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
[이다혜 칼럼] 어제의 세계를 향해, 사랑을 담아
환상을 주입하는 데 ‘사랑’이라는 도구는 제법 유용하게 쓰인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은 사랑 이야기인 척 대중의 눈을 속인 뒤 온갖 이야기를 꺼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갈등의 해결 가능성을 묻기 위하여.
글: 이다혜
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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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온전히 사랑에 관한 것이기만 한 적이 없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갈등요소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것들은 계급과 자본, 권력, 지위, 외모를 비롯한 사랑 바깥의 억압과 질서였다. 신데렐라 스토리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경제력으로 나뉜 계급을 선망과 혐오의 근원으로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격차는 감정을 폭력적으로 발아시키며, 격차를 뛰어넘거나 혹은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하는 데 ‘사랑’이라는 도구는 제법 유용하게 쓰인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은 사랑 이야기인 척 대중의 눈을 속인 뒤 온갖 이야기를 꺼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갈등의 해결 가능성을 묻기 위하여. 그렇게 장애, 돈, 인종, 국적, 성정체성, 체류 자격과 같은 화두는 사랑 이야기와 곧잘 연결된다. E.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1908)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랑을 믿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유와 억압, 비일상과 일상의 감정을 다루는 이 작품은 창작될 때는 미처 작가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이제 곧 더 이상 같은 모습일 수 없을 세계의 일면을 가장 낭만적인 ‘전망’을 담아 그려낸 풍경화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공작새 깃털로 만든 펜으로 연애편지를 쓰듯 섬세하고 우아하게 『전망 좋은 방』을 영화로 번역해 냈다. 


영화 <전망 좋은 방> 스틸컷

 

이탈리아 피렌체, 사촌 언니와 여행을 온 루시는 숙소 전망에 크게 실망한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좋은 방을 주겠다던 숙소 주인은 런던이나 다름없는(펜션 안뜰만 보이는) 방을 줘서 숙녀들을 화나게 했다. 점점 말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다른 테이블에 앉은 “외국에 나가면 만나게 되는 교양 없는 부류의” 나이든 남자가 자기 방 전망이 좋다고, 방을 바꿔주겠다고 한다. 그 남자는 아들 조지와 여행을 온 참이다. 루시 입장에서는 조지에 대한 첫인상이 나쁘다는 말로도 부족한 정도였지만, 어쨌든 피렌체는 아름다웠다. 

 

어느 날 루시는 혼자 피렌체 구경을 나서는데, 소설이 시뇨리아 광장의 모습과 베키오 궁전의 탑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동안 영화는 짓궂은 농담처럼 절묘한 방식으로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압축해 보여준다.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벤베누토 첼리니의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동상을 절묘하게 클로즈업하는 것이다. 일단은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칼을 든 손과 드러난 페르세우스의 성기를 보여준다(굳이 부연하자면 칼 역시 성기의 은유로 종종 표현되지 않던가). 조각상들은 저마다 극적인 순간을 보여주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표현하고 있기 마련이라, 고통인지 환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을 한 나신들이다. 남자의 성기, 남자의 엉덩이가 차례로 스쳐 지나가는 셈이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다.” 돈 문제로 다투던 이탈리아인 두 명이 치고받다가 한 사람이 피를 토하고, 그 모습에 루시는 혼절해 버린다. ‘마침’ 그 장소를 지나던 조지는 루시를 안아 들어 옮긴다. 조각상들이 드러내 보여준 ‘선정적 장면’들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다. 루시는 오늘 일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조지에게 부탁한다. 이 대목은 소설이 훨씬 ‘잘 한다.’ E.M.포스터는 이렇게 쓴 것이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고 그는 그걸 기억했다. 그녀가 알리나리 가게에서 산 사진들에 묻은 피를 기억하듯이. 한 사람이 죽은 것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그들은 이제 인격이 입을 여는 상황, 유년이 문을 닫고 젊음의 갈림길이 열리는 순간에 이르러 있었다.” 부모의 질서 바깥의 세계를 인지하고 탐험하는 일은 승인받은 적 없는 사랑과 우정, 또는 거짓과 은폐의 경험으로 성사된다. 거짓말을 하는 자기 자신을 인지하는 순간, 타인에게 거짓말을 요청하는 자기 자신을 인지하는 순간, 외부 세계의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무방비 상태가 된 순간. 루시는 살인사건과 그로 인해 기절하고 조지에게 안겨 자리를 피한 일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사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그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전망 좋은 방>의 영화와 소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머러스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여러 의미에서) 웃게 되는 장면은 35분 즈음이다. 곧 피렌체를 떠날 예정인 루시는 피크닉을 나간 다. 루시는 함께 온 목사를 찾기 위해 서툰 이탈리아어로 마부에게 질문한다. “신사들”이 어딨느냐고 질문하려고 아는 단어를 총 출동해 “좋은 남자들”이 어딨느냐고 물으니, 마부는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루시를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 그리고 여기에 키리 테 카나와의 음성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 <Chi il bel sogno di Doretta>(누가 도레타의 아름다운 꿈을?)가 흐른다. 키리 테 카나와의 음성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운데 마부가 데려다준 곳에는 등을 돌린 남자, 조지가 서 있었다. 그가 돌아서서 루시를 바라본다. 루시는 당황한다. 조지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갑자기 루시를 끌어당겨 키스하는데, 이 순간 키리 테 카나와의 노래가 ‘절정’부에 달한다. 소설은 소설의 방식으로 유머러스하다. 조지를 발견하기 직전에 마부는 루시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용기와 사랑!” 뭐래 진짜. 하지만 역시 찌르는 듯한 키리 테 카나와의 고음에 맞춘 키스 신은 시큰둥하기가 어렵다... 물론 조지는 루시의 동의를 얻지 않고 키스했지만... 


