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계절을 보내고 이랑*과 다시 만났습니다. 가을과 겨울 동안 이랑은 새로운 책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프로모션으로 일본과 대만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봄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요. 이 책은 일본 출판사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만큼 한국에는 늦게 소개되었습니다. 게다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책은 한국에서는 출판되지 않을 뻔했다고도 하고요. 제목에서 쉽게 추측할 수 있듯 이 책은 이랑이 쓴 모녀서사, 가족 내 여성사입니다. 이랑 스스로 한국인 독자를 상정하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엄마와 약속했기”에 국내에는 이 내밀한 가족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랑은 이토록 “잘 만든 책”을 모국어 독자와 나눔으로써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 있는” 물꼬를 트고자 한국 출간을 결심했다고 밝힙니다.
엄마와 함께 글을 쓴 경험을 나누며 이랑은 “모든 엄마들은 미쳤고,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를 통과하며 가족 공동체로 살아남은 엄마, 여성인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는 깨달음을 던지면서요. 누군가는 이랑의 인생이 너무 힘든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랑은 “나는 살아 있어요” 하고 상대의 말문을 막아 세우고요. 죽기 살기로 이 책을 썼고, 노래와 이야기를 지으며 내일을 살아가겠다는 이랑의 인생은 겨울 지나 봄, 그렇게 계절을 돌고 돌아 다시 봄에 생동하는 찬란함일 것입니다.
*그를 ‘뮤지션’으로도, ‘작가’로도 부르는 것이 부족해 그의 이름 ‘이랑’으로 그를 지칭하는 것이 온전하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인터뷰] 이랑 “생존하는 게 직업이에요.” 참)
다시 만난 이랑이라는 세계
우리는 『기타를 작게 치면서』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에도 그러했지만, 이 책에서 다음 책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로 넘어오는 동안 쉴 틈 없이 일하셨을 것 같아요. 지난 5개월은 어떤 시간들이었나요?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다른 두 나라에서 먼저 나왔어요. 일본 오리지널 기획이었던 만큼 일본에서 지난해 9월에 나왔고, 곧이어 대만과도 출간 계약을 맺었는데요. 지난 2월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 맞춰 출간하려고 서둘렀어요. 각국을 오가며 행사도 많이 했고, 책도 열심히 팔았고요. 미친 듯이 뛰며 시간을 보냈어요.
해외 독자들의 반응은 어때요?
일본, 대만에서의 반응 모두 괜찮은 것 같아요. 저도 그들에게는 외국인이니까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좋다”라는 이야기가 다양하게 들려와요. 같은 아시아권이라서 그런지 장녀 서사에 크게 공감하는 것 같고요. 대만판 책 디자이너, 편집자분들이 ‘장녀병’이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읽으면서 많이 괴로워하시는 걸 보니 다들 비슷하구나 했어요.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의 오리지널 판본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요?
2021년부터니까 4년 정도 걸렸네요. 함께 책을 만든 분은 저와 오래 호흡을 맞춘 문학 편집자예요. 제 소설집 『오리 이름 정하기』 일본판 담당자셨죠. 이 책의 출발은 이분이 제게 청탁한 문예지 원고였어요. 주제가 ‘엄마’였고,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라는 글을 써서 보냈는데 그 글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해요. 그렇게 엄마, 여성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담는 책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됐고, 처음엔 일본에서만 출간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이야기장수와 이 책을 내기로 하신 건 어떤 연유에서였어요?
작년에 준이치가 돌아가신 직후에 SNS에 복잡한 마음에 대해 쓴 적이 있어요. 저는 사람 간병은 해본 적이 없고 동물 간병만 해봤는데, 이 둘의 가장 다른 점은 환자가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 같아요. 동물은 자기 상태에 대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얼마나 아픈지, 아파서 죽고 싶은지 보호자는 알 길이 없어요. 결국 환자에 대한 모든 결정은 보호자인 제 몫이 되는데, 그 기준을 정하는 일 앞에서 무척 혼란스러워지더라고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 애를 죽이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거든요. 그런데 이런 마음을 공개적으로 쓸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준이치가 돌아가신 후에 언젠가 이 얘기는 하고 싶었다는 뉘앙스로 글을 올렸어요. 그 글을 보고 이야기장수 이연실 대표님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아주 길고 곡진한 메일을 보내셨고, 이 책은 꼭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준이치 책을 만드는 일로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요. 참고로 이 책은 별도로 진행하고 있어요.
