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 쿠말라 작가
넷플릭스 시리즈 <시가렛 걸>은 압도적인 미장센으로 전 세계를 홀렸지만, 원작 소설은 그보다 더 깊고 짙은 잔향을 남긴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정향 담배(Kretek) 소리, 코끝을 찌르는 달콤하고 알싸한 소스의 냄새, 그리고 1960년대 인도네시아 격변기를 살아낸 여성 '정야'의 뜨거운 숨결까지. 드라마가 시각적 환상을 보여주었다면, 소설 『시가렛 걸(Gadis Kretek)』은 오감을 자극하며 독자를 20세기 인도네시아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동남아시아문학총서'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소개되는 이 소설은 작가의 가족사에서 피어올라, 시대의 금기에 도전했던 한 여성의 대서사시로 완성되었다. 사랑과 야망, 그리고 역사의 비극이 연기처럼 얽힌 이 이야기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라티 쿠말라 작가와 함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원작의 세계를 탐험해 보았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소설 『시가렛 걸(Gadis Kretek)』이 한국에 공식 출간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한국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 소설가 라티 쿠말라입니다. 제 소설 『시가렛 걸』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가슴이 벅찹니다. 사실 한국어로 번역된 인도네시아 문학 작품이 아직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이 책이 제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풍요롭고 매혹적인 인도네시아 문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의미 있는 첫 만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품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이자, 인도네시아 격동기를 다룬 대서사시이기도 합니다. 작가님께서 이 소설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소설을 쓸 때 하나의 정해진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독자마다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서로 다른 의미를 발견할 테니까요. 다만, 이 이야기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닿게 된 만큼,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여성들이 지닌 고유한 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주인공 ‘정야(Jeng Yah)’는 남성들이 지배하던 1960년대 크레텍(정향 담배) 산업 속에서 놀라운 독립성과 회복력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녀를 통해 인도네시아 여성 특유의 ‘강인함과 우아함의 균형’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크레텍 산업은 자바섬의 정치·사회적 격변과 깊이 얽혀 있기에, 독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공기를 함께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소설의 모티프가 실제 작가님 외할아버지의 크레텍 공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가족의 기억을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로 옮겨오는 과정은 어떠했나요?
맞습니다. 영감의 씨앗은 아주 사소한 일상, 즉 어머니와 친척들이 명절마다 들려주던 ‘할아버지의 공장’ 이야기에서 싹텄습니다. 하지만 기억만으로는 소설을 완성할 수 없었죠. 독자를 1960년대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필요했습니다.저는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글을 썼기에 이 책을 완성하는 데 4년이나 걸렸습니다. 자료 조사를 위해 자카르타에서 중부 자바의 도시들(쿠두스, 문틸란 등)로 휴가를 내어 떠나기도 했고요. 슬럼프도 있었지만, 제 가족의 역사이자 인도네시아의 잊혀가는 풍경을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정야’는 관습과 편견을 깨고 오직 실력으로 최고의 ‘소스(Sauce)’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강조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늘 여성 인물에게 저의 목소리를 투영해 왔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성평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과제입니다.『시가렛 걸』에서 저는 정야가 단순히 ‘비운의 여인’으로 남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대의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조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인물입니다. 정야는 제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대신 전해주는, 저의 가장 용감한 분신과도 같습니다.
소설은 1965년의 비극(반공 학살)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정면으로 다룹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이 아픈 역사를 이야기의 중심에 둔 까닭은 무엇인가요?
역사는 결코 동전의 양면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곱 개, 아니 그 이상의 면을 가진 프리즘과도 같습니다. 1965년의 비극은 수많은 사람에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어떤 세력은 이를 지우려 하기도 합니다.작가의 역할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잊혀서는 안 될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한국 독자분들에게는 낯선 사건일지라도, 거대한 역사의 폭력 앞에 놓인 개인의 비극과 사랑은 국경을 넘어 보편적인 울림을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셨습니다. 원작의 ‘세 형제 로드무비’ 설정이 드라마에서는 ‘두 남녀의 추적극’으로 바뀌는 등 큰 변화가 있었는데요. 원작자로서 꼭 지키고 싶었던 ‘작품의 DNA’는 무엇이었나요?
소설은 작가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지만, 영상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드는 거대한 공동 작업입니다. 각색 과정에서 매체의 특성에 맞게 서사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제가 ‘가디스 크레텍의 어머니’로서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이야기의 ‘붉은 실(Red Thread)’, 즉 작품의 정서와 본질이었습니다. 인물 구성이나 전개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 흐르는 사랑과 회한, 그리고 역사의 무게감은 여전합니다. 오히려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점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즐거운 요소가 되길 바랍니다. 두 버전 모두 제가 쓴 이야기니,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실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맡길게요!
남편이신 에카 쿠르니아완(Eka Kurniawan) 작가 역시 한국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압니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문학 부부로서, 이번 한국 출간이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글을 쓰며 함께 성장해온 동료이자 가장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남편의 책(『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등)은 이미 한국에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제야 저도 남편에게 "여보, 내 책도 드디어 한국에서 나왔어!"라고 자랑할 수 있게 되었네요. (하하)비영어권 국가, 특히 인도네시아 작가가 국제적으로 소개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남편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부디 『시가렛 걸』을 시작으로 더 많은 인도네시아의 이야기들이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시가렛 걸
출판사 | 한세예스24문화재단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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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