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
[이다혜 칼럼] 끝 다음에 오는 것들 | 예스24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이상한 위로의 말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환상의 빛』을 읽고 보기를 권한다.
글: 이다혜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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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에 ‘끝’을 맺는 이야기와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나는 후자 유형의 이야기를 버거워하지만 언제나 이쪽으로 마음이 조금 쏠리고야 만다. 


마지막에 끝을 맺는다면 그 이야기는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연인이 키스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는 장면은 일일연속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명백한 해피엔딩이지만, 그들이 이후로도 행복할지는 알 수 없으며 작가는 어려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얼렁뚱땅 이야기를 종료시킴으로서 그들 모두를 무대에서 치워버리기로 한다. 어쨌든 끝나는 시점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난 뒤 영화관을 나서면서, 책을 덮으면서, ‘그 이후’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근심하곤 한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복수? 할 수 없다. 그 이후에는 어쩔 건데. 사이다? 불가능하다. 그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일 뒤의 권태와 슬픔, 목적의 상실과 그로 인한 공허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꽉 닫힌 엔딩’의 시원함이 얼마나 ‘이야기’다운 발상인지 안다.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기승전결이랄 게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승전결이 없다는 건 사실 과장이지만, 사건은 있되 결정적으로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소름끼친다. 이 쪽은 인생을 좀 더 닮은 구석이 있다. 우리는 일상이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튀어나오는 욕망을 무시하고, 발목을 잡는 피로를 뿌리치고, 여상한 표정을 짓는 법을 익힌다.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의 대표적인 패턴은 상실 이후를 다루는 작품들이다. 우주 조난극처럼 보이는 영화 <그래비티>에서 우리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아이가 죽은 뒤 이미 반쯤 죽어 있다. 우주에서 진짜 죽을 기회가 생기자 그녀는 삶을 포기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녀를 어떻게 다시 지구의 중력으로 끌어들일까. 어떻게 다시 살고 싶게 만들까. 


 

 

소설 『환상의 빛』은 서른 두 살이 된 여자의 편지로 시작한다. 살던 곳을 떠나 해변 마을로 시집온 지 삼 년이라는 여자는 ‘당신’과 사별한지 칠 년이나 되었다고 회고한다. 소설의 간결한 첫 문단은, 이렇게 편지글의 모양새다. 편지일까? 가까운 사람이 죽은 뒤, 죽은 사람이 영영 떠나버리는 일에 저항해 본 사람이라면 마음 속으로 이렇게 저렇게 말을 걸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토록 다정한 말걸기. 

 

여자는 해변 마을의 풍경을 차근차근 전하지만, 마음 속에는 언제까지고 ‘당신’이 철로 위를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철로 위를 걸어가다가 열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그녀는 남편이 왜 그곳을 걷고 있었을지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결혼하고 이제 막 첫 아이가 태어나 젖을 먹던 시기.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렇게 멋대로 죽어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가난한 젊은 부부였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다. 1979년에 쓰인 미야모토 테루의 이 소설은 공동변소를 쓰던 빈곤한 주택가 풍경, 그곳에서 성장해 중학교만 나와서 일을 시작한 남자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를 과장되지 않게, 하지만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써내려 간다. 며칠간 비가 내려 포장마차를 하는 옆방 젊은 부부가 장사 못 할 일을 걱정했는데 그들이 두 딸까지 죽이고 자살했던 일 같은 것 말이다. 부부를 발견한 사람은 여자의 아버지였고, 경찰 신고 역시 그가 했는데, 경찰이 발견한 유서에는 장례를 치를 돈 약간을 남겨두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돈은 보이지 않았고, 경찰은 여자의 아버지를 의심했다. 억울한 마음에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는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고향에 가겠다고 집을 나간 일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번에도 아버지를 의심했고, 집 다다미 아래 흙을 전부 파서 시체가 숨겨져 있지 않았는지 조사하고 떠났다. 할머니가 사라진 즈음, 마치 할머니와 교대라도 하듯 나타난 소년이 남편이 된 그 사람이었다. 남자의 급료는 한심할 정도로 작았지만 두 사람은 즐겁게 살았다. 최소한 그녀는 결혼하고 나서 훨씬 행복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남편이 죽었다. 갓난아이가 딸린 젊은 과부가 되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던 때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오쿠노토의 최북단에 있는 쇠락한 어촌으로 시집을 가기로 했다. 남편이 될 사람에게는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다고 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도, 남편이 될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남편이 따라다니는 풍경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미야모토 테루는 적막하게까지 느껴지는 여자의 내면을 적어간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활기차게 대화하기보다 듣는 쪽의 사람인 그녀는 오직 마음속으로 전남편에게 말을 걸 때만 쉼없이 말한다. 

