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왜 어떤 대화는 이토록 재미있을까. 그 까닭은 대부분 상대에게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힘, 대화의 깊이를 만드는 진중함, 대화의 세계를 넓히자고 손 내미는 다정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대와 대화의 기쁨을 나눈 날이면, 잠드는 그 순간까지도 어찌나 마음이 든든한지요. 이다혜 기자와의 대화를 상상하며, 멋대로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습니다. 그동안 그가 남겨온 대화의 흔적들이 단단한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상상은 분명한 현실이 되었고, 차마 글로는 다 담지 못할 대화의 순간들은 선물처럼 던져졌습니다. 이 경험은 어쩌면 영화적 체험과도 무척 닮아 있는 것이라는 걸, 이다혜 기자의 『영화의 언어』를 통해 깨닫습니다.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이다혜 기자는 수려한 말솜씨, 압도적으로 명료한 문장을 써내리는 우리 시대의 재능인입니다. 그만큼 그의 정체성도 다양하죠. 영화기자, 편집기자, 작가, 팟캐스터, 번역가…. 무엇보다 영화기자로서 그는 사반세기 동안 일했는데, 놀랍게도 그동안 단 한 권의 영화 책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나보다 잘 쓰는 분들이 많은데 굳이 내가 왜 쓰지?” 하는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첫 영화 에세이 『영화의 언어』를 쓰기까지 오래도록 망설인 마음과 쓰겠다는 결심 이후에도 글이 풀리지 않아 진통을 겪은 시간이 길었다고 고백하죠. 꾸밈없는 그의 말 속에는 그가 『영화의 언어』에서 전하고 싶었던 진심, ‘어떤 영화는 왜 좋은가’에 대한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질문의 방향성.’ 그는 “작품의 우열을 가르는 질문”이 아니라 “개별 작품이 가진 고유한 미덕을 찾는 질문”을 던지자고 제안합니다. 그것이 “영화를 재밌게 보는” 비결이라고 말하죠.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 그런 순간들이 계속 발견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알려준 대화의 즐거움을 찾는 비결을 써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언어』로 시작하는 영화 이야기
오래 기다렸습니다, 기자님. 새로운 단행본 소식이 없어 애가 탈 때쯤 돌아와주셨어요. 무엇보다 첫 영화 에세이 『영화의 언어』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책 서문에서부터 이 책의 신선도(!)가 느껴져요. 가장 최신작(〈시라트〉)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을 읽으며, ‘당장 이 영화가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갖게 됐고요. 꽤 최근까지 작업하셨을 이 책,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책을 쓴 기간은 4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원고 작업도 최근까지 계속했고, 출간 직전까지 손을 봤어요. 중간에 버린 원고도 많았죠. 단행본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식 중 하나가 명확한 선별 기준 없이 기존에 쓴 글을 모으는 것인데요. 대개 이런 책은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으는 경우가 많고, 그런 글들은 아무래도 그 시기를 반영하기 때문에 한 권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잘 안 들거든요. 들쭉날쭉하죠. 기본적으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책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써둔 글 중에서는 빼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심지어 새롭게 쓴 글 중에서도 톤이 안 맞아 제외해야 할 것들이 있었고요. 아깝긴 해도 한 권의 책으로 기능하게 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문제는 그만큼 새로 써야 하는 분량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었고요. 휴우.(웃음)
밀도 높은 책이 탄생하는 데엔 쓰는 이의 분투가 뒤따를 수밖에 없나 봅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일 테고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그건 개별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영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예요. 저는 영화 평론가보다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보는 편인 애호가에 가깝거든요. 그 입장에서 자주 하게 되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어떤 장면이 왜 좋은가’, ‘어떤 장면이 왜 이상한가’와 같은 물음을 던짐으로써 ‘영화를 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와 더불어 비행기에서 영화 보는 이야기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였고요. 이런 글은 어떤 영화를 언급하느냐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초고 상태로 오래 가지고 있다가 고쳐 쓰게 됐어요.
