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작업실
쑥 작가의 작업실 - 『느슨한 균형』
일상의 모순과 삶의 불안을 솔직하게 그려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아 온 에세이툰 쑥 작가의 『느슨한 균형』 작업 이야기.
글: 박소미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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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인생이라니.” 쑥 작가의 『느슨한 균형』을 읽는 동안 종종 떠올린 책 속 문장입니다. 불안과 권태, 무기력과 과잉 의욕, 완벽주의와 게으름. 처음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게 문제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순된 한 쌍의 단어가 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혹은 원한 적 없는데 어느새 손에 쥐어진 1+1 세트처럼요. 그럼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라고 말하며 양팔을 벌려보지만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꾸만 휘청거리고 쉽게 고꾸라집니다. 어쩌면 온전한 균형점에 도달한다는 건 환상일 뿐이고, 그저 균형을 잡아보려고 노력하는 상태만이 가능한 게 아닐까요? 균형 잡기에 실패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때 쑥 작가는 ‘느슨한 균형’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균형이란 가만히 서 있는 형상이 아니라,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인 것 같습니다.”(10쪽)

 




『느슨한 균형 』 출간 후기를 들려주세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원고를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책이 탄생했습니다. 초라한 생각과 일상을 쓰고 그리면서 ‘이 이야기가 정말로 책이 될 수 있나’하고 이따금 자괴감에 빠졌는데요. 편집자님의 무한한 칭찬과 살뜰한 배려, 세심한 편집하에 무사히 출간할 수 있었답니다. 책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던 나날이었습니다. 편집자님, 디자이너님, 그리고 이 책을 만들고 알리기 위해 분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요.

 

이 이야기는 균형을 잡는 이야기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책이 시작합니다. 제목에도 ‘균형’이 들어가고요. 언제부터, 왜 균형이라는 화두에 주목하게 되셨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제게는 모순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웃으면서도 쉽게 우울해지고, 세상살이가 다 지겹고 귀찮다가도 열심히 살게 되고, 사람들 품에 폭 안기고 싶다가도 아주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모순을 소멸시킬 수는 없으니 그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대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 결국 인생을 잘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균형을 잘 잡는 날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히 균형을 잡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흔들리는 날이 있어도 영영 무너져 있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요새는 느슨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삶은 살아지더라고요.

 

에세이툰의 주인공이자 선글라스를 쓴 유령처럼 보이는 ‘무명’의 탄생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 SNS에서 에세이툰을 시작했을 때 ‘무명’이는 없었습니다. 각 회차의 글에 어울리는 풍경이나 사람, 사물을 그렸지요. 그러다가 「새로운 나」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친구, 가족, 동료, 지인 등 곁에 있는 사람이 달라지면 내 모습도 달라진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이 페르소나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까, 하고 레퍼런스를 찾다가 천과 선글라스를 쓴 사람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가면을 씌워서 페르소나를 표현하기보다는, 온몸에 천을 두르고 시크하게 선글라스를 낀 게 훨씬 재밌고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해당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독자님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 이후로 무명이는 제 이야기를 대신해 주는 페르소나로 자리 잡았답니다.

 쑥 작가의 페르소나인 '무명'


『무명의 감정들』『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에 이은 세 번째 단행본 『느슨한 균형』은 전업작가가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번째 퇴사라 결정을 내리기까지 더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두 번째 퇴사는 첫 번 퇴사보다는 고민이 적었습니다. 첫 퇴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우선 ‘회사는 나를 평생 책임지지 않는다’였고, 두 번째는 ‘먹고 살기 위해서 회사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뭘 해서라도 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다’였습니다. 퇴사해 본 적이 없었을 때는 퇴사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커리어도 내 인생도 망하는 줄 알았지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저에게 회사에 다니는 행위는 ‘생계 유지’의 목적이 컸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아 실현’의 목적이 컸고요. 작가로서 ‘자아 실현’과 ‘생계 유지’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작업에 투자하는 시간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점이 가장 고민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사 일과 작업을 병행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고, 한 번쯤은 전업작가를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쪽으로 걷고 싶었고, 걸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비뚤어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에서 완벽주의의 이면에 수치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완벽주의, 자기검열, 수치심을 다루기 위해 터득한 작가님의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안타깝게도 아직 이렇다 할 노하우가 없습니다. 괴로우면 괴로워해요.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오래 겪어서 그런지 그나마 내성이 생기긴 했습니다. 익숙하게 괴로워지면 ‘아 또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구나. 어쨌든 지나가겠지 뭐.’하고 되뇔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점은 ‘그냥 한다. 그리고 내보인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캐릭터의 눈 한쪽이 삐꾸(?)가 나거나, 글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작업물을 어딘가에 영영 봉인해 두었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너무 조몰락거려서 더 이상 원하던 그것이 아니기 전에 적당히 세상에 내보내 줍니다. 생각보다 내가 맘에 안 들어 하는 부분을 남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의외로 슥슥 쓰거나 그려서 내보낸 것들을 독자님들께서 더 좋아하시기도 하고요.

