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
[이다혜 칼럼] 이토록 가지런한 범속함 | 예스24
타인의 실패한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오인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좀먹는 이웃들의 상상 속 장면들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백미다.
글: 이다혜
2026.03.03
작게
크게

두 사람은 초대형 여객선에서 처음 만났다. 가난하지만 화가로서의 꿈을 펼치는 남자는 부유한 약혼자와 1등실에 승선한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두 사람은 마치 다른 방법은 없다는 듯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그 여객선이 빙하를 만나 좌초했다. 두 사람은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한 사람이 간신이 올라갈 크기의 나무판자에 여자를 올린 남자는 이별을 준비했다. 추위에 온몸이 떨리는 건 물론 이가 덜덜 부딪히는 두 사람의 얼굴은 밤바다가 반사하는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남자가 곡진하게 말을 이었다. 

 

꼭 하나, 부탁을 들어줘요. 살아남겠다고 약속해요. 포기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약속해요, 로즈. 약속을 포기하지 마요.”

 

영화 <타이타닉> 스틸컷


그렇다. 여자의 이름은 로즈, 남자의 이름은 잭,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8)이다. 이 장면을 처음 보던 때는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순간의 비장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과외를 가르치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야한 영화”를 봤다면서 속닥거리며 <타이타닉>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이상한데? 그 영화에는 야한 장면이 없어. 그러자 “이 선생님 어른이면서 뭣도 모르네”하는 표정으로 배에 실린 자동차 유리에 김이 서리는 장면을 설명했다. “야한 영화”라는 소문 때문에 설레는 기분으로 195분짜리 영화를 본 뒤 역시 “야한 영화”라는 결론을 낸 청소년의 호들갑을 들으며 나도 그땐 그랬지 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다시 봤다. 두 번째 보면서 놀란 사실은 배가 1시간이 훨씬 넘는 동안 가라앉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잭의 대사에 눈물이 쏟아졌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했기 때문이다. 

 

살아있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라. 끝까지 살아라. 천수를 누려라. 

 

장수하라는 말과 다르다. 지금 겪는 슬픔에 지지 말고, 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굴하지 말라는 부탁. 너의 미래를 온전히 누리라는 이 말은 심금을 울린다. 저 남자가 저기서 죽지 않았다면, 함께 구조되었다면, 그래서 마지막에 함께 은발 머리를 한 노년의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타이타닉호 조사팀을 만났다면. 

 

인생의 어려움은 이것이다. 그는 거기서 죽지 않았을 수 있고, 함께 구조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이 함께 노년을 맞았을지는 알 수 없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는 주연을 맡은 배우 케이트 윈슬렛의 남편이던(2003-2011) 샘 멘데스 감독이 연출하고,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로즈를 연기했듯 잭을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남편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타이타닉>이 두 사람의 이별에 후반부를 할애한다면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두 배우가 연기하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스틸컷

 

