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실패하려는 의지 | 예스24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서 시작해 류승완 감독을 거쳐 깨어! 살아!라고 외치는 신간 자기계발서를 지나 고 임재철 평론가에게 닿는 글.
글: 금정연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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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자서전, 아니 『자서전 비슷한 것』은 박찬욱 감독이 쓴 ‘추천사 비슷한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박찬욱은 동경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따님을 만나 들은 거장의 만년을 전한다.

 

만나러 오는 외국 감독들이 하도 많아—심지어는 무작정 담을 넘어온 자도 포함해서—식구들이 여간 시달린 게 아니었는데 정작 그분은 한 번도 귀찮아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약속이 잡히면 반드시 손님으로 올 감독의 영화들을 미리 다 챙겨보았고, 그걸 최소한의 예의로 여겼다고, 그래서 따님이 그 영화들을 공급하느라 무던히도 고생했노라고, 이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날더러 몇 년만 더 일찍 영화감독이 되어 자기 아버지를 만나러 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도 했다. 그래, 정말 그래… 얼마나 좋았겠나… 만남을 청했다면 내 작품을 찾아 보셨을 테니. (『자서전 비슷한 것』, 5쪽)

 

스트리밍이나 VOD는커녕 창고에 처박혀 있던 필름과 비디오 테이프를 수소문해야 했을 당시의 상황—일본의 사정은 좀 나았겠지만—을 생각하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예의’가 얼마나 지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가장 극진한 건 그것들을 공급하던 따님의 ‘효심’이었다고 해야겠지만.

 

다행히 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아니고, 한국적인 서평가조차 아니어서 무작정 벨을 누르는 손님들은 없지만, 내게도 나름의 직업 윤리 같은 것은 있다. 가능하다면 내가 써야 하는 작가의 전작을 읽을 것. 평론이나 인터뷰 같은 텍스트를 찾아보고, 직접적으로 관련 있거나 어쩐지 연결될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다른 책들을 함께 읽을 것. 만약 내가 마감에 늦는다면, 실제로 자주 늦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엔 다 적을 수 없는 다른 많은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고……

 

최근엔 류승완 감독에 대한 글을 써야 해서 『류승완의 본색』과 『류승완의 자세』를 읽었다. 그리고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다. 그가 감독한 14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옴니버스 <신촌좀비영화>에 실린 ‘유령’), 그리고 세 편의 뮤직비디오(드래곤플라이의 ‘사진’, 리쌍의 ‘발레리노’와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까지—러닝타임을 모두 합하면 1693분이 된다.

 

무슨 학술 논문이나 본격 평론을 쓰는 게 아니다. 내가 늘 쓰는 에세이다—정작 작품 내용은 슬쩍 훑고만 지나가는 스타일 때문에 어떤 독자들에게는 ‘정말 작품을 읽은/본 게 맞냐?’는 평을 듣기도 하는. 당연히 나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로서도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책비’(투입되는 책 대비 산출되는 글의 양)가 유달리 떨어지는 작가인 걸 어떡해.

 

그래서 내친 김에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를 봤다.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 류승완이 박찬욱의 두 번째 영화 <3인조>의 연출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동>을 봤는데, 류승완과 강혜정의 제작사 외유내강이 제작하고 류승완 영화에서 자주 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말 완벽한 논리 아닌가? 소름……

 

하지만 에세이는 논설문이 아니다. 아무리 완벽한 논리를 갖춰도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모든 글이 그렇긴 하지만…… 나는 그간 너무 영화만 봐서 작업을 시작할 때를 놓친 건 아닌가 하는 뒤늦은 자책과 함께 류승완이 자신의 책 어딘가에서 언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비슷한 것』을 펼쳤다. 글을 쓰려면 ‘영상’이 아니라 ‘글’을 읽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런 다음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찾아보지는 않고—당연하다,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다—대신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봤다. 도호 스튜디오에 속해 있던 젊은 구로사와가 열악한 제작 환경과 검열관에 맞서는 내용을 읽으며, 그보다는 조금 이후의 시대가 배경이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걸작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의 이야기인 <거미집>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 ‘자연스럽다’는 감각은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소설가 김중혁은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에서 <거미집>에 대해 “배우들의 코믹 연기도 훌륭하고, 상황과 상황이 맞물리면서 웃긴 요소들이 점점 배가되는 전개도 매력적이다. ‘이 영화 진짜 웃기다’라고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주 웃었고, 한참 동안 웃었다”라고 평했는데, 나 역시 백퍼센트 공감한다.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은 물론 류승완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서정시의 시대에 살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때론 ‘자연스럽다’는 감각을 무시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약간의 도약을 감행하기로 한다. 『김태훈의 편견』이나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에 실린 류승완의 인터뷰 등 다음 단계로 부드럽게 이어주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류승완의 새 책 『재미의 조건』을 소개하려는 것이다—실은 그게 원래 이 글의 (절반의) 목적이기도 하고……

