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클래식 음악은 최초의 플레이리스트
클래식 음악은 단정하게 옷을 입고 공연장에 앉아 엄숙하게 들어야 한다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사실 클래식 음악은 생각보다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음악들이 많다.
글: 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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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음악을 주로 유튜브에서 많이 듣는다. 스트리밍 플랫폼도 자주 이용하지만,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넘겨보다가 재치가 넘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들을 클릭해 본다. ‘아침을 기분 좋게 해주는 클래식 음악’ ‘가을밤, 비와 함께 듣는 재즈 음악’ 등과 같은 제목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상황이나 기분, 일명 TPO에 맞는 음악을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라디오에 귀 기울여 만들던 믹스테이프에서부터 MP3,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쳐 유튜브까지, 음악 큐레이션은 시대와 함께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아마 가장 오래된 음악 큐레이션은 클래식 음악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클래식 음악을 ‘작곡가’나 ‘작품 번호’ 등으로 기억한다. 바흐의 BWV, 모차르트의 K 번호, 베토벤의 OPUS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많은 클래식 음악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작곡된 경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래식 음악은 단정하게 옷을 입고 공연장에 앉아 엄숙하게 들어야 한다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사실 클래식 음악은 생각보다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음악들이 많다. 

 

타펠무지크(TAFELMUSIK), 식사할 때 듣는 음악

타펠무지크, 식탁음악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17~8세기 궁정이나 귀족들의 연회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다. 특히 텔레만의 식탁음악이 유명한데. 제목도 ‘Musique de Table(식탁의 음악)’로 붙여서 발표하였으며, 정찬코스에 맞추어 한 작품의 전체 길이는 1시간 30분 정도로 작곡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저녁 식사를 위한 플레이리스트라고 해야 할까? 텔레만은 오늘날 바흐만큼 잘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지만, 당대에는 바흐보다 인기가 많았던 음악가로 그가 작곡한 곡은 2,000여 곡이 넘는다. 

 

수상음악(Water Music), 물 위에서 듣는 음악 

식탁 옆에서 흐르는 음악이 있었다면, 물 위에서 듣는 음악도 있었다.  헨델의 수상음악(Water Music)‘수상음악’은 말 그대로 물 위에서 듣도록 작곡된 음악이었다. 헨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국 왕실의 뱃놀이 연회를 위해 작곡했다. 화려하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으로, 야외에서 연주되는 곡인 만큼 트럼펫의 화려한 연주가 인상적이다. 또한 헨델은 불꽃놀이를 위한 음악도 작곡했는데 그가 작곡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항상 불꽃놀이와 함께 연주된다.

 

가구음악(Musique d’ameublement), 공간의 일부가 되길 바란 음악 

20세기 초, 작곡가 에릭 사티는 이런 상황에 따라 작곡된 음악들을 한층 더 깊게 접근한다. 그는 음악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일부로 존재하길 바랬다. 사티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느라 대화를 멈추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가구처럼 음악도 방 안에 놓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가구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BGM의 시초다. 사티의 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아마 ‘3개의 짐노페디(Gymnopédies)’일 것이다. 모 침대 광고 BGM으로도 익숙한 곡이다. 1920년 파리에서 열린 첫 ‘가구음악’ 공연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은 에릭 사티가 제안한 모습에 훨씬 가까워져 있다. 

 

수상음악, 식탁음악, 가구음악, 이 음악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분명해진다. 우리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음악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플레이리스트를 고르며 음악을 듣는다. 집중할 때, 잠들기 전, 산책할 때, 혹은 그냥 배경으로 틀어두기 위해서. 어쩌면 과거의 사람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클래식 음악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가장 정교한 플레이리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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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클래식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클래식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