그럴 것 같았어요. 기다려지고요.
그때가 이제 막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일본판 원고를 완성한 직후였거든요. 그렇게 출간된 책은 1쇄만 5천부를 찍었고, 일본 독자들과 만나고 인터뷰도 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고 있는데, 막상 한국에는 소개가 안 된다니 아까운 거예요. 애초에 일본에만 내기로 정하고 쓴 것이지만 한국어로 쓰인 원고잖아요. 번역할 필요도 없는. 물론 이 책을 한국 사람들이 안 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짜 자유롭고 신나게 쓸 수 있었지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 책이 일본 오리지널 기획이다 보니, 저도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요. 일본 출판 문화와 우리나라의 출판 문화가 아주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일본은 책을 쓰기 전에 계약서를 쓰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원고를 만드는 과정 내내 편집자와 함께 이인삼각으로 달려요. 이 책의 경우도 4년 동안 한 달에 한 번꼴로 저희 두 사람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만들어낸 거예요. 당시엔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줌으로 두세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는데, 회의라는 느낌 없이 주로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어요. 아마 다른 편집자는 또 달랐겠지만 제 편집자는 그런 분이셨어요. 그렇게 만든 6~70% 정도의 원고로 출간 가능 여부에 대한 심사를 출판사 측으로 부터 받게 되었는데요. 이때 초판 인쇄 부수, 타겟 독자 이런 것들이 디테일하게 정해졌고, 그럼에도 계약서는 쓰지 않아서 놀랐어요. 비로소 원고가 완성되었을 때 출판사가 최종 검토를 하고 계약서를 건넸어요.
정말 우리랑은 정반대네요.
한국 문학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 선생님께서 이 문화를 비교하며 이야기하신 게 기억나더라고요. 일본의 경우 신인 작가가 편집자에게 휘둘리거나 괴롭힘을 당해 절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가 이해됐죠. 반대로 한국은 작가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부여돼 있다는 걸 문제점으로 지적하셨는데, 그 점도 무척 공감이 됐고요. 아무튼 저는 베테랑 문학 편집자와 책을 만드는 경험을 하면서, 긴밀하게 원고를 완성하는 과정을 거쳤고, 만듦새가 탁월한 책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배우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일본에서만 출간된다는 게 너무 아쉬운 거예요.
무엇보다 한국 가족사에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걸, 그 피해로 병든 구성원이 있고, 자식 세대인 우리가 정신병을 얻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쓰인 책을 아직은 못 본 것 같았고요. 아마 이런 비극 서사는 대부분 가정에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을 계기로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한국엔 출간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출간 계약서에 한국 출간 금지 사항이 명시돼 있었어요?
아니에요. 엄마랑 한 약속이었어요. 제가 마음을 바꿔 한국 출간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해왔던 건데, 누구에게 털어놔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기만 했거든요. 그러다 이번 기회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이연실 대표님께 털어놓게 된 거예요. “대표님. 일본에서만 내기로 한 원고가 있는데, 한번 읽어봐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건넸는데, 원고를 읽고 정말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이 책의 한국 출판사가 결정되었고요.

“내가 그렇게 미쳤었니?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미쳤어?”
사실 이랑은 다른 가족 이야기를 쓰고 있기도 했잖아요. 기억하는 독자들도, 그 때문에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을 거예요.
