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이후의 세계를 다시 통합한 위대한 정복자의 역사, 『티무르 승전기』 | 예스24
비이슬람권 최초의 『승전기』 교감, 완역, 축약 편집본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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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는 1369년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유목 집단을 통합했고, 곧 차가타이울루스와 옛 훌레구울루스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후 1405년 명나라 원정길에서 사망할 때까지 킵차크초원과 아나톨리아반도, 시리아와 델리 등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정복했다. 이 책은 ‘천궁의 합의 군주’이자 ‘세계정복자’인 티무르가 일으킨 정복 전쟁 및 영토 확장 과정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며 동서의 세계가 다시 한번 연결되는 장면을 드러낸다. 비이슬람권 최초로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의 『승전기』를 완역한 이주연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티무르 승전기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자료인데요. 어떻게 이 책을 번역할 결심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학사로 다른 전공(물리학)을 공부하다, 대학원 때 역사로 분야를 바꾸었습니다. 석사 때 중국 서부 신장 지역을 연구했고, 박사를 시작하면서 티무르조를 공부해보겠다고 결심했죠. 그런데 여기에 관해서는 국내에 연구된 바가 많지 않아서 기본 지식부터 쌓기로 했습니다. 사실 학자들이 티무르조의 역사를 독자적 연구 대상으로 삼은 지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다소 단순한 방법이지만 가장 정공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1차 사료 강독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어떤 시기를 공부할 때 주요 사료를 통째로 읽어서 머릿속에 넣어두고 시작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석사 논문을 쓸 때도 페르시아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료부터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박사 때 연구 지역을 바꾸는 바람에 다시 기초 사료부터 읽어야 했죠. 이왕에 그럴 것이라면, 사료를 번역하는 것으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때 지도교수님께서 똑같은 제안을 해주셔서 덥석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티무르조 사서 중 하나를 번역하면 제 연구 대상을 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저도 번역하며 티무르조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특징이 잘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원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점 혹은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일까요?

책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티무르의 탄생’을 번역할 때부터 괜히 이 사료를 선택했나, 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티무르조 사서는 여러 가지인데, 여러 변수를 다 고려해서 『승전기』를 선택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땐 페르시아어 사료의 특징을 잘 알지 못했고, 사료 각각의 특징도 잘 몰랐죠. 가장 유명한 책이라 선택했고, 무엇보다 ‘박사 논문이라면 이 정도 두께는 돼야지’라고 생각했는데요. 첫머리의 티무르가 탄생한 무렵의 별자리 상황을 장황하게 묘사하는 대목부터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12개의 성좌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별자리의 상황과 이슬람 점성술의 전문용어로 티무르의 운명을 예견하는 내용에서 … 과연 내가 이 책을 잘 이해하고 번역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때부터 서양 점성술 관련 서적을 부랴부랴 읽었는데, 문제는 원문이 페르시아어로 되어 있다 보니 점성술에 관해 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또 페르시아어 점성술 용어사전을 구했습니다. 그제야 사료의 내용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죠. 필요할 마다 관련 자료를 조사해 번역에 적용하면서 15세기 페르시아 지식인의 글을 읽기 위한 소양을 갖추려 노력했습니다. 

 

『티무르 승전기』의 길고 긴 번역과 출간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번역의 어려움도 있고, 저의 페르시아어 능력을 길러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1년 정도 이란에서 공부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곳 선생님들이나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티무르조는 외부 세력이 침입한 시기이기 때문에, 왜 그 시기를 공부하느냐는 질문과 약간의 타박을 받곤 했어요. 문학적 표현을 가르쳐준 한 선생님은 “티무르제국은 7만 명의 이란 주민을 하루아침에 학살한 잔인무도한 나라”라고 성토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티무르조 역사를 공부하러 왔다는 걸 반가워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즈베키스탄은 현재 페르시아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티무르조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은 많지만 문헌 자료와 연구 성과를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전국에 산재한 티무르조의 유물과 유적에 붙은 안내판의 설명도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의 역사와 사서에 쓰인 역사의 차이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역사서에 적힌 내용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죠. 

 

박사 논문 발표 이후 축약본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박사 논문을 써본 사람은 다 알 거예요. 한동안은 그걸 다시 꺼내보기 싫거든요. 석사 논문처럼 아예 감추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논문을 볼 때마다 이 부분은 내가 왜 이렇게 했을까라는 아쉬움만 들어서죠. 게다가 제 박사 논문은 1000쪽이 넘어서, 다시 펴는 게 무섭기도 했습니다. 

한편 박사 논문을 쓰면서 흥미를 느낀, 예를 들면 『승전기』의 달력 체계나 티무르조의 종교인들, 그 당시의 화폐 제도 등의 주제를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주변에서 박사 논문을 마치면 논문 10개는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진짜로 『승전기』에서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을 따라가면서 점점 할 일이 늘어났죠.

