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의문을 품을 때, 과거는 좋은 힌트를 제공한다 | 예스24
입분은 열두 살 소녀로, 일상과 비일상이 오가는 사건의 화자로 잘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한국문학에는 어린 화자의 눈으로 절묘한 효과를 이끌어낸,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좋은 선례가 있었지요. 추리소설의 관점으로 봐도 어린 나이의 화자가 보고 들은 걸 서술하는 게 재미있는 장치로 기능할 것 같았습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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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2024년 제18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무경의 신작 장편소설 『1939년 명성아파트』가 출간되었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활기 넘치는 소설들을 발표해온 무경이, 이번에는 경성의 한 독신자아파트를 무대로 새로운 역사미스터리를 선보인다.


『1939년 명성아파트』는 1939년 경성의 독신자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이 작품을 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쓰기 전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1930년대에 조선 여기저기에 생겨난 아파트라는 공간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벽에 쓰인 붉은 글자에 숨은 수수께끼를 떠올리고 그걸 소설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고아지만 씩씩한 아이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었고요.

하지만 앞서 말한 인물, 배경, 사건은 처음엔 뿔뿔이 흩어진 파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부산까지 내려오셔서 원고를 써주길 제안한 래빗홀 출판사분들과 무엇을 쓰면 좋을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세 가지 소재를 하나로 합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1939년 명성아파트』가 시작되었습니다.

 

『1939년 명성아파트』에는 ‘마님(최연자)’의 집에서 식모로 일하는 열두 살 ‘입분’이 화자로 등장합니다. 똑부러지고 눈치 빠른 입분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입분의 시각으로 아파트 입주민들과 사건을 바라보았기에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입분을 화자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입분이라는 인물은 처음에는 요릿집에서 일하는 아이로 떠올렸습니다. 거기서 구박도 받고 또래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평양 출신이라 박치기를 잘한다는 설정도 있었지요!) 친해지기도 하며 성장해나가는 소소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쓰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39년 명성아파트』의 주인공으로 바뀌면서 식모로서 독신자아파트에서 곁방살이를 하며 사람들과 사건들을 관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입분은 열두 살 소녀로, 일상과 비일상이 오가는 사건의 화자로 잘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한국문학에는 어린 화자의 눈으로 절묘한 효과를 이끌어낸,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좋은 선례가 있었지요. 추리소설의 관점으로 봐도 어린 나이의 화자가 보고 들은 걸 서술하는 게 재미있는 장치로 기능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입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여러 놀랍고도 독특한 효과를 쓸 수 있었습니다. 열두 살 화자의 시선이다 보니 단어 선정이나 특유의 관점 등을 계속 신경 쓰며 공을 더욱 들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척 즐겁고 배우는 게 많은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1939년 명성아파트』에는 연령과 직업이 천차만별인 입주민들이 소개됩니다. 마님과 입분을 비롯해 아파트 관리인 우에다, 광물을 연구하는 히로타 교수, 영화 대본을 쓰는 정 작가, 영화를 찍기 위해 아파트로 온 감독과 배우, 그리고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미우라 씨와 백화점 점원 이유진까지.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판이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이 중 작가님이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정 작가의 대사에 꽤 감정 이입해서 썼습니다! 작품을 쓰는 어려움을 놓고 투덜거리거나 돈을 밝히는 모습 등에서, 작가로 살아온 짧은 기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슬쩍 반영하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정 작가와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밝히겠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이유진이라는 인물에 정이 갑니다.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작가 스스로 계속 궁금해지는 인물이었거든요. 이런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입분과 이유진은 무척 사이좋게 오래오래 잘 지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의 인물들에는 저의 모습을 조금씩 집어넣고 뒤틀었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에 다 공감과 정을 주었습니다. 명성아파트의 일상을 그리는 지면이 더 주어졌다면 각각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한 편의 짧은 이야기를 꾸밀 만큼은 될 것 같네요.

