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가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를 수상하고, 이우환이’ 제32회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여기에 더해 세계 미술계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꼽히는 아트리뷰(ArtReview) 〈2025 Power 100〉 명단에 한국 미술계의 반가운 이름들이 다시 한번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작가들이 국제 미술 담론의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제 한국 미술은 ‘주목받는 신흥 시장’을 넘어, 글로벌 미술계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위치에 서 있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 미술 무대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은 누구일까? 국제 무대에서 의미 있는 성과와 평가를 이어가고 있는 세 명의 작가를 살펴본다.
시대를 엮는 세계적 개념미술가 ‘김수자’
김수자는 2025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를 수상하며, 동시대 미술에 대한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2017년 ‘슈발리에(Chevalier)’ 수훈에 이은 두 번째 수상이다.
‘보따리 작가’로 잘 알려진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바늘 삼아 세계 곳곳을 이동하며 이주, 경계, 정체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뤄왔다. 그의 작업은 특정 문화권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사회가 공유하는 감각과 질문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국제 미술계의 공감을 얻어왔다. 대표작인 퍼포먼스 연작 〈A Needle Woman〉에서는 작가의 몸이 ‘바늘’이 되어 세계 8개 도시의 군중 속을 관통한다. 도시와 도시, 문화와 문화 사이를 가로지르며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시적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1957년 프랑스 문화부가 제정한 문화예술공로훈장은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창작활동을 펼치거나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주어지며 코망되르(1등급), 오피시에(2등급), 슈발리에(3등급) 등 세 등급으로 나뉜다. 역대 한국인 수훈자로는 김정옥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지휘자 정명훈, 영화감독 봉준호,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있다.
Cities on the Move – 2727km Bottari Truck, 1997/2010 ©Kimsooja Studio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km〉는 산더미처럼 쌓인 보따리 위에 앉아 11일간 전국을 이동한 퍼포먼스로, 삶과 이주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환기한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이불보를 꿰매던 기억,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잦은 이사를 다니며 꾸렸던 보따리는 김수자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고, 이는 동시대 미술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호흡-별자리(To Breathe- Constellation)>, 2024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2024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에서 한국인 최초로 ‘까르트 블랑쉬(The carte blanche)’ 초청을 받아 대규모 개인전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를 선보였다. 전시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권을 작가에게 위임하는 이 방식은, 김수자에 대한 기관의 신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세기 프레스코 천장화가 돋보이는 돔 구조의 로툰다에 설치된 400여 장의 거울은 공간을 완전히 전환시킨다. 수백 장의 거울은 돔 천장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위와 아래의 구분을 해체한다. 관람객의 모습과 공간, 타인의 움직임이 동시에 반사되며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작품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는 일부가 된다. 김수자에게 거울은 경계를 허무는 매개다. 개인과 타인, 내부와 외부, 나와 사회의 구분이 흐려지며 각자의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다뤄온 이주와 이동, 정체성의 문제를 공간 전체로 확장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결국 김수자 특유의 ‘보따리’처럼 기억과 몸, 타인과 공간을 포용하며 관람자를 세계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To Breathe-Alula>, 2024 ©Kimsooja Studio
국제 미술계에서 김수자는 ‘한국적 정서를 세계적 언어로 번역한 작가’로 제시된다. 보따리와 바느질, 신체 퍼포먼스라는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의 작업은 국적과 문화권을 넘어 보편적인 메시지로 읽힌다. 이러한 접근은 서구 중심의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과 차별화되며, 김수자를 동시대 글로벌 미술 담론의 중요한 축으로 위치시킨다. 개인 컬렉터와 기관 소장 양쪽에서 안정적인 신뢰를 쌓아온 그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 세계를 사유하는 구조를 제시하는 작가로 국제 무대에 자리하고 있다.
사유로 공간을 세우는 세계적 미니멀리스트 ‘이우환’
이우환은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 미술사 안에 본격적으로 위치시킨 작가다. 2024년 ‘제32회 볼프강 한 국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 수상은 그의 작업이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넘어, 동시대 예술 사유에 끼친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건이었다. 이우환은 수십 년에 걸쳐 ‘보는 행위’와 ‘존재의 관계’를 질문하며 서구 중심의 조형 언어에 동양적 사유를 결합해 왔다.
이우환은 국제 미술계에서 ‘모노하(物派)’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 일본에서 전개된 현대미술의 흐름은 사물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경향으로, 이후 서구 미니멀리즘과 구별되는 동아시아 개념미술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그는1970년대 이후 단색조 회화의 정신과 맞닿은 대형 화면 위에 굵은 붓질, 점과 선으로 대표되는 시리즈를 전개하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구축했다.
(왼쪽) 선으로부터, 1974 ©국립현대미술관, (오른쪽) 점으로부터, 1994 ©서울옥션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관계항(Relatum)’이다.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찍힌 점과 선, 바닥 위에 놓인 돌과 철판은 각각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이질적인 재료를 통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드러내고 서로를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우환에게 예술은 무엇을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대표 연작인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는 붓질의 시작과 끝, 반복과 소진의 과정을 그대로 노출한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다시 점으로 돌아가며, 화면에는 작가의 몸의 리듬과 시간이 축적된다. 이 단순한 형식 안에는 ‘행위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조각 작업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일관된다. 자연 그대로의 돌과 산업적 재료인 철판을 나란히 배치한 〈관계항〉 시리즈는 자연과 인공, 동양과 서양,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한다. 돌은 움직이지 않지만, 철판은 공간을 가르고, 관람자는 그 사이를 거닐며 관계의 감각을 몸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우환의 작품은 감상이 아닌 체험을 통해 완성된다.
