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후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곳에는 꺼지지 않는 형형색색의 빛으로 차가운 겨울 거리를 밝힌, 응원봉을 든 케이팝 팬들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수호와 최애를 향한 사랑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요? 케이팝 팬 당사자인 팀 ‘응원봉 걸스’(희주, 일석, 구구)는 광장에서 직접 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랑을 동력으로 바꾸는 것에 능숙한 케이팝 팬들의 정치, 사랑, 용기에 관한 다채로운 기록. 인터뷰집 『케이팝 응원봉 걸스』의 작업 이야기를 저자 구구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 작업을 마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출간 직후에는 아이돌 팬으로 살아오는 내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이야기를 무사히 세상에 내놓았다는데 느낀 안도감이 가장 컸고요. 지금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다고 읽어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느껴서 마음이 살짝 조급해진 상태입니다. 요즘은 작가가 글만 써서는 안 된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북토크나 워크숍을 기획하고, 마케팅을 함께 고민하는 작업에 골몰 중이라 작업을 마쳤다기보단 계속되고 있다고 느껴요.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온 케이팝 팬들의 마음을 따라가는 인터뷰집입니다. ‘사건’과 ‘현장’이 아닌 그 자리를 지킨 각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다고 느낀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20대 때부터 우리가 ‘빠순이’라고 불러온 존재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어요. 2008년, 2016년에 진행된 촛불집회에서도 ‘빠순이’들을 만났거든요. 저도 빠순이로서 집회에 참석했고요.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무엇보다 뭘 원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응원봉 걸스의 멤버 ‘퐁퐁’의 기획과 ‘일석’의 참여로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되었어요. 팬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그러한 소망과 염원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통해서, 이후 인터뷰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도 작업에 동참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응원봉을 들고 국회의사당 앞에 간 날입니다. 형형색색 빛나는 응원봉을 보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아카이브해서 ‘빠순이’의 정치적 계보를 이어보자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아요.
계엄 후 파면이 선고되기까지 타임라인에 케이팝 팬 여섯 명의 인터뷰가 겹쳐 있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질문을 구성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기획자이자 인터뷰어로서, 또 다른 케이팝 팬으로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태도는 무엇인가요?
기획자로서는 분명한 방향성과 목표를 정해놓고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게 맞겠지만, 저는 기획자보다는 팬 당사자성을 지닌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특정한 방향성을 정해놓고 인터뷰를 하지 말자는 걸 제1의 원칙으로 정했죠.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터뷰어가 듣고 싶은 방향으로 인터뷰 흐름을 주도하게 되는데요. 인터뷰의 틀을 미리 짜놓거나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하기 용이하도록 이야기를 구획·배치하지 않고 가급적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미디어에서 이른바 ‘응원봉 시민’을 호명하는 방식이나 그들을 조형하는 틀 자체도 따분하거나 잘못된 지점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작업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작업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도 팬들의 공격이 염려되는 대목은 인터뷰이와 상의해서 덜어내거나 수정했어요. 인터뷰이를 지키는 일 역시 우리에겐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또, 케이팝 팬으로서는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곡이나 무대, 활동 전반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인터뷰에 임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케이팝 전반보다는 제 아이돌만 열심히 파는 사람이어서, 공부가 많이 필요했어요. 인터뷰이들의 아이돌을 향한 사랑을 존중하고 싶었고, 해당 아이돌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구구 님은 독서 공동체 ‘들불’을 운영하시는 등 사람들의 연결을 만드는 데 능숙하신 것 같습니다. 케이팝 팬으로서 팬을 인터뷰하는 경험은 어떠했는지, 새로운 연결을 통해 느낀 감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나의 욕망을 타인이 발견해 주기도 한다는 점을 새삼스레 감각했습니다. 대화 속에서 내가 원하던 게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잖아요. 아마 인터뷰이 분들도 마찬가지로 느끼셨을 것 같아요. 팬들은 아이돌을 욕망하는 일을 곧 자신의 욕망 전부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 안에 숨겨진 나의 욕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 자신과 타인의 욕망을 통제하거나 억압, 검열하죠. 나 자신을 억누르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돌에게도 이러한 검열과 억압을 요구하게 됩니다. 팬덤 내 갈등이나 아이돌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팬 문화는 여기에서 촉발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단 걸 다시 느꼈습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대화에 참여한 다른 구성원이 발견해 줘야 한다고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사회가 ‘정치’라는 단어에 큰 거리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구구 님이 생각하는 정치는 무엇인가요? 정치와 최애를 향한 사랑,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즐거울 때도 있지만, 자주 성가시고, 어렵고, 때때로 짜증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 포함된 활동이기 때문에, 그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대화의 어려움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저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아무튼 완벽한 대화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대화란 불순물과 방해물이 가득한 과정이고, 대체로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한 채로 끝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이 살고 있으니까,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고 있으니까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불행하게도요.
