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탈로 “모든 성인은 자기 삶의 마지막을 통제할 법적 권리를 가져야” | 예스24
이것은 내 삶이고, 내 죽음이며, 나의 결정이라고 강력히 믿습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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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Tarlow(ⓒ Richard Dearden)


평생을 죽음과 애도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 헌신해 온 세라 탈로는, 같은 고고학자인 남편이 진행성 신경질환으로 투병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상실을 겪게 됩니다. 『어떤 죽음의 방식: 사랑과 상실의 고고학』은 남편과 함께한 삶, 간병 과정에서 마주한 좌절과 분노,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치열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2023년 영국 왕립 인류학회 공공 인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책은, 단순한 애도를 넘어 죽음과 돌봄, 사랑의 숨은 의미, 나아가 존엄한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합니다.


오랫동안 죽음을 연구해 오셨습니다. 개인적 상실을 겪은 후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셨습니까? 

고고학자로서 저는 오랫동안 죽음과 사별의 감정적 측면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죽음과 추모를 사회적 지위나 정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기에 저는 ’슬픔과 애도‘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지요. 하지만 제가 애도에 대해 당시 가지고 있던 생각은 꽤나 낭만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과 상실만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그런 면도 있었지만, 분노, 피로, 좌절감, 그 밖의 여러 ’아름답지 않은‘ 감정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학문적으로 다뤄온 죽음과, 삶 안으로 들어온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나요? 

고고학자는 죽음을 '뒤돌아서 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후에 남겨진 것들, 즉 유해나 매장 관습, 유족들이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들을 연구하지요. 제가 죽음을 정말 가까이서 경험한 것은 40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뒤이어 남편이 세상을 떠났죠. 두 사람 모두 죽음에 이르기 전 한동안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는 죽음을 '앞으로 다가올 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저는 그저 유족과 이야기하는 데 능숙했던 것이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과정과 임종 직전의 시기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놀랐습니다.

 

분노, 피로, 좌절 등 간병의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묘사하신 부분이 감동적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감 없이 투명하게 기록하기로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책을 좋아하는 여느 사람들처럼, 저 역시 삶에서 새롭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문학에 눈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과 진정으로 공명하는 글은 찾지 못했습니다. 문학 속의 간병인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지치거나, 화를 내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법이 없어 보였죠. 저는 '내가 유독 못된 사람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되고 싶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론 제 모습이 나빠 보일지라도 솔직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후, 자신만이 간병을 '어둡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정말 안도했다는 독자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질병이 의학적 범주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임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나요?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건강할 때는 의료 전문가나 사회복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질병은 모든 것을 복잡하고 위태롭게 만듭니다. 저희의 경우 특히 적절한 진단이나 예후를 알 수 없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고립되었습니다. 만약 남편이 걸린 병이 차라리 암이었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로가 명확했을 것입니다. 또 전통적인 사회였다면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친척들과 가까이 살지 않고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도 많지 않습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인간이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 연구자이자 개인적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또 ‘조력 존엄사’의 문제를 '권리'의 언어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적절한 안전장치가 있다면, 판단 능력이 있는 모든 성인은 자기 삶의 마지막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쨌든 죽음을 선택하지만, 제 남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혹은 자신이 원했던 것보다 이른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물론 통제된 죽음을 원하지 않는 분들도 많으며, 그들은 최고의 완화 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항상 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호전 가능성이 없는 삶을 지속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식 능력과 출산 방식을 통제할 권리, 그리고 의학적 치료를 요구하거나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직 '이제 충분히 살았다'고 말할 권리만이 개인의 통제 밖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것은 내 삶이고, 내 죽음이며, 나의 결정이라고 강력히 믿습니다.

 

먼 훗날의 고고학자는 우리 시대의 죽음의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요?

만약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우리 시대의 무덤들을 발굴한다면, 우리가 보통 한 무덤에 두 명씩 묻혀 있고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는 사실 같은 것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문화가 낭만적 연인 관계에 큰 가치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겠죠. 우리의 추모 방식은 19세기처럼 크고 값비싼 기념비를 세우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더 이상 사회적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영역이 아니라, 훨씬 더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에서 ‘글쓰기’와 ‘기록’이라는 행위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저에게는 필수적인 행위였습니다. 상실, 특히 배우자와의 이른 사별이 삶 전체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한 삶의 서사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은 제게 삶의 한 단락을 잘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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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의 방식

<세라 탈로> 저/<정지인> 역

출판사 | 복복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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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