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저 | 안온북스
답을 찾기만 하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자가 됐다. 당연히, 그런 희망 없이는 시작되지도 지속되지도 않는 일이다. 오래 헤맨 끝에 비로소 인정했다.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답을 찾으려면 질문부터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일단 두 눈 부릅뜨고 보는 일부터 해야 했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떤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인지. 하지만 대개는, 답은커녕 똑바로 응시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의 대부분은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일들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 부모가 자녀에게 저지르는 짓들. 그런 일들 앞에서는 질문이 무용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질문은 필연적으로 고통의 형식이다. 외면할 수 없게 만들고 처참한 비극을 눈앞에 들이밀기 때문에. 그럼에도 계속 묻는 것이 하나의 윤리라면, 그 일을 자신의 몫으로 떠맡는 게 문학의 소임일 것이다. 정용준 장편소설 『너에게 묻는다』의 제목이 질문으로 이뤄진 것은 그런 이유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으로 온다.
질문을 앞서 받아 든 것은 주인공 유희진이다. 온갖 사건·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 ‘진실의 탐사’ 작가인 희진은 아동 학대 사건을 조명하는 방송을 만드는 중이다. 정작 희진은 자신이 만드는 방송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분노의 불길은 옆으로 번져 나가지 않고 사그라들 것”이라고 이미 체념한 상태다. 다만 희진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가해자는 선처 받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만나고 그들이 다시 가족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취재 도중 희진은 과거 아동 학대를 저질렀던 가해자 중 현재 실종 상태인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에게 락스를 먹인 아빠, 형제끼리 실명될 때까지 서로 때리게 만든 엄마, 그리고 토기장이에게 잘못 만든 질그릇을 깰 권리가 있듯 잘못 만들어진 자식은 부모에게 학대할 권리가 있다고 믿은, 미친 목사 아빠까지. 탄원서 몇 장으로 풀려났거나 모범수,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들의 행방이 묘연했다. 희진은 그들이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을 가능성에 대해 의심한다. 이윽고 학대 가해자 중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되고, 이제 상황은 명백해진다. 누군가 나쁜 엄마와 나쁜 아빠에게 대신 복수를 하고 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른다. 복수를 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는 왜 그런 일을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은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은가?
“가해자가 피해를 받으면 피해자가 되는 걸까? 가해자를 가해하는 것도 범죄일까? 하지만 어떤 범죄는, 어떤 가해는, 정당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사적 복수는 허용될 수 없다. 어쨌든 법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것이 법이라면? 법이 제대로 했어야 할 그 일을 법 대신 누군가 하고 있는 거라면? 그게 진짜 정의라면?” (115쪽)
소설은 희진이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가면서 맞닥뜨리는 질문을 마찬가지로 독자 앞에도 내어온다. 범인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 그에게는 사적 복수를 할만한 합당한 이유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이 다하지 못한 심판을 대신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가.
하지만 사건을 좇아갈수록 소설이 겨누고 있는 것이 단순히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종된 가해자와 범인을 찾는 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흘러가던 소설은 이윽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에서 방향을 튼다.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가해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소설이 진짜로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서 ‘학대 받은 소년과 소녀는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다. 누가 그들 곁에 남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사건이 끝나도 인물의 삶은 이어진다. 나쁜 사람은 갑자기 착해지지 않고 슬픈 마음은 이유 없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것은 나빠지고 나쁜 것은 더 나빠진다. 덮어버린 책 속에, 책꽂이에 비석처럼 나란히 선 각각의 이야기 속에, 우는 아이가 있다. 슬픈 아이가 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부정하는 아이가 있다.”(78쪽)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할 필요 없는 부모를 용서하려 애쓰는 아이들. 공포와 죄책감 가운데서도 사랑과 믿음을 애써 붙드는 아이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 “한순간도 안락을 누리지 못하”면서, “매 순간 죽음 곁을 배회”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모가 그들에게 남긴 고통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고 묻어두는 것으로 무마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겪은 역경과 성장을 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샅샅이 뒤지며 이유를 찾아 헤맨다. 어느 것도 완전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독자는 다만 그들이 고통과 함께 살아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소설의 질문은 최종적으로 가해자의 죽음과 복수가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과 삶에 가닿게 된다. 복수의 굴레를 끊어낸 자리에 삶을 이어 붙이면서. 그 일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윤리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며.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악수하고 포옹하는 손으로 때리고 밀어내는, 사람과 사랑의 세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살아내는지, 슬퍼도 웃는 아이와 기뻐도 우는 어른에게 묻고 싶었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혼잣말’ 혹은 그저 ‘긴 중얼거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자기 의심과 싸우면서도, 소설은 그렇게 질문의 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그 용기를 배우고 싶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아이가 멍들고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어야 이 부조리와 불합리가 사라질 수 있을까요”라는 소설의 질문을 거듭 거듭 읽었다. 그러면 마치 내가 저지른 응시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답은 여전히 찾을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질문만은 여기 남았다. 나는 그 질문들과 함께 여기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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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출판사 | 안온북스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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