찾아낼 거라고 믿었던 그는 빈대학으로 가는 유학생으로 위장해 국경을 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위조한 서류는 소용이 없었다—아마 진짜 서류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1944년 7월, 독일군은 그들을 포로수용소로 데려간다.
그때부터 메카스 형제는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강제노동을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메카스는 일기를 쓴다. 이듬해 독일이 패전하며 풀려나지만, 리투아니아는 다시 소련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들은 가방 가득 책을 넣은 채 빵과 잠자리를 찾아 난민수용소를 떠돈다. 메카스가 마침내 미국에 건너간 것은 1949년 말, 일기는 1955년 12월에 끝난다—그가 일기를 멈춘 게 아니라, 이 책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요나스 메카스 저/김현우 역 | 열화당
『나는 갈 곳이 없었다』는 고난의 시대에 대한 기록이고, 그런 시대에도 끊임없이 복작거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며, 무엇보다 메카스 자신과 훗날 완성될 그의 예술의 씨앗이 담긴 기록이다. 하지만 내 눈이 오래 머물렀던 것은 훨씬 단순한 구절들이었다. 가혹한 수용소의 나날 속에서도 책을 읽고, 시와 일기를 쓰고, 봄에 피는 꽃을 보며 기뻐하던 메카스의 마음 같은 것들.
그는 1948년 1월 10일의 일기를 이렇게 쓴다.
낙관주의자인 척하고, 용기있고 행복한 사람인 척하려고 애쓸 수 있다. 하지만 심장 바로 아래에는 슬픔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걸 떨쳐낼 수가 없다, 향수를. 그것을 숨겨 보려 애쓰고, 거기서 벗어났다고 말하려고 애쓰고, 허풍을 떨어 보려고 애쓰지만, 생각은 당신을 드러내고, 꿈이 당신을 드러내고, 모든 것이 당신의 향수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 된다. 향수를 느끼는 한은 아직 당신이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여전히 뭔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175쪽)
그러니까 그가 기억을 떠올린 게 아니다. 기억이 그를, 그의 삶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여전히 뭔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
뭐든 시시한 것을 하나 찾아서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 삶의 열쇠라고 말한 것은 데이비드 실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문장을 훔쳐 세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하는 『모두 일요일이야』라는 짧은 소설을 썼다. 중요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이 봄이고, 봄은 프로야구의 계절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LG 트윈스의 팬이다—영광의 90년대에 대한 기억으로 암흑기를 버티던, 2023년과 2025년 두 번의 우승으로 이제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오스틴의 홈런과 오지환의 실책에 여전히 일희일비하는, 전형적인 야구팬.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는 야구를 좋아하는 10명의 소설가들이 저마다 응원하는 팀을 소재로 쓴 10편의 단편을 모은 앤솔로지다. 김연수가 삼성 라이온스를, 김종광이 KT 위즈를, 김홍이 LG 트윈스를, 도재경이 SSG 랜더스를, 서한용이 두산 베어스를, 송지현이 한화 이글스를, 심너울이 NC 다이노스를, 위수정이 롯데 자이언츠를, 임현이 기아 타이거스를, 한정현이 키움 히어로즈를 썼다.
김연수, 김종광, 김홍, 도재경, 서한용, 송지현, 심너울, 위수정, 임현, 한정현 | 현대문학
각각의 팀 컬러가 다른 것처럼, 다채로운 열 편의 소설들이 담겨 있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 저녁, 혹은 선발투수가 1회부터 점수를 내주며 아웃 카운트는 하나도 잡지 못해 분통이 터질 때 읽기 좋은 소설들이다. 나는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날에 읽었다.
문제는 소설이 수록된 순서다. 작가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정렬—익숙하고 공정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건 출석부가 아니라 야구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우승팀은 물론 LG 트윈스다. 그러니 LG 트윈스에서 시작해 한화 이글스와 SSG 랜더스로 이어지는 2025년 순위대로 소설을 배열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야구팬이란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목숨을 거는 법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 김홍의 「고양이는 김영우 하고 운다」의 한 장면을 인용할 생각이다. 이렇게라도 LG 트윈스에게 우승 어드밴티지를 주고 싶어서? 아니, 그 장면이 내 심금을 울려서.
야구팬이 되려면 온전한 일주일이 필요해. 그 일주일 동안 저녁 내내 멍하니 TV 화면을 보고 있어도 아무에게도 타박받지 않을 만큼 고립되어 있으면 더 좋아. 이기고 지는 것에 개의치 않을 만큼 삶이 코너에 몰려 있으면 금상첨화지. 내가 야구 보기 시작했을 때가 딱 그랬어. 김기태가 런기태 되고 양상문이 시즌 중에 감독으로 왔을 때야. 야구를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야.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야구를 본 거지. 동해시 어느 모텔에 달방 잡아놓고 하루에 맥주 열두 캔씩 사다 마시면서 야구를 봤어. 편의점 갈 때는 모자 푹 눌러쓰고 곁눈질도 안 했다. 그렇게 한 보름 넘게 방에만 있었지. 그때 양상문이 채은성 첫 안타 볼에 대선수가 되라고 써줬어. ‘大선수가 되세요.’ 그거 보고 울었다. 나도 ‘대인간’이 될 수 있을까? 대단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울었어. (74-75쪽)
*
요즘 내게 필요한 것도 그것이다. 온전한 일주일. 야구팬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인간’이 되기 위해서, 아니 그냥 인간처럼 살기 위해서.
봄이 왔고 꽃이/꽃은—김훈이라면 여기서 담배를 한 갑 피웠겠지—피는데, 내게는 봄을 만끽할 시간이 없다. 어쩌다 보니 갑자기 일들이 몰린 데다가, 신간이 나와서 이런저런 행사를 해야 해서다. 그런데 하필이면 책 제목은 또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이고…
야구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일주일 말고, 아무 목적도 걱정도 없이 거리를 쏘다니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일주일. 그건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결국 돈의 문제다—말하자면 이것이 나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이것은 김훈의 『공무도하』에 나오는 문장을 내가 슬쩍 훔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몇 해 전 내가 번역한 메카스의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을 들춰보았다. 거기엔 내가 쓴 일기 형식의 역자 에세이가 있는데, 그 글에서 난데없이 김훈의 이름을 발견하고 소름이 돋았다. 그건 이런 내용이었다.
메카스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모든 위대한 일에는 고난이 따르는 법이라고, 비록 전망은 어둡고 꽉 막혀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대신 나도 유명한 작가에게 찾아가서 돈이나 빌려볼까 생각했다. 누구를 찾아가지? 소설가 김훈? 좋아, 마침 일산에 있다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저… 돈이 좀 필요해서 왔는데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제가 요즘 오디오에 좀 빠져서요, 8개월 무이자 할부를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돈이… (171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출판사 | 열화당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
출판사 | 현대문학
금정연
읽고 쓰는 사람. 『아무튼, 택시』, 『담배와 영화』,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한밤의 읽기』, 『모두 일요일이야』 등을 쓰고 『문학의 기쁨』,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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