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히 이해를 바라며 시를 쓰던 시인은 시간이 흘러 온전한 이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같은 단어를 두고도 우리는 오해한다는 사실에, 그러므로 어떤 단어는 그저 나 혼자만의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시인은 몰두했지요. “시를 쓰는 동안에는 사전에 적힌 의미를 성실히 잊는다”(4쪽)는 이제야 시인은 『낭만 사전』이라는, ‘눈빛’, ‘회전목마’, ‘틈’, ‘밑줄’, ‘야광’, ‘안녕’ 등 익숙한 단어에 시인만의 정의를 새로 쓴 책을 그렇게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시인의 서랍에 차곡차곡 쌓인 시인만의 무수한 단어 가운데 읽는 이가 자신만의 정의를 써보고 싶어질 소박하고 보편적인 44개의 단어를 ‘낭만’이라는 우산 아래에 담았고요. 나 혼자만의 의미를 쓴 단어를 가지는 일이 홀로 살아갈 용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낭만 사전』이라는 울타리 안에 넣었습니다. “그저 나만의 이야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소란하며 고요한 봄밤에 시인의 이 생각을 따라 우리 각자가 가슴에 품을, 나만의 이야기를 하나의 단어에 넣어보면 어떨까요.
나만의 고유한 의미
산문집의 형식이 ‘사전’이에요. 단어의 겉면과 안면을 살피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면, 대단히 맞춤한 형식 같기도 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소박한 단어들에게 여러 생을 주고 싶어서”(5쪽) 뜻을 새로 썼다고 하셨거든요. 어떤 마음이었나요?
시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단어 같아요. 단어의 집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가 시죠. 그래서 단어의 숨겨진 의미에 항상 관심이 많았어요. 『낭만 사전』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오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요.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상대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엄마가 “미나리 캐러 가야겠다” 할 때 왜 눈물을 훔칠까, 생각하면요. 미나리가 한창 자랄 때는 할머니의 기일이 있기 때문인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이 이야기로 시를 쓴다면 ‘미나리’라는 단어의 여러 면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저는 오해라고 말해요. 사실 오해가 나쁜 뜻은 아니죠. 이해의 반대말도 아니고요. 오해하지 않는 게 이해한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시인으로서 단어 하나가 가진 여러 생을 오해하고, 이해하려고 모아왔던 것 같아요.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없음”(17쪽)을 아는 채로 쓰는 일에 관해 말하기도 하셨죠. 오해라는 것이 시인님의 중요한 주제 같기도 해요.
시를 쓸 때 서사를 많이 덜어내는 편이고, 그것과 관련이 있는데요. 서사를 덜어내려는 이유는 아무리 어떤 단어를 빌려와 쓴다 해도 온전히 닿지 못할 경우가 많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가령 ‘눈사람’이라는 단어로 얘기할 때 서사를 덜어내고 이 단어에 집중하면 사람들이 생각해 보지 못한 지점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요. 정확히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이 단어를, 이 시 한 줄을 빙 둘러앉아 얘기해 보자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해라면, 그 오해 안에서 최대한 이해해 보자는 생각인 걸까요?
그것조차 안 된다면 어느 단어가 모두에게 같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이해하자. 정리하자면 딱 그것이에요. 쓰는 내내 생각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어떤 단어에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나의 고유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 살아갈 용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저 나만의 이야기면 되지 않을까, 했던 건데요. 수많은 오해와 왜곡으로 대화가 오가고, 그것이 겹겹이 쌓이는 게 삶이라는 것이고요. 단어의 사전적 의미란 대화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약속일 뿐이니까요. 너의 얘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그렇다면 『낭만 사전』을 쓰는 일이 시인님에게 특별히 중요한 작업이기도 했겠어요. 44개의 단어를 고르고, 시인만의 정의를 다시 쓰면서 독자 역시 자신만의 의미를 찾길 바라는 말 건네기가 이 책이니까요.
그래서 편집자님께도 여기에 정말 저를 갈아 넣었다고(웃음) 말씀드렸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간 냈던 산문 중 가장 제 얘기가 많아요. 동시에 저의 얘기를 쓰면서도 단어의 정의는 보편적으로 하고 싶었고요. 가까운 동료들을 만나서 당분간 산문을 쓸 수 있을까, 하소연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이 울기도 했어요.

독자에 대한 경외감
단어는 어떻게 선택했나요? 고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쩌면 즐겁기도 했을까요?