 

작가님은 데뷔작인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전 2권)부터 장편소설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까지 그간 꾸준히 역사미스터리를 써오셨습니다. 신작 『1939년 명성아파트』 역시도 일제강점기 경성을 무대로 한 역사미스터리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역사미스터리의 매력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역사미스터리는 과거를 다루는 장르입니다. 역사 속의 특정한 시기, 특정한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쓰지요. 하지만 역사미스터리는 뜻밖에 현재성을 지녔기도 합니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쓰는 와중에도, 인물들의 생각과 언행은 지금의 어딘가에 갖다 놔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현재의 인물을 떠올리며 그 모습을 과거의 인물 속에 녹이기도 하고, 현재의 유행과 관심사를 과거의 실제 사례에 반영해보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지요. 역사미스터리 역시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양자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특수한 형식의 대화일 겁니다. 대중이 쉽게 흥미를 가지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진지하게 되짚는, 재미있고도 좋은 이야기인 셈이지요.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의문을 품을 때, 과거는 좋은 힌트를 제공합니다. 또한 과거의 여러 선택과 결과는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역사미스터리를 읽는 독자들 역시 단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아닌, 현재를 판단하는 좋은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1939년 명성아파트』는 당대의 생활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김해송의 노래 ‘청춘계급’도 그중 하나고요. 작품을 집필하시며 1939년 경성의 모습을 담기 위해 참고하신 콘텐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경성의 아파트』라는 책을 읽으며 아파트라는 공간을 일제강점기 배경의 추리소설에 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 최지혜 선생님이 쓴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와 『경성 주택 탐구생활』에서 작품 속 디테일에 여러 도움을 받았습니다. 작중 소품의 디테일 전반은 이 두 권의 책에 크게 의지했습니다. 그 외에 참고한 책과 논문을 언급하면 너무 길어지니 이 정도만 언급하지요.

작품을 쓸 때 특정한 음악의 느낌을 글로 녹여보려고 시도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김국찬과 귀재들의 〈스윙잉 경성〉 음반의 곡들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유행가 작곡가인 김해송의 곡을 스윙 재즈로 재해석했는데, 원곡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색채를 멋지게 덧발랐습니다. 이정표의 〈경성살롱〉과 박준면, 하림의 〈천변살롱〉 역시 당시의 느낌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된 음반입니다. 김해송의 유행가들 또한 들어보면 뜻밖에 지금의 우리 귀로도 무척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1939년 명성아파트』의 시작이 명성아파트의 도면으로 시작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명성아파트는 소설 속에서도 “2층부터 4층까지의 모든 집이 똑같이” 생겼다거나, “문이 두꺼워서 안에서 뭘 해도 바깥에는 소리가 잘 새어 나가지” 않는다고 묘사가 되는데요. 명성아파트가 독자분들에게 어떤 모습의 공간으로 다가가기를 바라셨을까요?

아파트라는 공간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느낌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곱씹으셨으면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아파트는 지금의 아파트와는 달리 주민들 사이의 교류도 빈번했고,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구조 또한 지금과는 무척 달랐지요. (당시 아파트 중에는 식모가 사는 방을 별도로 마련한 경우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이 익숙한 듯 낯선 공간이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비춰졌으면 했습니다.

또한 도면은 추리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장치이기도 하지요. 집필하던 당시, 저 스스로 아파트의 공간감을 명확히 확정 짓고자 그린 도면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도 명성아파트의 모습이 좀 더 명확히 그려지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원고에 살려보았습니다. 실제로 모델이 된 아파트는 없고 순수하게 창작한 공간이지만, 방 안의 구조나 집기 등은 당시의 사례를 반영해서 쓰도록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현재 2026년 5월에서 6월 사이 출간을 목표로 하는 원고의 집필 및 수정을 진행 중입니다. 제 전작들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입니다. 한국 추리소설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은 공간과 시기를 글에 온전히 녹이려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마담 흑조’ 시리즈도 다음 이야기를 준비 중입니다. 1929년 1월에 경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구상 중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입분과 마님의 뒷이야기도 다시금 풀어낼 기회가 오면 좋겠고요. 다음에는 경성이 아닌 다른 지역의 이야기가 되면 좋을까요?

독자 여러분, 『1939년 명성아파트』를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열두 살 입분의 시선에 맞추려고 평소보다 쉽게 쓰려 했습니다. 그런 만큼 『1939년 명성아파트』가 여러분께 좀 더 쉽게 다가가는, 재미있고도 좋은 이야기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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