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사진 제공: 이지현
미술계에서 ‘상’은 늘 존재해 왔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고, 한 해의 장면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잘 설계된 시상은 작가에게는 다음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여유를, 관객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는 계기를, 기관에는 동시대 미술을 말할 언어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올해의 작가”, “신진 작가”, “젊은 작가” 같은 타이틀이 붙은 제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지나쳐왔습니다.
다만 요즘, 그 ‘자연스러움’이 조금 흔들립니다. 상이 많아진 만큼 미션도 다양해졌지만, 정작 그 결과가 큰 파문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표가 나면 잠시 화제가 되고, 금세 다음 뉴스에 묻히는 식입니다. 심지어 수상자 본인에게조차 “이게 내 커리어의 정점처럼 소비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편한 감각이 따라붙기도 합니다. 상이 ‘응원’이라기보다 ‘정리’처럼 느껴지는 순간, 제도는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그다지 설레지 않는 언어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상”으로 축하하고 싶은가?
지금의 많은 상은 ‘사람’을 중심에 둡니다. 특정한 시점에 “이 작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통해 한 해의 풍경을 단일한 승자 서사로 압축합니다. 물론 개인을 조명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의 성취가 늘 한 사람에게만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한 전시의 밀도는 디스플레이와 설치, 도록과 글, 리서치와 제작,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한 수많은 협업의 결과로 만들어집니다. 작품은 종종 개인의 이름보다 더 복잡한 관계망을 통해 탄생합니다. 그럼에도 ‘최종 1인’이라는 결론이 반복되면, 제도는 자연스럽게 한계에 부딪힙니다. “왜 지금, 이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설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시선을 살짝 옮겨보고 싶습니다.
상을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 주면 어떨까요?
1) 작품상은 ‘이유’를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
작가상은 언제나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 “이 사람이 지금 받아야 할 이유”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흔히 경력, 나이, 기관의 맥락, ‘가능성’ 같은 추상적 언어에 기대게 됩니다. 반면 작품상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어떤 작품이 무엇을 새롭게 제안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시대를 건드렸는지, 어떤 형식적/개념적 성취가 있었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작품상은 ‘심사’가 아니라 ‘설명’의 언어를 강화합니다. 그리고 그 설명은 관객에게 더 가까운 형태로 전달됩니다.
2) 작품상은 “수상 이후의 커리어”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현장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상을 받으면, 그게 피크처럼 느껴진다.” 이 감각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작가상을 받는 순간, 그 이름은 ‘공식적으로’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이후엔 무엇을 해도 이전의 기대를 넘어야 하는 부담이 따라옵니다. 반대로 작품상은 결과가 사람에게 고정되지 않습니다. 작가는 또 다른 작품으로 다시 수상할 수 있고, 이번 수상은 하나의 작품에 대한 인정으로 남습니다. 축하가 ‘서열’이 아니라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동기부여의 방식이 보다 지속 가능해집니다.
3) 작품상은 ‘기억’과 ‘소장’의 구조를 만든다.
작품은 기록되기 쉽고, 공유되기 쉽습니다. 작품상은 “올해 우리가 기억할 장면”을 더 분명하게 남깁니다. 또한 수상작이 명확해지면, 그 작품은 누군가의 컬렉션이 될 수도 있고, 기관의 아카이브와 연구 대상으로 축적되기도 쉽습니다. 이때 상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작품의 생애’를 연장하는 장치가 됩니다. 상이 시장과 담론을 잇는 접점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4) 세분화된 분야에 대한 작품상은 미술의 복합적 성취를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작품상 체계는 ‘작품’을 기준으로 하되, 그 작품이 성립한 요소들을 세분화해 가시화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디스플레이의 성취, 기획의 성취, 도록 제작의 성취, 리서치의 성취처럼 미술이 실제로 작동하는 다층적 가치들을 분리해 조명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단순히 “상을 나눠 주자”는 제안이 아닙니다. 미술의 성취가 한 줄짜리 위계로 환원되지 않도록, 제도의 언어를 더 풍부하게 만들자는 요청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더 넓은 참여를 부를 수 있습니다.
수상 제도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상은 가시성을 만들고, 어떤 작가에게는 다음 작업을 위한 실제적인 지원이 됩니다. 문제는 그 가시성이 ‘선정/후보/최종’ 같은 제도적 단어로만 빠르게 유통될 때입니다. 이 언어가 작품의 논리를 앞지르는 순간, 우리는 미술의 복수성과 장기적 평가의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작품을 오래 보아야 하는 세계에서, 결과를 너무 빨리 확정해 버리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폐지”보다 “수선”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상은 계속되되, 더 미술에 가까운 방식으로 설계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이런 변화는 단지 운영 방식의 개선이 아니라, 미술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철학의 재구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작가를 응원하고 싶다면, ‘한 사람의 승리’보다 ‘작품이 던진 질문’이 오래 남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올해의 작가를 축하하는 방식이 조금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축하가 더 많은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면, 미술상은 ‘평가’가 아니라 ‘기록’과 ‘확산’의 장치로 다시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내일의, 올해의 작품에 이 글을 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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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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