관계항-지각과 현상, 1969/2015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의 국제적 영향력은 시장 지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글로벌 미술 데이터베이스 아트프라이스(Artprice) 기준, 그는 경매 매출액 기준 세계 100대 베스트셀러 작가 순위 82위를 기록했으며(2025년 기준), 이는 동시대 아시아 작가 가운데서도 매우 높은 위치다.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안정적인 거래량과 기관 소장 이력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생존 작가 작품 가운데 국내 경매 최고가(31억 원)를 기록한 이우환의 대표작 〈동풍(East Winds)〉은 2024년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상반기 경매 프리뷰에 전시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해당 작품은 공식 출품작은 아니었지만, 프리뷰 전시장 내 특별 섹션인 ‘Rocking Abstraction’ 코너를 통해 소개됐다. 이 섹션은 20세기와 21세기 추상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기획 전시로, 크리스티는 이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이우환을 특별히 제시했다. 이는 그의 작업이 일시적인 트렌드나 스타 컬렉터의 취향을 넘어, 국제 미술 시장과 제도권 안에서 지속적으로 신뢰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동풍, 1984 ©서울옥션
국제 무대에서 이우환은 ‘한국 작가’ 이전에 사유의 구조를 제시하는 철학적 조형가로 소개된다. 동양의 여백과 서구 조형 언어를 대립시키지 않고, 하나의 질문으로 엮어낸 그의 작업은 문화권을 초월해 읽힌다. 그가 만들어낸 침묵의 공간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우환의 예술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관계를 만들어내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이우환이 세계 미술계에 남긴 가장 단단한 흔적이다.
동시대 감각을 설계하는 작가 ‘양혜규’
국제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가 발표한 〈2025 파워 100〉에서 양혜규는 38위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 캐피털(Capital) 선정 세계 100대 미디어 설치미술가, 한국 및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의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 수상까지. 양혜규는 한국 동시대 미술을 국제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다.
양혜규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응결(Condensation)〉을 선보이며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테이트 모던, 퐁피두 센터, 뉴욕 MoMA, 함부르크 반호프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로부터 꾸준히 초청받으며 기관 신뢰도가 매우 높은 작가로 자리 잡았다. 특정 지역성에 기대기보다, 동시대 미술이 요구하는 개념적 밀도와 감각적 완성도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사례로 평가된다.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 ©국제갤러리
블라인드, 전선, 방울은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 소재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오브제들은 그의 작업 안에서 본래의 기능을 벗어나 낯설고 환상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기능과 용도를 잃은 사물들은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획득하며, 때로는 생명체처럼, 때로는 의례적 오브제처럼 공간을 점유한다. 이러한 변환 과정은 그를 연금술사에 가까운 작가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시간과 소리, 빛과 공기의 흐름 속에 포함된 존재가 된다.
설치, 조각, 영상, 사진을 넘나드는 조형 언어는 정교하면서도 추상적이며, 시각적 인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권의 민속과 관습, 설화를 참조한 작업들은 관람자가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도록 설계된 구조를 지닌다. 이 지점에서 양혜규는 감각을 조직하는 작가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 Leap Year, Hayward Gallery, London © Haegue Yang 양혜규 梁慧圭
그의 작업은 한국적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보편적인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산업화 이후의 삶, 이동과 망명, 소통의 단절 같은 현대 사회의 조건을 직접적인 메시지 대신 조형 언어로 번역하며, 국적과 문화권을 넘어 읽히는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분단된 한국의 혼란 속에서 독일로 망명한 작곡가 윤이상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윤에 따른 엇갈린 데자부〉,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이 모였던 장소를 참조한 〈생 브누아가 5번지〉는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정치적 의미는 전면에 드러나기보다, 기억과 장소, 개인의 경험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Haegue Yang: Quasi-Heartland, installation view, Contemporary Art Museum St. Louis, Photo: Izaiah Johnson. ©국제갤러리
이러한 접근은 양혜규를 단순한 조각가가 아닌 세계의 조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인류학자적 작가로 보이게 한다. 그의 작업은 설명하기보다 체험하게 하고, 주장하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설화적인 기괴함과 묘한 친근함을 동시에 품은 조형 세계는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놓치지 않는다. 정치와 역사, 개인과 집단, 사물과 감각이 얽힌 그의 조형 언어는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오히려 오래 머무는 질문을 남긴다. 그가 국제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한 서사를 대표하기 때문이 아니라 동시대의 복잡한 감각을 구조적으로 조직해내는 능력에 있다.
이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미학과 전략으로 작업하지만, 국제 미술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지속 가능한 작가’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이우환은 이미 블루칩 작가로서 확고한 시장 신뢰를 구축했고, 김수자는 제도권 미술관과 국제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작품의 개념적 위상을 확장해 왔으며, 양혜규는 아트페어와 글로벌 기관을 오가며 동시대적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차이는 시장 내 역할의 차이이지, 영향력의 크고 작음이 아니다.
그들의 성과는 국적이나 정체성의 표지에 머무르지 않는 미술 언어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한국 미술은 더 이상 주변부의 사례나 일회적 주목의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질문을 생산하고 형식을 갱신하는 하나의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 국제 무대에서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호명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단지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 동시대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예술로 사유하고 감각적으로 응답해 온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관람자와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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