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개봉 직후에만 영화관에서 두 번 봤다. 기택(송강호)이 아들 기우(최우식)에게 감탄하는 목소리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관을 꽉 채우던 웃음소리를 잊을 수 없다. 계획이 있다는 말이 이렇게나 우스울 수 있다니. <기생충>에는 ‘계획’과 관련한 기택의 대사가 하나 더 있다.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결론부터 말하면 계획이 있던 사람도 없던 사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흥하고 망한다. 대체 계획이란 무엇인가.
영화 <심플 플랜> 포스터
<심플 플랜>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계획’이라는 뜻이다. ‘단순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부터 <기생충>의 대사 같은 상황이 된다. 능숙하지 못한 사기꾼이 계획을 입에 올리는 순간 재앙이 예고되듯이, ‘단순한’이라는 수식어가 범죄물 제목에 붙는 순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 대사야말로 스포일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 혹은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도입부에 선언적 상황이 등장한다면 그것이 완전히 뒤집히리라는 예상이다. 내가 가장 자주 예로 드는 것은 ‘행복한 가족’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것이다. 도입부에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모여 웃고 떠든다? 그 가족은 십중팔구 파탄난다. 영화 <심플 플랜>의 도입부에도 이런 선언적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이 장면은 마지막에 가서 다시 보게 될 예정이다.
“아버진 남자의 행복이 어떤 건지 말씀해 주셨다. 그건 아주 간단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그럴듯한 직장, 자기를 따르는 친구와 이웃”. ‘따르는’이라고 자막은 번역되었지만 영어 대사는 ‘like and repect’라고 되어 있는데, 그대로 해석하면 ‘좋아하고 존중하는’ 정도의 뜻이 된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한다.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모든 걸 가져왔다.” 이 도입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행복은 어디 있다? 우리 집에 있다. 『파랑새』의 교훈 말이다. 또한, 그가 가져왔다고 말한 사랑하는 아내, 직장, 친구와 이웃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손에서 떠날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게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방식,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예 갖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걸 갖게 하거나 갖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전부 빼앗아버리거나. 전자는 해피엔딩의 엔터테인먼트고 후자는 추락의 엔터테인먼트다. 어디까지 추락하냐고? 살려는 드릴게. 원래 삶이 죽음보다 길고 처참하니까.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들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의 눈 덮인 작은 시골 마을 아셴빌. 사료상에서 회계부장으로 일하는 행크와 형 제이컵, 그리고 제이컵의 친구 루는 트럭을 타고 가던 중 닭을 훔쳐 달아나는 여우를 칠 뻔하고 겨우 차를 멈춘다. 차에 타고 있던 개가 여우를 뒤쫓아가자 세 사람은 개를 찾아 자연보호림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에서는 여우를 따라간 개도 있지만 차가 망가진데 흥분한 제이컵이 총을 들고 여우를 따라간다.) 그들은 눈 속에서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한다. 도입부 내내 까마귀 소리가 들리더라니. 경비행기 안에는 죽은 조종사와 440만 달러가 든 더플백이 있다. 당장 돈을 나눠 갖자는 제이컵과 루의 말에 행크는 간단한 계획을 제안한다. 돈을 셋이 나눠 갖자. 하지만 돈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붙잡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기가 돈을 보관하고 있을 테니 눈이 녹고 비행기와 시체가 발견된 뒤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셋으로 나누자. 세 남자는 여섯 달을 기다린 뒤 돈을 나누고 이 마을을 뜨기로 한다.
소설가 스콧 스미스는 『심플 플랜』과 『폐허』 두 권의 책만을 썼다. 두 이야기가 모두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그는 샘 레이미가 연출한 <심플 플랜>의 각본도 써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도 올랐다. 애초에 시나리오로 쓰려다가 소설로 먼저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콧 스미스가 소설을 두 편만 발표하던 시기에도 여러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직접 각색했다는 점은 이 소설과 영화를 더 즐겁게 비교하며 보게 해 준다. 스콧 스미스가 생각한 『심플 플랜』은 하나인 동시에 두 개의 이야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인칭으로 진행하는 소설 『심플 플랜』은 심리 스릴러다. 영화 도입부에서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자의 행복’에 대해 일러주는 사람이었다면 소설 도입부에서의 아버지는 행복과 관련해 할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행복이 없고, 피가 튀기며, 살풍경하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기 일 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토요일 밤, 75번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ㅡ미국을 남북으로 잇는 주간 고속도로 중 하나로, 길이가 3,000킬로미터에 가까우며 오하이오 주를 지남ㅡ로 들어서는 램프에서 소들을 실은 트럭과 정면충돌했다. 아버지는 충돌하자마자 자동차 보닛에 목이 잘려서 즉사했지만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목과 등이 부러지고 심장에서 가슴으로 피가 새면서도 델피아 시립 병원에서 기계들에 연결된 채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더 살았다.”