맞아요. 구독자가 많았으니 아시는 분들이 꽤 계실 거예요. 6년 전쯤 창작자 30명과 함께 친구의 치료비를 모으는 프로젝트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를 기획했고, 저는 여기에 선택 가족 에세이를 연재했어요. 이 에세이는 단행본으로 낼 계획이었지만, 친구들과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는 더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죠. 이 과정에서 우리 가족 에세이를 쓰겠다는 마음이 솟기도 했고요. 가족 내 여성 목소리를 담겠다는 포부도 있었어요. 엄마도, 언니도 글을 잘 쓰니까요.
선택 가족은 말 그대로 만들어진 가족이잖아요. 원가족을 향한 반작용의 결과이고요.
선택 가족이라는 말은 제가 지은 것인데, 우리 관계가 왜 망가졌는지 생각해보면 서로를 생각하는 무게가 달랐던 것 같아요. 가족보다 더 중요하게 느꼈던 우정이었는데 한순간에 없어져버렸어요.
반면 원가족은 어떻게 해도 깨지지 않는 거예요, 징글징글하게. 저는 집을 일찍 나와서 제 가족을 찾기 위해 커뮤니티 형태의 관계를 계속 이어왔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부서지는 경험도 반복해왔고요. 이 사실이 제겐 번번이 충격인 거예요. ‘왜 이들과는 끝내 이어지지 않지? 그런데 왜 가족들과는 이토록 끈끈하게 이어지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몰라요. 가족들을 안 보고 살고 싶어서 집을 나온 거잖아요? 그런데 꿈에 미친 듯이 나와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휴가를 가도 뭘 해도 외국에 있어도 안 잊혀져요.
그래서 결국 이런 책까지 쓰고 말이에요.
그러니까요.
하지만 이 책의 등장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어요. 리뷰도 정말 많잖아요. 다들 이 이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어요.
좋은 리뷰들도 정말 많고, 자기 이야기를 얹어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조금 혼란스러운 건 이런 건데요. 사실 어떤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면, 매끄럽게 가다듬잖아요. 대개 편집자라는 전문가의 손길로 매만져지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아니, 어떻게 이런 부모 밑에서 컸어?’ 하고 반응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를 엄청 비난하고요. 일본 독자 리뷰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이렇게 독과 같은 부모와 혈연을 끊지 않는 이랑 작가를 좋다고 봐야 하나?’ 이러니 이제 엄마, 아빠가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너무 욕먹고 있어서요?
네. 제가 그들을 욕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나쁘게 말하는 걸 들으니 그렇게 싫더라고요. 이게 대체 무슨 마음인지. 심지어 아빠 이야기는 거의 안 썼거든요. 너무 욕먹을까 봐요. 몇 안 되는 아빠 이야기도 엄마가 들어내자고 해서 빼기도 했고요. 비슷한 맥락의 반응으로 “이랑 씨 인생은 너무 빡세다. 나는 그렇게 못 산다”라는 리뷰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살아 있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받아치고 싶어져요. ‘나 살아 있는데, 어쩌라고!’
그런 태도가 이 책에 녹아 있죠. 완전히 무너진 이야기인데, 다 읽고 나면 누군가의 활활 타는 생명 에너지에 덴 느낌이고요.
그건 아마 제가 정말 살려고 이 책을 썼기 때문일 거예요. 책이 끝날 즈음에 느꼈어요. ‘나는 이 몸으로 살아 있고, 그게 다다.’ 일종의 깨달음인 건데요. 이 시기에 너무 하이퍼 상태가 돼서는 “나 이제 우울증이 없어졌어. 나 다 깨달았어” 하는 경솔한 말을 하기도 했답니다.(웃음)
저는 읽으면서 각 가정마다 어떤 최악의 역사가 있었을 테고, 이랑처럼 이런 기록으로 남겨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의 문제를 선명하게 보는 일이 지금 내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걸 아는 유익이 있겠더라고요.
엄마에게 처음 원고를 보여줬을 때, 놀랍게도 엄마는 엄마가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사건은 제겐 각인된 기억들인데 엄마는 여기에 대해 “내가 이렇게 미쳤었니”라고 할 뿐이었어요.
