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는 말을 들으면 문득 회전문을 떠올리고 만다. 고층 빌딩 지층에 달린 두꺼운 유리로 만든 회전문. 연말과 연초 사이에는 시간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서 밀고 넘어가는 기분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특히 사적인 기념일들이 우연하게도 12월과 1월에 몰려 있는 바람에 나는 10월부터는 천천히 선물과 식당 예약이나 공연 예매 등을 계획한다. 편지를 써야 한다면 그곳에 적을 문장도 그즈음부터 메모해 두는 편이다. 그렇게 준비한 것들로 기념일들을 순서대로 밀어 젖히고 걸어가면 새해가 온다. 천천히 움직이는 자동 회전문을 통과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해하리라. 외부와 내부 사이, 칸막이와 칸막이 사이에 잠시 갇히듯 머무르게 되는 그 짧은 순간이 내가 연말을 통과하며 체감하는 기분과 비슷하다.
어릴 적 호기심에 회전문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뱅뱅 돌며 놀다가 혼난 적이 있다. 아마도 해리포터를 읽고 빠져들어 세상의 모든 문이 마법 세계로 가는 비밀 문이라면 좋겠다고 공상하던 저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회전문을 돌다가 나와 어지러운 탓에 팽팽 도는 세상이 재밌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 사람은 자라면서 각자의 회전문을 하나씩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간다고 여기게 되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두껍고 투명한 유리와 유리 사이에 끼어서 여기로도 저기로도 나가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도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까. 문제는 시간이 언제나 순방향이라는 것. 후회나 미련은 잠시 갈 수 없는 곳을 바라보다가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 나가야만 하는 괴상한 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픈 사람의 밤은 곧잘 뒤척이며 공전하다가 어지러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 아침엔 어디도 빨리 걸어갈 수 없다.
내가 주로 밤에 깨어 하루를 보낸다는 걸 아는 이들은 종종 야심한 시각에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특히 겨울이 오면 그런 메시지 빈도가 높아지는데, 밤이 길어지는 탓에 지금보다 지금이 아닌 시간을 오래 들여다보는 순간이 잦아지기 때문이 아닌가 넘겨짚는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발자국이 뱅글뱅글 돌면서 찍힌 자리에 다시 찍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잠 안 오면 이거나 봐, 하고 몇 가지 제목을 툭 던진다. 주로 시간과 관련한 이야기이고, 결국 사람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극이 지루해서 청혼하러 왔어?”
- 영화 <어바웃 타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붉은 드레스를 입고 소나기를 맞으며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배우 필모그래피 중 최고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명장면의 레이첼 맥아담스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시간 여행을 하여 과거로 가서 과거의 아버지와 함께 탁구나 해변을 걸으며 감정적 숙제를 푸는 주인공의 성장, 타임 루프로 인해 벌어지는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는 주인공, 팀 레이크의 청혼 장면이다.
친구와 연극을 보던 팀은 거기서 유년 시절 이루지 못했던 첫사랑을 우연히 만난다. 다소 찌질했던 유년의 자신을 거절했던 그녀가 변호사가 된 자신을 유혹하자 흔들리던 팀은 그녀와 식사하고 호텔 방까지 들어가기 직전, 문득 마음을 고쳐먹고 시간을 과거로 돌려 연극 공연장으로 루프 한다. 팀은 방금과는 다르게 첫사랑을 거절하고 동거하던 현재의 연인 메리에게 달려가 잠든 그녀에게 조용히 청혼한다. (물론 팀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침대에서 자다가 깬 메리는 나른하게 팀을 바라보며 연극이 지루한 나머지 청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냐며 웃는다. 말 그대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주인공이 깨닫는 장면인데, 이는 에필로그에서 ‘결국 시간 여행자로서 깨달은 행복을 향한 진리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해서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수정하지 않고 현재라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그대로 온전히 누리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설득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를 향한 불안으로 지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소중한 것을 놓치는 일이 인생을 온통 어리석게 만든다는 것. 어쩌면 뻔하고 지루한 결론이라고는 해도 여느 때보다 밤이 짙다고 느껴질 때면 다시 꺼내 보고 싶어지곤 한다. 때때로 생활이 지루해질 뿐, 사랑은 지루해지지 않는다. 적응과 정복의 차이를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 지루해졌다면, 사랑한 건지 정복한 건지 천천히 고심해 봐야 한다.
“옛날이야기 같은 게 아니야, 우리는 정말로 여기 있었다고.”