권태는 사랑의 기억을 혐오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다가 부부싸움 트라우마 올라온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과 살고 싶다는 바람은 얼마나 연약하게 바스러지는가.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5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첫장면은 끝까지 본 뒤 돌이켜보면 잔인한 농담처럼 느껴지는데, 프랑크가 에이프릴과 처음 만나는 달콤한 순간을 보여준 뒤 그들의 ‘현재’로 점프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매력적인,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휠러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은 교외 지역의 근사한 집에 살고,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있다. 통근 열차 시간에 맞춰진 삶은 단조롭지만 안정적이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앞마당의 잔디는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 반짝거린다. ‘밖에서’ 보는 부부는 그렇게나 그림 같지만, 두 사람의 실제 생활은 덜커덕거리는 중이다. 에이프릴은 배우가 되려던 꿈을 접고 살림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고, 어쩌다 아마추어 연극 무대에 서게 되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릴 정도로 모든 게 형편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프랭크는 사실 그런 데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에이프릴은 ‘진짜’ 배우도 아니지 않은가. 적당히 격려하고 좋은 분위기를 타 섹스를 시도하지만 에이프릴은 발작하듯 그에게서 벗어난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을 해 본다. 에이프릴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시기에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에이프릴은 파리에 가 본 적이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프랑스 전선에서 복무했던 경험이 있는 프랭크는 “파리에 한 번 데려갈게”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랬다. 그땐 다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지 않았나. 에이프릴은 과거 사진을 들추다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건 아닐까 결론 내린다. 이 남자는 ‘원래’ 꿈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여자는 그런 말을 들었다고 믿는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외도하고 귀가하는지도 모르고,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여자는 남편에게 다짜고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집으로 맞아들인다. 아내와 두 아이가 그의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미안하다는 수수께끼같은 말의 뜻도 곧 알게 된다. 에이프릴은 그간 저축한 돈으로 6개월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프랭크가 다시 가고 싶다고 살아보고 싶다고 했던 파리에 가자고 한다. 일은 자기가 할 테니 “당신은 7년 전에 못했던 일을 하는 거예요”라고. 참고로 에이프릴은 몰랐지만 프랭크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때 자기가 니코틴에 찌든,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사내로 사는 데 만족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느냐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참이었다. 니코틴에 찌든다고 장 폴 사르트르가 되겠냐고.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스틸컷

 

결혼이 문제라거나, 결혼하면 다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평범한 삶이다. 내 욕망이 다른 곳에 있다는 환상을 믿으며, 내 현실은 돈벌이를 위한 절충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 주변의 범속한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속삭이며, 다른 집을 흘끗거리고 비교하며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남이 부족한 것에 턱을 높이 쳐든다.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보여주는 중산층 가정은 ‘우리는 다르지’라는 생각에 기반한 좌절의 현장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프랭크는 사실 텅 빈 남자다. 그래서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성공을 두려워한다. 그것을 위장할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직업이랄 게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쓸모를 인정받는 한, 그래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한, 이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즐겁게 저항할 수 있다. 인생은 ‘다른 곳에’ 있지만 나는 이곳이(가정이든 회사든)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몸에 딱 맞기보다 다소 헐렁한(더 ‘큰’ 남자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슈트는 50년대의 산물이지만 어쩐지 프랭크라는 남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느껴진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진짜’라면? 나는 연극을 제법 능숙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연극이 아니라 그냥 나(의 삶) 그 자체라면?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구원 없는 비관주의를 보고 오싹함을 느꼈다면 소설을 읽기 전에 심호흡을 한번 하시길. 소설은 더하다. (칭찬임.) 리처드 예이츠의 1961년 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도무지 속도를 내기 어려운 소설인데, 책을 팔 때 곰 인형과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를 부록으로 끼워줘야 할 정도라는 논평이 합당하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에이프릴과 프랭크 부부는 정말 호감이 가지 않을뿐더러, 저런 이웃이 있다면 반드시 거리를 두고 싶을 정도로 속물이다. 그렇다면 이웃들은 더 ‘나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죄는 리처드 예이츠에게 있다. 책 읽기가 너무 무섭다...


 