그 미친 이야기를 일본, 대만에서는 제목을 다르게 출간했어요.
일본판은 『소리 내어 부르고 말하면 된다』, 대만판은 『나는 여기까지 이렇게 걸어왔다』 정도로 번역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표지 컬러도 흰색, 빨간색, 검은색으로 다 다르고요. 같은 이야기지만, 각국의 독자를 생각하며 책의 어떤 부분을 제목으로 아울러 보여줄지 정했어요.
이랑은 이 책을 어떤 제목으로 떠올리나요?
딱히 어떤 제목으로 인지하지 않아요. 그냥 덩어리로 생각해요. ‘가족 책’이라고.
『기타를 작게 치면서』 인터뷰 때 사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잖아요. 그때 어머니의 원고 마감이 자꾸만 늦어지는 것에 대해 들려주었고요. 그땐 어머니의 글이 책에 실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록을 통해 따로 담았더라고요.
제가 이 이야기도 했던가요? 엄마가 결국 이 책 내지 말라고 했다는 거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네가 가족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쓰는 건 불완전하다. 네가 60대나 70대가 되어서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테니, 이건 내지 말”라면서요. 너무 열 받아서 엄마한테 전화로 소리 지르고 막 울면서 “나는 엄마의 허락을 구한 게 아니다. 나는 이 원고를 살기 위해서 썼고, 이 글을 쓰라고 한 사람들이 나를 살게 해줬고, 덕분에 내가 살아 있는 거다. 내가 이 시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엄마가 도와준 건 없다. 나로서는 최소한의 도리를 하려고 엄마에게 원고를 보여준 거다” 이렇게 말했더니 엄마는 “너는 왜 이렇게 미쳤니”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럼 나도 글을 좀 쓰게 해줘” 하시더라고요.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너의 시선으로만 그려지면 사람들은 그렇게만 볼 테니 엄마가 아는 가족 얘기도 넣어야겠다고요. 그때만 해도 저는 프롤로그, 에필로그 정도 분량의 글이겠거니 생각하고 승낙했어요. 출판사에는 “엄마가 글을 쓰시겠다고 하니 받아주세요. 기다려주세요” 하고 양해를 구했고요. 그런데 이 작업이 장장 7개월이 넘게 걸릴 줄은…

엄마의 손으로 남긴 우리의 역사
난 다 썼는데.
그러니까요. 이미 다 완성된 책이잖아요. 그런데 엄마의 그 7개월이 제가 책을 쓰는 4년의 시간과 똑 닮아버린 거예요. 쓰기로 하고 시작은 했지만 너무 괴로워서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몸이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그 우여곡절을 엄마가 겪으면서 글을 다 쓰고 난 후에는 제게 고맙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자기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보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해보니 굉장한 경험이었다면서요.
그랬을 것 같아요.
물론 과정은 진짜 힘들었어요.(웃음) 제가 엄마의 편집자가 된 셈이잖아요. 처음에는 한 달 정도 시간을 드렸던 것 같아요. 마감이 임박해서 연락하면 “나 못 썼어. 기다려” 했다가 “2주만 더 줘” 그랬다가 “조금만 더 주면 쓸 것 같은데” 이랬다가 “나 이것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겠고 몸이 아파 죽겠어” 이러고. 제가 막 어르고 달래다가 협박도 하면서 7개월이 걸린 건데, 완성된 원고를 받았잖아요? 읽는데 진짜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정말 미친 사람이 쓴 것 같았어요. 저는 저자 후기 같은 감상을 토대로 한 글을 쓸 줄 알았거든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놀랐던 건 일단 어머니 글은 특유의 문체가 돋보이고, 담담하게 상황을 기록하는 사관 같은 태도가 드러난다는 거였어요.