-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의 인간인 힘멜은 마왕을 무찌르고 용사가 된다. 천 년을 산 엘프 마법사 프리렌은 힘멜과 함께 마왕을 무찌른 용사 파티의 일원이다. 마왕이 사라지고 태평성대를 맞이한 세상, 힘멜은 은퇴하고 노인이 되었고 천수를 다해 세상을 떠난다. 병이나 사고가 없다면 영원을 살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엘프인 프리렌은 힘멜의 장례식에서도 자신은 끝내 힘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간은 너무 짧은 삶을 산다고 말한다. <장송의 프리렌>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애니메이션이다. 프리렌은 힘멜을 추모하며 힘멜의 영혼을 다시 한번 만나 이번에는 그의 애정과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오레올’이라고 부르는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가기 위해 힘멜과 함께했던 모험의 장소들을 거꾸로 추적하며 긴 여행을 시작한다.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는 왕도물 서사의 시초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일본 고전 롤플레잉 게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서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계승하고 변주해 온 일본식 판타지 설정을 독창적으로 비튼 작품이다. 싸움이 멎은 세상에서 자신을 향한 용사의 사랑을 용사가 죽은 이후에 깨닫고야 만 불멸자의 여정을 잔잔하게 옴니버스식으로 진행한다.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용사 힘멜이 마왕을 무찌르고 세계 곳곳에 용사 파티의 모습을 동상으로 세워 남기게 하는 것을 보고 프리렌이 힘멜을 나르시시스트라 힐난하는 장면이다. 그런 프리렌에게 힘멜은 웃으며 말한다. 먼 미래에 우리도 없이 네가 혼자 남아도 고독하게 두지 않기 위해서라고.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했다는 증거로 남겨두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오랜 시간 후에 마주친 동상 앞에 서서 프리렌은 말없이 동상의 푸른 이끼를 닦아내며 힘멜이 한 말의 의미를 그제야 깨닫는다.
영원히 산다고 후회와 미련을 초월할 수 없다면, 그것이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수밖에는 없다. 시간이 아닌 마음의 일일 것이다. 오래도록 함께 살았다고 진정으로 함께 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물론 나도 여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이 찬란한 계절이었음을 깨닫고는 한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고 옆과 밑을 살피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지금 내 곁의 들꽃과 목덜미를 스치는 햇볕과 잠든 이의 다정한 숨소리 같은 것들. 영원까지는 아니겠지만 아직은 내일이 있으므로. 오늘 못다 한 슬픔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 조금 더 안아보기로.
“나는 지금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이젠 SF소설계의 고전 반열에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는 드뇌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의 원작 소설로도 유명하다.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지각하는 외계인과 접촉하며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다가 자신도 외계인처럼 삶과 시간을 인식하게 되는 주인공 언어학자 루이즈의 이야기다. 핵심은 이 단편 전체가 루이즈의 현재와 동시에 딸에 관한 서술이 교차 진행되는 부분인데, 이는 이미 태어나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딸의 운명을 알게 되고, 자신은 그렇게 먼저 죽은 딸을 아파하며 이혼하고 살아가게 될 것을 인지하고 나서도 결국 결혼하고 딸을 낳는 미래로 향하게 되는 묘사를 절묘하게 해내는 부분이다. 루이즈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름을 깨달았기에 자신의 미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딸은 태어나야 하며, 태어날 것이고, 기쁨과 동시에 슬픔으로 남게 될 테지만 딸이 있는 미래가 없다면 지금 그것을 인식하는 현재 자신의 존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동시성으로 인정한 것이다. 일어날 일이지만, 일어난 일이다. 슬픔도 있겠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이미 체감하고 만 것이다.
상상컨대, 내일의 멸망을 앞두고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안대를 두르고 눈을 가린 우리는 있지 않아도 될 일과 있어야 할 일을 미리 구별하지 못한 채 나아간다. 끝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일들을 한가득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다 문득, 과거의 불행과 행운을 나누는 일이 결국 현재라는 편견 속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이미 일어난 일은 변하지 않지만, 일어난 일을 바라보는 나는 계속해서 변해가므로. 나는 늘 ‘삶’이라는 글자가 ‘사람’이라는 글자를 양옆에서 눌러 한 글자로 합쳐놓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삶은 사람의 시작과 끝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정 부분 삶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끝을 감당할 용기와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작지만 어렵다. 시작하지 않으려고 끝을 내지 못하거나, 끝내지 않으려고 시작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시작과 끝을 앞면과 뒷면으로 접붙인 시간이라는 동전은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무심하게 튕겨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늘 한결같이.
아무래도 글을 쓰고 사는 처지라, 2025년을 반추하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이 가장 위에 떠오른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것인가. 개념적으로 상상하면 우리는 매일 잠에 들며 죽고 잠에서 깨며 살아난다고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연습하며 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 밀어줄 것이다. 어제의 혼자가 오늘의 혼자를. 각자의 삶에 눈금을 붙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 사회의 본능이겠지만, 시간은 늘 그렇듯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지나왔다. 그리고 지나갈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낙관은 비관보다 좋을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새해의 시작을 두고는 어쩐지 모두에게 나른한 희망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결국에는 괜찮을 거라고. 꼭 나쁜 사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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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출판사 | 엘리
최현우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당선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우리 없이 빛난 아침』과 산문집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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