책 작업에 예상했던 시간과 공이 더 많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다만 지난 2월 『오래된 세계의 농담』이 출간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두 권의 책이 거의 동시에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랬어요. 『영화의 언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떻게 한 권에 담길 만한 이야기들로 채울 것인지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어떻게 써야 잘 읽히는 책이 될까 고심했고요. 어쩌면 영화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속도를 못 낸 것 아닌가 싶어요. 글이 너무 무거워지는 한편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로 빠지기도 했고요. 이렇게까지 글이 안 풀리나 싶을 정도로 글을 못 쓰는 시간이 길었는데, 밀리의서재에서 고전 읽기에 대한 글을 연재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거예요. 애초에 책으로 묶기로 한 기획이었고, 매주 한 편씩 글을 써야 했어요. 이 정도는 『영화의 언어』 작업과 병행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실제로 원고 밀어내기(!)가 가능해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고요.
병렬 쓰기 효과네요.
맞아요. 오히려 두 권을 같이 작업한 게 막혀 있던 걸 풀어내는 데 주효했어요. 결과적으로 두 권의 책이 같은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하는 느낌도 있었고요.
그래서 같이 읽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로 의외입니다. 첫 영화 에세이라니. 영화 잡지를 사반세기 동안 만드셨고, 단행본 작업도 많이 하셨는데, 영화 책이 이제야 나오다니요.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이번 저자 소개에 그 표현을 썼는데요. ‘사반세기.’ 이런 표현은 요즘엔 쓸 일이 거의 없는데, 제가 25년이나 이 일을 했더라고요. 그 김에 이런 표현을 써봤는데, 그러니까 제가 이 일을 오래 한 만큼 한국에서 영화 글 쓰는 사람 중에서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거든요. 회사 안팎의 글도, 비평도 수도 없이 읽었죠. 그런 게 저에게는 독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영화에 대해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질문 앞에서, ‘나보다 잘 쓰는 분들이 많은데 굳이 내가 왜 쓰지?’ 하는 생각에 쓸 마음을 접게 되었던 거예요. 저는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제 일을 통해 전문가들을 이미 많이 만나면서 그분들이 가진 깊이를 알게 되면서 따라갈 수 없다는 판단도 내렸거든요. 그러니 영화에 대한 책을 그동안 쓸 수도 없었고,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도 스트레스가 무척 컸어요.
기자님도 그런 걸 느끼신다고요.
항상, 당연히, 느끼죠. 그래서 이 책을 쓸 때 해결해야 했던 문제가, 내가 쓸 수 있는 것, 내가 잘 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어요. 그래야 이 책의 가치가 맺힐 텐데, 도통 어떻게 써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렇게 긴 시간을 헤맸어요.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완전히 빈손은 아니었어요. 늘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큰 주제들은 있었거든요. 이를테면 사운드에 대해 말하기, 영화를 어떻게 재미있게 볼 것인지에 대해 말하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물건을 중심으로 말하기 같은 것들. 지금 이렇게 책을 쓰게 된 결심의 단초인 셈이죠. 어떤 이야기는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영화 에세이를 차마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메타 인지 때문이라면, 한편으론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래도 많이 기다리셨을 거예요, 독자분들은요. ‘이다혜의 영화 이야기’를.
제 영화 글을 기다려주신 분들이 즐거워하실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담고 싶은 마음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만, 어떤 이름을 쉽게 취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떤 주제에 오래 이야기 한 이들을 전문가로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평론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다른 문제 같거든요.
그렇죠. 여기에 쓴 것도 그런 얘기인데요. 글쓰기나 영화 관련 강연 자리에 가면 ‘평론가처럼 쓰고 싶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평론은 평론 이론을 배워야 쓸 수 있다”라고 말해요. 단순히 평론풍의 단어를 쓴다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전문적으로 배우고 난 다음에야 비평의 언어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죠.
책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도 궁금해요.
이 제목으로 계약서를 썼어요. 계약할 당시에 출판사에서 송은혜 작가님의 『음악의 언어』라는 책을 냈는데, 문화예술 장르에 대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콘셉트가 유사하니 『영화의 언어』라는 가제를 제안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제목을 바꾸자는 이야기도 더불어 했는데, 편집자 선생님이 다 쓴 원고를 읽어보시더니 “『영화의 언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하시더라고요. 이 책이 결국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다루는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에 첫 제목을 그대로 따르게 되었죠.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을 밀고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았어요. 묵직한 이름이니까요.