그렇죠? 진짜 역사책 썼어요. 그런데 내용은 너무 극적이어서 웃기고 희한하고요. 마지막에 이르면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우리의 병은 공동체의 병”이라면서 해탈한 듯 결론짓는 것도 신기하고요. 엄마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이 작업은 이 세상 모든 엄마가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엄마로서의 시간을 돌이켜보는 일이 유쾌하지도 않고 너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엄마에게는 유익한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엄마는 글을 쓰며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거든요. 엄마는 엄마의 딸이 죽었잖아요. 언니의 죽음에 대해 쓸 때 정말 오랫동안 멈춰 있었어요.
모녀 서사에 대한 관심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계속돼 왔습니다. 비로소 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요. 이랑도 이 자 장 속에서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고 생각하나요?
저도 어쨌든 트페미(트위터에서 페미니즘을 배운 페미니스트)로서 그 흐름에 따라 공부하고 생활을 바꾸기도 했으니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청탁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피하고 싶은 주제였으니까요.
우리는 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서로 글을 좀 나눴어요. 저는 제가 만든 책(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한 대목을, 이랑은 한국 미발표 단편소설(「태풍, 경희」)을 보내주셨죠.
엄마에 대한 단편소설이라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읽어주셔서 좋고요. 저도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좋았어요. 이런 분이 있었다니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이렇게 모성, 모녀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해 우리 문제를 선명히 알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더라고요. 엄마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엄마는 지금도 계속 상담받고 계시거든요. 자살 유가족 지원의 일환으로 받는 건데, 최근 상담에서 제 얘기를 하셨대요. 우리 집 둘째는 어릴 때부터 혼자서 다 하고 그래서 고맙다는 이야길요. 그랬더니 상담 선생님이 그건 고마운 게 아니라 미안해해야 하는 거라고 알려주셨대요.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충분히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해야 한다고요. 엄마가 그 얘길 듣고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 이런 변화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에게는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때문에 엄마, 아빠, 동생에게 변화가 생겼고, 저는 이런 책을 쓰게 됐고요. 만일 우리 가족에게 변화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면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우리가 그때로부터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너무 다행스러운 거예요. 사람들은 엄마, 아빠의 미숙함에 대해 분노하지만 저는 변화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도 알고 있어요. 이 책에 어떤 시기가 기록으로 갇혀 있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 흘러가는 거니까.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어떤 이야기는 맺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를 ‘미친년의 역사’라는 말로 이랑은 정의했어요. 저는 그 대목에 해방감을 느꼈어요. 내가 미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 얘기해야 해요.

해방자 미친년
합시다, 해방감 얘기.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제일 안 쓰려고 노력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미친년’이에요. 왜 그랬냐 하면, 저는 여성 창작자로 계속 살아왔잖아요. 주변에 너무 잘나고 재능 많은 여성 창작자가 넘쳐났는데, 어느 날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들을 보게 됐고 너무 무서워졌거든요. 그들이 사라지게 된 계기가 미친년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였어요. ‘저 여자 너무 잘하는데 미친년이야.’ 그러면 그 사람은 없어져요. 그걸 제가 학생 때부터 계속 봐온 거예요. 그래서 미친년 소리를 안 듣고 싶으니까 그동안 너무 애를 쓰며 산 거예요. 막 무릎을 치면서 미친년인 걸 숨기고.(웃음) 그렇게 저는 시스템 안에서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무엇보다 미친년이 되는 게 왜 무서웠는 줄 아세요?
왜요?
미친년이 되는 이유가 진짜 별것도 아니어서예요. 예를 들어 한 여성 감독이 영화 촬영장에서 한 시간 동안 안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잖아요? 그럼 그 사람은 미친년으로 낙인찍히고 다음 일을 얻지 못해요. 그런데 이보다 더한 일들로 소문난 남성들은 자리를 유지하죠. 제가 아무리 미친년이 아닌 걸 증명하고 누구보다 성실히 일을 해도 일이 들어올까 말까 한 과정에서 23년 정도 일을 했는데요. 이 책을 쓰면서는 ‘에라, 모르겠다. 나 미친년이다. 어쩌라고!’ 이렇게 됐어요.
지르고 나니 시원해요. 그렇죠?