 

2008년에 출간된 『류승완의 본색』은 류승완이 쓴 영화에 대한 짧은 글들과 몇 편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20대에서 30대 초반 류승완의 조금은 ‘치기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17년에 출간된 『류승완의 자세』는 영화 평론가 김영진이 여러 차례에 걸쳐 류승완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말하자면 장편 인터뷰?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베테랑’ 감독이 되어가며 달라진 생각과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소한의 편집만을 거친 탓에, 생생한 대화를 그대로 읽는 재미도 있다.

 

 

『재미의 조건』

류승완, 지승호 저 | 은행나무


2026년의 『재미의 조건』에서는 어느덧 50대의 ‘중견감독’이 된 류승완을 지승호가 인터뷰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조금 독특하다.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수록한 것도 아니고, 그걸 줄글로 정리한 것도 아니다—아니, 줄글이 맞긴 한데, 인터뷰 내용을 압축하고 편집해서 본질-관계-변화-생존이라는 4개의 장 아래 103개의 꼭지로 나눠 담았다. 적게는 2페이지에서 많아도 5페이지를 넘지 않는 각각의 꼭지는 페이지의 오른쪽을 다 채운 다음에야 줄을 바꾸는 일반적인 책과 달리 문장 하나가 끝나면—종종 문장이 끝나지 않았고 여백도 한참 남았는데—줄을 바꾸는 구성이다. 언뜻 보면 시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확실히 읽기는 편했다. 숏폼의 시대에 어울리는 기획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류승완의 영화를 처음부터 따라온 사람으로서, 더욱이 단기간에 그것을 다시 섭렵한 사람으로서, 현재 진행형의 생각과 고민들을 듣는 재미가 더욱 각별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대해서. 류승완은 급격하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스마트폰, OTT, 숏폼,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속에서 영화다운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넘치고, 심지어 읽기에도 편하다. 마치 개별 포장된 디저트처럼. 하지만 동일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책이라는 것이 이제 ‘굿즈’가 된 건 아닌지 자조하는 업계에서 일하며, 여전히 책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씁쓸한 그런 생각……

 

……에 길게 잠겨 있을 시간이 내게는 없고, 써야 할 글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류승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대신, “한국의 대표 기사 조훈현과 이창호가 치렀던 승부를 배경으로 한 실화 바탕의 바둑 영화”인 김형주 감독의 <승부>를 보았다. 『재미의 조건』에서 류승완이 유아인의 ‘조태오’를 회상하며 <승부>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래, 인정하자. 직업 윤리고 뭐고, 이 정도면 솔직히 병 아닌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비슷한 것』에는 어린 시절 수영을 배운 일화가 나온다. 물이 무서워 매일 참방참방 물장구치는 연습만 하던 그를 작은형이 보트에 태운 다음 강 중류에 밀어넣는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구로사와가 배에 가까이 오면 노를 저어 물러나고, 다시 오면 물러나기를 반복하던 형은 힘이 빠진 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하자 그제야 팬티를 잡아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키라, 이제 수영할 줄 아네.”

 

말하자면 강제 수영. 그건 분명 폭력적이지만, 때론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자료’를 찾아보는 것을 일종의 ‘강제 독서’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미루고 읽지 않았을 책들을, 일을 빌미로 읽어야 하는 상황에 나를 밀어넣는 것. 그러다 어느 순간 수면 위로 올라와 밀린 숨을 몰아쉬듯 글을 써내려가는 것.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작은 형이 아니고, 심지어 외동이고, 누구도 책의 강, 아니 책의 늪 속에 가라앉는 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올려주지 않는다.

 

그래서—이 마법의 접속사를 글쓰는 사람은 항상 사랑하고 두려워해야 하는데—나는 정신을 차리고 원고를 시작하는 대신, 정신을 차리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도러시아 브랜디의 『깨어! 살아!』를 읽었다.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할 거 아닌가?

