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중에 같이 한 번 울어요. 우리 같이 운 적 없잖아요 | 예스24
남의 슬픔 앞에서 멈춰서 눈물 흘리고, 태연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 같은 건 이젠 좀 촌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 이런 시대에, ‘그런’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할까? 『말뚝들』에 따르면, 그렇다.
글: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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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김홍 저 | 한겨레출판

 

나는 늘 그런 이야기가 좋다. 우리가 태초에 선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타인을 이해하고 선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 주인공이 평범하다 못해 좀 시시하고 하다못해 덜떨어진 인물일수록 좋다. 거듭나는 과정이 험난할수록 지지한다. 그럴수록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어떤 희망 비슷한 게 생기는 것 같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각광받기엔, 여기는 ‘조금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하는 게 시대정신인 곳 아닌가? 남의 슬픔 앞에서 멈춰서 눈물 흘리고, 태연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 같은 건 이젠 좀 촌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 이런 시대에, ‘그런’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할까? 김홍 소설 『말뚝들』에 따르면, 그렇다. 이 소설은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 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문장을 우리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280쪽)

 

*

 

『말뚝들』의 축은 크게 두 개다. 첫째는 ‘장’이라는 남자에게 닥친 불행. 오래 사귄 애인과 파혼하고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하는, “자기 삶에 불만족하는 평범한” 사람인 장은 어느 날 출근길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납치를 당한다. 손발이 묶여 자기 차 트렁크에 갇힌 채 어디론가 향하는데, 정작 도착한 곳에 납치범들은 온데간데없다. 장은 납치범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지도, 더 큰 위험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장이 겪은 고초란 바지에 똥을 지렸고 24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돼 출근을 못 했다는 것. 장은 스스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온 뒤 샤워를 하고,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 납치를 당했다고 신고한다. 왜 납치당한 곳에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는 경찰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는 시민성의 발휘는 오히려 장의 불행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장을 둘러싼 세계의 균열은 먼 곳에서부터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해변으로 떠내려온 말뚝들. 이야기의 두 번째 축이다. 소설에서 ‘말뚝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죽은 자들이 바다에 나가 거꾸로 박혀 있다는 전설로 전해지는 것들. 공기는 물론 해수와도 접촉한 적이 없어 피부가 일체의 부패 없이 미라가 된 상태. 목 아래로는 사람의 몸이면서 동시에 두꺼운 통나무처럼도 보이고 목질화된 몸통과 팔다리에는 해조류와 패류가 붙어 있는, 한때 ‘인간이었던’ 어떤 ‘것들’. 

 

이 말뚝들이 어느날 서해안 해변에 하나둘 밀려들더니 심지어 도심 곳곳에 출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뚝을 마주친 사람들은 최루탄이라도 맞은 듯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줄줄 흘린다. 이 기이한 사건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흰 방호복을 입은 이들이 도심에 나타난 말뚝들을 수거해가지만 말뚝들은 계속해서 광화문 광장에, 회사 1층 로비에, 그리고 거실 한복판에 다시 나타난다. 마치 남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뚝들은 한 곳에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오는 형국이었다. 바다에서 해변으로, 해변에서 도심으로, 도심에서 당신들 앞으로.” (168쪽)

 

장과 말뚝, 무관한 것처럼 보이던 두 세계는 장의 집을 찾아온 경찰이 ‘1호 말뚝의 입에서 당신의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서로에게 휘말린다. 말뚝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왜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가? 그리고 장은,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두 갈래의 이야기가 한 곳에서 만나는 데까지가 소설의 절반, 그리고 나머지다. 

 

이후 전개는 요약하려 들면 수렁에 빠진다. 미스터리 활극이 펼쳐졌다가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가 불륜 치정극의 레퍼토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정부가 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소설은 현실 고발 다큐멘터리가 된다. 독자는 장과 함께 12월 3일 이후 광장으로 불려 나간다. 실제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계엄이 일어나 “현실에 올라타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현실이 개입해 오는 설정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 이 모든 말뚝들이 실은 전복된 선박의 선원이었고, 바다에 가라앉은 자식이었고, 길에서 죽은 청년이었으며, 정리 해고로 생명줄이 끊긴 노동자였음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대목에 이르면 소설은 이제 완전히 현실과 밀착한다. 

 

*

 

이런 이야기를 아는 것 같기도 하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평범한 남자가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는 서사. 이런 플롯은 대개 그가 히어로로 변신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장’은 히어로가 아니다. 세계를 구하진 않는다. 다만, 하나의 진리를 깨닫고 그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장이 깨닫는 것은 무엇인가? 무관해 보이는 타인의 불행과 나의 불행이 전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 우리가 언제라도 서로의 불행에 연루될 수 있다는 진리. 당신의 비극이 나의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이해. 소설은 스스로 불행해지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크게 관심 없던 한 사람이, “도대체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서 억울해하다가, “자신의 불행이 세계의 불행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 끝에, 이 모든 게 “나와 다른 어떤 사람에 관한 지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그’에게 말을 거는 과정을 따라간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율법을 지키기 어렵다면 대신 소설처럼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슬픈 얼굴을 한 말뚝이 우리집 거실에 들이닥치더라도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고 외치는대신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떻게 죽으셨어요.”(171쪽) 라고 물어보기. 애도 혹은 연대라는 말을 입밖으로 뱉는 게 좀 멋쩍게 느껴진다면 “나중에 같이 한번 울어요.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었는데 같이 운 적은 없잖아요.”(188쪽) 라고 말해보기. 『말뚝들』은 그러니까, 우리가 제대로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슬픔이 부채로 남아서 우리에게 되돌아올 때 그 빚을 어떻게 갚아나갈지 골몰하는 이야기다.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책임의 감각을 호출하는 이야기. 그리고 나는 늘,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빚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린다.” (301쪽)

 

마지막으로, 이렇게 얘기하면 자꾸만 이 소설의 ‘재미’에 대해 말할 기회를 깎아먹는 일이 될까 우려스럽다. 『말뚝들』에는 당연히 거짓말, 능청, 해학, 풍자 같은 재미도 함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호’도 함께 외치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지난 겨울 광장에 함께 있던 독자들이라면 알아주리라 믿는다. 자 이제 다함께 외치자. “살 려 내 라!”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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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2026.03.02

심히 궁금하게 만드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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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2026.02.27

이 리뷰를 읽고 이 책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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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되지않았서현

2026.02.26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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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범(한국일보 기자)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