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품 경매회사의 신입으로 입사한 직후 컬렉팅을 시작했습니다. ‘컬렉터가 되어야지!’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와 작업이 내뿜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나의 세계에 들이다 보니 어느새 작고 소중한 컬렉션이 만들어졌더군요.
이후 100% 재택근무를 하는 미국회사에 입사 이후 개인사업, 현 직장에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근무하게 된 지 어언 5년 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와 함께하는 이 작품들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부어주는 이 상큼하고 따스한 에너지를 새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시장에 몸담고 있다 보니, 미술품을 시장 관점으로 바라보고 설명하고 구매하는 때도 많습니다. 실제로 구매 후 가치가 올랐을 때 다시 재판매한 작품도 많고요. 그러나 한두 푼이 아니기에 투자를 생각하며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도, 집에 걸어두게 된 작품들은 결국 제 일상에 스며들고 깊은 정이 들어버려 ‘내 새끼’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희로애락을 조용히 다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그 작품들과 매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연재에서는, 나의 작고 소중한 컬렉션의 ‘내 새끼들’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 ‘작소컬’의 시작과 현재를 사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 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녹여 공유해보겠습니다.
대가의 숨결을 내 공간에, 나의 첫 소장품 이야기 - 이우환의 ‘무한의 숨결’
런던에서 동양미술사 석사 공부를 하던 중 꿈에 그리던 미술품 경매회사의 홍콩 경매팀 공채에 합격하고 한국으로 바로 들어와 꼬꼬마 주니어 스페셜리스트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시절. 당시 아직 논문 학기가 남았던 상태라 퇴근 후와 주말에는 논문 쓰며 보냈기에 아직 ‘학생’의 순수함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매일 그 전날 밤에 논문 리서치를 하며 공부했던 작가들의 작업을 출근하면 실제로 매일 마주하고 심지어 내부 사람이 아니면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림의 가치평가 과정, 보존 보수, 뒷면 정보 분석, 감정 과정 등을 멋진 선배들께 배우는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내며 ‘이건 진정한 덕업일치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입사 후 첫 홍콩 경매 출장 때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앞에는 요시토모 나라, 야요이 쿠사마, 우고 론디노네, 아야코 로카쿠 작품들이 걸려있고 오른쪽에 샤갈 작품들도 살짝 보인다.
아직 생생히 기억나는 입사 후 나에게 맡겨졌던 첫 미션 - 프랑스의 샤갈 재단에 샤갈 작품들을 보내서 진품 감정서를 받아오는 업무! 이를 위해 샤갈 재단 직원들과 몇 달간 연락을 주고받고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서류 작성, 운송과 반송, 보험…천문학적인 금액에 미술사적으로도 너무 중요한 작품들인데 ‘내가 혹시 실수하면 어쩌나’ 꿈에 나오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할 수 있다!!’ 하며 다시 연락을 취했던 과정들을 거쳐 프랑스에서 보증서가 국제우편으로 날아왔을 때 - 너무 짜릿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샤갈 재단 담당자는 스윗하게도 보증서를 보내면서 샤갈의 그림이 담긴 엽서에 나를 위한 편지까지 써서 보내주었었는데, 아직도 내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샤갈에 파뭍혀 열일했던 의미 있는 시간을 기억하려 찍어 놓았던 사무실 테이블 사진
너무 긴 서두를 차치하고,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그림을 감상하는 기준이 감사하게도 그저 최고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술사 전공생으로서 그리고 수많은 대가의 작업을 매일 몇십 점씩 실제로 핸들링하며 그들의 숨결을 느껴본 후에는 “아…나도 대가들의 작품을 일상에 들여놓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던 그때 -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조사 차 여러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검색하던 중, 프랑스의 유서 깊은 출판사이자 프린트메이커 DILECTA 에디션 회사에서 발매한 이우환 선생님의 판화를 발견했다. 50개짜리 에디션이었고, 작은 사이즈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2천 유로? 잘못 본 건가?
지금은 5천 유로에 솔드아웃 처리 되어있는 DILECTA의 페이지
당시 미술시장 붐이 일어나기 전이라 지금처럼 이우환 작가의 100개 판화가 기본 1.5-2천만 원을 넘던 시기는 아니었음에도 2천 유로면 당시 320만원 정도. 사이즈가 작지만, 에디션이 50개로 작은 규모이고 무엇보다 이우환 선생님의 대표 도상은 아니라도 내 마음에 쏙 드는 물방울 도상과 색감이 단번에 맘을 사로잡았고 프랑스에 사는 친한 언니 찬스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10% 할인까지 받은 가격으로 두 점을 바로 구매했다. 한 점은 내가 평생 소장하고, 한 점은 갖고 있다가 시장이 좋을 때 판매해도 좋고 안 해도 말고!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시점, 드디어 프랑스에서 내 작품이 도착했다. 그때의 설렘이란! 무엇이든 ‘처음’은 설레고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26살 인생 처음으로 내 돈으로 구매한 작품을 두 손에 받아들었을 때 - 조심히 포장을 뜯고 에디션을 설명하는 책 속에 끼워져있는 판화를 마주한 그때가 바로, 나의 ‘작고 소중한 컬렉션’의 시작점이 되었던 순간이다. 이후 지금까지 여러 작품을 다양한 경로로 소장하였지만, 프랑스에서 온 내 이우환 소포를 뜯었을 때의 그 첫 설렘은 다시 느끼지 못했다. 액자도 그린계열로 해볼까, 그냥 미송으로 갈까, 오크로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Simple is the best라는 노련한 액자 사장님의 강권으로 미송 액자를 해서 내 작은 주방 테이블 옆에 소중히 걸어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점은 포장도 뜯지 않고 고이 소중히 선반 속 보관을 해두었다.)
