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les mots)’는 프랑스어로 ‘말’이나 ‘단어’를 뜻하는 명사의 복수형입니다. 텍스트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많은 분들이 사르트르의 자전 소설 『말(Les mots)』에서 이름을 따왔을 것이라 짐작하시지만, 실제로는 제가 좋아하는 조르주 페렉의 전기 『말 속의 삶(Les mots dans la vie)』에서 출발했습니다.
레모는 번역가가 운영하는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로,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프랑스 문학만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번역' 그 자체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입니다. 번역서 위주로 출간하다 보니 번역가이기도 한 대표가 북토크나 독서 모임 등 다양한 자리에서 직접 독자들을 만나 레모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모가 펴내는 책은 조르주 페렉, 아니 에르노, 파트릭 모디아노, 델핀 드 비강 등 제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성 살해’, ‘돌봄’ 등 첨예한 사회적 질문을 담은 소설들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소개함과 동시에 ‘프랑스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조금씩 깨는 것, 그것이 레모의 목표입니다. 2019년 판타지 대작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1권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4권의 책을 출간했고, 2026년에는 더 다양한 프랑스 문학을 소개하려 합니다.
델핀 드 비강 저/윤석헌 역 | 레모출판사
레모의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입니다. 델핀 드 비강은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탄탄한 문학성을 갖춘 밀리언셀러 작가입니다. 『충실한 마음』은 상처받은 아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 특히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섬세한 인물의 심리 묘사가 일품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따뜻합니다. 레모는 델핀 드 비강의 전작을 소개하려고 준비 중이며, 그를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잇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조르주 페렉 저/윤석헌 역 | 레모출판사
레모라는 출판사 이름을 작가의 전기에서 따왔듯, 조르주 페렉은 저희에게 아주 특별한 작가입니다. 흔히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기발한 소설을 쓰는 천재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페렉은 자서전 장르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온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자전적 글쓰기’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메모, 단편, 연설, 비평, 편지, 자화상, 인터뷰 등 다양한 성격의 글 10편을 담고 있습니다. 수록된 글 대부분은 페렉 작품들의 기원이 되거나, 그 뿌리에 대한 상세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기억과 망각’, 더 나아가 ‘정체성 탐색’이라는 측면에서 페렉의 자전적 글쓰기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페렉의 세계에서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것이 어떻게 글쓰기로 형상화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조르주 페렉이라는 작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니 에르노 저/백수린 역 | 레모출판사
2022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레모의 이름도 독자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레모에서는 작가의 초기작 『얼어붙은 여자』,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여자아이 기억』, 그리고 『젊은 남자』를 출간했습니다. 그중 『여자아이 기억』은 아니 에르노가 10대 후반에 겪었던, 불법 임신중절보다 더 끔찍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50년 넘게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하다가 ‘이 책을 쓰지 않으면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작가 특유의 문학에 대한 성찰, 글을 쓰는 이유와 과정이 작품 속에 깊이 스며 있어 글을 쓰는 분들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백수린 소설가의 수려한 번역으로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함께 읽는 다른 출판사의 책
조르주 페렉 저/김호영 역 | 문학동네
조르주 페렉은 생전에 이 책을 두고 “배를 깔고 엎드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소설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두꺼운 벽돌책이라 선뜻 집어 들기 어려울 수 있지만, 파리의 한 다층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공간에서 비롯된 아주 짧은 단편 소설들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합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마치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떤 열정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듯, 하나같이 자기만의 무언가에 깊이 빠져 살아갑니다. 책의 제목처럼 인생을 사용하기에 최적의 열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책은 바로 그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기발하고 재미난 이야기들 사이로 페렉이 독자를 위해 만들어둔 거대한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윤석헌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문학이 좋아 출판사까지 냈다. 다양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니 에르노의 『사건』, 『젊은 남자』,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 『고마운 마음』,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 파트릭 모디아노의 『기억으로 가는 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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