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작업실
문예진 작가의 작업실 – 『완벽보다 완결』 | 예스24
흔들리는 삶의 장면을 빼곡히 기록한 청춘의 일기장. 문예진 작가의 신간 에세이 『완벽보다 완결』 작업 이야기.
글: 이참슬
2026.03.19
작게
크게

누군가의 취향이 깃든 공간을 마주할 때면, 그 안에 쌓인 시간의 흔적까지 함께 느껴집니다. 독보적인 감성으로 브랜드 ‘Oth,(오티에이치콤마)’를 이끌어온 문예진 작가 역시, 그런 취향과 안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이라 말하던 순간, 그는 오히려 깊은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완벽보다 완결』은 그 시간을 지나며 써 내려간 솔직한 기록입니다. 잘하고 싶어서 멈춰 선 이들의 곁에서, 다시 나아갈 용기를 건네는 문예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꽃을 보면 '지금'이라는 짧은 순간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에게 '나중'이란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지금 이 순간에 피어 있는 것을 놓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156쪽)


 

『완벽보다 완결』 작업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찾았던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어요. 저는 책을 내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계약은 6년 전 이맘때쯤 했는데, 4년은 계약을 후회하고 도망만 다녔어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벽 앞에서 보냈던 원고들이 여러 차례 반려되는 상황이 오기도 했어요. ‘계약을 파기할 용기도 없으면 눈 딱 감고 한 번 써보자!’라고 한지 2년이 지났고,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되었네요. 도망을 치면 계속 회피만 하게 되지만 마주보기 시작하면 완결지을 수 있고, 그럼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 들어요. 6년 동안 편집장님에 대한 미안함의 짐을 내려놓게 되어 매우 후련합니다.

 

‘문예진 작가’를 말할 때 남다른 취향과 감도를 빼놓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은 의외로 “무색무취의 사람이었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해 불안과 콤플렉스처럼 내보이기 쉽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이런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애초에 저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게다가 실제로 저는 사람들이 동경할 만한 멋진 사람도 아닌걸요. 예전에는 인터뷰 섭외가 들어오면 ‘실제로 멋지지 않지만 멋진 나’를 보여주기 위해 꾸며서 답변을 하기도 했는데, 대답하면서도 말을 자주 잃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건 제가 아니니까. 그때부터 꾸밈없는 나를 드러내야겠다고 다짐했죠.

 

‘Oth,’라는 브랜드를 성공시킨 창업자이지만, 이 책에서는 ‘성공 이후의 흔들림’에 무게를 두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바다 수영을 하면서 문득 내 꿈은 직업, 지위, 명성이 아닌 어떤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210쪽)고도 했는데, 현재 작가님이 도달하고 싶은 순간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어느 한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플라밍고 무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나는 왜 하필 플라밍고에게 이렇게 집착할까, 깊게 고민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가 없더라고요. 아무 이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끌리는 대상에게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목표가 생긴 거예요. ‘나는 그 풍경을 만날 때까지 절대 죽지 말아야지’. 제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도 없이 그저 서로에게 스쳐 지나가는 배경에 불과할 그 순간을 마주하면 제가 어떤 마음이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궁금해요. 

 

이번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구성 또한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특히 작가님의 손 글씨 메모가 눈에 띄어요. 책 구절, 지인과의 대화, 편지 등 다양한 메모가 등장하는데요. 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메모를 하시나요?

몰스킨 1년짜리 다이어리를 분신처럼 늘 지니고 다니면서 기록하는 편인데, 노트가 없으면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좋았던 문장들, 문득 생각난 아이디어, 글감들이 휘발되지 않도록 카카오톡 개인 메시지로 간단하게 메모를 남겨두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짧은 메모를 길게 풀어 다이어리에 상세하게 기록해 둬요. 

 

글은 매일 쓰려고 노력하는데, 쓸 말이 없으면 책이나 영화, 강연을 찾아보며 이야기를 발췌하거나 저의 생각을 옮겨 적고는 합니다. 쓸 말이 없어도 매일 쓰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어설플지라도 완결 지은 기록들은 책이 되고, 제품이 되고, 브랜드가 되고, 제 분신이 되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책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벗이다.”(101쪽)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에세이를 펴내는 동안 자주 떠올린 책은 무엇인가요?

유독 기형도 시인의 시집에 많이 기댔어요.

 

한 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기형도 「10월」, 『입 속의 검은 잎』)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도 연약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는 사실을 복기하게 되더라고요. 『완벽보다 완결』을 쓰는 동안에도 비슷한 느낌을 여러 번 느꼈어요.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이해하고 완벽하게 정리한 뒤에 무언가를 끝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삶은 늘 미완의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인지 자주 이 책으로 도망치면서 다시 해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책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 벗이라는 말처럼, 기형도의 시 역시 제가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존재였습니다.

 

작가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완벽보다 완결’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헌사를 남기셨습니다.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삶은 완벽이 아니라 완결 지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고 해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생각보다 일단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상상해 보세요.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다 보니 사진이 많네요. 인도를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쓰기도 하고, 제주도의 한 공간(salt)에 창작자로 초대받아 한 달 동안 바다를 품에 안고 밤낮 없이 쓴 적도 있어요.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낮에는 매일 출근하는 작업실에서, 밤에는 집에서 조명 하나만 켜두고 쉼 없이 써 내려갔습니다. 준비물은 그동안 매일 써왔던 일기 여러 권과 노트북 한 대면 충분했습니다.


작업실

집 ⓒ문예진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_ ]

저는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을 통해 사랑과 헌신을 배웠어요. 돈과 명예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그 친구의 이름은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한 말티즈 도현으로, 특히 마지막 「5. 개화의 방」 파트에서는 암에 걸린 도현이를 제 품에 안고 매일 간병하면서 글을 썼던 기억이 있네요. 다른 글들은 아주 오래전 일기장에 묵혀두었다가 원고에 옮겼다면, 도현이의 이별 파트는 실시간으로 작성했던 글이라 저의 감정이 많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원고를 쓰며 매일 보던 풍경 ⓒ문예진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용기를 줬던 이들에게 용기 내어 연락하고 고마움을 표하면서 마음을 전하는 것.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저는 자주 다른 이들이 쓴 책 속으로 빠졌던 것 같아요. 영상을 편집할 때는 다른 영상을 찾아보고, 인테리어를 할 때는 다른 공간의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것처럼요.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만드는 동안에도 자꾸만 다른 책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이 막힐 때면 잠시 손을 멈추고 누군가가 써 내려간 문장들 속으로 들어가 보곤 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잠깐의 도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작은 숨 고르기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남의 문장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다시 무언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결국 다른 이들의 콘텐츠를 즐겨 본다는 건, 제 작업으로 돌아오기 위한 우회로였던 것 같아요.

 


단순한 마음으로 도전해야 실패도 하면서 굳은살이 만들어진다. 몸에 새겨진 경험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실력으로, 결과로 돌아온다. (38-39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User Avatar

Abraxas

2026.03.19

입. 입 속의 검은 잎.
답글 (1)
0
0
Writer Avatar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