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 한 권의 책을 간직할 수 있다면
『연인』 속엔 불필요한 말이 단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격정과 탄식과 호흡만이 존재할 뿐이다.
글: 유상훈 (편집자)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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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김인환 역 | 민음사

 

한 개인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책’을 꼽는다면 참으로 외람되고 오만한 일일 테지만, ‘내 인생 최고의 책’ 정도라면 딱히 경거망동은 아닐 듯싶다. 누구에게든 자신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책이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만약 아직 단 한 번도 그러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면, 앞으로 만나 보면 될 일이니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내 삶과 적잖이 지리멸렬하게 얽혀 있다. 원래 인생이란 두서없는 것이지만, 결국 이제야 생각해 보니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었던 것 같다. 과거, 소격서(昭格署) 자리에 있던 집에서 살았던 나는, 이따금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저 멀리, 명동까지 걸어 다니곤 했다. 광화문을 지나면 교보문고가 있었고, 더 걷다 보면 명동교자와 한일관, 이름난 청요릿집(예전엔 중화요릿집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이 즐비한 골목이 나타났다. 고색창연한 신세계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온갖 번잡한 풍경에 정신을 팔다 보면, (지금은 사라져 버린) 명동 중앙극장이 불쑥 나타났던 것 같다. 아마 바람이 불던 여름으로 기억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장담할 수 없다. 아무튼 그 극장 외벽에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다 잊어도 그 얼굴만큼은 잊을 수 없다.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 어딘가 불그스름하게 이글거리는 듯 보이던 포스터 한가운데에, 바로 그 얼굴이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얼굴의 주인은 ‘제인 마치’라는 이름의 신예 배우였다. 그리고 더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지만, 그 얼굴의 진짜 주인은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외화(외국 영화) 하나가 흥행하면, 그 원작이 되는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곤 했다. 당연히 정식 계약을 거치지 않은, 이른바 해적판이었다. 영화 <연인>이, 다른 맥락 다 자르고, 그저 “외설 혹은 예술”이라는 논란 속에 예술 영화치고는 제법 입소문을 타자, 그것의 원작이 되는 뒤라스의 소설 『연인』 역시 (내 기억이 맞다면 )한가득 출간되었다. 당시에 꼬마였던 나는, 아마도 어머니가 구입했으리라고 추측되는 『연인』이라는 소설책의 표지를 보고, 한때 명동에서 목격했던,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의 얼굴을 알아보았던 듯싶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전생의 기억같이 아득하지만, 그 책의 첫 문장,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몹시도 모순적으로 느껴지던 그 글귀가 떠오른다. “저는 지금의 당신, 폭풍이 휩쓸고 간 그 폐허 같은 얼굴이 젊었을 때의 당신 얼굴보다 훨씬 아름다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민음사 판본에는 ‘폐허 같은 얼굴’이 ‘쭈그러진 얼굴’로 번역되어 있는데, 무엇이 더 옳은지는 모르겠다.) 폐허 같은 얼굴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나이 어린 내가 생각하기엔 그야말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잠시 뒤라스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든 작품은 ‘고통’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자기 작품에 ‘고통’이라고 제목을 붙인 예도 있다. (『고통』은 뒤라스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 하나다.) 이 위대한 작가의 인생을 간단히 요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 삶 속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어머니의 절망과 잔인하고 나약했던 형제들과 감히 기록할 수 없었던 영원한 사랑이 있었음을 미리 일러두도록 하겠다. 가족 사이의 애증과 때 이른 첫사랑, 이것이 바로 작품의 주제예요, 라고 말하면 진부하기 짝이 없게 들릴 테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리고 혹자는 본디 작가란 평생 동안 단 한 작품만을 쓴다, 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나는 뒤라스가 이 같은 예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1950년에 발표한 『태평양을 막는 제방』과 1984년에 출간한 『연인』은 사실상 같은 이야기다.) 요컨대, 뒤라스는 비참한 가족사와 불가능한 사랑, 이 두 가지 굴레를 걸머진 채 기나긴 세월 내내, 어쩌면 동일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해 왔다. 아무리 흔해 빠진 주제도, 일생을 바쳐 천착했다면, 그리하여 그 작가의 삶과 죽음, 아예 전부가 되었다면, 우리는 그 희귀한 기적을 경이에 젖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진부함은 반복될수록, 시간의 때가 묻을수록 더욱 끔찍해지기 마련이지만, 뒤라스의 경우엔 그 통속적인 사건을 고통으로 감싸 진주를 만들어 냈다. 『연인』은 이미 거장이 된 뒤라스에게, 프랑스 문학에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 공쿠르상을 안겨주었다. 보통 공쿠르상이 (한평생의 성취를 기념하는 노벨 문학상과 달리) 이제 거장이 될 작가에게 수여되는 점을 고려하면, 뒤라스의 『연인』은 엄청나게 이례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뒤라스가 수십 년의 긴긴 작품 활동 끝에, 가령 인생이라는 거대한 문장의 마지막 자리에 비로소 『연인』이라는 마침표를 찍은 게 맞다면, (뒤라스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고자 하는) 공쿠르상의 오랜 기다림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마치 잠들어 있던 복선을 회수하듯이,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도서관 서가에 잠자코 서 있던, 그 빛바랜 책등만으로도 나는 그 책이 뒤라스의 『연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운명의 예고편 같은 기시감을 느끼며, 나는 『연인』을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갔다. 작품의 분량이 그만큼 짧은 덕택이었을 테지만, 그야말로 영혼이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해 관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고, (인문대 학생이기에) 등록금으로 달리 누릴 게 없던 나는 몇 달에 걸쳐 뒤라스의 작품들을, 정말 탐욕스럽게 읽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왜 『연인』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얇은 두께를 배반하는, 그토록 무시무시한 깊이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를테면, 『연인』 속엔 불필요한 말이 단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격정과 탄식과 호흡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까 언급했던 이 작품의 도입부와, 영혼을 매혹하는(감동에 의해 폭행당하는) 최후의 문단을 보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누구나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작가의 에세이집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이나 『물질적 삶』을 곁들여 읽는다면, 뒤라스가 사랑과 고통을 둘러싼 문장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탈곡(脫穀)하는지,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을 터다.