최애를 향한 사랑과 정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연결됩니다. 최애는 내게 ‘완벽한 타인’이 아니라 ‘어설프지만 품어줄 수 있는 타인’, ‘어설프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타인’입니다. 팬들은 최애의 아쉬운 점은 최대한 선해하고, 좋은 점은 과장하고 부풀립니다. 저는 이런 마음을 타인에게도 조금만 적용해 보면 좋겠어요. 꼴 보기 싫더라도 선해해 보고, 과장해서 좋게 받아들여 보는 것. 제가 느끼기에 이건 아이돌을 진심으로 사랑해 본 팬들이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팬들이 이 글을 읽으면 모두가 내 ‘취향’이 아닌데 어떻게 좋게 해석해 줄 수 있겠느냐고 항의할 것 같습니다만… 제 말은 그래도 좀 노력해 보자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게 제 취향껏 움직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결국 이러한 노력은 나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과 연결될 겁니다. 내가 타인을 좋게 바라보려고 애쓰고, 타인도 그렇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솔직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내 몸집을 쓸데없이 부풀리거나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굴 필요 없이, 상대를 믿고 나를 꺼내 보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학계나 사회운동의 언어가 아닌 팬들의 내부적 경험과 목소리를 직접 기록하고자 했다는 점도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연결의 가능성을 남기는 책처럼 읽혔는데요. 이후에도 케이팝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기록하거나 시도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인터뷰 작업을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먼저 신청을 받거나 구인을 해서 만남 일시와 장소를 세팅하는 방식 말고 게릴라 인터뷰의 방식으로 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콘서트를 마치고 나오는 팬들에게 즉흥적으로 뭔가를 묻는다든지, 연대의 현장에서 가방이나 옷에 아이돌 굿즈를 달고 있는 분에게 다가가 즉석 인터뷰를 시도해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책에는 인터뷰이들과 세 저자의 ‘혁명의 케이팝’이 등장합니다. 새해를 맞아 ‘새해 첫 곡’을 정해보면 어떨까요. 구구님께서 독자 분들께 들려주고 싶은 ‘새해 첫 케이팝’은 무엇인가요?
제가 사랑하는 NCT WISH의 ‘WISH’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 큰 문을 열어내/세상의 반짝임도/혼자선 아무런 의미조차 없어”라는 가사를 정말 좋아해요. 큰 문은 혼자 못 엽니다. 함께 할 때에야 가능한 일이죠. ‘함께’의 가치를 기억하며, 세계의 변화를 향해 새로운 눈을 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인터뷰 녹취를 풀거나 인터뷰이와 소통하며 원고를 다듬는 작업을 할 때에는 제 책상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집에는 훌륭하고도 열악한 노동 환경(=고양이)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집중해서 작업해야 할 때에는 집 앞 스터디카페를 이용했습니다.
방 책상 전경 (왼쪽), 스터디 카페 (오른쪽)
제 책상에는 포스트잇과 메모지가 엄청 많은데요. 메모지에 할 일을 잔뜩 적은 뒤, 책상 우측에 놓인 자석 보드에 메모를 붙이는 걸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딴짓을 하고 싶어질 때마다 메모지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문구(“너 지금 안 하면 죽는거야”)를 적어 붙였습니다. 또, 정말 너무 힘든 날은 작업을 중단하고 다이어리 꾸미기(이하 다꾸)에 몰두했습니다. 다꾸를 하다보면 작업 때문에 사나워졌던 마음도 일순간 고요해집니다. 제게 명상이나 다름없어요.
다꾸용 마스킹 테이프와 할 일 작성용 메모지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 ]
작업하는 동안에는 플레이리스트(이하 플리)에 크게 의지했습니다. ‘그만 미룹시다. 45분만에 끝내게 해드림’이라는 제목의 천둥+클래식 조합의 플리를 작업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는데요. 45분이면 재생이 끝나기 때문에, 플리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15분 쉬고 오는 식으로 작업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김명남 번역가가 만든 KMN 작업법에 시도해 봤었는데, 과집중 상태에 빠져들면 시간을 무시하고 계속 작업하게 되더라고요. 몇 차례 번아웃을 경험하며 작업을 끊어가며 지속하는 일이 중요하단 걸 깨달았기 때문에… 플리가 너무 소중했어요.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죄책감 없이 NCT WISH의 자체 콘텐츠(이하 자컨)를 보는 일이요. 세 명의 팀원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작업이 지연되면 안됐거든요. 함께 하는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큰 만큼 괴로움도 컸습니다. 괴로움이 클 때마다 마감 후에 볼 밀린 자컨들을 떠올렸어요.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그런데 마감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컨은 영원히 밀린 채로 남아 있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을 몇 번 다시 읽었습니다. 예전에 읽었을 땐 이 정도로 재밌지 않았었는데, 이번 인터뷰 작업하면서는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결국 구술자를 통해서만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는 것. 그게 제게는 내내 어려운 일이었는데요. 제가 살아온 맥락 안에서 구술자의 삶을 판단, 해석하려는 얄궂은 태도를 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겠죠. 그럴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판단보다는 경청이, 섣부른 감정과 연민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팬덤은 언제나 외부가 아닌 내부의 관계와 연대, 구성원 간의 결속과 서로를 향한 신뢰를 더 중요한 정동으로 여겨온 집단이다. 그렇다면 이번 광장에서 드러난 에너지 또한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덕질의 세계 속에서 축적되어온 감정과 실천의 결과일 것이다. (278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케이팝 응원봉 걸스
출판사 | 클레이하우스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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