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열어 주는 길을 따라 붓이 춤을 추듯 그려 낸, 『사과의 길』 | 예스24
시를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은 그림작가가 굉장히 넒은 공간을 얻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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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과도가 사과의 표면을 파고들면서 사각, 사각, 동그란 모양으로 늘어지는 껍질. 동그란 모양의 그 길 위로 들어서는 ‘나’는 연분홍 사과꽃, 벌과 나비를 만난다. 작은 아기 사과의 볼이 붉게 영글어 가던 날, 시인 김철순과 화가 김세현을 만났습니다. 
 

 

동시 「사과의 길」은 2014년에 동시집으로 한 번, 올해 그림책으로 새롭게 다시 한번 태어난 작품입니다. 완성된 그림책을 처음 받으셨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김철순 : 빛나는 그림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시”라는 평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긴 시간을 지나 김세현 선생님을 만나 그림책이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김세현 선생님의 마음속에 이 시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느낌, 또 작업 과정에서 시 속으로 점점 깊게 들어가면서 겪었던 마음의 흐름이 있었을 텐데, 그 변화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세현 : 원고를 처음 읽고 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글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1년 가까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그림책으로 만들어 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아침에 산책하는 길에 키 작은 사과나무가 있는데, 매일 길을 걸으며 생각을 굴렸습니다. 살다 보면 흉중에 답답한 그림자가 들어설 때가 있지요. 그런 시절이 지나가고 나니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확 일었어요. 그 기운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지나가고 남은 공간이 만든 기압 차이 같은 것이 동력이었던 걸까요?

김세현 : 맞습니다. 비워진 자리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은, 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사과의 길』은 나의 그림에서 많은 것을 덜어 내고 비워 내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책이 아닌가 해요. 캐릭터나 배경에서 여러 요소를 단순하게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아주 구체적인 재현이 가진 극진한 아름다움, 그리고 묵직함과 가벼운 상승감이 매 장면마다 팽팽하게 맞서는 감각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서로 상반되는 특질들을 어떻게 하나의 파동으로 울리게 할 수 있었나요?

김세현 : 아마 글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의 운율을 타고 가는 캐릭터라면 나비처럼 아주 작고 가벼운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벌이나 나비와 이야기하고 꽃 속의 향기도 더듬으며 모든 경계를 넘어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시가 끌어 주는 부분을 따라가며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서 시적 상상력이 주는 공간이 자꾸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를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은 그림작가가 굉장히 넒은 공간을 얻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얼른 길에서 뛰어내렸죠” 이 행의 힘이 대단합니다. 단절이자 “얼른” 뛰어내리는 즐겁고 가벼운 도약이자 시야가 확 전환되는 순간이에요. 김철순 선생님이 상상했던 이 장면과 그림책 속의 장면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달랐는지요.

김철순 : 나의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판타지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캐릭터가 어떻게 표현될지 너무 궁금했는데, 꽃 피고 열매 맺고 비바람 견디는 과정을 따라가고 또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이 이렇게 표현되다니 감탄스러워요. 어떻게 보면 인생 전체를 비유하는, 어린이 독자에게는 다소 무겁거나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인데 캐릭터를 따라 사뿐사뿐 가볍게 걸을 수 있어요. 이 아이 덕분이에요. 

 

김세현 : 현실로 돌아오는 이 장면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등장시킬지 말지 고민이 있었어요. 노트에 있는 스케치 중에는 엄마의 뒷모습, 앞치마를 붙잡은 아이가 등장하는 버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리듬을 깨지 않고 끝까지 가져가려면 지금처럼 연출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식탁이나 접시 같은 구체적인 요소들도 마지막까지 리듬 안에 놓이도록 했어요.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 이 흐름을 그다음 존재에게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김세현 선생님은 오랜 시간 어린이책을 만들어 오면서 늘 새로운 방식을 찾으셨지요. 붓의 결과 색조의 구성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한지 콜라주 같은 기법을 쓰기도 하셨어요. 이번 『사과의 길』에서의 시도는 그중에서도 또 한 차원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매번 이런 변화를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김세현 : 나는 나를 비우고 스며들게 하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그림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무법(無法)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무언가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 안에서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나의 형식에 갇히지 않는 것. 수묵, 콜라주, 장지, 다 그렇게 만들어진 변화이지요. 

 

그렇지만 한편 그 모든 것이 김세현인 것이네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한마디 남겨 주세요.

김세현 : 오래오래 시를 써 주세요. 자연에서 감각할 수 있는 진실들을 선생님만의 언어로 더 많이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철순 : 제가 「사과의 길」처럼 좋은 동시를 또 쓰면 한 번 더 그림을 그려 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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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김철순> 글/<김세현> 그림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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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