예를 들어, 이웃 부부의 밤 풍경은 이렇다. 아내는 휠러 부부가 젠체한다고 생각하고는 투덜거린다.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살 일이지 사람들 거 참. 이 동네가 애들 키우기 얼마나 좋은데 그것도 모르고 저 사람들은, 쯧쯧. 아내는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남편은 박자를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고 혀도 찬다. “너무나 적절하게 맞아떨어져 그녀는 그가 그날 밤 마지막으로 보청기를 완전히 꺼 버렸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리처드 예이츠는 웃음기 하나 없이 이런 대목들을 써놓았다. (참고로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남자는 보청기를 끈다.) 리처드 예이츠는 정확한 기술을 하기 위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아주 매섭고 차가운데 인물들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고 써놓아서 읽는 사람마저 불행에 전염되게 만든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리처드 예이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인데, 모든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른 말과 생각을 한다. 프랭크는 자기애를 충족시켜 주었던 에이프릴의 말만 기억하고, 그 말들이 지속되든 아니든 관계없이 또 다른 여자를 만난다. 그는 상상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부풀리고 반복한다. 행동하지 않는다. 그냥 머뭇거리기만 한다. 에이프릴은 그가 꿈이 있음에도 가족을 위해 인내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를 단 몇 달간이라도 해방시켜주고 싶어 했지만, 그 모든 것은 에이프릴이 상상한 고통이었다. 프랭크는 그냥 머뭇거릴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해 보고 저런 생각도 해 보고 나면 어쩐지 다 실제로 행한 기분도 들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랭크는 전혀 솔직하지(frank) 않다. <타이타닉>에서 잭이 로즈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던 순간의 순수한 슬픔을 떠올리면,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거운 짐짝이 되는지에 오싹해진다. 소설 제목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인 이유는, 이 작품이 프랭크와 에이프릴 두 사람에 머무는 데서 나아가 그 길에 사는 여러 집 사람들의 속내를 두루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산다고 자평하면서 그 사실에 확신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과 다른 타인의 결정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기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이는지를 너무 오래 신경 쓰다 보니 가면이 자기 얼굴이 된 줄도 모르는 사람들. 

 

그는 복도를 벗어나 모퉁이를 돌고는 다시 다른 복도로 접어들어 걸어가다 남자 화장실을 발견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방광을 비웠다. 그 후 다시 복도로 나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매점을 찾았다. (중략) 하지만 그는 길을 잃어버렸다. 복도가 모두 똑같아 보였다.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가 봤지만, 거의 끝까지 다 가서야 자기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이 짓을 하고 있었노라고 기억할 것이었다. 여기가 어딘가 어리둥절해 보이는 멍청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두 잔을 들고서 거북이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것, 그것이 그가 하고 있던 짓이었다. 에이프릴 휠러가 죽었을 때.

 

타인의 실패한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오인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좀먹는 이웃들의 상상 속 장면들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백미다. 이 소설이 2005년에 <타임> 선정 ‘1923년 이후 명작 100선’에 포함된 것을 비롯해 충실한 옹호자들을 거느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판과 복간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반복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소설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에이프릴의 죽음 이후 프랭크는 진짜 원하던 것을 얻는다는 데 있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이 죽음을 불사하고 집에서 몰아내려 했던 그 안정성을 손에 넣는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레볼루셔너리 로드

<리처드 예이츠> 저/<이삼출> 역

출판사 | 민음사

Writer Avatar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Writer Avatar

리처드 예이츠

1992년 세상을 떠난 후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최근 들어 『타임』지가 선정한 영어권 100대 소설(2005년)에 꼽힌 것을 비롯하여 리처드 예이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다시 발행되었고 그의 생애를 다룬 전기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잔인할 정도로 비극적인 작품이라는 치우친 비판이나 폄하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리얼리즘과 작가적 냉정성을 재평가하는 비평들이 발표됨으로써 이제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 세계와 삶까지 폭넓게 재조명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더 이상 텍스트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주연,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부활절 퍼레이드』도 영화화 예정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리처드 예이츠가 1961년에 발표한 첫 작품으로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이 작품은 아름답고 정교하게 빚어낸 문장으로 작가에게 ‘작가들의 작가’라는 명성을 안겨 주었으나 정작 일반 독자들에게는 작품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그 외 리처드 예이츠의 다른 작품들로는 『특별한 섭리』『평화의 교란』『부활절 퍼레이드』『좋은 학교』『청춘의 마음이 울고 있다』『차가운 봄날의 항구』 등의 장편소설과 『열한 가지 외로움』『거짓말쟁이 연인들』 등의 단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