 

나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딱히 편견이 있어서는 아니고—예전에는 조금 있었다—내게는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재미있고,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을 만나기도 하지만, 정작 자기를 계발하는 데는 아무 소용없었다. 말하자면 맛도 있고, 조금 각성되는 기분도 들지만, 다음 순간 오히려 더욱 피곤해지는 에너지 드링크 같달까. 내겐 이미 더욱 선호하는 음료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것은 강렬한 제목,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아무튼 멋진 표지, 그리고 도러시아 브랜디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내가 작법서 마니아라는 이야기는 지난 달에 이미 했다. 그리고 브랜디는 『작가 수업』이라는 훌륭한 작법서를 쓴 작가다. 글을 쓰는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책이라고 해야겠지만.

 

(여담이지만, 작법서를 본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드링크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자기계발서를 별로 읽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작법서는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다. 두 가지 대답이 있다. 수많은 작법서를 섭렵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작가는 모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평범하게 말하면—취향이라는 게 그래서 무섭다……)

 

『깨어! 살아!』

도러시아 브랜디 저/신한현 역 | 텍스트프레스


『깨어! 살아!』는 고전적인 자기계발서다. 성공하려는 의지만큼이나 강력한 ‘실패하려는 의지’가 인간 안에 있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우리는 실패하기 위해서도 에너지를 쓰며, 때로는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이나 열심히 실패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자료’의 늪에서 열심히 허우적대며 글을 쓰는 것을 최대한 미루는 것처럼.

 

‘왜 우리는 실패하는가?’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달고 있는 첫 장의 서두부터 마음을 울렸다. 그것이 작가로서 내가 글을 준비하는 과정, 나아가 내가 쓴 글들의 형식을 그대로 요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작가로 살아온 16년이라는 세월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의 삶에 매우 중요한 기회가 하나 주어져 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그 자리에 도착하기만 하면, 앞으로의 건강과 안정, 그리고 비교적 만족스러운 삶이 보장된다. 시간도 충분하고, 그곳에 가는 방법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집을 나선다. 그런데 막상 곧장 목적지로 향하기보다, 잠깐 다른 곳에 들렀다 가는 편이 더 마음이 끌린다고 느낀다. 큰 이유는 없다. 그저 지금 당장은 그쪽이 더 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향을 틀어 시간을 보내다 결국 약속의 시간을 놓친다.

 

이 이야기는 분명 어딘가 어리석게 들린다. 시간은 그에게 불리하지 않았고, 길을 몰랐던 것도 아니며,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도착하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비록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목적을 향해 서두르기보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쪽이 더 편안했다고, 그 과정에서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고.

 

우리는 그를 두고 기회를 잃은 일을 ‘잘 받아들였다’며 칭찬해야 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스스로 방향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설령 멍하니 다른 생각에 빠져 길을 지나쳤다 해도, 출발 전에 한 번만 확인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실수라고 말할 것이다. 동정은 할 수 있어도 판단의 책임까지 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의 삶과, 스스로에게 약속해 둔 가능성 앞에서는 우리는 이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한다. 우리는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을 두고도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같은 시간과 같은 힘을 쓰면서도, 도달할 수 있었던 자리에서 멀어진다. 실패란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에너지가 잘못된 쪽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신호다. 실패에도 에너지는 필요하다. (『깨어! 살아!』, 20~21쪽)

 

나는 글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유행어나 속어를 일부러 끼워넣어 분위기를 전환하는 수법을 종종 쓰곤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리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비통한 심정으로 이 말을 쓴다. 그야말로 뼈를 때린다, 라고. 정말이지 책을 읽는 내내 도수치료라도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깨어났다! 나는 살아 있다!

 

그래서 류승완 원고는 썼냐고? 아니, 대신 나는 내가 쓴 책이 모여 있는 책장을 훑는다. 내가 실은 오래전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들은 적이 있고 심지어 책에 쓴 적도 있다는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배와 영화』라는 제목을 가진 책에서, 내가 찾던 것을 발견한다. 그건 이런 내용이었다.

