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의 박동이 다시 뛸 때까지, 두 손을 포개고 하나, 둘, 셋 | 예스24
나는 올해 4월 16일에 슬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루카스』를 읽었다. 그 하루치의 기도를 이곳에 남겨둔다.
글: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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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이문영 저 | 위즈덤하우스


며칠간 상실(喪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상실이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끊거나 헤어지는 것’, 혹은 ‘어떤 것을 아주 잃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전제는 잃어버리기 전 애초 나에게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소유했던 것이어야 부재 역시 감각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때로는 소유한 적 없는 대상에 대해서도 강렬한 상실을 경험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공통된 경험일 때, 상실은 사건 이후에 사후적(死後的)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2014년 4월 16일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TV 화면 너머로 가라앉는 배를 보며 귀환을 간절히 바랐던 마음이 끝내 상실로 치환되던 순간에 대해서. 이후 한국 문학이 이 상실을 되새기는 데 매진해 온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들이 이전에 어떤 존재였는지, 살아남았더라면 어떤 존재가 되었을지 기억하고 상상하는 이 사후적 회고야말로 문학의 할 일 중 하나일 테니까. 그리고 이 회고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기억에 동참하는 것이 독자인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4월에 이 소설 『루카스』를 읽은 것은 그런 이유다. “너무 흔해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죽음’을 기억하려고.

 

*

 

루카스(LUCAS)는 사람을 살리는 자동 흉부 압박기를 뜻한다. 루카스가 소설의 제목이 된 것은 주인공인 애진이 응급 구조사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119 구급대원들이 심정지 환자가 실린 스트레처카를 응급실로 밀고 들어오며 시작된다. 애진을 비롯한 의료진의 처치로 환자의 맥박은 가까스로 돌아오지만 안도는 잠시뿐, 응급실에는 새로운 목숨들이 들이찬다. 

 

전화가 울리고 신고가 접수되면 긴급 출동을 한다. 쓰러진 사람, 심정지 판단, 가속 페달, 그리고 이어지는 CPR. 의사가 뛰고 간호사가 뛰고 기계들이 뛴다. 어떤 사람들은 살려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끝내 살리지 못한다. 죽은 사람들은 죽기 직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다. 애진은 늘 그것을 상기하며 일한다. 

 

응급구조사는 매일 멈춘 박동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죽음에 결코 무뎌질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직업이다. 늘 생과 살의 갈림길을 오가야만 하는 직업을 애진이 택한 이유는, 애진 자신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진은 2014년 세월호 침몰 당시 배에서 탈출해 살아남은 생존자다. 

 

그날,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올랐다. 애진은 친구들과 복도 벽을 밟고 비상구로 나갔다. 바다로 뛰어내렸고 바다에서 ‘건져졌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들에게 ‘함께 나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배에 남았고 애진은 나왔다. 친구들은 죽었고 애진은 살아남았다. 그 기막힌 사실이 애진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서 애진은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이 구조되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 응급구조학과에 지원했다. 생명의 위기 상황에서 조기 대응을 하는 사람이 됐다.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애진은 다시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애진은 ‘구조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애진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도 친구들의 목숨은 등가되지 않는다. 그림을 잘 그리고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민지. 뜬금없는 말로 애진을 웃기고 약사가 꿈이었던 민정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정식 응급구조사가 되어 하루하루 그 실감을 쌓아갈 때마다 애진은 그렇지 못했던 그날의 바다를 원망했다. 응급한 순서대로 구조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절차조차 친구들의 심장엔 주어지지 않았다.”(43p)

 

친구들의 심장은 다시 뛰게 할 순 없지만 애진은 절박하게 다른 심장들을 다시 뛰게 하려 애쓴다. 소설은 2014년 4월 16일의 현장과 애진이 응급구조사로서 맞닥뜨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교차하며 ‘이 죽음’과 ‘저 죽음’ 사이를 오간다. 사고와 자살, 노동자와 노인과 산모의 죽음, 자연사와 변사, 그리고 뉴스가 되는 죽음과 되지 못하는 죽음까지. 애진이 멈춰버린 심장 위로 두 손을 포개 올릴 때, 소설은 소외된 죽음들을 기록함으로써 이야기의 박동을 다시 뛰게 하려 애쓴다. “구조되지 못한 몸들에겐 여전히 이야기가 부족”하고 “누락된 이야기들을 상상하길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소설은 살아남은 애진의 눈을 통해 끝내 살려내지 못한 죽음들을 기록한다.

 

“두근대지 않는다고 심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듣기 지겹다고 그 이야기를 그만둘 순 없다.”(19p)

 

*

 

소설은 현실을 가장 온전히 옮겨오기 위해 선택된 형식이다. 『루카스』는 이문영 작가가 실제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이자 응급구조사, 사회활동가인 장애진씨를 2023년에 인터뷰한 기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실화’가 있는데 그걸 왜 ‘소설로까지’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게 말할 사람들을 염두해서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적어둔다. “현실은 소설과 거리를 두려 하지만 소설이 현실을 거부하면 소설보다 소설 같은 현실은 숨을 쉴 수 없다.” 작가의 말처럼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은 상상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기억에서조차 너무 빨리 지워”지기에, 이런 소설은 여전히 쓰여져야 할 것이다. 

 

“그만하라고 해도 그만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심장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79p)

 

어느 계절에, 어느 날에만 잠깐 슬퍼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4월 16일에는 슬픈 사람이었다가 17일이 되면 슬프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이제는 좀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일 년 중 어느 날만이라도 충분히 함께 슬퍼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 내 365일 중에 슬픔에 빌려줄 수 있는 몇 개의 날들이 있는 것. 그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올해 4월 16일에 슬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루카스』를 읽었다. 그 하루치의 기도를 이곳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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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이문영>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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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범(한국일보 기자)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