너무 힘들었어요. 적어둔 단어가 300개는 됐을 거예요. 결국 고르는 기준은 독자였어요. 만약 저의 단어를 골랐다면 취향이 들어갔을 거고, 그 경우 제 얘기가 바탕이 되어야 독자에게 닿을 테니까 제외했어요. 가장 보편적인 단어를 담으려고 했죠. 보편적이라는 단어를 시에도 간간이 써 왔는데요. 굉장히 귀한 말 같아요. 보편적인 단어와 이야기일수록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동시에 그 단어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열 명이 생각할 단어보다는 스무 명이 겪었을 만한 단어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러나 결코 똑같은 사연을 가진 단어는 아닌, 자기만의 의미를 다시 쓸 수 있을 만한 단어로 결정했어요.
앞서 이번 책에 시인님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 겹이 덧씌워져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누구보다 독자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확해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너무 제가 쓴 정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걸 조절하는 게 가장 중요했죠. 제 얘기를 하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너무 깊이 해버리면 책에 쓰인 정의에 빠지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책을 두 권 쓴 느낌이라고 친한 소설가와 얘기 나누기도 했는데요. 일단 단어의 정의를 정리한 부분이 책 한 권을 쓴 느낌이에요. 제 시선으로 보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너무 저의 얘기면 안 되니까요. 끝까지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요.
처음의 생각과는 멀리 나간 단어도 있었나요? ‘눈빛’이라는 단어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눈빛은 첫 번째로 넣을까 생각했던 단어기도 해요. ‘시’를 첫 번째 단어로 결정한 이유는 제가 시인이고, 시를 쓰는 마음이 이렇다고 말씀드리기 위한 것이었고요. 그래서 눈빛이 두 번째 단어가 되었어요.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시가 「눈빛의 탄생」이라는 시예요. 카리나 님이 인용했던 시이기도 한데요. 눈빛은 저에게 시를 쓰는 총체적인 이유예요. 앞서 언어가 가진 오해와 한계를 얘기했잖아요. 그 가운데 유일하게 어떤 한 존재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눈빛 같거든요. 눈빛에는 ‘그럼에도 조금도 속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고요.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실어증을 겪은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고, 같이 병원을 다녔을 때도 그의 눈빛에는 진심과 같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맞아요. 처음에는 눈빛을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시선에 관해 얘기하려고 했는데요. 쓰다 보니 시를 쓰는 언어의 한계로까지 더 깊이 갔거든요. 시를 쓸 때, 이야기를 주고받고 글을 나눌 때 전해지지 못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 그런 것을 이 책을 쓰면서 더 깊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책’이라는 단어를 시인님은 “목적과 이유 없이 펼치면 욕망을 알게 되는”(88쪽) 산책이라고 설명했죠. 방금 말씀과 연결해서 얘기하면, 깊은 발견에 대한 시인님의 관심사가 엿보이기도 해요.
저는 독자에게 굉장한 빚을 지고 있어요. 책, 밑줄 같은 단어 모두 독자 분들을 보면서 생각한 이야기예요. 볼 때마다 이들은 왜 저렇게 책에 많은 것을 걸까,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 책이 뭐라고 저토록 찾아 헤매고, 저렇게 행복해하고, 밤새 읽는 것인지 생각해요. 그것이 출발점이었어요. 저는 시를 쓰는 시작점 역시 사람이에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방송 작가로 오래 생활하면서 해온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소설과 시도 좋지만 정말 절실하고 뜨겁게 느끼는 것은 문학 밖의 장면이었고요. 수많은 책을 읽었어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이야기나 감정은 대부분 취재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본 것이었어요. 나이 든 할머니의 이야기, 식당의 할아버지 이야기처럼 그들이 던져준 자기 얘기가 제 시의 씨가 됐던 것 같아요. 밑줄 챕터에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의 밑줄을 교환해보자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렇게 하면 밑줄에도 마음을 열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생각한 것들이 많이 담겼어요.
‘독자’라는 챕터가 따로 있을 정도로 독자에 대한 남다른 감사와 애정도 느꼈어요. 특별히 그 글에 환대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많은 독자분들이 그 부분을 캡처해서 메일을 주기도 하셨어요. 독자에게 드리는 선물이기도 했는데요. 실은 첫 시집이 굉장히 늦었어요. 십 년이 걸렸고, 다 저를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시집을 낸 뒤 받은 메일에 등단 당시의 소감을 기억하고 있다는 독자가 계셨어요. 그걸 보고 독자가 아니면 못 쓰겠구나, 생각했죠. 내 시를 이렇게 환대해주는 분이 계셨으니까요.