시원하죠. 시원해요. 내가 미쳐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해방감에 짜릿해져요. 언젠가 제가 81세 남성과 2인전을 했는데, 오프닝에 모인 사람들이 죄 남성이고 모두 한마디씩 하려고 마이크를 안 내려놓는 거예요. 2인전인데 어떻게 저만 여자일 수 있는지, 그 무게가 너무 다른 걸 느끼며 제 스피치 순서까지 겨우 참았는데요. 마이크를 잡고는 “방금 보신 것처럼 아저씨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남아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하면서도 “저는 미친년이에요”라는 말을 못했어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제가 미친년이라고 털어놔서 속 시원해요. 엄마도 미쳤고 언니도 미쳤고 나도 미쳤고 내 친구들도 미쳤고, 우리는 다 미쳤다고 말해서 좋아요.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요?
없을 것 같아요. 신인 여성 뮤지션들이 제게 가끔 상담 요청을 하곤 해요. 그렇게 만난 이들은 “이랑님은 어떻게 지금까지 일하고 계세요?”라고 해요. 저는 “우리 신에는 여성 롤모델이 없잖아요. 제게도 롤모델이 없었는데, 저는 지금까지 계속해왔으니 롤모델을 자처하고 버티기로 한 거예요. 제가 없으면 여러분이 누구에게 이런 걸 물어보겠어요”라고 답하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창작자들이 있는 한편 “너무 무서워서 죽고 싶어요. 살기 싫어요”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들에게는 뭐라고 하세요?
뭐가 무서운지 같이 애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자고 해요. 그걸 같이 공유하고 우리가 무섭고 힘들어하는 것을 계속 나눌 수 있는 동료를 찾자고, 이 세상이 무섭다고 죽어버리면 당신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요. 저도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되는 하루당~’ 이런 애니메이션 같은 소릴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닐 거 아니에요. 머릿속에는 오늘 분량의 걱정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요. 별로 나아지지도 않을 삶을 생각하면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 있으니 좋잖아요. 그 덕분에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요.
미친년임을 고백하면서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모녀 서사 한 권을 완성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녀 서사는 왜 필요할까요?
제가 작품 할 때마다 ‘이거 왜 해야 하지?’ 생각하면 모르겠거든요. 이 작품의 가치도, 작품이 좋은지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의 반응들을 보니 적어도 이 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알 것 같아요. 우리는 대부분 동시대에 같은 사회에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로 여전히 전쟁 피해 역사를 겪고 있을 거예요. 저희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전쟁 피해 생존자’의 역사를 살고 있을 텐데요. 거기에 각자 가족이 짊어진 이야기들, 이를테면, 가족 구성원을 잃은 이야기, 살고 싶은데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를 돌보는 이야기 등이 보태지겠죠.
이 책은 이런 가족사를 지닌 분들께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저희 가족 이야기를 글로 정리함으로써 제 삶에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으려 한 것처럼, 다른 분들도 자기 이야기들을 꺼내 기록하기 위한 가이드로 이 책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제 이야기로 여러분 이야기의 물꼬가 터질 수 있다면 기쁘겠어요. 그걸 각자 나눠 읽으면 더 좋겠고요. 알아주고 기억해주는 일은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아는 모든 엄마는 미쳤거든요. 그 다양한 엄마들의 미친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요. 들려주세요. 그렇게 함께 살아 나가자고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작지만 선명한] 포도송이 같은 연결을 만드는, 포도밭출판사의 책](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11/20251126-463a0738.jpg)
![[요즘 독서 생활 탐구] 마티 조은, 책을 만들고 책을 실천하기](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11/20251105-eedb9302.jpg)
![[에디터의 장바구니]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여자에 관하여』 외](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8/20250807-a24e0ec8.jpg)
![[젊은 작가 특집] 예소연 “소설이 저를 자꾸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해요”](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6/20250617-e92deffa.jpg)
![[인터뷰] 성해나, 삶을 속단하지 않고 신중하게 보는 마음](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5/20250513-3aaa098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