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선명한
[작지만 선명한] 번역에 진심인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 레모의 책 | 예스24
작은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시리즈 ‘작지만 선명한’. 조르주 페렉, 아니 에르노, 파트릭 모디아노 등 작가를 중심으로 프랑스 문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모출판사의 책을 소개합니다.
글: 윤석헌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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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les mots)’는 프랑스어로 ‘말’이나 ‘단어’를 뜻하는 명사의 복수형입니다. 텍스트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많은 분들이 사르트르의 자전 소설 『말(Les mots)』에서 이름을 따왔을 것이라 짐작하시지만, 실제로는 제가 좋아하는 조르주 페렉의 전기 『말 속의 삶(Les mots dans la vie)』에서 출발했습니다.

 

레모는 번역가가 운영하는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로,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프랑스 문학만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번역' 그 자체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입니다. 번역서 위주로 출간하다 보니 번역가이기도 한 대표가 북토크나 독서 모임 등 다양한 자리에서 직접 독자들을 만나 레모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모가 펴내는 책은 조르주 페렉, 아니 에르노, 파트릭 모디아노, 델핀 드 비강 등 제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성 살해’, ‘돌봄’ 등 첨예한 사회적 질문을 담은 소설들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소개함과 동시에 ‘프랑스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조금씩 깨는 것, 그것이 레모의 목표입니다. 2019년 판타지 대작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1권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4권의 책을 출간했고, 2026년에는 더 다양한 프랑스 문학을 소개하려 합니다.

 


『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 저/윤석헌 역 | 레모출판사

 

레모의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입니다. 델핀 드 비강은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탄탄한 문학성을 갖춘 밀리언셀러 작가입니다. 『충실한 마음』은 상처받은 아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 특히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섬세한 인물의 심리 묘사가 일품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따뜻합니다. 레모는 델핀 드 비강의 전작을 소개하려고 준비 중이며, 그를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잇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저/윤석헌 역 | 레모출판사

 

레모라는 출판사 이름을 작가의 전기에서 따왔듯, 조르주 페렉은 저희에게 아주 특별한 작가입니다. 흔히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기발한 소설을 쓰는 천재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페렉은 자서전 장르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온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자전적 글쓰기’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메모, 단편, 연설, 비평, 편지, 자화상, 인터뷰 등 다양한 성격의 글 10편을 담고 있습니다. 수록된 글 대부분은 페렉 작품들의 기원이 되거나, 그 뿌리에 대한 상세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기억과 망각’, 더 나아가 ‘정체성 탐색’이라는 측면에서 페렉의 자전적 글쓰기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페렉의 세계에서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것이 어떻게 글쓰기로 형상화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조르주 페렉이라는 작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저/백수린 역 | 레모출판사

 

2022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레모의 이름도 독자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레모에서는 작가의 초기작 『얼어붙은 여자』,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여자아이 기억』, 그리고 『젊은 남자』를 출간했습니다. 그중 『여자아이 기억』은 아니 에르노가 10대 후반에 겪었던, 불법 임신중절보다 더 끔찍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50년 넘게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하다가 ‘이 책을 쓰지 않으면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작가 특유의 문학에 대한 성찰, 글을 쓰는 이유와 과정이 작품 속에 깊이 스며 있어 글을 쓰는 분들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백수린 소설가의 수려한 번역으로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함께 읽는 다른 출판사의 책



『인생 사용법』

조르주 페렉 저/김호영 역 | 문학동네

 

조르주 페렉은 생전에 이 책을 두고 “배를 깔고 엎드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소설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두꺼운 벽돌책이라 선뜻 집어 들기 어려울 수 있지만, 파리의 한 다층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공간에서 비롯된 아주 짧은 단편 소설들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합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마치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떤 열정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듯, 하나같이 자기만의 무언가에 깊이 빠져 살아갑니다. 책의 제목처럼 인생을 사용하기에 최적의 열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책은 바로 그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기발하고 재미난 이야기들 사이로 페렉이 독자를 위해 만들어둔 거대한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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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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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goya

2026.03.07

델핀 드 비강 작가 너무 좋아합니다! 전작을 소개해 주실 거라 하니 정말 신나고 기대돼요. 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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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dlfl82

2026.02.09

레모에서 펴내지 않았다면 읽기 어려웠을 정말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어떤 분야든지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거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레모의 존재와 그 행보에 큰 응원을 보냅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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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 저/<윤석헌> 역