영화 <전망 좋은 방> 스틸컷

 

그래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산 것은 아니다. 루시와 샬럿은 곧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고, 소설은 2부로 간다. 루시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루시는 세실에게서 ‘또’ 청혼을 받았다. 루시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세실은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했다. 그래서 ‘또’ 청혼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었다. ‘철도 일’을 한다는 말로 샬럿을 비롯한 이들의 은근한 비웃음을 샀던 조지와 비교하면 세실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구세계의 질서로는 그랬다. E.M. 포스터는 세실에 대해 “중세 사람”, “고딕 조각”이라는 수사를 덧붙인 뒤, 잊을 수 없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코웃음 치는 문장을 적었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많은 재능을 타고났으며, 육체적으로도 모자람이 없었지만, 그는 현대 세계가 〈자의식〉이라고 부르는 악마에게 붙들려 있었다.” 자의식이라 부르는 악마에 사로잡힌 남자가 어떻게 좋은 연인이 될 수 있겠는가? 연인으로서의 남자에 대해서라면 여성만큼이나 해박했던 포스터가 세실에 대해 쓰는 대목들은 놓치기 아깝다. 어쨌거나 곧 조지가 다시 루시 앞에 등장하고 루시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때 마치 옛이야기에서 종종 하는 방식으로 소설의 화자가 독자를 향해 대뜸 이렇게 말해버린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루시가 조지 에머슨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의 입장에 선다면 그게 그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정리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살기는 혼돈스러우며, 우리는 언제나 〈신경〉이라든가 다른 피상적인 말들로 내면의 욕망을 가려 덮으려고 한다.”

 

이게 어떻게 단순히 사랑 이야기이기만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기 자신의 ‘한계’들을 경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고, 원한다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것들을 욕망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헛발질을 할 때 우리는 관전자의 입장에서 비판하거나 조롱하거나 충고하지만, 당신 자신이 주인공인 일에서 얼마나 현명할 수 있었나. 여기에 더해, 세계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시대의 분위기를 비교되는 두 남자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IMF 직후 출간되어 인기를 끈 양귀자의 『모순』과도 비슷하게 말이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내 마음에 맞는, 예측 불가능성이 유혹적인,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남자와 사랑을 표현하는 데 인색한, 나에게 끊임없이 구혼하는, 예측 가능성이 지루한, 가진 것이 많은 남자 사이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좋을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마지막 날들이었다. 더 나은 ‘전망’을 믿을 수 있었던. 

