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의 중화권 대중문화와 문학
[김이삭 칼럼] 한-타이완 문학 교류의 첫 단추 | 예스24
김이삭 작가가 전하는 한국-타이완 퀴어 문학 교류 행사 현장의 모습.
글: 김이삭 사진: 김이삭
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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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오후 2시 반, 타이난에 있는 타이완 문학관 본관 대회의실에서 한-타이완 퀴어 문학 교류 행사가 열렸다. 원래는 타이베이에 있는 타이완 문학관 분관, 그중에서도 작가 레지던시 공간인 뮤즈 가든 안 작은 다다미방에서 열려야 했던 행사였다.1 하지만 퀴어 문학 국제 교류를 위해 타이완을 찾은 서장원 작가와 타이완 최초로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 양솽쯔 작가가 대담에 참여하면서 행사 규모가 커졌다. 최대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다미방(타이완 문학관 분관 中 뮤즈 가든)에서 최대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문학 살롱(타이완 문학관 본관)으로, 심지어 행사 전날에는 최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회의실로 개최 장소가 옮겨진 것이다.


이날의 행사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특정 주제를 기반으로 각자의 견해를 드러내는 강연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질의응답이었다. 작가별 강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장원 작가는 ‘문단 내 성폭력’이 한국 문학계에 미친 영향, 문학 속 여성 혐오 및 이성애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이에 대한 반향으로 독자가 퀴어 문학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맥락을 설명하면서 타이완 독자들이 좀 더 쉽게 한국 퀴어 문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와 동시에 한국 퀴어 소설과 (한국에 번역 출간된) 타이완 퀴어 소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논하였다. 

 

반면 양솽쯔 작가는 동지 문학(타이완에서는 퀴어 문학을 동지 문학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동지 문학과 퀴어 문학이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여성 동지 문학인 레즈비언 문학과 GL(지엘), BL(비엘), 백합 문학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 경계가 어떻게 나뉘고, 어느 지점에서 중첩되는지 등 역사 백합 소설가이자 장르 문학 연구자로서 자신의 관점을 공유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번역 문학에 대해 논했다. 해외 문학이 출판 시스템을 거쳐 번역 문학이 될 때는 단순하게 언어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독자에 의해 새롭게 읽히면서 새로운 맥락을 얻게 된다는 점, 좋은 작품이라고 다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지 독자, 즉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으로 선별해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점, 번역 문학은 문학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해당 나라를 이해하려는 렌즈이기도 하다는 점 등을 이야기했다.2


2시간에 달하는 대담이 끝난 뒤, 참여했던 작가들과 타이완 문학관 직원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2시간으로는 너무나 부족했다고, 다음에는 아예 행사 시간을 종일로 잡아야겠다고. (정말로 그러했다. 질의응답 때 각자 질문을 두 개씩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맨 처음 순서였던 양솽쯔 작가만 질문했을 뿐, 나와 서장원 작가는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다. 사석에서 따로 물어봐야 할 듯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눠야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껏 문학적 교류가 너무나 적었으니까.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랄까. 모르고 있는 만큼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3

 

작년부터 한-타이완 퀴어 문학 앤솔러지와 한-타이완 SF/판타지 앤솔러지, 한-타이완 미스터리 앤솔러지를 조금씩 준비해 오고 있다. 양국 동시 출간 프로젝트이자 작가 교류 프로젝트다. 글을 쓰기 전에 참여 작가들끼리 어느 정도 교류를 진행해야 하기에 단순한 앤솔러지 발간이 아니라 한-타이완 작가들이 서로 알아갈 수 있는, 한-타이완의 퀴어 문학 혹은 SF/판타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이러한 교류의 첫 단추인 셈이다.






 

타이완 문학 기지는 2021년부터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선정된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인 ‘뮤즈 가든’에서 최소 7일, 최대 30일 머물 수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문학 행사를 열어야 한다. 타이완 문학 기지에 속하지만, 관람객이 들어올 수 없도록 울타리가 쳐진 ‘뮤즈 가든’의 문이 유일하게 열리는 날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필자는 2026년 1월에 ‘뮤즈 가든’에서 머물며 퀴어 문학 작가 대담, 작가와 번역가의 만남, 희곡 국제 교류 대담 등 ‘한-타이완 문학 교류’라고 볼 수 있는 여러 국제 문학 교류 행사를 연다.


2 작년 서울국제도서전 때 한국을 찾은 타이완 출판계 사람들이 내게 종종 이런 질문을 했었다. 어째서 한국에서는 타이완 문학 중에서도 유독 퀴어 문학(동지 문학)이 인기가 있는 거냐고.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타이완 퀴어 문학보다는 한국 문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장원 작가와 내 강연이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날 있었던 흥미로운 일로는 ‘퀴어적 독해’에 대한 질문이 있다. 서장원 작가가 장자샹 작가의 『밤의 신이 내려온다』를 퀴어적 독해로서 어떻게 읽었는지를, 그 독해 경험을 공유하였는데 ‘퀴어적 독해’라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던 독자가 행사가 끝난 뒤 따로 찾아와 내게 질문했다. 작가가 민속과 역사에 중점을 두고 쓴 작품인데 어째서 독자가 퀴어에 초점를 맞춰 읽느냐는 질문이었다. (참고로 이 질문을 한 사람은 민속을 연구한다고 했다) 내 설명을 한참 듣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답했는데 납득까지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나라라서 그런가? ‘퀴어적 독해’가 타이완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에 나는 입이 조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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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