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아이와 함께 손과 눈으로 대화하는 모습. ©Tanaka Ken
임신도 임신이었지만 출산 이후 호르몬의 변화는 정말이지 드라마틱했다. 임신 중에는 릴랙신이라는 호르몬이 골반과 인대를 느슨하게 만들어 아이가 산도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데 이것이 출산 후에도 몇 주에서 몇 달간 체내에 남아 온몸의 관절과 인대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한다. 산모는 몸을 회복함과 동시에 아이를 안고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면서 손목과 팔, 무릎 등을 평상시에 비해 과도하게 사용하는데 그때 손목과 무릎 등의 관절에 건초염과 같은 통증이 발생한다는 거였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서 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를 재우려면 아기를 안고 무릎을 굽히고 펼 수밖에 없었다. 엉덩이를 씻기려면 손목으로 아이를 들어야 했다. 잠깐이라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집 앞을 걷고 있으면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도 땀을 흘리고 싶다고 격렬한 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산 후 컨디션도 좋고 이제는 배에 아기도 없으니 뛰어볼 수 있지 않을까.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어보았다. 중력으로 몸에 무게가 실렸다. 쿵, 하고 착지했지만 이제는 아기가 없으니 위험할 일도 없었다. 앞을 향해 속도를 내보았다. 와. 달린다는 것이 이런 감각이었지.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무리하지는 말자고 생각하며 속도를 줄였다. 그때 무릎이 나가고 말았다는 걸 며칠 지나서야 감각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을 때마다 무릎이 시렸고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큰거렸다.
손목에도 통증이 생겼다. 키보드로 타자를 칠 때마다 펜을 잡고 글씨를 쓸 때마다 이물감이 느껴졌다. 어느 날은 육아에서 벗어나 콧바람 쐴 겸 짧은 강연을 나갔는데 독자들이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며 펜을 들었지만 사실 이름 석 자 쓰는 것이 시큰거리고 아파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인데 이러다 평생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병원에서 도수 치료와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스트레칭도 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손목을 최대한 쓰지 말라고 했지만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두고 그럴 수 없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이를 안아 재울 때마다 내게 손목이라는 것은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뇌며 몸을 썼다.
출산 후 7개월이 지날 때쯤이었을까. 거짓말처럼 손목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목보호대를 차고 이삿짐을 싸고 박스를 나르고 이삿짐을 풀고 이유식을 다지고 찌고 갈던 때였다. 아이에게 젖을 하루에 네 번 정도 먹일 때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먹이고 점심 경에 먹이고 오후 4시경에 간식처럼 먹이고 저녁에 자기 전에 먹일 때쯤이었다. 동글동글했던 체형이 임신 이전의 체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몸의 리듬도 바뀌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 입덧을 시작한 후로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임신 이전의 호르몬이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는 점점 더 무거워졌지만 찌릿하고 아린 손목 통증은 사라졌다. 생리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생후 8개월까지 아기는 자신과 엄마가 한 몸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연결될 수 있어 기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유수유는 예상치 못한 고생이기도 했지만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주는 행위였다. 그렇게 1년을 하고는 단유를 하기로 했다.
막상 젖을 떼려고 하니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던 날이었다. 오후에 모유 대신 분유를 줄 것을 부탁하고는 홀로 외출했다.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데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젖병을 물지 않고 엄마 젖이 아니면 안 된다고 광광 울고 있다는 거였다.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다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 택시를 불렀다. 파트너는 아이를 달래며 강북에서 강남까지 달렸다. 우는 아이를 건네 안고 휴게실로 뛰었다. 아이는 지친 표정으로 나의 젖가슴을 물었다. 아이 없이 외출해서 기뻤지만 찰나의 행복이었다. 또한 가리개를 한 채 집 바깥에서 처음으로 수유한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캄캄한 집안이 아닌, 시원한 바람을 쐬며 젖을 먹일 수 있다는 기쁨에 마냥 즐거웠다. 동생이 후쿠오카에 왔을 때는 ‘젖 먹이는 게 뭐 어때서’라는 자세를 갖춘, 제법 노련한 수유부가 되었을 때였다. 함께 시내 구경을 하며 힙한 카페에 들어섰다. 동생이 추천한, 내 입맛에 꼭 맞는 커피를 마시며 가리개 없이 수유했다. 임신과 출산 이전에 종종 가던 카페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아이와 함께, 심지어는 젖을 먹이며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친구의 결혼식이 열리던 스페인에서는 논알콜 맥주를 마시며 다른 수유부들과 찡긋 눈을 마주치며 수유했다. 당장 수유를 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친구 대신 그의 아기에게 젖을 물려본 적도 있었다. 산에 가고 싶어 아이를 업고 올라간 산 정상에서 산맥과 산맥이 이어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젖을 물린 기억도 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13개월의 젖 물리기 여정이었다.
단유를 하기로 한 이유는 독립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가을에는 혼자서 영화제에 가서 실컷 영화를 볼 거라고, 그러려면 아기도 나도 젖을 먹지 않고 젖을 주지 않는 연습을 해야 했다. 수유 횟수를 천천히 줄였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주던 젖을 하루에 한 번으로 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는 젖 안 먹고 그냥 자는 거야. 그렇게 해볼 거야. 알았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젖을 기다리며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에게 젖가슴 대신 공갈젖꼭지를 물렸다. 아이는 울었다. 왜 젖을 주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며 오늘부터는 젖을 안 먹을 거라고 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금방 울음을 멈췄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이는 공갈젖꼭지를 물자마자 귀에 손을 대었다. 안정감을 찾는 새로운 방식을 학습한 것이었다. 그러더니 잠에 들었다. 어, 라? 젖을 물고 젖을 물리는 일과 작별하는 시간을 차근차근 가질 거라고 계획했는데 예상보다 아이는 빠르게 적응했다. 나의 가슴도 마찬가지였다. 젖이 차올라 가슴이 뭉치는 사람도 있다던데 젖을 물릴 때마다 모유를 생성하는 흐름이 만들어져서 그런지 가볍고 말랑말랑했다. 가슴 마사지를 받아 고여 있는 젖을 빼내고 단유를 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기는 젖을 끊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단유에 성공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수유실만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저기서 아이와 함께 몸 붙이고 땀 흘리며 젖 먹이고 젖 먹었는데. 긴 시간을 보내며 물도 마시고 음료도 마시고 심지어 김밥도 먹었는데. 수유실에 더 이상 들어갈 필요가 생각하니, 젖을 물리고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웃고 장난치는 순간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아이에게 젖이 더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아이를 재우다 말고 “오늘 젖 먹고 잘래? 그립지 않아?” 물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기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싱긋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젖꼭지를 입 주변으로 가져다 대어도 물지 않았다. 자석같이 텁, 하고 물던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모른 척 할 일이라니. 서운했다. 일본어로 “おっぱい(젖)”이라고 말하면 나를 향해 흥분한 얼굴로 기어오던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없다니 섭섭했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 그리고 단유의 목적이었던, 홀로 영화제 가기는 실패했다.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전날 밤에 “내가 아이 없이 어떻게 자”하고 땅을 치며 우는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결국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고객센터에 전화해 항공권을 추가 구매하고는 아이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아이는 독립할 준비를 마쳤지만 준비되지 않은 건 나였다는 걸 처절하게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이와 함께 다니며 하는 이 고생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지 않다는 걸, 모든 힘듦과 고됨, 벅참과 충만함을 사서라도 누리고 싶은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오늘도 힘차게 꾸준히 하나둘씩 되어가고 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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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Shiwol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