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을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을까요? 장강명 작가의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을 읽고 나면 벽돌책을 엄연한 하나의 장르로 여기게 될 뿐 아니라 벽돌책만의 고유한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 책은 장강명 작가가 2016년부터 2026년까지 10년간 총 100권의 벽돌책을 소개한 칼럼을 바탕으로 한 책입니다. 벽돌책을 한 권 한 권 다룬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장바구니에 여러 권의 두터운 책을 담게 되는데, 무엇보다 벽돌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열망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런 것이죠. 각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벽돌책에 대한 사유를 담은 짧은 글이 등장하는데 「벽돌책을 읽은 사람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1장), 「어떤 생각들은 그에 걸맞은 분량을 요구한다」(3장)와 같은 글 제목에서부터 벽돌책 완독의 의미를 재고하게 합니다. 한편으로 누군가의 뇌를 가까이에서 세밀하고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다면 그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벽돌책을 통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복잡하고 방대한 사고체계 안팎을 한 걸음씩 직접 거닐기,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의 지도에도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새로운 길을 터보기, 지적인 근육과 체력을 기르기. 어쩌면 벽돌책은 무엇보다 시간과 경험의 장르가 아닐까 합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출간 후기를 들려주세요.
2016년에 한 일간지의 독서 칼럼 연재 제안을 받고 벽돌책이라는 아이템을 떠올려서 짧은 독후감을 쓰게 됐어요.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아서 거절했죠. 한동안은 100권까지 연재하고 나면 무료 전자책으로 만들어서 배포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한국 소설이 좋아서 1, 2』라는 서평집을 그렇게 무료 전자책으로 배포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그 연재를 사랑하게 됐고, 벽돌책을 읽는다는 게 뭘까 의미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얻은 답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믿게 됐고요. 그래서 벽돌책 독서에 관한 에세이들과 함께 독후감들을 단행본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난 10년간 100권의 벽돌책을 읽으며 생긴 관점이나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긴 글을 읽는 것, 두꺼운 책을 소화하는 것도 훈련이라서 제가 그 일을 더 잘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요약하면 내용이 왜곡되는 커다란 생각이 있다는 것, 어떤 그런 거대한 사상은 결론만큼이나 만들어진 과정이 중요하며 결론만 접해서는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런 과정은 얇은 책에는 담아지지 않더라고요. 꼭 책뿐 아니라 세상 많은 일들을 볼 때 결론이 아니라 과정은 어떤가, 어땠나를 생각하게도 됐고요. 정작 세상은 그사이에 과정보다 결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거 같습니다. 긴 글을 읽고 두꺼운 책을 소화하는 능력도 전반적으로 떨어진 것 같네요.
벽돌책을 짧은 분량의 리뷰에 담으며 특히 신경 쓰거나 주의하려고 하신 지점이 있을까요?
리뷰라기보다는 ‘이런 책이에요, 한번 읽어보세요’ 하고 가볍게 권하는 기분으로 썼어요. 가능하면 책 앞뒤 표지와 작가 소개, 목차에 없는 정보 위주로요. 그 물건을 홍보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제3자가 권하는 물건은 좀 더 관심이 가잖아요. 소설의 경우에는 도입부 이후 줄거리는 당연히 피했고, 마찬가지로 비소설의 경우에도 ‘이 책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하는 식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이렇게 다가왔다’ 하고 쓴 문장들은 꽤 있습니다.
한편으로 개인이 벽돌책을 읽기 힘든 쪽으로 점점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벽돌책을 읽기 위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런저런 사소한 요령들이야 몇 가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각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다른 도전들에 비하면 그리 벅찰 건 없어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가면 남은 페이지는 착실하게 줄어듭니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1분이 들고, 매일 30분씩 책을 읽는다면, 700쪽을 읽는 데 보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일상이 바쁜 분들은 매일 그런 시간을 내는 게 어렵겠지만, 달리기나 근력운동처럼 독서도 건강한 삶을 위해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00년 이후 나온 책 중 최고의 책을 꼽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부모와 다른 아이들』를 놓고 고민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두 책을 읽고 세상과 인간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으며 얻은 깨달음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에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얻은 게 가장 컸습니다. 저자가 여러 번 강조하지만 세상이 늘 발전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는 마냥 낙관하면 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분들이 그런 비판을 하시더군요.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타인의 삶과 고독,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 고통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발견이 놀라웠고,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되었습니다. 이 책이 그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고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두 책 모두 읽으며 한 개인이 혼자서 이런 대작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작가로서 큰 자극이 되었어요.
