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실화인가요?
(…)
그런 소설은 왜 출간되어야 하나요?“
민병훈은 『어떤 가정』(2025)의 시작에, 독자로부터 작품의 존재 이유를 질문받았던 일화를 썼다. 그는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일종의 답이 될 것이라며 소설을 시작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쓴 『달력 뒤에 쓴 유서』(2023)에 이어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자전 소설이다.
허구적 수사, 관념으로의 이행이 허락된 예술의 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호출하는 작가는 필연적인 자기 분해를 통과한다. 회상과 의심, 해체와 재조직을 거쳐 진실이자 상징인 것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직면할수록 소진과 자학의 경계에 선다. 애써 그 틈새를 뚫으면서도 구조와 형식의 날에 깎여 정리된다. 작가는 그렇게 자기를 내어주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를 두고 치유나 승화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저자가 자신을 드러내고 맨몸으로 맞은 통증과 수치를 낭만으로 쉽게 미화해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왜 그런 작품이 세상에 등장해야 할까?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손세임이 자가출판한 드로잉북 『애도일기49+49-49-49』(2014)에 쓰인 문구가 떠오른다. 그것은 망자와 생자 양쪽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죽은 이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읽힌다. 책은 손세임 특유의 ‘검은 드로잉’을 여러 내지에 걸쳐 담고 있다. 환상 속에서 형상을 얻고 변주하는 천일홍의 식물 이미지가 펜 선의 무한하고 집요한 궤적으로 나타난다.
손세임, 애도일기49+49-49-49 총 99장의 드로잉들, 2014, 종이에 펜, 각 13x13cm
그리고 직접 쓴 글귀들. 매일의 수행처럼 이어졌던 ‘그리기’를 의식하고 점검하듯, 그날그날 적은 날짜와 손글씨가 드로잉 하단에 들어가 있다. 썼다가 지워지곤 한 글귀는 어떤 날은 감정적 호소를, 또 어떤 날은 새로운 다짐을 담아 상념인 듯, 외침인 듯 적혀있다. 마음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언니의 흔적을 되짚는 사진들은 덤덤하게 타이핑한 기록과 함께 책장 사이사이에 자리한다. 작가는 그렇게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들이 건너온 시간을 증언했다.
이 소설에 대한 바람은 읽는 이의 경험과 연결되는 것이다. ( - 민병훈, 『어떤 가정』, 작가의 말)
회복은 망각과 복기를 오가다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잊으려 하고, 구태여 기억했다가, 다시 덮어버리고, 지난 뒤 회상하며 추억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방향을 잃고, 때로는 침잠의 늪에 빠져가면서. 다만 분명한 것은, 말하여 꺼낼 수 있을 때 나누고 공감할 가능성에 다가선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우울과 상실의 언어일지라도 말이다.
손세임, 조응하는, 2023, 종이에 펜, 76x56cm
또다시― 손세임의 까만 그림. 그 안에서 작가의 페르소나가 자신의 마른 몸을 거울에 비춰 보인다. 휴대폰 플래시에 반사돼 얼굴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건 몸에 생긴 부종을 감쌌던 긴 압박 붕대. 혼자 있는 방의 형태와 그 공간의 명암을 만들어낸 건 아주 가는 촉의 검은색 볼펜. 자기 체벌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혹독하게 축적된 밀도가 흑암의 너울을 종이 위에 재현한다.
손세임, 저기 오래 바라본 것들이 있다, 2024, 종이에 흑연, 파스텔, 29.7x42cm
삶에 내려앉은 세상의 가장 깊은 어둠. 그 어둠을 깊숙이 직면한 작가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예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러고는 점차 그 탐색과 명상의 반경을 바깥의 풍경으로 확장해 간다. 작가의 시선은 더 이상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작가의 고백은 점점 더 공적인 울림의 장으로 번져 나간다. 손세임의 작업도 그 선상에서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 앞에서, 관객은 더 이상 외부인의 자리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받고, 상처를 통해 서로 접속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었어.
나는 누나가 꺼낸 그 한마디가 긴 세월 잊히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 민병훈, 『어떤 가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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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정
출판사 | 문학동네
달력 뒤에 쓴 유서
출판사 | 민음사
오정은
미술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문사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동시대 미술 현장과 작가 작업을 연구하며 글을 쓴다. 『경향신문』에 미술 칼럼을 연재했고, 『네이버 디자인』, 『월간미술』, 『서울아트가이드』 등 여러 매체에 기고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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