묵직하죠. 사실 그래서 과장, 과대광고 같은 느낌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이런 제목을 붙이는 데 합의할 수 있었던 건, 쓰고자 한 것을 명확히 썼고, 담고자 한 것을 분명히 담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글 쓰는 사람마다 원하는 목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글을 잘 쓴다’는 것이 곧 문장 자체의 유려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저 역시 이것에 매진하지만요. 더 중요한 건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내 시선을 반영하고 있고, 내가 하려는 말을 정확하게 담고 있는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예요. 글을 묶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고요. 그런 책이 결국 잘 읽히는 책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어렵지 않게 슥 읽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책이에요. 이번 책의 목표도 거기에 있었어요.
『영화의 언어』를 통해, 기자님의 영화 목록을 엿보는 일 또한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속속들이 기자님의 취향이 담긴 영화 목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선별하기 어려우셨겠다 싶었고요.
맞아요. 꼭 쓰고 싶었는데 빠진 영화들이 있어요. 쓰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쓸 수 있는 데까지는 썼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개별 작품 자체를 설명하는 책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요. 이 영화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의 모든 면에서 이야기하는 게 가능한 영화가 최근에 나온 거예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인데, 완성도 측면에서 완벽한 육각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그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고요. 문제는 그 모든 면을 다 설명하려니 글이 느슨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한 가지 각을 세워 뾰족하게 쓰려고 했는데, 이 역시도 아쉬워서 끝내 책에는 싣지 않게 되었어요.
이런 영화가 많았을 것 같아요. 책에 빠진 영화 목록 중에서 정말 쓰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다면요.
루키노 비스콘티의 〈표범〉이요. 이 글은 채널예스에서 연재 중인 ‘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에 발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 안에 오래된 화두인 “이경미의 미친 여자들”이라는 주제예요. 예전에 했던 영화 수업에서 〈미쓰 홍당무〉에 대해 다룬 적이 있는데, 수강생 대부분 20대였고 이 영화를 굉장히 불편해했어요.
지금 세대의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영화에서 10대 종희가 성적 농담을 꽤 많이 하는데, 그런 장면들이 과하고 불필요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때 제가 했던 얘기가 있어요. “10대 남학생의 성욕을 이야기할 때는 성장과 유머라는 코드로 받아들이는데, 10대 여학생의 성욕이 등장하니 도덕적인 잣대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종희가 남학생이었다면 웃으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결국 “이경미의 미친 여자들”에 대해 쓰려면, 이처럼 복잡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다뤄야만 해요. 또 주인공 양미숙에 대한 이야기도 뺄 수 없어요. 그를 보는 사람들 대부분 “저 사람 너무 이상하다”고 반응하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극중 인물이 다 이상해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진짜 이상하죠.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비슷해요. 이상하다고 낙인찍는 표현들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것이죠. 이 영화는 ‘어떤 것이 정상인가’, ‘언제 수치심을 느끼는가’와 같은 이야기들까지 복합적으로 담아내요. 그렇다 보니 글을 길게 쓸 수밖에 없고요. 그런 이유로 이번 책에서는 못 썼고, 언젠가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책이 끝났으니 발을 뻗고 자야겠죠.(웃음)

‘왜 재미있는지를 말하는 사람’으로 살기
기자님께서는 그동안 “일하는 여자들아, 힘내!”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오시다가 이 두 권의 책으로 돌아오셨어요. 이 공백을 깨고 쓰신 책을 읽으면서는 글의 세계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습니다. 감히 평가할 수도 없지만, 한 사람의 세계가 몹시 정교해진 느낌이었어요. 깊어지고, 명징해지고, 순정해졌달까요. 작가로서의 또 다른 페이지가 시작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했습니다.
『오래된 세계의 농담』 출간 직후에 정혜윤 PD님께 문자가 왔어요. “다혜야, 이거 네가 쓴 거야? 문장이 달라졌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꼬치꼬치 여쭤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고…. (웃음) 실제로 그랬나 봐요. 좋아지고 나빠지고의 문제라기보다 완전히 달라졌다는 느낌이어서 저도 좀 신기해요. 글이라는 게 한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반영하기 마련이잖아요. 지난 4년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게 정말로 작용한 모양이에요. 쓰면서는 잘 몰랐는데, 그런 문자를 받고 나니 실감이 됐어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계신 만큼, 직업 정체성이 다양합니다. 기자님께서는 각기 다른 ‘일하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고, 또 어떻게 표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재미있는 게 왜 재미있는지를 말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무엇이 재미있는지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게 책에 대해서든, 영화에 대해서든 마찬가지고요. 저는 어떤 작품이든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주로 ‘어떤 작품이 재밌어?’라는 함정에 빠져요. 이 질문은 결국 우열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죠. 반대로 ‘왜 재밌어? 어떻게 재미있어?’ 하고 질문을 던지면, 각각의 작품이 가진 고유한 미덕을 이야기하게 돼요. 저는 그 방향이 저랑 잘 맞는 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저는 어떤 작품이 왜 재미있는지, 그 재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어요.