 

그냥 하세요, 여러분. 남들은 사실 뭔가를 자세히 보지 않습니다. 망한 눈 한쪽, 요상한 문장 몇 줄은 나밖에 모릅니다. 나의 원래 의도만 잘 전달되면 그뿐이에요. 스스로를 그만 괴롭히고 작업물을 세상에 내세요.

 

작가님의 인스타툰을 애정하는 독자분들이 많습니다. 인스타툰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께 실전의 노하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너무 각 잡고 시작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위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 일단 그냥 하시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림도 잘 그려야 할 것 같고 글도 잘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시작하더라도 금세 포기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인스타툰은 그림을 대단히 잘 그리거나 글을 유려하게 쓰지 않아도 괜찮은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진짜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잘 꾸며내거나 멋진 것 말고 진짜를요. 내 삶에 가장 가까운 감정, 생각, 이야기를 가볍게 그려보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취업이 안 되어서 힘든 마음, 퇴사를 고민하는 마음, 쳇바퀴 같은 생활의 지겨움이나 요새 자주 먹는 음식에 대한 감상, 주말에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네요. 찌질하거나 초라하거나 별거 아닌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아이패드를 사세요(!) 용량은 크고 사이즈는 너무 크지 않은 것으로요. 그래야 가방에 매일 넣어 다니면서 언제든 가볍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앱은 만 오천 원을 지불하면 평생 쓸 수 있는 프로크리에이트를 추천합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반려 식물 ‘쨉’이 있습니다. 제 소중한 지인이 작업실을 얻은 기념으로 준 선물인데요. 꽃집에 가자마자 ‘가장 잘 안 죽는 식물로 주세요’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 기르지 못한다는 걸 잘 알아서요.)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흠뻑 주면 된다길래, 매달 1일을 식수의 날로 정하고 물을 주고 있습니다. 이 친구 덕분에 새로운 달이 온 걸 알아요. 아직도 흠뻑의 기준은 모르겠어서 물을 주면서 ‘이 정도면 괜찮니…?’하고 마음속으로 말을 걸지만요. 아직 시들지 않은 것을 보니 흠뻑의 양이 어느 정도 맞았나 봅니다. 이 친구에게 햇빛을 쐬어준다는 요량으로 창가에 갔다가 햇빛이 좋아서 잠시 앉아 기대 있는 동안 낮잠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잠도 같이 자고 시간의 흐름도 같이 느끼는 반려 식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작업실과 반려식물 '쨉'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몇 달 전 처음으로 작업실을 얻었습니다. 책상에는 데스크탑 1개, 노트북 1개, 아이패드 1개가 있습니다. 데스크탑은 주로 글 작업, 아이패드는 주로 그림 작업, 노트북은 주로 재미있는 영상을 틀어놓는 용도입니다. 글을 쓸 때는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두고 피아노를 듣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최대한 재밌는 영상을 틀어 놓습니다. 아무래도 화면을 잘 보지는 못하니까 오래 대화하는 팟캐스트를 좋아해요. 뭘 많이 마시는 스타일이라 꼭 차를 대량으로 끓여놓고 옆에 두고 먹습니다. 자주 화장실에 가면 작업 중간중간에 자주 쉬게 되니 많이 마시는 것 같기도 해요.

 

쑥 작가의 작업실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죄책감 없이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할 일이 있으면 마음 편하게 자기가 어려운 편이라서요. 최근 개인전까지 끝내고 나서는 하루에 19시간을 잤습니다. 되게 좋고 허리가 아프고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지만 역시 좋았습니다.

 

작업 중 특히 재밌게 본 타인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유튜브 "민음사TV"를 좋아합니다. 배울 만큼 배운 이들의 침착한 유쾌, 은은한 광기, 왠지 모를 귀여움을 좋아하는데요. 조아란 부장님을 필두로 뭘 자꾸 사고 뭘 자꾸 요리하고 뭘 자꾸 읽고 설명하는 영상들을 좋아합니다. 출판사가 이렇게까지 웃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민음사 팟캐스트인 ‘독서클럽’도 즐겨 듣는데요. 내가 읽지 않은 책으로 열심히 토론하는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적 허영심을 채울 수 있답니다. 언젠가 나도 저 책을 읽은 척하면서 저런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다짐했다가 다음 날이면 다 까먹는 식입니다.

 

 



이제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보려 한다. 모순을 해결하려 들지 않고, 조율하며 지내는 삶. 오늘은 조금 더 나아가고, 내일은 조금 더 물러나도 괜찮은 삶. 잘되는 날에는 기꺼이 기뻐하고, 불안한 날에는 그런 날도 있다고 인정하는 삶. 창과 방패를 동시에 쥔 채로, 그것들이 녹슬지 않게 자주 마른 걸레로 닦아내는 삶. (「창과 방패를 함께 쥔 채로」, 92-93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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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