시인 김선우 선생님이 제 등대 같은 분인데요. 선생님께서 시인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로 하늘이 준 직업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시집을 십 년 걸려 낼 때도 괜찮을지 물으니까 시집이 늦든 문단 평이 어떻든 독자의 심장만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죠. 선생님이 올해 30주년이신데, 선생님이 실제로 그러시거든요. 그러니까 독자에 대한 경외감이 없는 시인이 과연 얼마나 시에 절실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거예요. 독자의 심장이란 말은 제 책상에 붙여 놓은 말이기도 해요.

나 혼자 살아가는 용기
왜 ‘낭만’인가도 생각하게 돼요. 책에 슬픔이 많이 느껴졌는데 그 일렁이는 감정들을 대하는 태도로써 낭만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낭만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마음을 들려주세요.
출판사에서 이 제목을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조금 부끄럽다고 했는데요. 낭만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니까 낭만이란 그냥 ‘사물을 다르게 보는 태도’인 거예요. 생각보다 굉장히 점잖고, 좋은 태도더라고요. 그렇게 선택이 됐어요. 생각해 보면 등단하고 활발히 문예지에 발표할 때 「낭만의 역할」이라는 시를 썼고요. 이후 「낭만의 역할 2」라는 제목의 시를 『일종의 마음』에 넣기도 했거든요. 그만큼 이유는 모르겠으나 희미하게 낭만에 대한 생각을 오래 했던 것 같아요. 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동안 생각했던 낭만이 완성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것은 시를 쓰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가능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낭만의 의미를 아셨으면 해서 SNS에 낭만의 사전적 의미를 적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슬픔을 점잖게 다시 보는 느낌을 주는 글이에요. 동시에 밤의 시간이 많이 느껴지는 글이기도 하고요.
일상어를 약속한 사전적 의미대로 쓰고 살아가는 시간이 낮이라면 의사소통이 필요 없는 나만의 시간, 낮에 들은 어떤 얘기의 다른 측면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밤이죠. 낮에는 물티슈 얘기를 하면서 이걸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소통이 필요하니까요. 그것을 내 사전에 쓰인 단어로만 살아도 되는 시간은 밤이에요. 그래서 『낭만 사전』을 나 혼자 살아가는 용기라고 한 것이었어요. 사전적 의미, 타인과의 사회적 소통을 위한 단어가 아닌 나만 생각하는 단어의 의미를 쓴 것이니까요. 밤은 내 사전에만 쓰인 단어로 마음껏 사는 시간인 것 같아요.
“우리가 쓴 문장이 아주 작을지라도 세상을 누비다가 어딘가 앉게 되는 날 작은 쓸모가 싹을 틔울 것”(57쪽)이라는 문장을 쓰셨는데요. 시의 필요를 간절하게 느끼는 순간들은 어떤 때인가요?
설명되지 않은 감정, 해석되지 않는 감정이 있죠. 인과관계가 없는데 나에게는 너무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이요. 그런데 이게 정확한 문장, 문법에 맞는 논리적인 문장으로 설명이 안 돼요. 그러니 시를 써서 어떻게든 해소하는데요. 그것을 ‘작은 씨앗’으로 설명한 이유는 당장 닿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소설과 다르잖아요. 소설 역시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지만, 누구 얘기가 어땠다든지 어떤 인물이 좋은지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시의 경우 같은 시를 좋아해도 막상 얘기하기가 곤란해요.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고요. 사실은 그러려고 시가 필요한 것이죠. 때문에 가끔은 시가 굉장히 주관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이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신기하게도 꼭 오거든요. 이게 이해가 될까, 이게 맞을까, 생각하면서 쓴 것이 언젠가 누군가와 만나요. 그러는 데까지 가는 속도가 다른 장르에 비해 굉장히 느리고 더뎌요. 싹을 틔우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만약 당장 닿는 마음이면 행복하겠지만 그만큼 쉽게 소비되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되고요. 결국 시가 정말 필요한 지점은 내가 숨겨두었지만 언젠가는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같아요. 그래서 시를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숨겨둘 수 있고, 그것이 마침내 닿는 순간을 목격하기 때문에요. 쓰지 않았을 때에 비해 썼을 때 나 자신도 굉장히 성장하고요.
‘틈’ 챕터가 떠오르네요. 틈을 만들고, 틈을 내주는 게 시인의 일이구나 싶어요.