예전의 저도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했어요. 지금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히 알고 받아들이면서, 무엇을 전달해야 할지 훨씬 명확해졌어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골몰하면 생각이 커지고, 쓰기는 더 어려워지고, 그러면 글이 들쭉날쭉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주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기 마련인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니 지쳐버려요. 당장 써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 잡지를 만드는데 글 쓰는 자아를 점검할 시간이 어딨겠어요.
그래도 오래 일을 해선지 정리되는 시기에 이르게 된 것 같긴 해요.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을 쓰겠다는 결심과 함께 이 문제해결을 위해 꽤 긴 시간을 밀도 있게 쓴 것이 돌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기자님께서도 영화 요약 영상을 보시나요?
그럼요. 사람들이 왜 요약 영상을 보는지 관심이 있어서 더 찾아보죠. 이제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존재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요약 영상은 본편을 볼지를 결정하는 기능을 해요. 봤는데 재미있으면, 본편을 보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검증이 목적인 것이군요.
시간 낭비라는 실패를 겪고 싶지 않으니까요. 검증되지 않은 영화를 리스크로 받아들이는 거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해요. 이 책의 마지막 글 「영화에서 줄거리는 중요할까?: 영화 재밌게 보는 법」을 쓴 이유는, 줄거리로 요약되지 않는 부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눈여겨보자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줄거리는 대사로 전달된다’라는 생각을 깨고 싶었고요. 요약 영상을 보는 이들에게 ‘이왕이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환경으로 가보세요’ 하고 권유하고 싶기도 했어요. 극장에 가보라는 이야기인 것이죠. 그게 어렵다면 한 번쯤은 끊지 말고 한 호흡으로 보라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었고요. 감독이 정한 러닝타임을 그대로 견디며, 지루하게 여겨지는 부분을 지나오면 줄거리 외 다른 것들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 경험이 중요하거든요.
영화에 대해 미친 듯이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서로의 영화 목록을 견주면서 ‘이 사람 영화 좀 보는데?’ 하던 시대는 이미 가고 없어요. 그래서 이 세계가 재미를 잃은 것 같고요. 이런 때에 이런 책이 나와서 영화를 같이 보자고 손을 내밀어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어요.
영화는 코로나19 이후로 계속 위기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요. 그래서 저도, 회사도 고민이 많아요. 개봉작 자체가 너무 줄어드니까 영화 잡지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없어질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다만 영화의 위상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지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과도기인 것 같아요. 사실 영화라는 건 영화관에서 봐야 가장 좋은데, 요즘엔 영화관에 안 가잖아요. 당장 스마트폰으로 쇼츠든 요약 영상이든 보면 내용을 다 알게 되니까요. 그러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이 영화 언제 끝나지’, ‘왜 이렇게 전개가 느리지’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책을 쓰고 영화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낯설 때는 지루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재미있는 것들을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하는 일이 숙제인 거죠.
저는 책이나 영화가 경험과 시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살아보는 경험을 준다고 믿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두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조차도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보고 따라가면서 그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결국 남의 이야기잖아요. 심지어는 대체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고요. 남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경험, 그런 것들은 영화에 집중하는 경험,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이에요.
그런 관점으로 영화 보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 비우고, 덜어내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는 걸요.
그렇다고 해서 극장 관람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한글보다 스마트폰 사용을 먼저 배우는 세대에게 영화는 원래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영화 산업 자체도 자연히 변화하는 것일 테고요. 스마트폰으로 영화 감상 자체가 옮겨오면서 영화 문법도 많이 바뀌었어요. 어두운 장면을 찍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죠. 변화에 발맞춰 적응해 나가 야 하는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을 거예요.