 

영화는 소설의 고요한 수다스러움을 침묵으로, 어디에도 닿지 않는 시선으로 치환한다. 


영화 <환상의 빛> 스틸컷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TV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각색작을 첫 영화로 선택했다. 원작은 거의 자연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궁핍한 삶을 그려내는데, 영화는 그런 부분을 털어내고 1990년대로 이야기를 가져왔다. 바뀐 것은 그것만은 아니어서,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 대체로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기묘한 위화감이 있어서, 마치 아침에 나간 방으로 저녁에 돌아와보니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긴 한데 하나하나 전부 옮긴 흔적이 있는 느낌이다. 

 

주인공인 유미코(에스미 마키코)의 전남편 이쿠오를 연기하는 배우는 아사노 타다노부인데 영화는 젊은 부부의 행복한 신혼에 꽤 긴 분량을 할애한다. 상실의 고통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행복부터 안겨주는 셈이다. 유미코는 항상 이쿠오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소설에서도 부부는 화목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첫 페이지부터 남편의 죽음을 알리고 시작했다면, 영화에서는 남편이 죽을 일을 알리지 않고 화목한 모습부터 보여준다. 살림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해 보이지도 않는데, 소설에서 이쿠오가 집중할 때면 사팔뜨기가 된다는 설정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으며, 유미코는 장례식이나 종교의식에 입는 옷처럼 보이는 단순하고 모노톤의 옷을 입는데 이 옷은 일본의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기타무라 미치코가 꼼데가르송 옷을 손본 것이다. 이쿠오의 죽음 이후 해변 마을로 이사간 뒤의 유미코는 이 단순하고 침잠하는 옷을 입고 사물처럼 가만히 존재하곤 한다. 오즈 야스지로를 연상시키는 다다미샷으로 잡아내는 실내 장면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정적이고 시적인 인상을 주는 카메라는 나카보리 마사오로, 그는 이 영화로 제5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간 척을 하지 않는다.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감을 두고 바라본다. 소설이 속내를 하나하나 들려준다면, 영화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 바닷가의 유미코를 멀리서 잡은 어둑한 장면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인데, 유미코를 찾으러 온 다미오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목을 보면 인물의 인영이 마치 그 주변 해안의 바위처럼 보인다. 무생물의 느낌. 그 상태로부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유미코가 재혼한 남편인 다미오의 성격이 소설과 영화에서 다르다. 작은 해변 마을에서 유미코를 받아주는 이 남자를 어떤 사람으로 상상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미야모토 테루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른 길을 간다. 

 

유미코처럼 이쿠오의 얼굴에 골몰하곤 했던 카메라는 다미오의 얼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유미코는 그의 이름을 잘 부르지도 않는다. 관객에게도 (유미코에게 그렇듯) 다미오의 존재는 시종일관 흐릿한 것이다. 다미오보다는 오히려 새 시아버지 쪽의 얼굴을 더 잘 보여주는 식이다. 영화에서는 맞선 장면이 나오지 않고 유미코와 유이치 모자를 기차역으로 데리러 나온 다미오와 도모코 부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첫 등장인데 이 때부터도 얼굴은 어둑한 빛에 가려져 있다. 그는 소설에서 중학교만 졸업한 뒤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데, 큰 도시에 살다가 사별한 아내와의 결혼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설의 그는 투박하고 묵직한 사람으로, 아내가 자꾸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는 아내가 ‘비밀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누구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안다. 남편의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말을 슬쩍 돌린 유미코는 부러 그의 전 부인을 질투하는 척한다. 투박한 남자가 예측할 수 있는 얼굴을 꺼내보이는 것이다. 유미코는 참다 못해 불쑥 이쿠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만 타미오는 오래 침묵하다가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라는 한 마디만 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린다. 속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던한 이 남자는, 죽음으로 계속 이끌리는 유미코를 느슨하지만 확실하게 생에 잡아둔다. 