진부한 비유지만 시에 있는 행과 연이 제게는 틈이에요. 지금은 많이 달리 쓰이고 있지만요. 최승자 시인님이나 기형도 시인님이 왜 그렇게 행연을 지켰을지 생각하면 행연이 주는 틈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넘어가지 말고 기다려봐, 잠시 숨 한 번 골라봐, 하는. 저는 그걸 믿고 싶어요. 제가 지키고 싶은 틈이죠. 이것이 저의 역할이라고도 생각해요. 젊은 시인님들과 선배 시인님들의 중간에서 앞서 지켜온 시의 형식과 서정을 내가 조금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럼에도 지금의 감각을 놓칠 수는 없으니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긴 해요.

만개 뒤를 생각하는
요즘 특별히 많이 생각하는, 혹은 아끼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점선. 곧 나올 시집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얼마 전에 조카와 접기를 했어요. 얼룩말 얼굴 같은 것을 숫자에 맞춰 점선대로 접으면 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삶의 어떤 골목 골목에 이것과 같은 점선 같은 게 있다면, 하고요. 조카가 접는 종이에는 숫자가 적혀 있으니까 1번을 접은 뒤에 2번을 접으면 돼요. 하지만 삶은 그 순서대로 절대 되지 않잖아요. 어느 때는 4번을 먼저 접어야 하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어요.
그게 어떻게 다음 시집으로 연결되는지도 궁금해지네요. 곧 출간 예정이죠?
『슬픔의 펼침면』이라는 제목으로 4월에 먼곳프레스에서 나올 예정이에요. 이번 시집은 접는 시간들에 대한 얘기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접어둔 것을 하나씩 펴는 얘기거든요. 우리가 싫어서 외면하는 것들을 다 접어두잖아요. 지나고 보니까 그것은 외면이 아니라 조금 늦은 초대였던 것 같더라고요. 접어둔다고 없어지지 않잖아요. 그런 것들을 썼어요.
한편으로는 『낭만 사전』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일부러 이 시집에 많이 썼어요. 그래서 시집에 등장하는 단어를 『낭만 사전』에서 찾아서 읽어보는 재미가 있으실 거예요. 근데 또 전혀 다른 내용으로 시를 썼거든요. 그러면서 한 단어도 여러 가지의 의미로 쓴다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어요.
궁금해지네요. 두 책을 짝으로 같이 읽어야겠어요.(웃음)
그래서 시도 많이 고쳤어요. 『낭만 사전』에 쓴 단어를 넣으려고요. 그렇게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책이 시집의 해설이 되면 안 되잖아요. 같은 단어라도 『낭만 사전』에 쓴 것과 시에 담은 의미가 완전 다른 이유고요. 제가 이렇게 한 단어를 가지고 여러 의미로 쓰는 걸 보여드리면서 독자 여러분도 그러실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산문집과 시집 작업을 비슷한 시기에 하셨는데요. 시를 쓸 때와 산문을 쓸 때 어떻게 마음이 다른가요?
굳이 설명하자면 산문은 제가 세상을 보는 시각 같고요. 시는 제가 저를 보는 시각 같아요. 어쨌든 산문은 장르 특성상 조금 더 세상과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야 하잖아요. 말을 건다는 건 시도 같겠지만 조금 더 이해되도록 쓰는 게 산문 같아요. 반면 시는 마음껏 오해할 수 있도록 쓰죠. 다시 이해와 오해예요.(웃음) 산문은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한다면 시는 차라리 더 오해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책의 마지막 문장이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계절이 어김없이 주는 기운과 기분을 오래 기록하고 싶다.”(274쪽)예요. 봄의 시절인데요. 이 시기에 어김없이 맞이하는 유사함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봄을 별로 안 좋아해요. 확 피어나는 게 무서워서요. 어릴 때 봤던 목련에 대한 충격적인 이미지 때문인데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엄마한테 떨어진 목련꽃이 얼굴 같다고 그랬대요. 꽃이 크잖아요. 그게 뚝뚝 떨어지는 게 무서웠나 봐요. 또 봄에 죽음이 많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봄을 힘들어하고, 체력이 안 좋아지는 때가 봄인데요. 봄이면 저는 늘 만개 뒤를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꽃이 다 떨어졌을 때를 기록하는 사람이 시인 같아요. 아마 만개의 반대에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다니지 않을까 해요. 만개했으니 지는 것이고, 지면 또 피잖아요. 주기거든요. 이렇듯 만개가 가진 다양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낭만 사전』의 의미이고, 시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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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사전
출판사 | 다산책방
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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