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와 모호연의 반려인간 관찰일기
[이다X모호연 칼럼] 방귀는 트지 않은 사이 | 예스24
친구이자 동료이자 동거인인, 이다와 모호연이 함께 쓰고 그리는 반려인간 관찰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글: 모호연 사진: 이다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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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님을 밝혀둔다. 동거생활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라는 것을 알기에 매도 먼저 맞는 심정으로 용기를 낼 뿐이다. “똥, 방귀 이야기는 실패하는 법이 없지.” 이것은 이다가 20년 넘게 작가생활을 하며 얻은 인사이트이자 금과옥조이다. 똥보다는 방귀가 낫다고 생각해 이 주제를 권하였을 테지만, 슬프게도 나는 이미 ‘ㅂㅏㅇㄱㅜㅣ’라는 단어를 타이핑하는 것만으로도 은밀하게 수치심을 느낀다. 물론 우리는 서로가 방귀를 뀌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에게 “지금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라고 묻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처럼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만 그런가? 가끔 고민에 빠진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하는 일인데 왜 이리 질색하며 말하기 싫어할까?

 

글쓴이의 심적 균형을 위해 이제부터 일부 단어는 초성으로만 표기한다.


동거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이다에게 선언했다. “나는 화장실은 가지만 ㄸ을 누지는 않아. 내 소화기는 특이해서 ‘그런 것’을 만들거나 배출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100퍼센트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다는 ‘아, 대강 그런 컨셉이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같은 방에서 실수로 ㅂㄱ를 뀌었을 때(그럴 의도가 없었으므로 ‘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는 “오해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 소리 아니야. 의자가 삐걱인 거야.”라며 다급히 변명했다. “오해 안 했어. 너는 ㄸ도 안 누는 애잖아. ㅂㄱ를 뀔 리가 없지.” 이다는 수치심을 외면코자 불사하는 나의 ‘컨셉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다. 세상에 이런 룸메이트가 또 있을까?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그를 은인으로 여겼다. 다만, 한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내가 그렇다고 해서 네가 뀌는 것까지 싫다는 건 아니야. 너는 편하게 해도 돼.” 


그러니까 이 ‘설정’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걸로 하겠다는 말이었다. 나 때문에 동거인이 생리 현상에 불편을 겪으면 안 되니까. 나의 수치심과 ‘그것’에 대한 혐오감은 구분지어야 했다. 

 

이 아름다워 보이는 ‘수용’의 결과가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다는 ㅂㄱ를 뀔 때마다 미안해했고, 그만큼 부끄러워했다. 수치심은 전염되기 쉽다더니 정말 그랬다. ㅂㄱ라는 것은 장기에서 밀려나온 가스의 압력이 괄약근의 방어력을 뛰어넘을 때 바깥으로 분출되기 마련이고, 그것은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결코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나였다. ㅂㄱ에 대한 혐오감은 그것의 소리나 냄새보다는 남들 앞에서 자유롭게 ㅂㄱ를 뀌는 행위에 내포된 권위 의식, 혹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향한 것이다. ㅂㄱ 전문가가 아니라도 ‘어쩌다 나온 ㅂㄱ’와 ‘일부러 시원하게 힘을 주어서 뀐 ㅂㄱ’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ㅂㄱ를 뀌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괄약근의 방어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밀폐된 사무실에서 직장 상사에게 보고를 하는 중이라면, 나의 장 건강을 우선하여 우렁찬 소리와 함께 미사일 발사하듯 가스를 배출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실수였다고,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고 잔뜩 변명을 늘어놔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식사중에 엉덩이를 들고 시원하게 ㅂㄱ를 뀌는 것도 아무 사람 앞에서나 못 하는 일이다. 차라리 자신이 뀐 방귀를 주먹에 모아서 상대방의 코에 들이미는 장난은 귀엽다. ‘이렇게 해도 날 좋아할 거지?’라고 시험하려는, 지극히 친밀한 대상에게만 하는 애정 표현이기 때문이다.(물론 누군가 내게 이런 장난을 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ㅂㄱ 냄새로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 ㅂㄱ를 뀌면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이다가 미안해하는 태도를 보이면 안쓰러우면서도 내심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설정’과 달리 나는 외계인도 요정도 아니다. 평범하게 하루에 열 번, 스무 번쯤 대기 중으로 가스를 배출하는 인간종에 불과하다. 다만 들키지 않기 위해 비밀스러운 몇 가지 기술을 터득하고 타인이 없는 곳에서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우리가 더 친해지면 언젠가는 ㅂㄱ를 트지 않을까, 느슨하게 생각했다. 소리가 요란하다, 냄새가 지독하다, 서로 지적질도 하고 그럴 거라고. 정말로 그렇게 믿었건만.

 

수치심이란 그렇게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ㅂㄱ를 트기는커녕, 서로 모른 척하는 기술만 늘었다. 누군가의 ㅂㄱ 소리가 났을 때 갑자기 부스럭거리거나,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는 것처럼 다른 방으로 간다든가, 방법은 많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이다는 드라마나 음악의 볼륨을 올리고, 나 역시 그렇게 한다. 종종 이다는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다. 


“뭐든지 참으면 몸에 안 좋으니까 배탈 나면 꼭 얘기해, 알았지?” 


동거 1n년차, 우리는 서로의 장 건강을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선을 넘을 때도 있다. 나 같은 수치심 중독자는 놀려먹기가 쉽다.(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놀림당한다.) 가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ㄸ이나 ㅂㄱ 이야기가 나오면, 이다는 소스라치며 이렇게 말한다. “호연은 ㄸ 포비아가 있으니까 호연 앞에서 ㄸ 얘기 하지 말자.” 보통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본인이면서 말이다. 친구들은 “미안. 호연 ㄸ 이야기 싫어하지?”라면서 눈치 보는 척 대화의 흐름을 끊는다. 이것은 진심으로 미안한 게 아니라, 나 보라는 어그로인 것이다.

 

남의 토사물을 치우거나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고작 ㄸ이나 ㅂㄱ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보면, 나는 ㄸ이나 ㅂㄱ를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듯하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그러한 배설의 행위자로 상대방에게 인식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내가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도, 그로 인한 불쾌감도 오직 스스로만 알고 느끼고 싶다. 이러한 결벽증은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어딜 봐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지만, 누구 앞에서도 마지막 사회성의 가면을 벗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가 일상을 함께하는 룸메이트이자,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라도 말이다. 피차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채로 남겨두는 것이 어떠한가.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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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PLT

2026.03.09

저는 방구 때문에 결혼을 못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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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나무늘보

2026.03.04

새 책을 기다리는데 관찰일기로 만날수 있어 너무 반갑고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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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fsksqufdl

2026.03.03

넘 웃겨서 큭큭 거리면서 봤어요 ㅋㅋ
얼마전 지하철 개찰구 통과하는데 앞에가는 아저씨가 뿌웅~ 하면서 걸어가시는데..
그 소리가 너무 당당하고 커서 ㅋㅋㅋ 저 아저씨는 방구로 추진력을 얻어 걸어가시는 걸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답니다 ㅋㅋ
갑자기 생각났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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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연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다. 우산수리팀 ‘호우호우’ 소속으로 우산수리 마스터가 되기 위해 매주 우산을 고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반려공구』, 『반려 물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가 있다. 공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어 수리 문화를 확대하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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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포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 내내 쉬지 않고 다이어리를 썼다. 지은 책으로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어린이 탐구 생활』이 있으며, 『내 손으로, 치앙마이』,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100퍼센트 손으로 쓰고 그린 여행 노트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