주방 옆 예쁘게 걸어 놓았던 나의 첫 컬렉션
첫 컬렉팅에 대한 설렘 + 직업병으로 작품 네임택까지 제작해서 옆에 붙여두었던 사진.
‘무한의 숨결’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테이블 옆 걸어 뒀던 나의 첫 소장품은 내가 새벽까지 야근하고 돌아와 불닭으로 폭주하고 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과 함께 충만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도, 혼자 테이블 위에 앉아 끊임없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도 묵묵히 옆에서 존재하는 따뜻한 ‘숨결’처럼 나의 일상을 함께 했다. 이우환 선생님의 작업 속 여백과 단색. 그 점 하나, 그 선 하나의 간결함 속 충만함. 매일매일 마주하는 오묘한 색의 점 하나에 내 일상과 함께 한 시간이 쌓이니 이우환의 물방울은 소중한 ‘나의’ 물방울이 되었다. 이후 이사를 몇 번 하면서 잠깐 본가 거실에 걸어 두었는데, 부모님도 좋아하셔서 당분간은 그곳에 두게 될 예정.
여기서 잠깐 - 내 사랑스러운 첫 소장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받아서 포장을 뜯지 않고 선반 안에 두었던 나머지 한 작품 - 그 작품은 선반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 직후 찾아온 미술시장 (그야말로 활화산 같은) 활황 시기에 경매에 출품했고, 산 가격보다 10배 오른 가격에 낙찰되며 나에게 정말 큰 효도를 해주었다. 사실 가치가 계속 오를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안 팔려도 내가 평생 소장하겠다는 생각이었기에 바로 두 점을 구매했었는데 그 결정 덕분에 다음 작품을 소장하는 데 보탬이 되는 기쁜 해프닝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참 감사한 추억이다. 여러모로 평생 기억에 남을 나의 첫 소장품 이야기는 여기까지.
✔️ 컬렉팅 팁
같은 사이즈의 원화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대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판화는 분명 매력적인 컬렉팅 대상이다. 다만 판화의 매력은 단순히 가격에만 있지 않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판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판화는 종이, 때로는 천, 양피지, 플라스틱 또는 기타 재료에 다양한 복제 기법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제작하는 예술 형식으로, 작가의 직접적인 감독 또는 제작 과정을 거칩니다. 이러한 판화는 총칭하여 '파인 프린트'라고 불리며, 여러 장이 제작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고유한 예술 작품으로 간주합니다.”
나는 여기서 마지막 부분, ‘여러 장이 제작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고유한 예술 작품으로 간주합니다’라는 문장에 크게 공감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판화는, 원화와 다른 또 하나의 고유한 작품과 같은 결과 색감을 아름답게 구현하여 감상과 소장하는 기쁨이 크다.
해외의 유수 갤러리나 공방, 출판사 중에는 판화 제작 공법을 연구하고 전문적으로 구현하는 곳들이 있는데 그중 눈여겨보아야 하는 곳들은 싱가포르의 STPI, 프랑스의 DILECTA, 네덜란드의 Avant Arte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프린트 베이커리, 국제 갤러리 등에서 판화 공방에 수주하여 이우환, 하종현, 이배, 김환기 등 한국 마스터 작가들의 고품질 판화들을 드롭하기도 한다.
아티피오는 ART ‘예술’ + PIONEER ’선구자’라는 비전 아래 온라인에서 고품격 예술 콘텐츠와 아트테크를 체험할 수 있는 투명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제공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입니다. 누구나 아티피오를 통해 일상 속에서 미술을 향유하면서 안심하고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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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구글 아트앤 컬쳐 한국 코디네이터, 나난랩 대표)
이화여대에서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대 SOAS에서 동양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친 김예지 씨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팀과 글로벌 사업팀, 세계 최대 글로벌 온라인 미술작품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의 아시아 비즈니스팀 서울 담당 디렉터, 문화예술전문미디어 널위한 문화예술에서 시니어 아트 디렉터로 재직하며 전시 기획, 국내외 갤러리, 기관,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현재는 구글 아트앤 컬쳐 한국 담당 코디네이터이자 아티스트 브랜드 나난랩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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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dasomi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