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이자연 칼럼] 서로를 자꾸만 안아주는 요리사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 예스24
<흑백요리사2>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단연 요리, 그다음은 포옹이다.
글: 이자연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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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에 이어 높은 화제성을 이어가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2>)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단연 요리. 그리고 그다음은... 포옹이다. 경연을 시작하기 전이나 모두 마친 뒤,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서로를 끌어안는다. 마치 정해진 절차가 있는 것처럼, 모두가 암묵적으로 약속해 놓은 것처럼 상대방의 어깨를 접촉하고 등을 쓰다듬는다. 오랜 사제지간인 김희은 셰프와 아기 맹수가 맞붙었던 2라운드 1:1 흑백대전에서 무승부표가 나왔을 때, 이들은 두 심사 위원이 마저 토론할 수 있도록 방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아기 맹수의 엉덩이를 톡톡톡 토닥이는 김희은 셰프. 서로의 팔을 교차해 서로에게 안긴 자세로 나가는 모습은 경쟁보다 보살핌, 경계보다 이해, 라이벌보단 동료에 가깝다. 

 

꼭 사제지간에만 이런 다정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4라운드 TOP 7 결정전에서 2인1조를 짝지어야 할 때 정호영 셰프는 샘킴 셰프에게 다짜고짜 팔짱을 끼워 넣었다. 허허허, 머쓱하고 어이없는 웃음 뒤로 혹여나 샘킴이 물러갈세라 정호영은 자기 손에 손깍지까지 껴서 그가 어디로도 못 도망가게 했다. 뭐랄까. 두 요리사가 아무렇지 않게 몸의 간격을 좁힌 순간, 이들은 중요한 경연을 앞둔 스타 셰프가 아니라 그저 스킨십이 너무 자연스러운 평범한 아저씨들로 치환되고 만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하고 푸근한 얼굴의 아저씨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팔짱 끼고 돌아가는 아저씨들 같달까.) 알게 모르게 경합의 긴장은 낮아지고 오히려 실없는 웃음이 튀어나온다. 정작 업무 분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도 푸스스 터지는 웃음 덕에 분열이나 갈등이 아닌 평범한 동상이몽으로 느슨하게 풀이된다.

 

장시간 경합을 벌이며 사실상 관찰 예능에 가까운 <흑백요리사2>는 길고 긴 촬영 과정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지 예리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면 경합으로서의 긴장도가 떨어지고, 너무 많은 것을 제외해 버리면 성실한 요리사들의 서사적 매력을 놓치고 만다. (1라운드에서 유명인이 출연했으나 통편집 됐다는 후문은 이러한 지점을 반영한 과감한 실행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흑백요리사2>는 출연진의 온화하고 따뜻한 비언어를 택한다. 상대방의 등 뒤를 쓰다듬고, 제자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짝꿍에게 능구렁이처럼 팔짱을 끼우는 장면들. 삭제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장면들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경쟁의식과 출연진의 관계가 개별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명시한다. 

 

실제로 갈등과 균열의 불순물을 거두는 것은 <흑백요리사2>의 숙명적인 미션이었다. 이전 시즌 <흑백요리사1>은 여느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경쟁 구도를 부추기다가 대중의 심판대에 오른 이력이 있다. 시즌1 4라운드 흑백 혼합 팀전 레스토랑 미션은 헤드 셰프들이 자유롭게 팀원을 영입하여 레스토랑을 운영해야 했는데, 이 때 가장 도움되지 않는 팀원을 한 명씩 방출하도록 한 것이다. 요리 외길 인생을 걸어오며 성실함과 사랑만이 증명할 수 있는 경륜과 내공, 직업적 사명감을 명장들로부터 전이 받은 시청자는 안유성 명장이 팀원들의 투표로 방출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필요한 미션에 반기를 들었다. 언어화되지 않은 은은한 소외감, 불편한 분위기, 심리적 거북함, 그리고 명장의 급격한 사기저하. 무엇이든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도리어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 절망적인 처지에 많은 이들은 함께 동요했다. 따라서 여기, 프로그램의 미덕에 제동을 거는 풍경엔 아주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말 그대로 생존이 중요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경쟁과 전투는 기본 요소다. 이기적으로 보일지언정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시청자도 이 사실을 안다. 오직 대중이 선하기만 해서, 갈등을 원하지 않아서 방출 미션을 불편해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많은 이들이 요리를 향한 출연진의 무한한 애정과 열성을 하나의 서사로 바짝 따라왔다는 것이다. 주방에 들어선 지 몇십 년이 지나고도 음식 평가받는 것을 여전히 떨려하는 숙련자의 모습이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무해한 태도들은 단순 응원 이상의 일체감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사랑을 목격했는데. 요리가 영원히 좋다는 맹목적이고 숭고한 사랑을 봐버렸는데. 그러고 나서도 구조적 좌절을 모르쇠 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사진 : 넷플릭스

 

이 단계에서부터 그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이 직업적 사랑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경쟁의 얼굴로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요리에 대한 열성을 전달한다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대중에게 환영받지 않는다면 예능 프로그램은 이 사랑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흑백요리사2>는 동료와의 비언어를 내세운다. 탈락하고 나서 채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선재 스님 옆에 이름표를 놓고 싶다는, 나물을 사랑하는 요리사 아기 맹수의 모습이라거나. 탈락 후보에 올랐을 때 자꾸만 미안하다며 김희은 셰프의 무릎을 어루만지던 선재 스님의 손길이라거나. 흑팀이 자기를 업고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며 두 손을 드높이 올리던 박효남 셰프의 모습이라거나. 완전히 편집되고 지워져도 문제없는 사소한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하며 <흑백요리사2>만의 서사성을 채택한다. 

 

일을 사랑한다는 건 그 길을 함께 걷는 동료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경쟁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도파민 중독'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많은 이들이 잊고 지냈지만 동료와 일, 둘은 좀처럼 뗄 수 없는 단어다. 중학생 때부터 지켜봐 온 제자, 아기 맹수와의 전투를 앞둔 김희은 셰프에게 완전히 언어화된 사랑을 알려준 이준 셰프의 말을 모두가 기억하기를. "제자한테 지는 건 좋은 거야!"



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장면이 현실로 전환되는 순간, 찰나의 단상이 긴 사유로 전환되는 순간,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 순간. 영상이 자아내는 여러 ‘전환’을 포착해보고자 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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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ching

2026.01.09

흑백요리사 1보다 2가 더 마음이 끌리고 보고나면 흥분되고 벅찬 기분이 드는 게 왜일까 했는데 바로 이 지점 때문에 그랬던 거였나 봅니다! 제 마음을 문장으로 펼쳐보여 주셔서 심하게 고개를 끄떡거리며 읽었습니다. "중요한 건 많은 이들이 요리를 향한 출연진의 무한한 애정과 열성을 하나의 서사로 바짝 따라왔다는 것이다." 요 문장 정말 특히 공감합니다! 경쟁보다는 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한 스튜디오슬램이 만드는 프로그램도 앞으로 눈여겨 보게 될 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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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

가족들이 일터로 떠난 빈집에서 텔레비전과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덧 대중문화 비평을 말하는 어른이 됐다. 페미니즘 미디어 비평서 <어제 그거 봤어?>를 썼고,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씨네21>의 영화 기자로 활동 중이다. 목동불주먹이자 <슬램덩크> 사랑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