그러다 작년(2024년)에 지도교수님께서 『승전기』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축약해서 소개하면 좋겠다고 권하셨어요. 그 얘길 듣고 비로소 시작했습니다. 다시 보니,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많았고, 또한 축약 작업도 처음이라 그 기준을 세우고 포함할 내용과 정리할 내용을 가려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나 아닐 때나, 머릿속은 온통 이 사건은 어떻게 정리하고 저 인물은 어떻게 소개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이만큼 지나갔네요. 

 

박사 논문을 완성했을 때와 단행본이 출간되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의 연구 분야는 ‘희소 분야’로 분류되어서, 제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 애를 먹곤 했습니다. “혹시 티무르 알아?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인데…”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50퍼센트 정도만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라고 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예 모르는 분야입니다. 처음 박사 논문을 완성하고 주변에 알렸을 때 “그래서, 전공이 뭐라고?”라는 반응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논문은 이렇게 두꺼워?”라는 반응이 뒤따랐고요. “너는 이란에서 공부하고 온 거 아냐? 그런데 왜 논문은 우즈베키스탄 역사야?”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티무르조를 조금이라도 알리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문의 두께 때문에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축약한 단행본을 출간해 제 연구 분야를 한 번쯤 읽도록 권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주변에서 “박사 논문에 비해 분량이 많이 줄었으니, 이제야 볼 수 있겠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티무르 승전기』는 정복의 역사도 흥미진진하지만, 해제에 소개된 당대의 지식 체계와 문화〮예술의 변화상도 매우 유익합니다. 이런 점에 미루어볼 때, 원전 번역 연구에는 무언가 특별한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엇일까요?

질문하신 것처럼 이 책의 주요 줄거리는 티무르의 정복이지만, 동시에 당시의 시대상을 여러모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요, 『승전기』를 저술한 야즈디가 훌륭한 천문학자이자 수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보니 소소한 표현 하나에도 과학적 사고가 녹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티무르가 주치울루스의 톡타미쉬 칸을 공격하기 위해 수도인 사마르칸트에서 볼가강 중류로 진군해 콘두르차 전투를 치를 무렵의 기록을 볼까요. 야즈디는 여기에 “그 지역에서는 일몰 전에 일출의 흔적인 노을이 나타났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현상은 보통 노을이 길게 지속되는 위도 60도 이상의 고위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콘두르차 전투가 발생한 곳은 위도 53도 정도이고, 전투가 발생한 시점은 6월 하순, 그러니까 하지 무렵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백야는 아니더라도 하루 중 낮이 훨씬 길 때죠. 야즈디는 그 지역에 직접 방문한 적 없는데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하필 그때가 하지 무렵이기도 했으니, 티무르의 군대는 길고 밝은 낮을 이용하여 적을 쉴 틈 없이 압박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국은 톡타미쉬의 군대를 무너뜨린 게 아닐까. 그렇게 저 스스로 티무르에게 크게 이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톡타미쉬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주치울루스의 영토인 아제르바이잔과 호레즘을 차지한 티무르를 물리치는 건 정당한 대응인데, 티무르의 관점에서 작성된 사료를 읽으며 번역하면서 그의 입장을 제 일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연구할 때는 과도한 몰입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양한 입장을 관망해야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행동과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당시의 제반 상황을 고려하고 염두에 둔 상태에서 몰입하는 것이 때로는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티무르와 그의 시대에서 무엇을 발견하기를 바라나요?

티무르가 살았던 14세기 중앙아시아와 이란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분이 많을 거예요. 그들이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종교를 믿고, 경제활동과 기후는 어땠고, 문화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떠올리기 쉽지 않겠죠. 저 또한 처음에는 당시 이곳의 상황을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티무르가 이룬 정복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우선 이 책이 낯선 14세기 중앙아시아와 이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조그만 창이 되길 바랍니다. 

티무르의 사망과 함께 개막된 15세기도 매우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이슬람권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보통은 8세기에 시작된 이슬람 황금시대를 이야기한 다음 십자군 원정과 몽골의 침입, 그리고 이어진 대항해시대 등을 언급하면서 이슬람권이 일련의 사건으로 쇠퇴했다고 마무리 짓곤 합니다. 그런데 십자군 원정과 대항해시대 사이의 기간도 수백 년이고, 이슬람 황금시대의 증거에는 십자군과 몽골 침입 이후의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5세기의 이슬람권은 주변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각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환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어우러져 예기치 못한 역사적 흐름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슬람권에서도 그와 같은 발전이 16세기 이후에 올 또 다른 도약의 밑바탕이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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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승전기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 저/<이주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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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