 

나는 심지어 뒤라스의 『연인』 때문에,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메콩강 유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습기와 폭우와 온통 누렇게 넘실대는 흙탕물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라고 말하는 『연인』 속의 주인공, 뒤라스의 기억이 과연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몹시도 알고 싶었다. “내 생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결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라고 선언한 작가의 깨달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그때 보았던 그 강물은 기억의 저편, 망각이라는 어둠 속에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며칠 전에, 『연인』을 다시 읽었다. 되풀이해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글 속에 파묻혀 사는 나(편집자)조차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보라고 하면, 다섯 손가락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연인』은 내 삶에서 많은 것을 좌우한 작품이다. 이 책 덕분에 프랑스 문학을 배웠고, 이곳 출판사에서 먹고 살게 되었으며(무조건 뒤라스의 『연인』을 보유한 출판사로 가겠다고, 다짐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는, ‘문학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혹시나 뒤라스의 작품을 통해 사랑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만큼은 제발 그만두라고 당부하고 싶다. 고통과 절망과 광기를 하나의 완전무결한 작품으로 승화해 낸 뒤라스를 보면서 공연히 나락으로 몸을 던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수적 피해’를 조심한다면, 『연인』이든 뭐든, 위대한 문학은 인간에게 유일무이한 황홀을 선사한다. 이제 나는 내 속에 흐르는 흙탕물의 분류를 조금은 차분하게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에 대해 품고 있는 이 무모한 사랑은 나에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로 남아 있다.”(이것은 뒤라스가 작은오빠에 대한 사랑을 회고한 부분이다.) 인생, 내가 걸어온 길, 그 돌이킬 수 없는 순간 위에 남겨진 신비를 다정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벌써 다시 읽게 될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 오직 이 한 권을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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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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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onesunv

2026.02.23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칠수도 있군요.. 글을 읽으니 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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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봄

2026.02.16

""불필요한 말이 단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격정과 탄식과 호흡만이 존재할 뿐"" 이런 글쓰기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겠죠.....그리고 폐허가 된 얼굴이라는 번역이 훨씬 상상력을 자극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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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김인환> 역

출판사 | 민음사

고통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유효숙> 역

출판사 |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태평양을 막는 제방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윤진> 역

출판사 | 민음사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윤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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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삶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윤진> 역

출판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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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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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

본명 마르그리트 도나디외Marguerite Donnadieu. 1914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의 도시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92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의 인사이동에 따라 두 오빠와 함께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2년 프랑스로 귀국해 소르본대학에서 수학,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1943년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차대전중에는 훗날 프랑스의 대통령이 될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고, 종전 후에도 알제리전쟁 반대운동과 68혁명에 참여하는 등 프랑스 현대사의 현장에 직접 나섰다.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그는 『모데라토 칸타빌레』(1958), 『여름 저녁 열시 반』(1960), 『롤 V. 슈타인의 황홀』(1964), 『부영사』(1966) 등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독특한 문학적 색채로 인해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로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뒤라스 자신은 어떤 갈래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채 특유의 반복과 비정형적인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자신만의 글쓰기를 모색해갔다. 뒤라스가 1982년 발표한 『죽음의 병』은 그의 연인 얀 앙드레아와의 사랑을 바탕으로 구체화된 작품으로, 후대 비평가들이 ‘얀 앙드레아 연작’ 혹은 ‘대서양 연작’으로 분류하는 작품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부재와 사랑, 고통과 기다림, 글쓰기와 광기, 여성성과 동성애의 기이한 결합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누보로망의 시대에서 결국 살아남을 단 하나의 작가는 뒤라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는 당대의 문학사적 흐름에서 비껴가면서도 절대 빛바래지 않는 독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뒤라스는 문학의 범주를 넘어 영화계에도 분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1960)의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뒤라스는 소설과 영화를 가로지르는 독보적인 작업을 펼쳐나간다. 1975년에는 자신의 소설 『부영사』를 각색한 영화 [인디아 송]으로 칸영화제 예술·비평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한다. 1984년에는 어린 시절 인도차이나에서의 시간을 바탕으로 쓴 소설 『연인』이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반세기에 걸쳐 문학과 영화, 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칠십 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그는 마지막 몇 년간의 글을 모은 『이게 다예요』(1995)로 마침표를 찍고 1996년 3월 3일, 파리의 자택에서 세상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