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누구도 공연 보라고 등 떠밀지 않았음에도 묵묵히 ‘맨 끝줄’이라도 사수하려 애쓰며 극장을 지키는 한 관객이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바쁘든 한가하든, 마음이 헛헛하든 충만하든 상관없이 매일같이 공연을 보러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 그들은 대체 왜 이토록 뮤지컬을 사랑하는 걸까? 『맨 끝줄 관객』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쓰였다.
오랫동안 활동하셨는데 드디어 첫 에세이가 나왔습니다.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관객의 일상을 카툰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넘었어요. 큰 공백 없이 꾸준히 일상툰을 올렸지만, 늘 디지털 화면을 통해 작업을 하다 보니 늘 손에 잡히는 물성이 있는 작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요. 그렇게 첫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고 작업이 끝나고 나면 마냥 후련하고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뿌듯한 기분이 절반, 조심스러운 기분이 절반이에요. 아무래도 오래 미뤄왔던 작업을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동시에 출간 경험이 처음이라 겪게 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함께 있어요. 책 너머든, 모니터 너머든, 비슷한 일인데도 그래요.
보통 연극·뮤지컬 도서들은 공연 작품을 소개·설명해 주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특이하게 ‘에세이’를 선택하셨습니다. 콘셉트를 이렇게 잡은 이유가 있으실까요?
사실 출판사로부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도 공연 작품에 대한 소개를 다룬 책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지 의견을 주셨어요. 기존에 채널예스에서 연재하고 있는 공연 소개 카툰을 더 확장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연 작품에 대한 소개, 설명보다는 관객의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고요. 관객은 무대를 만드는 창작자도, 무대 위에 서는 출연자도, 무대를 평가하는 비평가도 아니지만 공연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관객의 기록은 아주 사적인 기록이나 팬심 가득한 후기로만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존재하기만 하죠. 관객의 목소리가 더욱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관객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저의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게 됐어요. 어렵고 딱딱한 공연 예술에 대한 비평이나 해석이 아니라, 어떤 공연에 대한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는 안내서가 아니라, 객석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일기 쓰듯 적어내려 갔어요.
‘최애 배우’는 아직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최애 작품’으로 꼽을만한 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혹은 ‘이건 꼭 봐야만 해!’ 하는 공연이라든지요.
최애 배우는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응원하는 배우는 정말 많아요. 안 그래도 제가 책 속에 ‘한 명의 최애는 없지만, 애정하는 배우는 한 트럭이다!’라며 좋아하는 배우들을 잔뜩 나열한 구간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 정문성 배우의 <비하인드 더 문>을 보며 ‘아! 정문성 배우를 언급하는 걸 까먹었네!’ 하고 땅을 치고 후회했어요. 인쇄된 책 속 활자 위로 교정 부호를 넣어 ‘정문성 배우는 눈동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라고 쓰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많은 말과 행동을 거창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배우들이 있잖아요. 제게는 정문성 배우가 꼭 그런 배우예요. 코미디극을 연기하든, 비극적인 캐릭터를 맡든, 잔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든, 그 배우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두 팔을 들고 항복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어요.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여기서 뭘 더 들려주지 않아도 전 이미 당신의 이야기에 지금 완전히 푹 빠졌어요!’라고요.
변덕이 너무 들끓는 탓에 최애 작품을 꼽기가 참 어렵지만,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극장을 찾았던 작품은 <하데스타운>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였어요. 답이 정해진 비극적인 결말 속에서도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있는 힘껏 분투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여러 날 기운을 차리게 했던 극이었거든요. 모아놓고 보니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연 300회 이상 공연을 본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관극이 질릴 때는 없으셨는지, 이렇게 꾸준히 활동하시는 비결이 뭔지 궁금합니다.
공연을 꾸준히 계속해서 볼 수 있는 힘에는, 모순되게도 그만큼 좋은 공연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시금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아름답고 찬란한, 멋지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으니까요.
물론 공연을 보다 보면 너무 별로인 공연을 만나기도, 질리고 따분한 공연을 볼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최대한 공연의 장점을 발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집단적 사고의 폐단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반대 의견을 자처해서 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해요.
저는 공연을 볼 때면 일부러 천사의 대변인이 되곤 해요. 매주 여러 공연을 소개하면서 느꼈던 점은 내게는 정말 별로였던 공연이, 다른 누군가는 정말 재밌고 소중한 공연일 때가 있다는 거였어요. 어떻게 사람마다 천차만별 공연에 대한 감상이 다를 수 있을까 신기했죠. 그래서 아무리 취향에 맞지 않는 공연이라 하더라도 이미 공연장에 들어온 이상 객석을 박차고 밖으로 나갈 게 아니라면 공연의 장점을 최대한 찾아서 발견하려는 훈련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일부러 찬성 의견을 자처하면서 공연을 보다 보면 별로라고 생각했던 공연과 새삼 정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게 공연을 보다 보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공연이 우연처럼 찾아오기도 하고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매일 극장을 찾곤 합니다.