영화 <환상의 빛> 스틸컷

 

영화의 다미오는 투박하다기보다 담백한 남자다. 말하지 않는 것을 헤아릴 줄 알지만 기다리는 사람이다. 소설의 이불 속 대화가 영화에서는 바닷가에서 이루어진다. 끈적하지 않고, 침범하지 않는다.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와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극한의 상실(남편이 정말 자살을 했는지, 자살을 했다면 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 남겨진)을 겪은 유미코에게 어떤 사람이 필요할지를 두고 고른 남편감들인 것이다. 후자는 수수한 척 해도 꼼데가르송 느낌이고, 전자로 말하자면 바다나 산과 같은 인상이다- 변덕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그녀 자신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두 남자 다 마음에 든다. (웃음) 미야모토 테루는 이렇게 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나 궁리를 한 것도 아닌데 다미오 씨와 도모코는 이제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습니다.” ‘각별한 노력이나 궁리를 한 것도 아닌데’라는 무심해보이는 말 뒤에는 죽음에 이끌리지만 끌려가지 않으며 매일을 살아온 유미코 자신의 의지가 있다. 두 남자의 차이는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반영해서, 영화는 언제 봐도 미니멀하고 세련된 느낌을 잃지 않는 가운데 슬픔에 잠겨 있고, 소설은 끈끈한 고단함 속에서 곧은 심지를 잃지 않는다. 

 

<환상의 빛>은 ‘너의 죽음’ 뒤에 남은 사람의 살아냄을 다룬다. 도무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듯한 ‘그 후’를 따라간다. 그런 이유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이상한 위로의 말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고 보기를 권한다. 소설은 73쪽, 영화는 109분. 사람이 왜 죽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고, 살아가는 힘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통과하는 것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삶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응원하지 않는 이야기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민 손을 맞잡는다. 

 

추신.

 

2024년 5월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극장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판 <환상의 빛>의 특별 한정 상영이 있었다. ‘노토반도 지진 와지마 지원 특별 상영’이라고 이름 붙은 이 행사의 수익금은 제반 비용을 제하고 피해지역인 와지마시에 기부되었다. 이시카와현 와지마 시가 1995년 개봉한 <환상의 빛>에 등장하는 해변 마을이다. 고즈 나오에 프로듀서는 특별 상영에 부쳐 영화 제작 당시를 회상하는 코멘트를 남겼다. 1992년 미야모토 테루 작가의 집으로 찾아가 영화화 판권을 달라고 청한 일에서부터,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약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다 마음을 접기 위해 와지마로 여행을 간 일까지를. 관광협회 사람이 영화에 대해 듣고는 무엇이든 돕겠다고 나서서, 폐가였던 집을 구해 유미코와 다미오의 집 세트로 쓰고, 아침 시장 조합의 협력을 얻고, 스태프가 머물 숙소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부인회가 끓여준 미소시루까지 회상한 그는, 노토 지진에 대해 말한다. “아침 시장 거리는 사라지고, 주인공이 살던 항구 마을은 고립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이 이번 재상영입니다. 영화 속에 남겨진 '와지마의 아름다움'을 많은 분이 보게 함으로써 복구 지원의 고리를 넓히고자 합니다.” 

 

“노토는 다정하다, 흙마저도.”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영화가 그곳에서 ‘가능태’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마치 유미코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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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저/<송태욱> 역

출판사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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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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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테루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읽은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4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오테몬학원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산케이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1975년 신경불안증으로 퇴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77년 『진흙탕 강』으로 다자이오사무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이듬해 1978년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다졌다. 폐결핵으로 일 년 가까이 요양한 뒤 곧 다시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한다. 1987년에는 『준마』를 발표하면서 역대 최연소인 40세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JRA상 마사문화상을 받았다. 이후 아쿠타가와상, 미시마유키오상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각종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강 3부작’으로 불리는 「흙탕물 강」, 「반딧불 강」, 『도톤보리 강』, 서간체 문학인 『금수』, 자전적 대하 작품 연작으로 영화화되거나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유전의 바다』(1984), 『도나우의 여행자』(1985) 등이 있으며 『사랑은 혜성처럼』, 『해안열차』, 『인간의 행복』, 『이별의 시작』, 『피서지의 고양이』, 『반딧불 강』, 『우리가 좋아했던 것』『파랑이 진다』『환상의 빛』 등의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