 

2016년 가을 나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열린 임재철의 6강짜리 강의 ‘스탠리 카벨의 세계’를 들었다. 어느 날의 강의에서 임재철은 이렇게 말했다. 도서관이 없다고 상상해야 한다. 자기 집 책장에 있는 책들을 가지고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할 필요가 있다. 고민하고 준비하고 모으고 계속해서 부족한 부분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끝이 없다.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하다(비평가들이 이 말을 할 때마다 500원씩 받았다면 나는 진작에 절필하고 햇빛 속에서 삶의 2막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담배와 영화』, 149쪽)

 

내게 그것을 일깨워준 임재철은 영화평론가이자 이모션북스의 대표다. 임재철은 지난 3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내게 아주 많은(대부분 내가 요청한 적 없는)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국제정치, 축구, 미국·프랑스·일본의 대학제도, 속류 사회학, 문학, 관계의 역학, 개인주의, 그리고 영화 조금. 그가 내게 가르쳐준 건 지식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게 내게 꼭 맞지만은 않았다고 해야겠지만. 문득 “뭘 또 맨날 이런 걸 쓰고 있어, 허 참”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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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ghingkw

2026.04.08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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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의 조건

<류승완>,<지승호>

출판사 | 은행나무

깨어! 살아!

<도러시아 브랜디> 저/<신한현> 역

출판사 | 텍스트프레스

류승완의 자세

<류승완>,<김영진> 공저

출판사 | 이와우

작가 수업

<도러시아 브랜디> 저/<강미경> 역

출판사 | 공존

담배와 영화

<금정연>

출판사 | 시간의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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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읽고 쓰는 사람. 『아무튼, 택시』, 『담배와 영화』,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한밤의 읽기』, 『모두 일요일이야』 등을 쓰고 『문학의 기쁨』,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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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충남 온양 출생의 류승완 감독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각종 필름 워크샵과 시네마테크를 전전하면서 영화를 독학했다. 감독, 각본, 배우, 무술감독까지 1인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그의 독특한 영화제작 스타일은 마치 주류영화가 판치는 제도권 안에서 반기를 들은 하나의 혁명으로 자리를 잡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극장을 출입, 5살때 처음 이소룡 영화와 7살때 성룡영화를 보고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한다. 스승 격인 박찬욱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열의를 키워 나간 류승완 감독은 1996년 첫번째 단편영화인 <변질헤드>를 연출하고, 이어 1997년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의 연출부로 활동을 했다. 1998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 <패싸움>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Lee>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입소문을 타고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알리게되었고, 2001년 <피도 눈물도 없이>의 연이은 흥행으로 "한국의 타란티노`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필모그래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주연배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감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각본 피도 눈물도 없이(2001)|감독 아라한-장풍대작전(2004)|감독 다섯 개의 시선(2005)|감독 주먹이 운다(2005)|감독 짝패(디지털상영)(2006)|주연배우 짝패+10분단편(2006)|주연배우 짝패(디지털상영)(2006)|감독 짝패+10분단편(2006)|감독 짝패(2006)|유석환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각본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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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러시아 브랜디

1892년 1월 12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프레더릭 톰슨과 앨리스 톰슨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앨리스 도러시아 앨든 톰슨(Alice Dorothea Alden Thompson)이다. 미시즈 스타레츠 여학교와 시카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루이스 공과대학(현재 일리노이 공과대학교)과 미시간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10년대에 신문사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서 기자로, 1920년대에 유명한 문예지 《아메리칸 머큐리(The American Mercury)》에서 발행 및 유통 관리자로 일했다. 1930년대에는 문예지 《북먼(Bookman)》(1934년 이후 《아메리칸 리뷰(American Review)》)에서 부편집장으로 일했으며, 이 시기에 작가 및 작가 지망생을 위한 전국적인 통신 교육 학교를 운영하며 순회 강연을 했다. 소설가, 비평가, 칼럼니스트, 논픽션 작가로도 폭넓게 활동했고, 1936년에는 《아메리칸 리뷰》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수어드 콜린스(Seward B. Collins, 1899~1952)와 결혼했다. 학창 시절에 우수한 대학생들의 모임인 파이베타카파회의 회원이었고, 감독교회 신도였으며 공화당원이었다. 1948년 12월 17일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인 심리 치유 에세이 『깨어나 네 삶을 펼쳐라(Wake Up and Live!)』(1936)는 대공황기에 절망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심어주면서 2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이듬해 1937년에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했다. “현대의 모든 글쓰기 지침서의 어머니”로 불리는 『작가 수업(Becoming A Writer)』(1934)은 작가 및 작가 지망생을 위한 필독서로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혀 왔으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글쓰기 교재로도 이용되고 있다. 다른 작품으로 『레비존 씨, 미국을 말하다(Mr. Lewisohn Interprets America)』(1933), 『가장 아름다운 여인(Most Beautiful Lady)』(1935), 『필리파에게 부치는 편지(Letters To Philippa)』(1937), 『나의 천하무적 아주머니(My Invincible Aunt)』(193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