영화를 보며 생각한 것들
「이제는 찍을 수 없는 영화들」과 같은 글을 읽으며, 현업에 오랫동안 종사한 영화 기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전설로 평가받았던 영화들을 지금의 시대정신으로 재평가하는 일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대목에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해당 작품을 추앙하던 시기엔 보지 못했던 문제들이었겠지요.
작품 내적으로 보면, 그런 작품들은 지금도 문제가 없어요. 그게 문제의 핵심이죠. 최근에 〈샤이닝〉이 아이맥스로 재개봉돼 다시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너무 잘 찍었죠. 그런데 그 결과의 이면에 굉장히 착취적인 과정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그런 영화들이 정말 많거든요. 과거에는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걸로 문제를 덮었던 것 같아요. 천재성 자체가 인간의 뾰족한 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천재의 기행을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의 광기 같은 게, 지금은 나오기 어려운 영화들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다 훌륭하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아는 게 중요해요. 좋은 영화 중 일부가 그런 우여곡절 많은 촬영 과정을 거쳤지만, 엉망진창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냥 엉망인 영화로 이어졌으니까요. 결국 여러 가지 면에서 세상의 진보는 있었고, 예술을 공동 창작하는 현장, 특히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현장은 더더욱 그렇고요. 액션 영화를 찍을 때 배우나 동물의 안전 문제 같은 것들도 그렇죠. 지금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고, 또 그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모든 걸 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다 파헤칠 수는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럼에도 해당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질문은 바꿔 말하면, 창작물과 창작자를 구분할 것이냐가 될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로만 폴란스키가 있죠. 그가 만든 너무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지만, 그 영화들과는 무관하게 그가 저지른 문제는 끔찍했고요. 누군가는 앞으로는 그의 영화에 대해 언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하고, 반대로는 이토록 훌륭한 영화는 따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죠.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각자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로만 폴란스키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요. 모르는 상태에서는 기준을 세울 수 없으니까요.
“충분히 알아야 한다.” 정말 필요한 이야기인데요.
그 이후의 선택은 각자 하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충분히 말해져야 하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하고요.
그럼에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좋은 영화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언어를 익히는 일이 어떤 기쁨을 주는지, 기자님께서 특별히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셔요.
이 책에 쓰지 않은 영화 중에서 저한테 중요한 작품이 하나 있어요.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예요. 스무 살 때쯤 본 영화인데, 처음으로 줄거리가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작품이에요. 그때로부터 쭉 어렴풋하게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 상태로 지내온 것 같아요. 그다음 단계, 그러니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고 넘어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일을 시작한 지 10년은 훌쩍 지났던 것 같거든요. 또 한 편 제게 중요한 영화가 있는데,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예요. 이 영화가 어떻게 러브 스토리가 되는지,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도 사랑 이야기가 성립하는 이유에 대해 늘 말하고 싶었어요. 이번에 쓰진 못했지만요.
그럼 『영화의 언어』 2탄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
2탄이야 언제든지 가능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끝났어요. 지금은 발을 뻗고 자야 합니다.(웃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만에 실컷 나눴습니다. 덕분에 영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하고 싶어졌고요. 끝으로 영화를 향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작품을 추천해주시는 것으로 인사를 건네주셔요.
그런 만병통치약 같은 영화는 없어요. 그런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웃음) 그런데 이 질문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는 있어요.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입니다. 일단 이 영화에서 좋았던 첫 번째는 박지훈 배우예요. 그가 처음 등장하는 신에서 ‘와, 이거 끝났다’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캐스팅과 연기라는 것은 일단 존재로 완성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에 설득이 돼야 해요. 단종 역할에 박지훈 배우 캐스팅은 그게 된 거죠. 두 번째는 이 영화를 여러 연령층이 각자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본다는 점이었어요. 젊은 세대는 박지훈 배우가 좋아서 보고, 그보다 더 어린 세대는 단종의 이야기에 빠져서 보고, 어르신 세대는 옛날이야기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보고요. 어떤 연령대가 가서 봐도 이 이야기에 자기를 쉽게 묶어놓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장벽이 높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영화는 너무나도 걸작이기에 경외심이 들어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잖아요. 이 영화는 극장까지 쉽게 발걸음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배우에게 홀리고 이야기에 취하게 되고요. 저는 이런 체험이 많아지는 일이 무척 반가워요. 이렇게 다시 극장으로 향하는 감각을 회복하다 보면, 어느새 영화를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는 것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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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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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