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클래식 음악의 아이콘들 | 예스24
클래식 음악계에도 오늘날의 BTS 못지않은 팬덤과 인기를 구사했던 '원조 아이돌'들이 존재했다.
글: 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2026.03.27
작게
크게

지난 3월 21일, 광화문 광장에서 BTS 컴백 기념 공연이 열렸다.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모습을 보며, BTS의 엄청난 인기와 팬덤을 다시금 실감함과 동시에 단순한 스타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팬덤과 대중적인 열광은 비단 현대 대중음악 시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오늘날의 BTS 못지않은 팬덤과 인기를 구사했던 '원조 아이돌'들이 존재했다.

 

가장 먼저 소개할 인물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파가니니의 신들린 듯한 화려한 기교와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에 사람들은 그가 악마와 계약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의 실력은 동시대 연주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고, 파가니니는 악보 없이 연주한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모든 곡을 암보하여 무대에 올랐다. 특히 파가니니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는 악명 높을 정도로 어려운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스피카토와 같은 활 튕김 기법, 왼손 피치카토 등 다양한 연주 기법을 선보였고, 연주 도중 일부러 현이 끊어지게 한 다음 남은 줄로 연주를 이어지는 쇼맨십까지 선보였다.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스틸컷

파가니니의 공연장 앞은 항상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가렛이 파가니니로 분했는데, 영화를 보면 파가니니가 자신이 작곡한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며 나타나자 여성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파가니니의 무대에 큰 충격과 영향을 받은 이가 바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다. 그는 파가니니의 무대에 매료되었고,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의 가능성을 확대시킨 것처럼 피아노도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리스트는 클래식 역사상 전무후무한 팬덤을 거느린 그야말로 '19세기의 슈퍼 아이돌'이 된다. 

 

리스트는 ‘아이돌’의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연주실력, 그리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무장한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유럽 전역의 팬들은 열광하다 못해 기절하기 일쑤였다. 리스트는 연주 중 피아노를 부수기도 했다. 팬들은 리스트의 초상화를 브로치로 만들어 달고 다녔고, 머리카락 한 올을 서로 얻기 위해 싸웠다. 연주를 하다 피아노 줄이 끊기면, 그것을 팔찌로 만들어 차고 다녔으며, 그가 마시다 버린 찻잎과 시가 꽁초를 주워 간직하는 등 당시 그를 향한 광적인 열기는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킬 정도였다. 리스토마니아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하인리히 하이너란 독일 작가였는데 당시 현상을 유럽 전역에 퍼진 전염병처럼 비유하기도 했다. 

 

리스트가 얼마나 뛰어난 연주자였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가 작곡한 음악들을 통해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헝가리 광시곡은 압도적인 테크닉과 표현력이 결합된 그의 대표작으로,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 곡을 계기로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파가니니와 리스트가 클래식계의 아이돌이었다면, 오페라의 왕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10)는 당시 이탈리아인들에게 민족의 영웅이자 시대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에르나니>같은 작품들은 민족주의적인 작품들로 당시 해석되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넘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연민과 공감, 강력한 드라마가 있었다. 그 점이 그를 단순한 작곡가가 아닌,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추앙받게 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베르디가 1901년 사망했을 때, 25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행진했고, 토스카니니의 지휘 아래 오페라 <나부코>의 합창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불렀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주며, 마치 오늘날 콘서트장의 '떼창'처럼 거리 곳곳에서 불리던 곡이었다. 

 

장례 행렬에서 외쳐진 ‘비바 베르디(Viva Verdi)’라는 구호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단순한 찬사가 아닌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지지하는 암호이기도 했는데, VERDI는 “Vittorio Emanuele Re D’Italia(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를 찬양하라)”의 약자로 이탈리아 통일의 염원을 담은 문구였다. 

 

시대와 장소, 그리고 장르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던 시대의 곳곳에는 언제나 예술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음악은 언제나 시대를 관통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추천도서]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클래식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클래식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