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마이크를 찬 채로 6개월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아기와 함께 일하러 가면 걱정되면서도 또 그렇게 충만할 수가 없다. ©Tanaka Ken
출산 후 서너 달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강연을 나갔다. 이제 막 뒤집기를 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자 담당자는 아이와 함께 온다면 육아 경험이 있는 직원을 붙여줄 수도 있고 건물 내에 수유실과 유아 휴게실이 있으니 얼마든지 이용해도 된다고 했다. 강연을 하는 동안 친구가 아기를 봐주기로 했다. 그러나 육아를 해본 경험이 없어 아이가 울거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해할 것 같아 담당자의 지원 또한 받기로 했다.
아직 들어가지 않은 배를 겨우 바지에 집어넣고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마이크를 잡았다.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기가 신경 쓰였지만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강연을 마치고 독자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들고 줄을 섰다. 눈을 마주치고 사인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마음이 급했다. 출산 경험이 있는 독자는 바쁜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서 아이를 보러 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걱정과 안도와 행복한 마음을 안고 휴게실에 도착하니 아이가 진이 빠져 있었다. 낯설고 불안해서 울기 시작했는데 젖 먹는 타이밍과 겹쳐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안 되었다고, 30분이 넘게 울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건네받자마자 담당자는 때로는 분유를 줘도 괜찮다고, 그게 아기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을 거라며 조언했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동시에 충만했다. 나 다시 일할 수 있구나, 이게 바로 일하는 감각이구나 하고 안도감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나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했기 때문에 일이 들어올 때마다 조건을 붙여 회신했다.
“저는 모유 수유를 하고 있고 아이와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최선을 다하겠으나 아이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하는 사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중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삼매봉도서관에서의 강연은 임신 후기에 확정된 일정이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제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없었기에 비행기를 두 번을 타야만 했다. 현재는 배가 불러 어렵고 출산 이후에야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되면 내년 하반기나 될 텐데 괜찮겠냐는 메일에 담당자는 문제없다며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출산 후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는 파트너, 아이와 함께 바깥바람을 쐬는 마음으로 제주로 향했다. 무대 뒤로 열대 나무가 가득한 멋진 공간에서의 강연이었다. 환대받고 환영받는 자리였는데 알고 보니 담당자가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성이었고 출산 유경험자였다. 그는 수줍게 현재 키우고 있는 첫째 아이의 이름이 내 아이의 이름과 같으며 지금 둘째를 임신하고 있고 곧 출산휴가를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강연 일정이 미뤄져도 괜찮다고 전혀 문제없다고, 무슨 일이 생겨도 당연히 이해한다고 너그럽게 말해주었던 건 그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담당자는 작년에 연락하고 이제 처음으로 대면하는 것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서 그런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며 친밀감을 고백했다. 강연 시작 전, 파트너가 먹을 걸 사 오겠다며 잠깐 사라졌었는데 강연 시작 시간이 임박해도 돌아오지 않고 아이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을 때 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던 순간에도 그냥 아이를 안고 해도 괜찮다고 여유롭게 말해주었던 건 바로 다 그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쿠오카에 위치한 세이난가쿠인대학에서의 영화 상영과 강연 역시 출산 이전에 잡힌 일정이었다. 한 교수님께서 학내에서 학생, 외부인과 함께 베트남전쟁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며 기획한 행사였다. 언제쯤 일정을 잡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나는 처음 해보는 출산이라 이후의 일정을 잘 모르겠다고 하자, 타국에서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그는 나에게 모든 정보와 경험을 일러주었다. 이즈음에는 몸을 풀고 슬슬 일하고 싶어질 것이며 아기는 파트너에게 맡겨두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아기와 함께 오고 싶을 테니 강연을 하는 동안 전문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유아 휴게실은 따로 없지만 강의실 하나를 추가로 빌려 공간을 온전히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도 말이다.
그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열정적으로 아이 돌봄 예산을 만들고 통과시키고 집행했다. 학내 최초로 아이 돌봄 예산을 통과시킨 사례라고 했다. 엄청나게 정치적인 행위였고 동시에 대단한 실행력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니 덕분에 꼭 필요한 일을 해볼 수 있었다며 되레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물으니 마침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분이 학과장으로 있었고 둘이 의기투합해서 진행하니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상적으로 출장 나온 전문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강연장으로 내려가 안심한 상태로 영화 상영과 강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보라가 어떻게 강의하나 보고 싶다며 찾아온 파트너와 파트너의 어머니 역시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 참가자로서 자리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도 일하는 동안 돌봄 공간과 인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런 돌봄의 시공간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멋진 사례였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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