 

영화 <전망 좋은 방>을 연출한 제임스 아이보리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실력자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E.M.포스터의 소설을 영화화한 <전망 좋은 방>(1985) <모리스>(1987), <하워즈 엔드>(1992)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아있는 날들>(1993)을 연출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오랜 인생 동반자이자 영화 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와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을 1961년에 시작해 2005년 머천트가 사망할 때까지 장기간 파트너십을 이어갔다1.  제임스 아이보리가 E.M.포스터의 소설들을 영화화한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는 <하워즈 엔드>2가 꼽히지만 언제나 특별언급될 중요한 작품은 <모리스>다. E.M.포스터는 1914년에 작품을 완성했지만 57년 뒤인 1971년, 그것도 작가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집필 당시에는 범죄시되었던 동성애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모리스』를) 출간할 수 없다.”라는 그의 말은 그 자신의 성정체성이 알려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E.M.포스터는 비극으로 끝맺지 않는 두 남성간의 사랑 이야기를 썼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동성애가 범죄가 아닌 시대가 왔고, 동성 연인과 오랜 파트너십을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이어간 제임스 아이보리가 『모리스』를 영화화3한 것이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이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각본으로 89세에 아카데미상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4. <전망 좋은 방> 영화가 소설보다 강렬한 대목 중 하나는 루시의 남동생 프레디, 조지, 그리고 비브 목사가 햇살이 내리쬐는 숲속 호수에서 나신으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뛰어다니다가 결국 루시와 그 일행에게 들키고 만다. 뉴욕과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 장면이 되자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대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이전에는 스크린에서 그런 종류의 남성 누드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일단 모두 성기를 노출한다). <전망 좋은 방>이 아카데미상 8개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3개 부문에서 수상5하면서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의 인생이 바뀌었다.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순간이 오자, 그들은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모리스>를 만들었다.


영화 <모리스> 스틸컷

 

영화에 대해 강연이나 강의를 진행할 때면 엔딩에 대한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인 작품의 경우 특히 그렇다.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송강호가 지은 표정은 어떤 의미일까요? 범인을 알겠다는 표정일까요 아니면 객석에 앉아 있을지도 모를 범인을 향해 보내는 시선일까요? <인셉션> 마지막 장면에서 쓰러질 듯 돌아가던 팽이는 결국 쓰러졌을까요?(현실이라는 뜻) 아니면 쓰러지지 않고 돌았을까요?(꿈이라는 뜻)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이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 의도만큼은 확실히 전달되는 엔딩 말이다. 결말에 대해 거의 질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 영화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범인이 잡히며 끝나는 범죄영화도 그렇다. 물을 것도 없다고, 이것은 확실한 마침표라고 생각하고 후련하게 영화관을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쪽이야말로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사랑은 언제까지 뜨거울 수 있었을까?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은 이후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의 사람에게라면 죽지 않는 이상 언제나 ‘그 이후’가 있기에 끝처럼 보이는 것들은 반드시 시작을 동반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은 언제나 작품과 함께 끝난다. 그 상태로 고정되어, 영원히 되풀이되어 읽히고 관람된다. 영화든 소설이든 그런 의미에서 반복이 멈추지 않는 타임루프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를 질문하는 일은 현대의 사랑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주인공이 사랑을 찾고, 확인하고, 획득하며 끝났지만, 이 작품은 시리즈가 되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탐색했다. 브리짓의 새로운 사랑을.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어지는 비포 시리즈는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마침내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숱한 사랑 이야기가 ‘그 다음’을 말할 때는 언제나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질문, 혹은 사랑과 일상의 부대끼는 이중주를 말한다. 하지만 <전망 좋은 방>의 후일담을 상상하는 방식은 그럴 수 없었다.

 

E.M.포스터는 『전망 좋은 방』의 출간으로부터 50년이 지나, 주인공들을 떠올리면서 다소 아득해했다. 『전망 좋은 방』은 1908년에 출간되었다. 출간 순서로는 포스터의 장편 소설 중 세 번째지만 작품을 구상한 시기로 따지면 첫 번째 소설이었던 이 작품의 선량하고 매력적이며 서로를 사랑하는 주인공에 안도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오싹한 사실을 작가가 들이대는 것이다. 사랑이 식을 일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1958년이 되어 생각해 보니 주인공인 조지와 루시가 어디에 사는지 그려보기 어렵다는 데 막막해져서다. 그냥 세월이 흐른 것이 아니다. 포스터의 설명을 빌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시작했던 제1차 세계대전이 곧 그들의 삶을 가로막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와 루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포스터는 조지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되었으리라고 예상했다.6 대체 복무를 해서 감옥에 가지는 않았겠지만 좋은 직업은 잃었으리라고. 루시 역시 그런 그의 생각에 따랐으리라고. 그렇게 삶을 꾸려갔을 두 사람은 또 한 번의 세계 대전을 마주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지가 참전했을 것이다. 그렇게 조지는 이탈리아에 다시 발을 딛게 되었을 것이며, 마침내 다시 찾은 피렌체는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으나 모든 게 변해 있었으리라고. 그 모든 일을 겪고 1958년의 그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심란해지는 건 이런 순간들이다.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그들은 살아서 세계가 나빠지는 일들을 겪고 한탄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낡고 지쳐갔으리라. 이야기가 완벽한 타임루프여서 ‘이후’가 없기를 바라기엔 그들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린 독자/관객에게 이런 신산함은 언제나 조금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한번 플레이하는 수밖에. 키리 테 카나와의 흠 없는 목소리로 푸치니의 <O mio babbino caro>(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들으며 오프닝부터 ‘건너뛰기’ 없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을 읽는 것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를. 