소설의 화자인 행크의 아내 사라는 그의 아버지가 자살했으리라는 지론을 펼친다. 늘어나는 빚을 감당 못 하고 자살했으리라고. 행크는 아니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형 제이컵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다르다. 도입부의 아버지가 ‘남자의 행복’을 아들에게 전해주었듯 형 행크는 그런 아버지와 그의 죽음에 대한 애상에 젖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런 그를 일깨우는 사람은 바로 동생 제이컵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사항. 소설에는 제이컵이 형, 행크가 동생이다. 영화에서는 그 반대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의 순서는 소설과 영화가 다르지만 둘의 성격은 비슷하다. 행크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가족을 꾸렸다. 제이컵은 혼자 살고 불안정하다. 소설에서는 행크와 제이컵의 관계가 불화하지는 않지만 편하지도 않은 관계로 그려지고, 영화에서는 행크가 제이컵에게 형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제이컵은 빌리 밥 손튼의 괴력에 가까운 연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나약하고,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결정할 줄 아는 인물로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그는 일단 입을 열면 반드시 실수하는 사람이다. 제이컵은 행크의 그림자와 같은 인물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진상을 직시할 수 있는 이는 공부도 많이 하고 안정적인 삶을 일군 행크가 아니라 제이콥 쪽으로, 둘은 상반된 삶을 사는 서로의 가능성 그 자체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그림자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소설의 아버지는 “결국 찾게 되는 것은 언제나 가족이야”라고 형제에게 말했지만 형제는 그 말을 지킨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심플 플랜』은 마지막까지 손을 뗄 수 없는 이야기다. 일단 기다렸다가 봄이 되면 공짜로 손에 넣은 막대한 액수의 돈을 나눠갖고 저마다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계획한 세 남자는 길고 가혹한 겨울을 전처럼 보낼 수가 없다. 당장 현금 다발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셋 중 가장 건실해 보였던 행크는 뜻밖에도 가장 취약한 사람이었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행크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놀란다. 그는 아내가 그 돈을 포기하라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자 돈을 갖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우리는 그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행크는 아내에게 돈에 대해 말하고, 그의 예상과 달리 아내는 잡힐 우려만 없다면 돈을 갖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친다.
『심플 플랜』을 영화로도 소설로도 두 번씩은 봤는데, 이번에 다시 보다가 깜짝 놀랐다. 행크와 아내의 관계 때문이다. 이 관계는 너무나 익숙하게 전개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맥베스와 그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 말이다. 맥베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황야에서 세 마녀를 만나 예언을 듣는다. 충신이었던 그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아내 레이디 맥베스로부터 그 자리를 가지라는 부추김을 듣는다. 맥베스는 왕이 되지만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살인을 저지른다.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실행할 결심을 하는 데는 아내의 부추김이 한몫을 한다. 소설보다는 영화 <심플 플랜>에서 『맥베스』의 인상이 더 강해진다. 야망보다는 충성심(행크의 경우는 견실한 삶에 대한 성실함)이 강한 한 사람이 어떻게 결국 야망으로 무너지는가. 소설이 1인칭으로 행크의 마음속을 낱낱이 중계한다면 영화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적나라한 탐욕을 드러낸다. 사랑이야기도 아닌 스릴러에서 이렇게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다니. 소설의 1인칭에 대응하는 심리 묘사인 셈이다. <심플 플랜>에서 행크는 약해지려 하는 순간이면 아내의 준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돈을 갖자고 단호하게 행크를 설득하는 사라의 목소리는 행크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끝까지 가겠다는. 돈을 갖고야 말겠다는. 이제 남은 과정은 마치 성경 속 일화처럼 전개된다. 죄를 벌하는,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의 작용처럼.
영화 <심플 플랜> 스틸컷
평범한 사람들이 얽힌 우연한 사건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1인칭 시점에서 따라가며 진행되는 소설 『심플 플랜』과 시종일관 날아다니는 까마귀들 사이로 예고된 불행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숨 막히게 뒤쫓는 영화 <심플 플랜>은 둘 다 볼만한 가치가 있다. 어느 한쪽을 먼저 보고 결말을 다 알았다 해도 다른 한쪽을 마저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도덕과 윤리는 한없이 불안하고 모호한 회색 지대에 머문다. 시각적으로도 그 사실은 뒷받침된다. 대니 엘프만의 음악은 불안이 당신의 영혼을 잠식하게 만드는데 손색이 없고, 알라 키빌로의 촬영은 핏빛으로 물들기 딱 좋은 설원을 꾸밈없이 잡아내며, 파트리지아 폰 브란덴슈타인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절제된 방식으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간과 옷을 입힌다. 그리고 후반부의 결정적인 장면. 행크와 제이컵이 마주하는 ‘그 장면’에 이르면 <심플 플랜>은 440만 달러 그 이상의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소설의 엔딩은 그보다 찐득찐득하고 길며 우울하다. 그래서 재밌다는 것이다. <심플 플랜>에 한해서라면 영화와 소설은 스콧 스미스라는 작가가 생각한 A안과 B안처럼 결말을 가져간다. 같은 결과지만, 다르다.
작가 캐서린 슐츠는 문학적·영화적 관점에서 폭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타이머라고 말한 적이 있다. 1에서 10까지 세는 것은 지루하다. 다음에 오는 것이 11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에서 1까지 거꾸로 세는 것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다음에 오는 것이 바로 펑! 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곧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아는 한, 매 순간을 터벅터벅 헤쳐 나가는 행위는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스릴 넘치는 것이 된다. 『심플 플랜』이라는 이야기에서 그 폭탄은 인물의 마음속에 있다. 범죄소설 속 1인칭 화자의 목소리가 주변 사람들을 은은하게 낮추어볼 때, 범죄영화 속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감히 행복을 논할 때, 타이머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틱틱붐!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이다혜 칼럼] 이토록 가지런한 범속함 | 예스24](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6/02/20260227-b718b8bd.jpg)
![[에디터의 장바구니] 『필연적 혼자의 시대』 『쾌적한 사회의 불쾌감』 외 | 예스24](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6/02/20260227-cf6d21b5.jpg)
![[김미래의 만화절경] 어제 뭐 먹었어?](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10/20251027-5031a641.png)
![[리뷰] 은총 없는 신과 절망하는 인간, 당신은 이 세계를 끝장낼 것인가](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9/20250910-1b7c5120.png)
![[큐레이션] 사랑을 들려주는 동화](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7/20250708-0e17604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