5장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감각」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 두꺼운 전기나 소설을 읽은 뒤 충분히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도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일과 사람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반대의 경우도 드물지 않죠. 가족이나 반추처럼요. 책과 실제 생은 왜 다를까요?
일인칭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삼인칭으로 떨어져서 보는 것의 차이가 가장 클 것 같고, 어쩔 수 없는 매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무리 위대한 책이라 하더라도 다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념은 현실과 다르고요. 현실을 비교적 잘 묘사하는 관념이 있고, 거기에 실패하는,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진 관념도 있죠.
얇은 책은 매끄러운 관념은 실을 수 있어도 실제 현실과 살아 있는 인간의 울퉁불퉁하고 탁한 측면들은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벽돌책은 얇은 책들보다는 더 큰 관념, 현실에 더 가까운 관념을 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책 쓰는 입장에서 저는 아무리 애써도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는 책은 없다는 가벼운 절망을 하고 있고, 동시에 책으로만 세상을 배우는 일은 위험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라서, 당사자를 인터뷰하고 쓴 소설과 관념으로만 쓴 소설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언젠가 벽돌책을 집필하신다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으신가요.
몇 년 전에 펴낸 소설 『재수사』가 200자 원고지로 3,200매 분량이었는데 400여 쪽짜리 책 두 권으로 분권해서 출간했어요. 한 권으로 냈다면 벽돌책이 됐을 거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몇 가지 주제를 되풀이하면서 소설과 비소설을 낼 것 같습니다. 당대 현실 혹은 바로 눈앞에 다가온 근미래의 위험, 사람들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 의미와 공허함 같은 테마들입니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면서 벽돌책도 쓰게 될 거 같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늘 아내에게 많이 의지합니다. 벽돌책 칼럼 연재를 시작한 2016년에는 이런 사진을 찍었네요. 베트남 하롱베이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거실에 책상을 놓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거실과 부엌은 추레하니 위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이번 책 출간 후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다음 마감을 빨리 해치우는 일입니다. 마감이 쌓여 있습니다.

저는 2016년부터 2026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사람의 내면이 알고리즘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여깁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과거에 내렸던 선택을 조사합니다. 우리와 닮은 사람들의 선택도 파악합니다. 그래서 알고리즘의 선택에 의존하는 사람은 다시금 과거와 비슷한 선택을,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점점 더 과거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집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립니다. 그에게서는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전에 없던 사건들이 닥치면 전에 없던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2016년부터 2026년까지 대통령이 두 사람이나 탄핵되었지만 한국 사회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알고리즘의 지배와 무관해 보이지 않네요.
그 10년 동안 저는 저 자신도 모르는 채로, 다정하고 빈틈없는 독재자인 알고리즘에게 반역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두께와 첫인상이라는 원시적인 기준으로 읽을 책을 고르면서요. 그러는 동안 벽돌책 칼럼 연재는 점점 더 즐거워지고 소중해졌습니다.
저는 제가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믿는데, 그런 믿음에는 벽돌책 독서의 지분이 큽니다. 관심 없었던 분야, 이름도 못 들어본 저자, 유행이 지난 논쟁 덕분에 제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의 가능성이 생겨나는걸 실감했습니다. 제가 벽돌책들을 읽으며 어떤 걸 느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그저 두께를 기준으로 고른 책들이 어떻게 그런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뒤에서 이야기할게요.
저는 벽돌책 연재를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어슬렁어슬렁 걷는 기분으로」, 10~11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출판사 | 글항아리
[무료배포] 한국 소설이 좋아서
출판사 | 책
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출판사 | 도서출판 그믐
재수사 1
출판사 | 은행나무
재수사 2
출판사 | 은행나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출판사 | 사이언스북스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출판사 | 열린책들
부모와 다른 아이들 2
출판사 | 열린책들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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