조금 다른 결의 다른 얘기지만 저는 정말 뭘 꾸준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남들 다 받는 개근상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런 제가 별다른 권태로움 없이 꾸준히 관객 생활을 자처하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관객은 나의 천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특히 연극과 뮤지컬 둘 다 사랑하시는 게 너무나 잘 느껴졌습니다. 보통 둘 중 하나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뮤지컬 팬에게는 연극만의 장점을, 연극 팬에게는 뮤지컬만의 장점을 각각 하나씩만 꼽아드리자면 뭐가 있을까요?
연극의 장점은 텍스트의 말맛이 정말 잘 살아 있다는 거예요. 말의 리듬과 호흡이 그 자체로도 정말 재밌는데, 그 말속에 송곳처럼 깊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경우들도 많죠. 특히 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공연되고 있는 고전 연극들을 보고 나면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진지한 감상들이 묵직하게 남아요. 어떤 대사 한 줄이나 침묵의 순간이 제게 말을 걸어오는 거죠. 그렇게 연극이 건넨 질문들을 곱씹고 풀어가는 과정은 지적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생각해 본 적 없던 심오한 메시지에 온 마음을 빼앗기기도 해요.
그에 반해 뮤지컬은 좀 더 종합적인 무대 예술이죠. 대사 대신 음악이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다양한 몸짓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시놉시스가 다소 얕고 약하더라도 음악의 존재감 자체가 큰 울림을 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연극처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뮤지컬도 정말 많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관극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찬란한 몸짓과 운율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관극의 즐거움이 상당하니까요. 깊숙한 말맛을 느끼고 싶다면 연극으로, 또 운율이 건네는 감성을 맛보고 싶다면 뮤지컬로 왔다 갔다 하며 관람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맨 끝줄’에서 관극한 경험이 있으신지, 맨 끝줄에서 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정말 자주 있어요. 너무 궁금한 공연인데 티켓 값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을 때, 그 무수한 객석에서 내 자리 하나 구하기가 힘들 때, 배우가 면봉만 하게 보이더라도, 대롱대롱 매달려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등등 여러 마음과 상황에 따라 맨 끝줄 좌석에 앉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죠.
객석 관객과 밀접하게 호흡하는 극을 볼 때면 너무 거리가 멀어 소외감이 들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날에는 이야기가 너무 무겁고 버거워 차라리 멀리서 이들의 이야기를 관전하고 있다는 게 다행스러울 때가 있기도 해요. 또 어떤 날은 너무 멀리서 본 게 아쉬워 기를 쓰고 전진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때때로 힘을 뺄 수 있어서, 또 반대로 힘을 낼 수밖에 없게끔 만나는 묘한 위치인 것 같아요. 어찌됐든 맨 끝줄 객석이라 하더라도 그게 관객을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내 자리 하나 사수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극장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대체 왜 이토록 뮤지컬을 사랑하는 걸까? 『맨 끝줄 관객』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쓰였다”는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그 답을 찾으셨을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죠. ‘티켓 값은 환불이 안 되니까’라는 변명으로 넘어가기에는 훨씬 더 진심인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그런 사람들이요. 저도 물론 그런 사람이고요. 맨 끝줄이라도 좋으니 계속해서 극장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 마음에 대해 저 스스로도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글을 쓰면서 무대라는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나치게 많이 발견하게 됐고요. 그 이유를 하나의 축약된 문장, 간략한 한 줄로 표현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요.
좋아하는 게 있어도 괜히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잖아요.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 순수한 마음이 주는 행복감이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좋아한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이유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맨 끝줄 관객』은 관객으로서 느끼고 겪었던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연과 관련된 얘기가 전부는 아니에요. 오히려 어떤 구독자분께서는 ‘책 표지에는 뮤지컬 에세이라고 써두셨으면서, 까서 읽어 보니 이거 그냥 뮤지컬 없는 에세이던데요!?’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뮤지컬이나 공연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보다는, 그걸 바라보는 한 관객의 이야기를 담겨있어요. 그리고 관객석에는 사실 누구나 앉을 수 있잖아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직업이나 나이, 그 어떤 것도 관계없이요. 그런 마음으로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던 생각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관객의 삶 자체에 대해 보다 깊게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고, 공연 문화에 관심이 없더라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치열했던 순간을 한 번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향한 애달픈 마음과 사랑을 고백한 이야기니까요. 무엇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맨 끝줄 관객
출판사 | 문학수첩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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