1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의 주역 중에는 소설가이자 각본가인 루스 프라우어 자발라도 있었다. 아이보리는 개신교 미국인, 머천트는 인도 무슬림, 자발라는 독일 유대인이었는데, 이들은 ‘머리 세 개 달린’ 신 혹은 괴물처럼 성공적인 장기 협업을 이어갔다. 자발라의 높은 문학적 수준을 갖춘 각본, 머천트의 쇼맨십과 수완 및 매력, 그리고 아이보리의 섬세하고 정교한 연출은 인도,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제작된 화려하고 정서적으로 사실적인 영화들로 결실을 맺었다. 

2 E.M.포스터는 이 소설로 “앞으로 그가 한 줄도 더 쓰지 않는다 해도, 그의 자리는 보존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3 주연을 맡은 클라이브 역의 휴 그랜트와 모리스 역의 제임스 윌비는 그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E.M.포스터는 1960년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허구 속에서나마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지고, 소설이 허용하는 ‘영원히 오래오래’ 그 사랑 속에 머물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 나는 이 책을 ‘더 행복한 해를 위하여’ 헌정했고, 그 소망은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

4 제임스 아이보리는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쓰고 공동 제작했다.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했으며, <아이 앰 러브>(2009)와 <비거 스플래쉬>(2015)를 잇는 그의 주제별 ‘욕망’ 3부작의 마지막 편이 되었다. 1983년 북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17세의 엘리오 펄만(티모시 샬라메)과 엘리오의 아버지의 대학원생 조수인 24세의 올리버(아미 해머) 사이의 로맨틱한 관계를 담았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원래 구아다니노의 제안에 따라 영화를 공동 연출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제임스 아이보리는 2016년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구아다니노가 혼자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가 썼지만 연출하지 않은 유일한 장편 영화로, 연출은 하지 않았지만 제작의 다른 부분에는 계속 참여했다. 

5 수상한 부문은 의상상(제니 비번, 존 브라이트), 프로덕션 디자인상(지아니 콰란타, 브라이언 애클랜드-스노우, 브라이언 새브가, 엘리오 알타무라), 각색상(루스 프라우어 자발라)

6 E.M.포스터 자신부터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으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영국 적십자사의 수색 책임자(실종 군인 수색 업무)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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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E.M. 포스터> 저/<고정아> 역

출판사 | 열린책들

모리스

<E. M. 포스터> 저/<고정아> 역

출판사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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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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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187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톤브리지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그곳에서 휴 메러디스를 비롯한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케임브리지의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월간지 [인디펜던트 리뷰]에 에세이 『마콜니아 상점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으며 다음 해, 같은 잡지에 단편소설 『목신을 만난 이야기』를 게재하여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07년 첫 장편소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을 발표한 이후, 『기나긴 여행』(1907), 『전망 좋은 방』(1909), 『하워즈 엔드』(1910)를 연이어 내놓아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하워즈 엔드』 발표 당시 영국 문단의 찬사는 대단했다. (“앞으로 그가 한 줄도 더 쓰지 않는다 해도, 그의 자리는 보존될 것이다.” - [스탠더드]).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이름과 함께 [위대한]라는 수식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포스터는 로저 프라이, 버지니아 울프 등과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20세기 초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1927년 대표작 『인도로 가는 길』을 발표하여 역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포스터는 소설가로서보다는 지식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71년에 출간된 『모리스』는 1914년에 완성되었으나 작가 사후에 출간된 작품이다. 1949년 기사 작위를 서훈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1970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91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