출판사 | 레모출판사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저/<윤석헌> 역

출판사 | 레모출판사

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저/<백수린> 역

출판사 | 레모출판사

인생사용법

<조르주 페렉> 저/<김호영> 역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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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문학이 좋아 출판사까지 냈다. 다양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니 에르노의 『사건』, 『젊은 남자』,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 『고마운 마음』,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 파트릭 모디아노의 『기억으로 가는 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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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 드 비강

1966년 파리 근교 불로뉴 비앙쿠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몇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델핀 드 비강은 모파상, 도스토예프스키를 특히 좋아하며 프랑스와 러시아 문학에 심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리에 있는 그랑제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여론조사 기관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며 2001년 루 델빅이라는 필명으로 『배고픔 없는 나날들』을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에 데뷔했다. 이 작품은 거식증으로 고통받던 경험을 살린 자전적 소설로서, 실제로 작가 자신의 몸무게가 35킬로그램까지 내려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첫 소설에 대한 호평에 힘입은 델핀 드 비강은 낮에는 사회연구소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이후 2005년 『귀여운 남자들 Les jolis garcons』을 실명으로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다가, 2007년 발표한 『길 위의 소녀 No et moi』가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두 작품은 사랑에 대한 망상, 사랑의 방식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 2006년 『12월 어느 저녁』으로 생 발랑탱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성장소설 『길 위의 소녀』는 세상에 소외당한 두 소녀의 아름다운 우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받으며 ‘로터리상’, ‘프랑스 서점 대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프랑스 서점 직원 2,000명이 직접 뽑는 ‘프랑스 서점 대상’과 ‘로터리상’을 동시에 수상한 경우는 1999년의 마르크 뒤갱, 2007년의 뮈리엘 바르베리에 뒤이어 2008년의 델핀 드 비강이 세 번째다. 『길 위의 소녀』는 소녀가 그리는 꿈과 현실의 차이는 어떠한지, 소통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지, 다른 세상을 포용하고 자신의 삶과 동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감동인지를 소녀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2009년에는 파리에서 살아가는 두 남녀의 하루를 그리고, 그들의 독백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해낸 『지하의 시간들』을 펴냈다. 2011년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써 내려간 자전적 소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Rien ne s'oppose a la nuit』으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획득하며 동시대 프랑스 최고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2015년의 『실화를 바탕으로』는 한 소설가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자전인 듯, 완벽한 픽션인 듯한 스토리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한편, 웰메이드 심리 스릴러의 매력까지 구현해냈다. 출간되자마자 평단과 독자에게서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고,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에 ‘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델핀 드 비강은 현재 파리에 거주하며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8년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를 매년 한 편씩 출간하고 있다. 총 열권의 소설로 프랑스 내에서만 3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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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1920년대에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1940년 이차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사한 후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가 목숨을 잃자,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와 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 『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 『파르티장』 등의 문학잡지에 기사와 비평을 기고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59년 군복무를 마친 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신경생리학 자료조사원과 파리 생탕투안 병원 문헌조사원으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다. 직업상 다양한 자료와 방대한 기록을 다루어야 했던 이 경험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5년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받았다. 1967년 작가와 화가, 수학자 등으로 구성된 실험문학모임 울리포OuLiPo에 가입하고, 예술적 창조의 근간을 형식 제약에 두는 울리포의 실험정신을 수용해 매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낸다. 그중 프랑스어에서 가장 자주 쓰는 모음 e만 빼고 쓴 소설 『실종』(1969)과 e만 쓴 『돌아온 사람들』(1972)은 ‘언어’와 ‘기억’에 천착한 작가의 특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1978년 메디치 상을 수상한 『인생사용법』은 10차 직교그레코라틴제곱방진과 체스 행마법을 도입해 완성한 명실상부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독특하고 방대한 작품으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1982년 45세의 이른 나이에 기관지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잠자는 남자』(1967), 『어두운 상점』(1973), 『공간의 종류들』(1974), 『W 혹은 유년기의 추억』(1975), 『나는 기억한다』(1978),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1979), 『생각하기/분류하기』(1985), 『겨울 여행』(1993) 등 다양한 작품을 남기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페렉은, 오늘날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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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를 해방하려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들을 추려서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발표했다.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