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도시, 완벽한 질서… 왜 우리는 이 안에서 숨이 막히는가? | 예스24
노키즈존은 시작일 뿐… 완벽한 질서를 요구하는 사회에 ‘우리’가 설 곳은 없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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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매서운 주말, 한국과 일본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만나 교류하는 한일청년정신의학회 참석차 방한한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의 저자, 구마시로 도루를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다. 한국 방문이 두 번째라는 그는 과거 『로스트 제너레이션』 출간 당시 국내 언론사의 주목을 받은 이후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이날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등 한국의 주요 언론사와 순차적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신간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질서와 효율을 미덕으로 여겨온 현대 사회가 어떻게 ‘정상성’의 기준을 높이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을 점점 더 쉽게 배제하는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질서와 청결을 숭상하는 일본 사회에 커다란 화두를 던진 이 책은 출간 이후 서점인과 독자들이 뽑은 그해 최고의 인문서, ‘기노쿠니야 인문대상’(2021)을 수상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가 추구해온 ‘쾌적함’이 도대체 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구마시로 도루와 나눈 7가지 문답을 통해 그 서늘한 진실을 들여다본다.

 


쾌적한 사회’는 경제적·기술적 발전을 토대로 이룩한 이상향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우리가 추구해온 이 쾌적함이 오히려 우리를 옥죄고 병들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대 사회는 분명 과거보다 훨씬 쾌적합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전의 일본과 한국은 위생 관념이 부족했고, 거리에는 악취가 풍겼으며 폭력적인 사건도 빈번했죠. 그 시절과 비교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안전하고, 질서 정연하며 청결합니다.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 확률도 현저히 줄었고요.

하지만 그 ‘쾌적함’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위생적인 사회와 질서 있는 거리는, 그곳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위생적이고 냄새나지 않는, 질서에 적합한 흠 없는 존재’가 되기를 강요합니다. 사회의 진보가 환경을 쾌적하게 만든 것을 넘어, 이제는 우리가 그 환경에 걸맞은 결함 없는 인간이 되도록 몰아세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특정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서라도 있지 않는 한,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설령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더라도, 그 순간 사회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크게 제한되고 맙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보다는 사회학자의 시각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사회와 정신의료가 맺는 관계에 관심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 ‘등교 거부’를 했습니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죠. 그 계기로 사람의 마음과 사회 적응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정신의학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시대 사이의 연결 고리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다양한 세대와 직업군을 만나며 시야를 넓혀왔습니다. 

저자로서 저의 사명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떤 곳인가’를 묻고, 인류가 직면한 심리적 · 사회적 · 생물학적 과제를 학문 간 경계를 넘어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가능한 한 많은 대중과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질서를 잘 지키는 시민의식을 ‘K-질서’라 부르며 자부심을 갖기도 합니다. 일본 역시 청결과 질서라면 엄격한 나라인데요. 이것이 대체 왜 문제가 될까요?

적절한 질서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규범이 너무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라면 사소한 일탈로 넘길 법한 일조차 큰 문제로 비화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키즈존’입니다. 아이들의 소음을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닌 ‘불쾌한 잡음’으로 규정하고, 통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배제하는 것이죠. 아이들은 본래 질서를 내면화하지 못한 채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완벽한 행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저는 아이들에게조차 높은 수준의 질서를 요구하는 풍조가 저출산과도 직결된다고 봅니다. 완벽한 질서를 요구하는 사회와 통제 불능한 아이 사이에서, 양육자는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책 속에서 ‘공간이 사람의 정신을 움직인다’고 지적한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도쿄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보시는지요?

도쿄나 서울 같은 거대 도시는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틀에 집어넣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특정 습관과 규율을 주입받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복잡한 교통 체계나 공공장소의 동선 등은 우리가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들죠. 원활한 도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설계가 결과적으로 우리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정신병원 관리자들은 이러한 공간의 힘을 활용해 환자의 행동 개선을 유도하는 설계를 고민하기도 합니다. 치료가 목적인 병원 안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관리와 통제’의 원리가 거대 도시 전체, 나아가 우리가 매일 접속하는 디지털 공간에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SNS입니다. SNS의 구조(아키텍처)는 우리의 소통 방식을 은밀하게 조종합니다. 특정 행동(좋아요, 공유 등)을 유도하고 보상하는 SNS라는 설계된 공간 안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길들여지고 통제되는지는, 오늘날 전 세계적인 사회 현상을 통해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 도쿄, 타이베이, 방콕 등 동아시아 주요 대도시를 방문하고 눈여겨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들 대도시들은 합계특수출생률이 현저히 낮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왜 유독 동아시아 국가들의 출생률이 이렇게 저조한 걸까요?

저출생은 전 지구적 흐름이지만, 동아시아의 상황은 특히 심각합니다. 한국, 일본, 대만 등은 유례없이 급격한 근대화를 이룩하며 신자유주의 체제를 빠르게 흡수한 국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장만을 향해 전력 질주해온 이 방식은 단기간에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여유마저 성장의 재료로 소모해버렸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룩한 현대 사회의 구조 자체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서울, 도쿄와 같은 ‘극단적 일극 집중’ 현상은 집값 폭등을 야기하고 평범한 시민의 양육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이는 둥지를 틀 공간이 사라진 새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도시 집중화는 인간의 번식에는 치명적이지만, ‘자본의 증식’에는 매우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이제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현재의 사회계약 원리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논의는 앞으로 우리 동아시아인들이 공동체를 위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급속한 근대화를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상승 지향적 가치관’을 내면화했다고 하셨습니다. ‘상승 지향적 가치관’이란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상승 지향적 가치관’이란 경제적 · 사회적 성공을 끊임없이 갈망하며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고자 분투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똑같은 성공을 기대하며 압박하죠.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이런 열망이 사회 전체의 동력을 끌어올리는 엔진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장이 멈춘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자, 이 상승 지향은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강력한 브레이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회적 인습을 경멸하면서도 그와 모순되지 않게 생활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라는 책 속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멸하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떤 삶의 태도인가요?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완전히 등지고 살 수 있을까요? 상승 지향적 가치관을 완전히 버릴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항할 수는 있겠지만, 거대한 사회 구조는 결국 그런 개인을 도태시키고 말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개인으로서 이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회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해서 변합니다.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기준 역시 생각보다 불확실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통념과 습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대 사회의 양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되겠지요. 제도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맹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현대의 질서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그 반감을 품은 채 살아가도 되는 사회이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질서를 비판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더라도 괜찮은 사회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색을 멈추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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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