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이자연 칼럼]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돼?",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로스트 컬쳐 | 예스24
비효율적인 사랑과 우정. 로키는 왜 쪽지 던지기를 선택했을까.
글: 이자연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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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점 B 감지. 미지의 기체로부터 무언가 날아온다. 그것을 본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의 첫 마디. "메시지인가 봐. 아니면 폭탄이거나!" 바로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버린 뒤 로켓에 있지도 않은 "보호막 가동!"을 외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레이스의 판단은 폭탄 쪽으로 기운 듯하다. 그러나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 상태 그대로의 우주다. 무려 외계 생명체가 보낸 원통, 조금 더 낭만적인 말로 '비밀 쪽지'를 받았건만 왜 인간 그레이스는 하필 폭탄일 거라 상상했을까. 지구에 전파를 쏘는 데에만 11년이 걸리는 위치에서도 여전히 인류의 문명 안에서 실체를 구별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전쟁의 경험으로부터 귀결된 잠정적 판단. 과학자의 호기심이나 반가움보다, 인간의 두려움이 앞서는 이 장면에는 우리가 돌아봐야 할 오늘이 있다. 외계 미생물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열을 잡아먹기 시작한 어느 날, 사람들은 태양광이 줄어들어 빙하기가 도래할 것이란 운명을 발견한다. 이대로 가다간 30년 뒤엔 인류 1/4이 굶어 죽을 것이다. 이조차 모든 국가가 식량을 평등하게 나눌 때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극적인 생존 위기 앞에서 모든 국가는 공평하게 앓지 않는다. 따라서 근미래의 언젠가로 설정돼 있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사실은 너무나 오늘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늘'이란 어떤 모습인가. 정복욕에 눈을 가려 전쟁을 과시하는 트럼프의 시대. 지난 2월 말 미군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이란 남부에 위치한 여자 초등학교의 많은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골레스탄 궁전은 대규모 공습 이후 빛을 잃었다. 어린이의 삶과 인류의 문화 유산조차 트럼프의 욕망 앞에서 한낱 무용해질 뿐이다. 게다가 암묵적으로 회색 지대로 여겨졌던 병원 또한 공습 파편과 충격파로 파손되었고, 이란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주요 인프라를 습격하는 과정에서는 민간인이 희생되어야만 했다. 국가 간에 균열과 갈등은 민간을 향한 '직접적' 공격으로 전환되며, 비록 전란 중일지라도 그나마의 양심으로 지켜졌던 규칙들이 완전히 무너졌다. 윤리와 인의, 박애주의나 측은지심은 현실 속에서 무가치하고 비효율적인 것, 시대상과 맞지 않는 것이 되고 있었다. 유대감 상실의 시대. 오직 효율성과 경제성, 서열과 독고다이가 정답인 것처럼 선택받는 시대. 우리는 그 한가운데를 종횡 중이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로키는 왜 쪽지 던지기를 선택했을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외계인이 처음 시도한 교신 방법은 쪽지 던지기였다. 따지고 보면 로키가 그레이스에게 대화를 시도할 다른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일부러 안 받거나 받고도 모르쇠하면 끝인 송달이 아니라 더 직접적인 것들. 수신호를 보낸다든지 두서없이 바로 찾아간다든지. 우주에서 46년을 홀로 떠돌아다녔던 로키의 길고 외롭고 희망 없던 시간을 생각하면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오히려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다가왔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레이스 자체도 그의 등장에 경계부터 했고, 무엇보다 스트라트(산드라 휠러)가 그랬지 않았던가. 일단 찾아오고 보는 것. 다짜고자 데려가 버리는 것. 그리고 필요한 일을 당연하게 강요하는 것. 두 교신의 풍경은 기울어버린 시소처럼 극명히 다르다. 무엇보다 이 쪽지는 단순히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목적만 있던 게 아니다. 첫 번째 쪽지가 빠른 속도에 튕겨져 나가자 두 번째 쪽지는 느리게 보내졌다. 세 번째 쪽지는 선외활동을 힘겨워하는 그레이스를 위하여 무려 집 문 앞까지 직송해 버린다. 밖으로 나갈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넘어질 필요도 없게끔.  


기묘한 풍경은 복도에서도 이어진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처음 만날 때 그레이스는 불투명한 벽면 앞에서 유일하게 건너편이 보이는 빈틈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외계생명체와의 첫 조우라는 역사적 순간에 다다르지만 로키는 계속해 그에게 우주선으로 돌아가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레이스 눈앞에 펼쳐진 건 모든 게 훤히 드러나 보이는 투명한 유리벽. 시각적 정보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오직 인간만을 위한 구조물이다. 그러니까 '기묘한 풍경'이라는 거다. 로키에겐 유리벽이 필요 없다. 그는 빛이 아닌 소리로 물성을 파악하고, 기술을 이용해 접견지대를 만든 주인도 로키 자신이니 오로지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을 고수했어도 (조금의 불편이 있을지언정)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로키는 1차로 만든 복도를 철거하고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맞는 환경을 완성한다. 지극히 비효율적인 관심.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성취적이지 않은 것들을 일절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로키는 일면식 없는 이에게 기꺼이 많은 비용을 들인다. 물론 이야기 중후반에 자결 미션이라는 그레이스의 사정을 알게 된 로키가 아스트로파지 200만kg을 선물하지만, 그건 둘이 이미 많은 라포를 쌓은 뒤다. 그 자체만으로 감동적일 순 있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체가 누군지 모르는 상대의 특성을 일부러 파악하고, 그에 맞춰 많은 것을 양해해 주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레이스와는 180도 다른 태도. 이건 너무나 오래전 지구에서 소멸되어버린 온정 문화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한때 우리는 비효율을 사랑할 줄 알았다  


이 비효율적인 관심은 함께 사는 삶으로 극대화된다. 동그란 유리공에 들어간 귀여운 로키는 그레이스의 우주선에서 많은 것을 나눈다. 사생활 존중과 퍼스널 스페이스를 강조하는 그레이스와 달리 로키는 공 안에서 조금 더 불편하고 부자유스럽게 지내면서도 그레이스 곁을 떠나지 않는다. 로키 말마따나 빠르게 아스트로파지를 연구하는 게 동거의 목적이라면 로키 또한 요구할 수 있었다. 책임을 교대하자고. 이번엔 네가 공에 들어가 우리 우주선에서 지내자고. (인간사 구질구질하게 따라다닌 그놈의 '공평'한 '책임 분할'이다.) 하지만 선하고 사랑 많은 우리의 돌게는 그레이스의 먹는 모습이 역겹다고 조금 지적할 뿐, 그와 함께 토론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평화롭게 지낸다. 우주 재난과 평화. 나란히 병렬되기 어려운 두 단어가 로키를 만나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최종적으로 해결책을 발견했을 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다던 로키에게 그레이스는 "너희 집에 가보고 싶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선 집이 아닌 우주선이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가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로키가 46년간 혼자 버텨온 곳, 22명의 선원을 떠나보낸 바로 그곳. 로키의 집으로 '놀러 간다'. 만화 시리즈 <도라에몽>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진구에게 도라에몽 활용을 그 정도로밖에 못하냐며 우스개 비난을 던지곤 한다. 어쩌면 그레이스도 비슷하다. 지구상 어떠한 합금보다 강한 강도의 비활성기체 제논을 마음대로 생성해 내는 능력을 내버려두고, (심지어 과학자면서) 그레이스는 그의 집에 놀러 갈 것을 택한다. 이웃과 연결된 우리네 옛 풍경을 자극하며.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집 열쇠가 없으면 옆집에서 잠시 머물고, 윗집 아랫집의 친인척이 방문하면 또래 아이들과 함께 뒤엉켜 놀았다. 맞벌이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나를 키운 건 할머니가 아니라 4층 아주머니였다. 이웃 있는 삶. 연결된 복도. 경계 없이 너희 집에 놀러 가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 이제는 구전처럼 내려오는 것들이 한때 현실이고 보통날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것이었다.


연신 코미디가 쏟아지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웃음이 튀어나오면서도 더 깊은 단전에서 울음이 찰랑이는 이유는,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문화가 이 안에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다시 복구될 수 없는, 그러나 한편으로 그립고 애틋한 온정의 문화들. 비효율과 번거로움을 당연하게 용인해 주던 시절들. 로키가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이스는 유리공째로 불편하게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행위의 의미를 아는 로키는 온몸을 길게 늘려서 그레이스의 볼을 부빈다. 목 밑, 어깨, 배 훨씬 더 가까운 곳에 맞닿을 수도 있지만 불편할지언정 유리공 너머로 꼭 볼을 부빈다. 비효율적인 사랑과 우정. <프로젝트 헤일메리>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혼자 있고 싶다던 그레이스는 이제 에리드 행성에서 문을 열고 지낸다. 문을 닫으라고 한 마디 하는 건 도리어 로키다. 서로를 믿고 사랑하기에 가능한 장면 속에서 마지막 질문이 서서히 올라온다. 나는 어떤 비효율을 참고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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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

가족들이 일터로 떠난 빈집에서 텔레비전과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덧 대중문화 비평을 말하는 어른이 됐다. 페미니즘 미디어 비평서 <어제 그거 봤어?>를 썼고,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씨네21>의 영화 기자로 활동 중이다. 목동불주먹이자 <슬램덩크> 사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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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위어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입자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전기기술자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며, 여덟 살 때부터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다가, 열다섯 살 때 산디아 국립연구소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블리자드에서 ‘워크래프트 2’ 개발에 참여했고, AOL 등 몇몇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전전하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건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수년간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자신이 쓴 글을 포스팅해왔는데, 단편 [The Egg] 등도 인터넷상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유투브 동영상, 단막극 등으로 만들어졌다. 2009년 첫 장편 『마션』을 개인 블로그에 연재하다가, 2011년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자비로 전자책 출판을 했고, 2014년 크라운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고 정식 출간하였다. 『마션』은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2015년 개봉 즉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출간 당시 [퍼블리셔스 위클리], [라이브러리 저널] 등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굿리즈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오디 어워즈’에서 ‘최고의 과학소설상’을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74주 연속으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 다른 작품인 『아르테미스Artemis』 역시 발표 직후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작가가 ‘완전한 SF로 진입하는 엄청난 한 걸음’이라고 자평한 작품이며, 세계 최초로 30개국에서 동시 출간된다. MGM에서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영화가 개봉하여 또 한 번 앤디 위어의 우주 신드롬이 기대된다. 앤디 위어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